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내리는 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비를 보면서 환경과 물 부족 문제, 그리고 재활용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간 부문에서는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의 한무영 교수가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환경부와 서울시도 빗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 1년 동안 내리는 빗물은 8.1억톤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8억톤이 그냥 하천으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급격한 도시화가 수자원 환경을 크게 악화시킨 것인데요. 도시화 이전인 1962년에는 빗물의 40%가 땅으로 흡수됐습니다. 흡수된 빗물은 풍부한 지하수를 형성하는 게 기여했지요. 그러나 도시화 이후인 지난 2004년 측정한 결과, 토양으로 침투되는 빗물은 23%에 불과하고 47%는 그대로 하천으로 유출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도시화 과정에서 홍수방지에 중점을 두고 빗물을 관리한 결과입니다.
물과 관련된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하수위는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갈수기에는 수자원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천 수질오염도 심화되고 있으며, 하천유량과 친수공간이 감소하면서 생태환경도 척박해지고 있습니다. 그냥 하천으로 유출되는 빗물이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 서울의 한 주상복합건물에 세계배관협회 회장단이 방문했습니다. 이들이 둘러본 곳은 빗물재활용 시설있는데요. 놀랍게도 이 건물이 갖추고 있는 빗물 재활용 시설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럼 이들이 둘러본 빗물 재활용 시설에 대해 말씀드릴까요?
위 사진은 이 건물 지하 1층에 설치된 빗물 재활용 시설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건물의 배관을 통해 유입된 빗물은 위에 보이는 탱크를 거쳐 지하 4층 저류조에 저장됩니다. 위 사진의 탱크는 빗물에 섞여 있는 진흙과 낙엽 등 이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물질만 제거하는 간단한 방식을 통해 빗물을 지하 저류조에 보관하는 것이지요. 지하 4층은 대부분의 공간이 빗물을 저류하는 시설로 돼 있습니다. 지하 4층에는 3개의 대형 저류조가 만들어져 있는데, 저장 규모는 3천톤입니다. 취재진이 지하 저류조에 저장된 빗물을 직접 퍼올려 봤더니, 수질이 예상보다 상당히 깨끗하더군요.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은 우수관로입니다. 지상에 내리는 빗물은 우수관을 거쳐 지하 1층 빗물 재활용 시설로 흘러 들어갑니다. 건물 옥상에 내리는 빗물도 배관을 거쳐 우수관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설계됐습니다. 생활하수가 흐르는 하수관과 별도로 빗물 관련 배관을 추가한 것입니다. 지하 4층의 빗물 저류조는 용도별로 각각 홍수방지용과 물 절약용, 비상용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이렇게 이 건물은 1년 동안 내리는 빗물의 66%가 지하 저류조에 보관해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나머지 34%의 대부분은 자연 증발량이고, 또 일부는 주변 지역으로 배출됩니다. 대부분의 건물은 빗물의 절반 가량이 그냥 주변 지역으로 배출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빗물을 저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이 이렇게 모범적인 시설을 갖추게 된 건 우선 서울대 한무영 교수의 역할이 컸습니다. 한 교수는 설계단계인 지난 2003년부터 이상적인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구상해 설계에 반영했습니다. 또 관할 자치구인 광진구와 서울시에서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갖추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3% 올려줬습니다. 이 주상복합 건물의 세대수는 1천3백 가구 규모인데, 건물주는 용적률을 3% 올리면서 2백억원에 가까운 이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정부나 자치단체는 빗물 재활용 시설을 확대하는 데 별다른 예산을 들이지 않아서 좋고, 건물주는 부수입을 올려 좋고, 입주민들은 공동 수도료를 거의 내지 않게 돼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지하 저류조에 저장된 빗물은 이렇게 공동 화장실 용수와 정원 조경수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수영장용으로도 재활용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건물은 아름다운 조경수를 많이 심어놨더군요. 수돗물을 쓰면 수도료도 상당히 많이 나오겠지만, 이 건물은 빗물을 재활용해 공동 수도료로 내는 돈이 가구당 1백원 선에 불과합니다.
외국에서도 큰 관심을 가질 정도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빗물 재활용 시설이지만, 이런 시설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있더군요. 가장 큰 이유는 수도료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는 점입니다. 공공요금이라서 수도료를 급격하게 인상할 수도 없어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현행 법에도 빗물 재활용 시설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빗물 재활용 시설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30년 평균 강수량(1971~2000)을 보면, 6월에서 9월까지 강수량이 1년 동안 내리는 빗물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간 1,344 밀리미터의 비가 내리는데, 이 가운데 946밀리미터가 우수기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것이지요. 6월에서 9월을 뺀 나머지 달은 강수량이 적게는 20밀리미터 수준에 불과합니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 빗물은 대부분 하천으로 그냥 흘려 버리게 됩니다. 마치 바다에 표류한 사람이 타는 듯한 갈증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정작 바닷물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주위에 빗물이 많아도 빗물을 땅에 머금고 재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면 빗물은 증발하거나 또는 그냥 흘러 하천과 바다로 흘러 가버릴 뿐입니다. 아무리 강수량이 많은 나라에서도 빗물을 재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물 부족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