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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종주 계획서
※ 개요 : 회사 등산동호회에서 5월 산행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계획.
계획은 동료 1명과 금요일에 성삼재를 출발 종주 후 장터목에서 회사
일행들과 합류하기로 계획 했으나 동료의 돌연 산행 취소로 인해
당일 회사직원들과 합류하여 출발 후 장터목에서 단독으로 종주예정.
종주 중 반야봉에 한번도 오르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반야봉에 들를예정.
일기예보로는 주말 양일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
전국적인 비라 하니 분명 비는 올것이고, 우천 산행에 대비해야 할 듯.
우천시 반야봉에 들르는 것은 취소.
- 1박2일 지리산 종주(5월27일~5월28일 32.6km)
- 코스 : 군산 - 백무동 - 장터목 - 촛대봉 - 세석평전 - 벽소령 - 연하천 - 토끼봉 - (반야봉) - 임걸령 - 노고단 - 성삼재 - 남원 - 전주 - 군산
- 잠자리 형태 : 벽소령 산장에서 비박
1. 일정표
A. 5월 27일 (토요일)
06:30 군산 출발 (회사직원 승합차 2대)
09:00 백무동 도착
09:30 백무동에서 장터목 산행시작 (참샘에서 휴식)
12:30 장터목산장 도착 (점심식사)
13:30 회사 일행은 천왕봉행, 단독으로 성삼재행 종주 시작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
16:00 세석산장 도착 (휴식)
16:30 세석산장 출발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18:30 벽소령산장 도착
19:00 저녁식사 후 휴식
B. 5월 28일 (일요일)
05:00 기상
05:00~06:00 아침 식사 및 짐꾸리기
06:00 벽소령 출발 (형제봉, 삼각고지)
08:00 연하천 도착 (휴식)
08:30 연하천 출발
10:30 토끼봉 (화개재, 삼도봉)
12:30 반야봉 도착 (점심식사-행동식)
13:20 반야봉 출발 (임걸령, 돼지령)
16:30 노고단산장 도착 (휴식-라면)
17:30 성삼재 휴게소 도착 (남원행 차량 히치하이킹)
2. 식단표
- 총 5끼
- 1일차 (5월 27일)
아침 : 24시 김밥집에서 된장찌게
점심 : 밥(도시락+반찬), 장터목에서 동료의 남는 밥 반찬 챙기기.
저녁 : 밥, 라면(점심에 얻어온 밥이 있을 경우 이것으로 해결)
- 2일차 (5월 28일)
아침 : 밥(햅반+포장용 국)
점심 : 행동식(빵+물+과일)
간식 : 라면
3. 준비물
A. 야영도구 : 대형배낭(커버), 침낭, 매트리스, 썸머브랭킷, 비비색
B. 취사도구 : 휘발류버너, 연료통, 쿡셑, 페이퍼타올, 수저, 지퍼백, 바람막이, 시에라컵
C. 운행구 : 스틱, 모자, 장갑2, 수통2, 헤드랜턴( 전지교체), 등산화, 등산양말 3켤레,
D. 주.부식 : 햇반2, 라면2, 포장김치, 커피, 허브차, 술, 행동식(호떡빵, 양갱, 소시지 ), 껌
E. 의류 : 기능속옷2벌, 스포츠타올, 타올, 손수건, 반팔티2, 긴팔짚티, 스톰크루져, 7부바지, 긴바지, 반바지.
F. 기타 : 지도(비닐커버), 나침판, 구급약품(압박붕대, 진통제, 연고, 밴드), 라이타, 칼, 휴지, 깔게,
썬글라스, 자외선차단크림, 필기구, 메모지, 여행보험, 카메라, 휴대폰밧데리, 미니삼각대, 여유분의 비닐주머니
4. 구입품
A. 점심도시락 : 아침식사 하면서 빈 도시락에 밥 2공기 주문.
B. 방울토마토, 바나나 약간(별도의 통에 포장)
C. 햇반2, 라면2, 즉석우거지국1, 진공포장김치2, 양갱4(두꺼운것), 소시지, 호떡빵
★ 지리산 종주 보고서
▶ 산행지 : 지리산 (백무동-장터목-세석-벽소령-연하천-뱀사골-노고단-성삼재)
▶ 산행일자 : 2006.05.27~28(1박2일)
▶ 산행개요 : 회사 등산동호회 정기산행으로 계획 했으나 우천으로 취소되어 4명이 의기 투합하여
우천산행 하기로 결정. 우천 산행 중 필요 장비 파악 및 대처상황, 보유 장비의 테스트겸 종주.
▶ 산행시간
A. 1일차
- 06:00 군산출발
- 08:30 백무동 도착
- 08:50 백무동 매표소 출발
- 09:50 참샘 도착 (10분 휴식)
- 10:00 참샘 출발
- 11:40 장터목산장 도착 (간단한 점심)
- 12:20 장터목산장 출발
- 14:00 세석산장 도착 (휴식 및 커피 한 잔)
- 14:40 세석산장 출발
- 17:40 벽소령 산장 도착
- 18:00~19:00 식사 및 침소배정 (2호실 75번)
B. 2일차
- 05:00 기상
- 06:20 벽소령 출발
- 08:20 연하천산장 도착
- 08:30 연하천산장 출발
- 10:20 뱀사골 도착
- 10:30 뱀사골 출발
- 11:10 삼도봉
- 11:50 임걸령 도착 (휴식 및 커피, 빵)
- 12:10 임걸령 출발
- 13:00 노고단
- 13:30 노고단 산장
- 14:30 성삼재 주차장 도착
▶ 지참장비 : 솔트렉배낭, 스틱, 몽벨스톰크루져, 비박장비(침낭, 비비색, 써머래스트), 옷2벌,
양말3켤레, 프리머스가솔린버너, 쿡셑
▶ 식량 : 햇반2, 라면1, 베이컨2, 볶음김치1, 김밥2줄, 방울토마토 약간, 바나나약간, 즉석미역국1,
스틱소시지6, 영양갱6, 삼립빵, 호떡빵5, 커피, 술 약간
(남겨온 식량 : 빵, 베이컨1, 영양갱1, 스틱소시지2, 술, 볶음김치, 즉석미역국)
▶ 산행 중 개선되어야 할 사항
1. 출발 전 장비에 대한 작동 여부 및 사용법 등을 필히 확인.
스틱 고장으로 하나밖에 쓰지 못함. 스톰크루저 상의 후드 부분의 뒷쪽에서 늘임, 줄임의 장치가
있었는데 비오는데 후드를 쓰고 앞을 가려 고생함.
2. 작은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고생함.
깔게를 챙기지 못해 축축한 바위에 앉지도 못하고 배낭을 내려 놓을 때도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음.
3. 배낭 무게줄임
필요없는 물건들은 과감하게 정리하여 최소한의 무게로 산행에 임할 것.
4. 우천 산행시 스패츠를 챙길 것
장시간 빗속 산행이나, 많은 비가 내릴 경우 등산화에 빗물이 들어가는 것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을것 같음.
5. 기타
비상약품에 맨솔래담 추가, 공기베게가 있을 경우 숙면에 도움이 될 듯.
고기를 구울 시 알루미늄 호일이 있을 경우 후라이팬 대용으로 요긴함.
▶ 산행후기
새벽 5시 2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시간에 맞게 기상을 했다.
우선 밖을 보니 약간씩 비가 내리고는 있지만 다행이 큰비가 아니다. 간밤에 챙겨놓은 장비들을 간단히 점검하고, 냉장고에 보관중인 식량을 챙겨 김밥집으로 우선 향한다. 큰길에 나와 길을 건너는데 이른 아침 비도 좀 내리는데 건너편에서 배낭을 메고 건너오는 사람이 보인다. 속으로 “나 말고 빗길에 산에 가는 이상한 사람이 또 있군…” 이렇게 생각하고 김밥집에 들러 김밥 2줄을 사고 빈 병에 물도 보충했다.
6시에 약속이 돼 있어 약속장소에 가보니 아까 배낭을 매고 건너온 사람이 다름아닌 우리회사 직원이었다. 반갑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만… 나하고 같은 목적지다. 아마도 승합차 운전하는 직원이 나 포함 4명을 선발한 모양이다. 그 직원 내 배낭을 쳐다보더니만 어디로 피난 가느냐고 묻는다. 하긴 보통 당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종주 준비해서 배낭을 챙긴 사람을 본적이 있어야지.
출발은 같이 하지만 나는 장터목에 올라 천왕봉에 오르지 않고 반대쪽으로 길을 잡고 1박하면서 내일 하산할거라 했더니만 놀랜다. 비도 오는데 무슨 산행을 그렇게 하느냐고…뭔가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말았다. 잠시 후 승합차가 도착하고 같이 올라탔다. 대야에 들러 다른 직원을 한 사람 더 태우고 전주를 거쳐 남원, 그리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무겁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보이기도 하고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 듯 하다가 이내 또 비가 내리고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이다.
8시30분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비 1만원을 동료에게 건내주고 잠시 화장실에 들러 마지막 여장을 챙긴다.ㅋㅋㅋ 배낭을 둘러매고 스틱을 준비하다 보니 한쪽이 영 말을 안듣는다. 낭패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이 없다면 무척이나 고생스러운 산행이 될게 뻔한데 아무리 조절해도 한쪽 스틱이 영 잠궈지지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을 그냥 포기 했던게 너무도 아쉽다. 한쪽 스틱은 배낭에 꽂아두고 한 쪽만을 사용해서 오르기로 결심했다.
8시50분 백무동 매표소에서 1600원 4명의 입장료를 내 돈으로 치루고 산행을 시작했다. 비박장비를 준비해서 그런지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단지 김밥 몇 줄과 간단한 여장만 준비하고 주먹만한 배낭을 짊어진 동료들이 부럽다. 그런데 어쩌랴 이것도 훈련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빗길 산행을 경험해 봐야지.
한 시간쯤 올라 참샘에 도착했다. 비는 간간히 내리지만 아직은 맞고 걸을만하다. 물병에 물도 보충하고, 간식도 좀 챙겨먹고 쉬었다가 다시 오르길 시작한다. 11시쯤 아침을 굶고 출발해서 그런지 무척이나 허기가 진다. 쉬면서 준비한 김밥을 반쯤 먹고, 오이도 한 쪽 얻어 먹고 빗줄기가 심상치 않아 배낭에 커버도 씌우고 스톰그루져 상의만 일단 챙겨 입었다. 장터목산장에 가까워 질수록 바람이 심해지며 빗줄기도 심상찮다. 내려오는 일행들에게 물어보니 천왕봉에는 바람이 너무 심하고 아침에 우박도 내렸단다.
발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았던 장터목대피소 취사장
11시 40분 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시장판 같다. 취사장에는 어디 발디딜 틈도 없는 듯 보이고 바람과 빗줄기는 더 거세다. 동료 한 사람이 자기들은 내친김에 점심은 뒤로 미루고 그냥 천왕봉에 먼저 오른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서 일단 헤어지자고… 잘 올라갔다 오라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취사장 안쪽 빈 곳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봤다. 차가운 몸을 녹이고 싶어 라면을 하나 끓여 먹을까 하다가 장소도 비좁고, 배낭에서 이것 저것 꺼내기도 귀찮고 해서 남은 김밥과 영양갱, 물로 대충 점심을 해결했다. 취사장 안은 그야말로 쓰레기와 질퍽한 물로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험난한 날씨에 질서의식이나 공중도덕 같은 건 이미 실종 된지 오래인듯 하다.
2층 침소에 올라 잠시 산행 시간들을 계산해 보고 거슬러 온 시간들도 메모하고, 물도 보충하러 식수장에도 다녀오고, 빗길 산행에 대비해서 단단하게 여장을 다시 꾸렸다. 원래 침소에서는 음식물 먹는 것이 금지돼 있는데 여기저기 앉아서 점심을 해결하는 등산객들과 이를 제지하는 관리공단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빈번하다.
지난번 연석산에서 구봉산까지 종주할 때 하루종일 비 맞은 경험을 살려 제일 취약점으로 대두되었던 하의와 신발쪽 젖음 방지를 위해 이번에 처음으로 몽벨스톰크루저 상.하의로 무장하고 머리쪽은 창이 넓은 고어텍스 재질의 모자로 커버하니 대충 웬만한 빗속은 강행군이 가능할 듯 하다. 보통 쉘러 재질의 바지로 방수가 가능하다고 하나 이는 한 두시간의 빗속 노출은 가능할지 몰라도 하루종일 비를 맞아야 할 경우에는 쉘러 바지로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고 비도 더 굵어지는 듯 하여 12시 20분에 장터목을 출발해서 세석평전으로 향한다. 가는 와중에 천왕봉을 향해가는 등산객은 종종 볼 수 있었으나 나와 같이 역종주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전혀 눈에 뵈지 않는다. 이렇게 힘들 때는 같이 동행하는 말벗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좀 나으련만…
구름 자욱한 빗속을 거닐다 보니 전경을 전혀 볼 수 없어 이정표나 안내 팻말이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전혀 구분이 안된다. 빗속을 한참 걷다 보니 초대봉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러면 저 아래가 바로 세석평전… 날씨만 맑다면 촛대봉의 장엄한 풍광과 세석평전의 시원한 전경들이 한눈에 들어올텐데 날씨탓에 아쉽기만 하다. 더구나 비가 오는 바람에 배낭 안에 카메라는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오후 두 시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여기도 역시 취사장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대충 1층 비 피할 곳을 찾아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엉덩이도 붙이고 라면을 하나 끓여 먹을까 하다가 궂은 날씨에 라면 먹은 그릇을 닦기 귀찮아서 그냥 커피 한 잔 끓이고 빵으로 요기를 해본다. 물을 끓이는데 프리머스 가솔린버너를 보고 모두들 경이에 찬 눈길로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가격을 묻고, 어떤 사람은 화력을 묻고, 옆에서 라면을 끓이던 사람은 괜한 질투에 “저 버너는 화력은 좋은데 소음이 심해”라고 하면서 비 오는 날 가스 버너로 라면을 끓이는데 화력이 시원찮아 거의 라면을 불려 먹는 수준이다. 그래서 한 마디 거들었다. “날도 궂고 추운데 소음이 좀 있으면 어떤가요? 얼른 해먹고 출발하는게 훨씬 낫지요.”
출발 하려고 배낭을 짊어지니 오른쪽 어께 등쪽이 무척 아프다. 아마도 배낭 어께끈이 몸에 맞지 않은 상태로 장시간 운행하다 보니 어디 한곳이 무리가 있는 모양이다. 배낭을 짊어졌다 풀었다 하면서 임시 방편으로 끈을 조절하고 오후 두 시 40분경 오늘의 마지막 대피소인 벽소령 대피소로 향한다. 역시 혼자 걷는 길이 많이 힘들고 지친다. 가끔 마주치며 지나가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는게 유일한 말벗이고 반가움이다. 그런데 예상했던 시간보다 벽소령 거리가 멀다. 마주치는 등산객에게 벽소령에서 몇 시쯤 출발했냐고 물어 시간 계산을 해보니 세석에서 벽소령까지는 3시간 정도의 거리인데 나는 두 시간으로 예상 했으니…
17:40분 벽소령 산장에 도착했다. 허기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대충 저녁부터 해결하고 싶어서 취사장으로 향했다. 역시 여기도 시장통 같다. 안쪽 빈틈을 노려 대충 비집고 들어가서 무거운 배낭부터 벗어 던졌다. 다리가 너무도 아파 어디 앉을 곳을 찾아봤으나 온통 바닥에 물이라서 엉덩이 붙일 곳이 마땅찮다. 벽소령대피소 취사장 안쪽에는 후미진 공간이 있다. 보통 이곳이 비박하기 좋은 장소인데 이미 단체 일행인듯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누워 자고 있다. 비는 오고 비박 장소도 확보 못하고 오늘밤은 할 수 없이 대피소에서 잠자야 할려나 보다.
식사가 끝난 사람이 있어 그 자리를 얼른 찜하고 햇반과 카레를 데웠다. 베이컨도 처치해야 할 것 같아서 코펠 뚜껑에 낮에 먹은 김밥 포장의 알미늄호일을 펼쳐 깔고 간단한 후라이팬을 만들어 베이컨을 굽기 시작했다. 대충 베이컨 색깔 변하면 주워먹고 햇반과 카레를 비벼 게눈 감추듯 저녁을 해결하고 침소를 배정 받았다. 대피소 예약은 못했지만 다행이 여분의 잠자리가 남아 있어 따뜻하게 잘 수 있다.
예상으론 비박을 하고 싶어 지리산 종주를 했었고, 무겁게 배낭을 꾸린 것도 비박장비들을 챙겼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가 늘어난 것이었는데 그 힘겨움이 비로 인해 모두 무산되어 허망하기도 하다. 7천원을 주고 잠자리를 배정받고 1천원씩 하는 담요는 사양하고 잠자리에 매트를 깔고 침낭을 펼쳤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이지만 주변사람들과 대충 인사를 나누고 꾀를 홀라당 벗고 옷을 갈아 입는다. 눅눅한 옷에서 뽀송한 옷으로 갈아 입으니 날아갈듯한 기분이다. 9시부터 소등 한다기에 8시가 조금 넘어 잠을 청했다.
잠은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들로 인해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잠을 깼다. 벌써부터 짐을 꾸려대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피곤하게 잠든 사람들을 고려하면 좀 조용해도 되련만 아랑곳 하지 않고 부스럭거리며 연신 시끄럽게 군다.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좀처럼 잠들지 않고 여전히 소란스럽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일어났으면 산장을 출발 하던가, 아니면 좀 조용히 하세요!” 무안했는지 찍소리도 못하고 잠잠하다. 시끄러운 코고는 소리와 이빨 갈아대는 소리들로 인해 연신 뒤척이다가 새벽 4시쯤 잠깐 잠든 것 같다.
5시에 일어나 우선 밖에 날씨부터 살폈다. 아직도 가느다란 이슬비는 여전히 내리고 주변도 온통 안개와 구름이다. 오늘은 갠다고 했는데 고르지 못한 날씨 속에 산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또 부담이다. 아침을 굶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힘든 여정 동안 뱃속에 뭔가를 보충해야 할 것 같아 커피와 빵으로 대신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출발하기 전 셀프 카메라로 찍은 사진
구름이 안개처럼 드리워진 벽소령에서
다시 짐을 꾸리고 예상대로라면 아침 6시에 벽소령을 출발 해야 하는데 셀카로 사진을 몇 장 찍느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10여분 출발 시간이 늦어진다. 연하천 대피소를 향해 가는데 역시 같은 방향의 등산객은 보이지 않고 연하천 대피소에서 출발하는 등산객과 뱀사골 대피소쯤에서 출발하는 듯한 등산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연하천으로 가는 도중 잠시 햇볕이 나는 듯 하여 웃옷을 벗고 구름 낀 산록의 경치를 카메라에 몇 장 담으려 하니 자꾸 시간이 지체되는 듯 하다.
볼펜 떨어뜨리면서 찍었던 사진
또한 필기할 수 있는 자그마한 볼펜을 목에 걸고 배낭을 메고, 벗고 하다가 바위 아래로 튕겨져 나가 잃어 버리는 듯 했다. 순간 잠시 망설였다.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서 사용하느냐, 아니면 그냥 갈것이냐… 그냥 갈 경우 앞으로 여정을 기록할 수 없다. 구상으론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혼자 출발한 산행 이었는데 기록할 수 있는 펜을 잃어버릴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할 수 없이 비에 젖은 수풀을 헤치고 바위 밑으로 기어 내려가 펜을 찾아 올라왔다. 다음 산행에서는 이것도 빼놓지 말아야겠다. 여유분의 필기구를 챙기는 것…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여 샘물에 잠시 목을 축이고 예전 종주 때 인사를 나눴던 산장지기를 찾으려 하니 사람이 바뀌었는지 지금 산장지기는 털보 아저씨다. 예전엔 키다리 아저씨였는데… 더구나 예전 산장지기가 코오롱 등산학교 출신이라 얘길 들어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려 했더니 도루묵이 돼버린 꼴이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연하천을 지나 삼도봉쪽으로 부지런히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뒤쪽에서 스틱을 사용하며 사람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행이다. 얼마쯤 가다가 배낭을 벗고 잠시 쉬는데 그 사람도 배낭을 벗으며 인사를 한다. 어젯밤 벽소령에서 같이 묵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다시금 반갑게 인사를 하고 코스를 물어보니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거쳐 나와 같은 성삼재로 향한다고 한다. 그 역시 혼자 걷기가 영 심심했는데 잘됐다고 말하면서 혹시 나보고 등산 전문가가 아니냐고 묻는다. 엥…? 사람 보는 눈은 있군.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나? ㅋㅋㅋ 절대 아니라고 그냥 몇 번씩 혼자 산행을 즐긴다고 말하고 같이 걸음을 재촉한다. 잠시 후 지리산에서 유명한 나무 계단을 만난다. 500여개가 넘는 나무 계단인데 노고단쪽에서 천왕봉쪽으로 종주를 한다면 내려가는 계단이고, 나 처럼 역종주를 한다면 이걸 힘들여 올라야 한다.
그런데 산행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비탈진 길을 오르기 보다 계단 오르기가 더 힘들고 불편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말로만 들어 이 계단이 500여개라고 알고 있지 실제로는 정확히 몇 개로 되어 있는지 알고 싶어 세보기로 했다. 그러나 오르기가 힘든지라 중간에 그만 숫자를 잊고 말았다. 포기를 하고 한참을 오르다 보니 계단 한쪽 귀퉁이에 누군가 열 개 단위로 숫자를 써놓았다. 참으로 친절하게…595개, 600개에서 5개 모자라는 숫자다.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야지.
2005년 가을 종주 때 찍은 계단
595개의 마지막 계단을 넘어(누군가 이렇게 숫자를 표시해 놨다)
10시 20분쯤 화개재(뱀사골 대피소 입구)에 도착했다. 예전에 지리산에 대해서 잘 모르던 때는 무슨 지리산의 부분부분 명칭들이 그리도 이상 했던지, 피아골, 뱀사골, 백무동… 등등 별 이상스러운 이름들도 다 있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는 이름들이다. 뱀사골의 경우 계곡이 뱀 처럼 구불구불 곡류를 이루고 있어 뱀사골이라 칭했단다.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한 이름 아닌가. ㅎㅎ 항상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사진을 찍곤 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 본다.
2005년 뱀사골 입구에서 찍은 모습
2006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삼도봉을 지나고 반야봉에 오를까 하다가 힘들고 지친 몸에 무거운 배낭을 들고 한시라도 빨리 지리산을 벗어나고 싶고, 반야봉에 올라야 안개와 구름 때문에 수려한 경치도 감상할 수 없을 것 같아 또 다음으로 미루고 만다.
12시쯤 임걸령에 도착하니 임걸령 샘터가 있고 갈증에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니 허기가 밀려온다. 남은 라면을 끓여 먹을까 고민 하다가 행여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불을 피우다 걸리면 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두려움과 라면을 끓여 먹고는 코펠을 닦아야 한다는 귀찮음에 그냥 커피 물 끓여서 커피 한 잔과 남은 빵으로 요기를 해본다. 샘터 한쪽 구석에 숨어 앉아 점심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또 다른 일행들이 점심을 펼친다. 다른 때 같으면 점심 먹는 일행들에게 다가가 너스레를 떨면서 얻어먹기라도 할 텐데 워낙 힘들고 피곤한지라 그거 역시 귀찮아진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보니 두 시간 반 정도 더 가면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할 듯 하다. 점심도 먹었겠다 막판 피치를 올려 쉬지 않고 노고단 까지 걸었다. 안개 짙은 노고단에는 휴일이라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성삼재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들어 놓은지라 1,500m를 넘는 산을 구두에 평상복 차림으로 올라올 수 있다. 좋은 모습인지 흉한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등로주의(mummerism)에 따른 등산이라면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엄청난 배낭을 짊어지고 피곤이 역역한 모습과 수염도 깎지 못한 흉한 몰골을 한 등산객을 보자 예쁘장한 외국인 아가씨가 묻는다. 저쪽 능선을 타고 왔느냐고, 그렇다 했더니 언제 올라왔고, 어디서 어떻게 잤느냐고 묻는다. 뭐 대충 생각나는 영어 단어들을 조합해서 어제 올라와서 비박을 하려다 비 때문에 산장에서 자고 오는 길이라 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음… 외국 아가씨들도 전문가를 알아보는군. ㅋㅋㅋ
노고단 산장에 내려와 우선 참았던 볼일부터 해결 한다. 끄응~~ 편안한 자세로 화장실에 앉아 몇 몇 친구들에게 문자를 날려본다. 지리산 종주 후 노고단 대피소 화장실에서 날리는 문자라고… ㅋㅋ 인간성이 별로인지 즉석으로 답장 보내는 넘들이 별로 읍다. 써거묵을… 하긴 그넘들이 종주에 따른 고통과 종주를 힘겹게 끝낸 나의 이 기분을 알리가 없지.
성삼재로 내려오는 길에 시원한 계곡물을 만나 이틀 동안 씻지 못한 땀들을 대충 씻어내고 머리도 감고 제법 모양새를 내본다. 잠시 후 주차장에 내려가 히치하이킹을 잘 하려면 꼬질꼬질 꾀재재한 모습을 좀 털어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성삼재 화장실에 들러 땀에 절은 옷들도 새옷으로 갈아입고 주차장 입구에서 히치하이킹 시작이다.
종주를 마치고 성삼재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 중
과연 누군가 태워 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여간 2006년 첫 번째 지리산 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이제 지리산 종주의 꽃이라 불리는 <태극종주>라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 경상도쪽 수양산에서 전라도쪽 인월의 덕두봉까지 장장 90km에 걸친 거리를 말하는데 그 거리의 지형이 태극모양 같다 하여 태극종주라 불리운다. 혹자는 그 거리를 무박으로 종주했다 하던데 난 3박4일에 걸쳐 성공이라도 하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첫댓글 종주 산행기 잘봤습니다.... 저도 내일밤에 떠나는데 겁나요~~~~~~많은 도움이 된것같습니다..
준비된 삶은 항상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더니... 좋은 산행일정과 꼼꼼한 기록들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네요. 무사히 마침에 축하드리며 더 좋은 산행 많이 준비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부럽습니다..지리산 비박도 맘데로 안되더군요 하절기엔 ..꼭 비가내리더군요~~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가고 시퍼요~~ 항상즐산하세요 &프리머스화력은 센디 좀 시끄러워요~~전 노바씁니다..요즘은 엠에스알까스버너로~~
재미스럽고 맛스런 지리종주기 잘 보고 갑니다 빗속에~ 안개 속에~ 나른거리는 걸음으로 마친 지리산종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