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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3 章 드러나는 힘
지하 백 장 밑에 위치한 은밀한 밀혈(密穴)이었다.
흡사 천지창조(天地創造) 이전의 대혼돈(大混沌)인 양 암흑세계인 이곳은 기분 나쁠 정도로
깊은 정적 속에 빠져있었다.
죽음같은 음산함에 짓눌려 있는 암혈 속의 스산한 정적을 깨뜨리며 들려오는 규칙적인 발걸
음 소리가 있었다.
저벅! 저벅!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
였다.
"……!"
기검하를 위시한 삼 인이 거의 동혈 끝에 다달았다.
언제부터일까? 그들 삼 인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열 두 개의 잿빛 눈동자가 있
었다.
암혈의 끝에는 여섯 명의 괴인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이들도 사람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괴사하고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천정의 야명주에서 뿜어 나오는 시퍼런 형광에 청철색으로 물든 육 인의 얼굴은 실로 모골
이 송연할 정도로 추악한 얼굴이었다. 하나 눈빛만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
기검하의 모습을 확인하던 육 인은 주체할 수 없는 격동과 희열에 휩싸여 전신을 가늘게 떨
었다.
"오오…… 구청룡제황지재가 드…… 드디어……."
"마…… 맞다! 구청룡제황지개임에…… 틀림없다."
"마침내 조사님의 예언대로…… 이천 년의 금제(禁制)가 풀리는…… 순간이 왔는가?"
그들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털썩!
육 인을 발견한 유상촌장 서문기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미천한 말학 서문기가 삼가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더할 수 없이 경건하고 공손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괴인들은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직 기검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
다.
문득 육 인 중 맨 오른쪽 배가 맹꽁이처럼 툭 불거져 나온 난장이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모든 것이 대체로 둥그랬다.
마치 둥그런 공(球)을 연상케 하는 우스꽝스러운 신체를 지닌 난장이 노인은 부드러운 미소
를 지으며 기검하에게 말을 붙였다.
"소형제는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있나?"
버릇인 듯 그의 동그란 코 끝이 괴이하게 실룩거렸다.
(하아……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동그랗지.)
기검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쳐다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몰라."
너무나 간결한 대꾸였다.
"그럼 우리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몰라!"
난장이 노인의 둥그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럼……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나?"
"그것도 몰라!"
기검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공이 빨개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난장이 노인의 안색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씩씩! 콧김을 사납게 내뿜으며 그때까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백미조상수 서문기
를 쏘아보았다.
"이 멍청한 촌장놈아! 도대체 네놈은 일을 어찌 처리하는 것이냐?"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기검하의 눈에 그 모습은 마치 공이 바닥에서 퉁퉁! 튀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서문기는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바르르 몸을 떨었다.
"으으……."
난장이 노인은 울화가 풀리지 않는지 연신 콧김을 황소처럼 씩씩 뿜어내며 소리치고 있었
다.
"에잇! 저런 놈이 촌장이니 뭐가 되는 일이 있나."
서문기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이놈! 도대체 네놈의 머리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서문기는 대답도 못하고 바르르 몸을 떨고만 있자 옆에 서 있던 해골처럼 삐쩍 마른 노인이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며 참견했다.
"끼끼끼…… 몰라서 묻냐? 저놈의 머리에는 똥만 가득 들어있지. 암, 틀림없어."
그는 확신한다는 듯이 고개까지 끄덕였다.
"어…… 어르신네들……."
지독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서문기는 변명 한 번 하지 못한 채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을 떨
뿐이었다.
해골괴노가 짜증스럽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어르신네고 나발이고…… 이 똥멍청이야! 어서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예…… 아, 알겠습니다."
서문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꾸한 뒤 살았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실로 번개
가 무색할만큼 빠른 동작으로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난장이 노인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적노를 바라보았다.
"어……? 요 괴상한 땡중 놈은 또 뭐하러 왔지?"
"……."
난장이 노인은 적노의 체면은 아랑곳 없이 사정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전신이…… 계집 냄새로 찌든 놈이 꼴에 승포에 염주까지…… 쯧쯧…… 정말 말세로다. 말
세야……."
적노는 흡사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히 대꾸조차 할 수 없음인가. 난장이 노인은 적노의 얼굴만 보아도 화가 치미는 듯 안색
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요 새까만 후배 놈아! 어서 썩 꺼지지 않고…… 뭐가 잘났다고 여태껏 붙어 있느냐?"
난장이 노인의 언행은 아예 상대의 안면을 확 깔아뭉개 버리는 무법자인 양 지독한 것이었
다.
"알겠습니다, 그럼……."
적노는 조금의 불만도 떠올리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난장이 노인이 자신을 쫓아내는 것
에 필경 이유가 있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
기검하는 내심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이야. 할아범의 나이가 적어도 백 살은 넘었을텐데…… 이 괴상한 난장이 할아버
지의 나이가 대체 얼마나 되길래……?)
그의 놀라움은 당연했다.
난장이 노인은 어깨를 쭉 펴며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에험! 소형제. 내 위엄이 어떤가?"
기검하는 빙그레 웃었다.
"응. 마음에 들어……."
"끌끌끌…… 역시 소형제는 이 늙은이와 통하는 것이 있단 말이야."
난장이 노인은 기분이 매우 좋은지 메기입처럼 입을 벌리며 웃는 것이 익살스러운 모습이었
다.
기검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 빛내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한데…… 몇 가지 알고 싶은게 있어."
난장이 노인은 연신 거드름을 피우며 의젓하게 대꾸했다.
"어흠…… 그게 무엇인가?"
"이곳이 어디이며…… 이곳에 내가 왜 왔는지…… 또 할아버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하는
것이야."
"알겠네! 내가 자세히 말해 주지."
"그럼,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말해봐."
그는 처음부터 아예 아랫 사람을 대하듯 반말을 하고 있었으나 웬일인지 여섯 사람에게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들렸다.
난장이 노인은 기이한 신광을 흘리며 대답했다.
"소형제! 혹시 구유조상혈이란 곳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가?"
기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아범에게 들은 적이 있어."
난장이 노인은 입꼬리를 실룩이며 득의의 괴이한 웃음을 지었다.
"클클…… 바로 그 구유조상혈의 심장부(心臟部)가 이곳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기검하는 흠칫 놀랐다.
(으음…… 들어올 때부터 결코 평범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곳이 구유조상
혈이었을 줄이야…….)
기검하의 놀라움은 정녕 대단한 것이었다.
구유조상혈!
인간이 죽고난 후의 모든 것을 관장하며 지배한다는 신비의 집단.
일명, 사후무림이라 일컬어지는 그 신비세력의 실체가 마침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럼 할아버지들은 구유조상혈의 주인들이야?"
기검하는 여섯 노인의 얼굴을 차례로 쓸어보았다.
"아닐세!"
여섯 노인은 일제히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럼 뭐야?"
"우리들은 구유조상혈을 이루고 있는 여섯 세력의 지주로서 구유조상혈의 주인인 혈주를 돕
는 육대공봉(六大公奉)이라네."
기검하는 끊임없이 의문이 솟아오르는 듯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혈주는 누구야?"
"없네. 이천 년 동안이나……."
여섯 노인은 입을 모아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나, 이제부터는 혈주가 생길 것이네!"
"혈주가 될 사람이 누군데?"
여섯 노인의 얼굴에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클클…… 바로 소형제라네!"
기검하는 그 말에 두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나라고? 그걸 누가 정했지?"
당돌한 기검하의 물음에 여섯 노인은 움찔했다.
"그…… 그것은……."
기검하의 물음에 여섯 노인은 더듬거리며 말문이 갑자기 막혀버리고 말았다. 나이 어린 기
검하가 설마 이런 당돌한 질문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난장이 노인이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소…… 소형제! 그것은 구유조상혈을 세우신 구유조사(九幽祖師)께서 마련해 놓은 현기로운
안배이자……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숙명일세."
그같은 난장이 노인의 말에 기검하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늘의 숙명? 다른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면 겁을 먹고 그대로 따를지 몰라도 나는 달라?"
"……."
여섯 노인은 기검하의 당찬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기검하는 조그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또렷한 음성으로 여섯 노인을 주시하며 말했다.
"나는 절대로 타의(他意)에 의해서 내 운명을 맡기고 싶지는 않아. 오직 나의 뜻에 의해서
내 운명을 맡길거야."
"……!"
그같은 기검하의 말에 여섯 노인은 다시 한 번 입을 쩍 벌린 채 할 말을 잊어버렸다.
제 아무리 천고의 기재라 하더라도 이제 팔구 세에 불과한 어린소동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
서 자신들도 할 수 없는 말이 거침없이 내뱉아지고 있는 것이다.
(으음…….)
그들은 비로소 구청룡제황지재를 타고난 기검하의 진면목을 알 수가 있었다.
기검하의 몸에서는 부드러우나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막강한 기운이 무형 중에 뻗치고 있
었다. 그것은 어떤 인위적(人爲的)인 것이 아닌 천성적으로 타고난 기운이었다.
"……."
여섯 노인은 감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난장이 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형제! 그렇다면 구유조상혈의 혈주자리를 마다하겠다는 것인가?"
기검하는 그를 힐끔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직 싫다고는 하지 않았어. 내가 묻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해 준다면 그때 가서 확
실하게 대답할께."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섯 노인의 얼굴에 한 줄기 희색이 스쳐 지나갔다. 한 가닥의 희망이
생긴 것이다.
난장이 노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삼키며 물었다.
"소…… 소형제! 그럼 어서 물어보게. 듣고 싶은 대답이 뭔가?"
기검하는 별빛처럼 영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
"할아버지들은 백련대황교를 어떻게 생각해?"
"백…… 백련대황교?"
여섯 노인은 의아한 질문인 듯 흠칫했다. 그러다 그들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기검하의
질문에 대답했다.
"백련대황교! 그들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집단이지. 더욱이 그 모든 세력이 어둠 속에
숨어 있어 그들의 진정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
"맹세코 단언하건대…… 백련대황교는 이 지상의 어느 세력도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제국,
신의 집단일세."
여섯 노인의 표정은 극히 심각하고 침중했다.
그러나 기검하는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백련대황교를 기필코 내 힘으로 통째로 없애버리고 말겠어."
---백련대황교를 기필코 통째로 없애버리겠어!
실로 광오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기검
하의 기개는 불가능도 가능하게 여겨지도록 하는 위압감으로 가득했다.
기검하는 두 눈에서 맑은 신광을 뿜어내며 육 인을 응시했다.
"할아버지들은 그 일이 구유조상혈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
"크크크…… 우리가 그들의 진정한 힘을 모르는 것처럼 그들 또한 우리의 숨겨진 힘을 모르
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들의 집단이라면…… 우리 역시 신들의 집단이지요."
"……."
"귀신 역시 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결코 구유조상혈의 힘은 백련대황교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섯 노인은 득의양양한 빛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지 여섯 노인의 어투가 살짝 공대로 바뀌어져 있었다.
"맞아. 조금은 품위가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강한 것만을 놓고 보면 귀신 또한 신에 못지 않
으니까……."
기검하는 미소를 지으며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키키키……."
여섯 노인들은 희희낙락한 웃음을 흘리며 즐거워 했다. 기검하의 야무지면서도 천진난만한
대답에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크크크…… 천하에서 백련대황교의 파멸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혈주 한 분 뿐일 것
입니다."
난장이 노인은 아예 대놓고 마치 기검하가 이미 혈주가 되었다는 듯이 혈주라 칭하고 있었
다.
"키키키…… 구유조상혈의 혈주라면 그럴 자격이 충분하지요."
해골괴노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너무나도 죽이 잘 맞아 떨어져 기검하로 하여금 나중에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 심보인가 보
다.
일순 기검하는 눈을 빛내며 굳건한 표정으로 야무지게 말했다.
"좋아. 결심했어! 구유조상혈의 혈주가 되기로……."
찰나 여섯 노인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털썩 오체복지하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가…… 감사하옵니다! 혈주!"
"혈주께 충성을……."
이것이야말로 혈주의 발 끝은 물론 그림자조차 보지 않겠다는 절대복종의 뜻이 아니고 무엇
이겠는가?
뿐이랴!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였지만 여섯 노인들 사이에는 은은한 정이 스며들고 있었
다.
잠시 후 난장이 노인은 몸을 일으켜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혈주! 한 가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언데?"
기검하의 눈에 호기심이 반짝했다.
"……."
난장이 노인은 묵묵히 두 손을 휘저었다.
찰나 바닥이 양쪽으로 쫘악 갈라지며 하나의 자단목관(紫檀木棺)이 불쑥 튀어나왔다.
덜커덩!
자단목관은 정확히 기검하의 앞에 놓여졌다.
시신(屍身)! 불가사의하게도 그 관 속에는 무적철혈신 기무빈의 시신이 들어있지 않은가?
기검하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해서 아버님의 시신이 살아계신 것처럼 변해있지?"
그렇다! 마땅히 난도분시(亂刀分屍)되어 육편(肉片)덩어리가 되어있어야 할 기무빈의 시신
이 관 안에는 흡사 깊은 잠이 든 것처럼 고요하고 안온한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
기검하는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끌끌…… 혈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 구유수명사(九幽守命師)가 마음만 먹는다
면 썩은 시체라도 감쪽같이 본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썩은 시체도 본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기검하는 아직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끌끌…… 물론입니다. 혈주! 뿐만 아니라 죽은 지 칠일(七日)만 지나지 않은 시체라면 능히
되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살아있을 때보다 더욱 팔팔하게……."
난장이 노인, 구유수명사는 신바람이 나서 마구 떠벌였다.
그대는 들었는가?
---구유수명사 백리박(百里博)!
구유조상혈 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천하에 알려진 인물이다.
백년전(百年前) 그는 유상촌의 촌장이자 천하사(天下史)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의도(醫道)의
신기원(新記元)을 이루고 대륙제일신의(大陸第一神醫)라 일컬어졌었다.
그가 바로 구유조상혈을 이루는 육대세력(六大勢力) 중 한 세력의 지주(支柱)이었음을 천하
인은 아무도 몰랐다.
유상촌(幽喪村)!
바로 천하의 모든 장의사들을 총괄 지배하는 단체로 태어날 때부터 시신을 다룬다.
구유수명사 백리박의 의술(醫術)은 이천년(二千年) 동안 시신을 다르면서 터득했던 유상촌
의 모든 진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알 리 없는 기검하는 내심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죽었던 시체들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정녕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괴사(怪事)를 기검하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육편(六片) 조각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끔히 둔갑시켜 놓
은 것을 보고서는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치이! 아무래도 거짓말 같아."
기검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거짓말이라고요?"
구유수명사 백리박은 야속하고 억울하다는 듯 불만 섞인 투정을 터뜨렸다.
"혈주께서는 왜 이 위대한 의술(醫術)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검하는 빙그레 웃었다.
"난장이 할아범! 거짓은 아닐지 몰라도 좀 과장된 것 같아."
천진난만한 기검하의 말을 듣고 있다가 옆에 있던 해골괴노가 통쾌하다는 듯 음산하게 웃었
다.
"크크크…… 난장이가 우리 귀여운 혈주께 혼이 나는구나."
일순 백리박의 얼굴이 흡사 제멋대로 구겨진 휴지처럼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혈주! 정말 억울합니다."
그의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했다.
"나 구유수명사로 말할 것 같으면…… 수천 년 동안 시체를 만져오던 유상촌(幽喪村)의 촌
주로서…… 세 살 때부터 시신을 뜯어 맞추는 염(殮)을 시작하여…… 열 살 때 벌써 인간의
모든 생리(生理) 구조를 달통한 후, 의도(醫道)에 입문했습니다."
"……."
"열 세 살 때는 팔다리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접합수술(接合手術)을 식은죽 먹기로 해치웠
으며……."
구유수명사의 음성은 점차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열 다섯에 이미 사람의 심장(心贓)까지도 마음대로 이식(移植)했었습니다."
"……."
"그 후 이백육십년(二百六十年)……! 이제는 죽은 지 수십 년이 됐다해도 머리카락 한 올만
보면 그 시체의 성별, 나이, 용모, 체구 등을 손바닥보듯 꿰뚫을 수 있습니다."
그는 격앙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럼 난장이 할아범은 죽은 사람을 몇 명이나 살려냈어?"
"네 사람입니다. 바로 그 네 사람 중에 아까 그 괴상한 땡중놈도 끼어 있지요."
"난장이 할아범이 적노를 살려줬단 말이야?"
"크크…… 그렇습니다. 그놈이 나에게 왔을 때만 해도 남근(男根)마저 잘려진 채 전신이 온
통 난도질 되어 죽어 있었습니다."
"음……."
기검하는 안색을 약간 찌푸렸다.
"하나 그놈의 인생이 하도 불쌍하고…… 또 쓸모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아주 팔팔하게 살려
놓은 것입니다."
기검하는 보석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또랑또랑하게 물었다.
"난장이 할아범은 그 훌륭한 의술을 가지고 어째서 네 사람만 살렸지?"
구유수명사 백리박은 일순 나직한 헛기침을 터뜨리더니 곧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혈주! 대저 의원(醫員)이란 세 단계로 분류됩니다."
"세 단계?"
"우선 첫단계로는 명의(名醫)인데…… 만병(萬病)을 치유할 수 있는 단계로서 그들은 그 알
량한 재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놈들입니다."
"그럼 이단계는 뭐야?"
기검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백리박은 그가 재미있어 하자 더욱 힘이 나는 듯했다.
"이단계는 성의(聖醫)인데…… 의술이 극(極)에 이른 단계로 한 가닥 가냘픈 숨만 붙어 있으
면 살려 낼 수 있는 놈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화타(華陀)나 편작(篇鵲)같은 보잘
것 없는 놈들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바로 저같이 죽은 지 오래된 시체도 살려내는
단계로…… 보통 신의(神醫)로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훗……! 그럼 난장이 할아범이 바로 신의란 말이지?"
기검하는 치기어린 미소를 담뿍 머금었다.
"크크……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구유수명사 백리박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안색을 엄숙하게 굳혔다.
"하나 신의가 되려면 꼭 한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
"자고로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하늘이 그 생명을 거두는 것은 다 깊은 뜻이 있는
법! 어찌 천기(天機)를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하늘이 거둔 죽음은 절대 회생(回
生)시켜서는 안됩니다. 단지…… 하늘이 외면하여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者)로 세상의 쓸모
가 있는 사람만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의란 곧 천기(天機)마저도 달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백리박의 표정은 극히 진지했다.
"아……!"
구유수명사 백리박의 말에는 실로 심오한 현기(玄機)가 담겨있지 않은가?
(난장이 할아범이 천기마저도 훤히 꿰뚫어보는 신의라니……?)
기검하는 문득 백리박의 우스꽝스럽고 작달막한 몸집이 태산(泰山)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구유수명사 백리박이 태산이라면 그 나머지 다섯 노인도 그에 못지 않은 태산이었다.
그들도 구유조상혈의 육대세력을 이루는 수뇌인들인데 어찌 만만하겠는가?
---무령상문신(霧靈喪門神) 한삭(寒索)!
바로 백리박 옆의 해골괴노로 도굴당한 무덤처럼 퀭하니 뚫린 동공은 그저 완전무결한 죽음
(死)이었다.
얼굴도 청동빛(靑銅色)으로 칙칙하게 죽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음사(陰邪)해 보인다.
반인반시(半人半屍), 그는 영혼은 사람이나 신체는 강시(彊屍)였다.
금강불괴(金剛不壞), 만독불침(萬毒不侵)의 불사인(不死人)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마물(魔物)
이었다.
그가 죽음(死) 옆에 서 있노라면 그는 그냥 죽음이라고 불릴 것이다.
또한, 그는 구유조상혈의 혈주를 경호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이기도 했다.
혈상묘(血喪廟)!
구유조상혈의 모든 외부(外部) 싸움을 관장하는 곳으로 무령상문신 한삭은 바로 혈상묘의
묘주(廟主)였다.
혈상묘는 구유상문객(九幽喪門客)으로 불리우는 귀시(鬼屍)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통이나 공포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 죽음(死)의 사자(使者)들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평상시에는 무덤 속과 같은 음습한 땅 속에서 산다는 점이었다.
---구주풍각괴(九州風閣怪) 유광(劉廣)!
꾀죄죄한 마의(麻依)를 걸친 노인.
그의 나이 이백 사 세로 천하에서 가보지 못한 곳이 없다.
중원십팔만리(中原十八萬里)의 온갖 지형(地形)을 손금보듯 훤히 꿰는 사람이 또한 그였다.
그는 발바닥에 묻은 흙냄새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어느 지역(地域) 사람인가를 알아낸다.
어디 그 뿐인가. 수맥(水脈), 지맥(地脈), 광맥(鑛脈), 화맥(火脈) 등등…… 지하 속에 숨어있
는 모든 맥(脈)마저도 한눈에 꿰뚫어 보는 가공할 투시력(透視力)마저 지니고 있었다.
사당(祠堂), 묘(墓), 장원(莊院), 객점(客店), 서방(書房), 표국( 局)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지어질 수 있는 건축물(建築物)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그는 천하제일의 지관(地官)이었기 때문이다.
풍각(風閣)!
풍수지리(風水地理)에 통달하여 천하를 유랑하며 집터나 묘자리를 잡아주는 지관(地官)들을
총괄하는 단체로 구주풍각괴 유광은 이 풍각의 각주(閣主)인 것이다.
---만상천장인(萬喪天葬人) 천태서(天太瑞)!
선비차림의 청수한 노인으로 그의 손은 하늘의 손(天手)이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은 없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절묘하고 정교하게 물건
을 만드는 사람 역시 없다.
세필(細筆)!
가느다란 붓을 놀리는 그의 화장술(化粧術), 서예(書藝), 화예(畵藝)는 가히 신(神)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팔황예상전(八荒粧喪殿)!
죽은 사람의 얼굴에 화장(化粧)을 하는 장객(粧客)…… 비석(碑石)에 글씨를 새겨넣는 석필
공(石筆公)…… 관(棺)과 상여(喪輿)를 만드는 목공(木工)…….
상례(喪禮)에 관한 온갖 잡사(雜事)를 맡는 상례장인(喪禮葬人)들의 집단.
만상천장인 천태서는 팔황예상전의 전주(殿主)였다.
수호신상(守護神像), 연화석등(蓮花石燈), 쌍사자상(雙獅子像), 신도비(神道碑), 공적비(功績
碑), 연기좌대(鍊氣坐帶) 등…… 천하의 모든 비석과 무덤을 장식하는 석상(石像)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상천옹(喪天翁) 사부신(死附身)!
시황(屍皇). 그는 천하 모든 시체들의 두목(頭目)이요, 대부(代父)이자 황제(皇帝)였다.
그러니 온갖 시체들은 그의 장난감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늘 새하얀 수의(囚衣)를 발 끝까지 질질 끌리게 입고 다녔으며…… 어깨 위에는 죽음
(死)을 예고하는 섬뜩한 잿빛의 갈까마귀가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 외모만으로도 죽음의 냄새가 가득찬 시황(屍皇)!
뭐니뭐니 해도 그의 가장 무서운 것은 호곡성(號哭聲)이었다.
영혼을 달래는 장송진혼곡(葬送鎭魂曲)의 일종인 그의 호곡성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항거할 수 없다.
귀염신증(鬼殮神憎)!
오죽하면 귀신조차 꼬리를 감추고 신(神)마저 치를 떤다고 했겠는가?
시림(屍林)!
천하의 모든 시체를 총괄하는 단체로 상천옹 사부신은 이 시림의 림주(林主)인 것이다.
흑혈마시군(黑血魔屍軍).
시림에는 무시무시한 강시대군단( 屍大軍團)까지 도사리고 있었다.
---유명제주(幽冥祭主) 구루몽(丘累夢)!
상모(喪帽)를 쓰고 고대제관(古代祭官)의 제의(祭衣)를 입은 노인.
과거 유명제주 구루몽은 황실(皇室)의 모든 제단(祭壇)을 관장하는 대제사장(大祭祀長)이었
다.
제왕천단(帝王天壇), 하늘(天)을 모시며 역대 황제들의 유품(遺品)을 보관하는 제왕천단의
신관(神官)까지 겸했던 그는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성인(聖人)인 동시에 당금 황제조차
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권력자(權力者)이기도 했다.
주무종(呪巫宗)!
천하에 산재해있는 무당(巫堂)…… 사당에 제사(祭祀)를 드리는 묘관(廟官)…… 점(占)을 치
는 점장이(神卜)…… 그리고 황릉(皇陵)을 모시는 제사장(祭祀長)들을 총괄하는 집단 주무종
(呪巫宗)의 하늘(天)이었다.
크고 작은 일가(一家), 일문중(一門中)의 제사에서부터…… 하늘(天)에 예를 드리는 제천의
식(祭天儀式)…… 비(雨)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사(祭祀)
에 주무종이 빠지면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보았는가. 구유조상혈의 육대지주의 숨은 가공할 힘(力)들을.
천하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반드시 이들의 손을 거쳐야 무덤 속의 영원한 휴식을 얻게된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구유조상혈과 원한을 맺은 자, 죽어서도 편히 쉴 수가 없는 것이
다.
구유조상혈(九幽弔喪穴)!
바로 이들에 의해 사후무림(死後武林)의 가공할 위세는 모두 기검하를 고금최고의 일대영웅
으로 만드는 초석(礎石)이 되었다.
첫댓글 굿,,,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