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산가자’란 외침으로 모인 서울 13명/부산 8명/제주 1명
이렇게 22명이 11월 4일 06: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한라산 750m 고지
‘성판악’으로 이동하여 08:00시에 등반을 시작했다.
모두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다짐하며 출발을 했지만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거리 9.6km 수직 고도 1,200m이고, 진달래 밭 대피소 까지는 7.3km인
밋밋한 오름이지만 고도 750m를 계속 올라야 하는 지루한 길이라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힘든 산행이었다.
1,200m 고지에서 포기한 친구 1,500m 고지에서 체력의 한계라고
포기한 친구들이 많아, 1,950m 정상을 밟은 친구들은 모두 13명이었다.
진달래 밭이라는 1,500m 고지에서는 바로 정상이 보이는데도 제법
가파른 오름이라 사투를 벌려야 하는 산행이었다. 얼음이 보이는
산길인데도 바람 한점 없으니 체력을 측정하는 시험장 같았다.
허덕이며 무거운 다리를 한발 한발 가까스로 떼어 옮기는 고행의
연속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그런데 바람 한점 없고 오히려 진달래 밭 부근 보다
날씨가 더 포근하다. 백록담엔 바닥에 조금 고여있는 물 뿐이고, 사방이
출입 금지 난간으로 제약되어 분화구 주위로 돌아볼 수도 없었다.
시야는 사방이 트이고 저 멀리 동쪽/남쪽으로 구름이 우리들 발밑이었다.
일년에 33일 정도나 한라산 정상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날은 정말
복받은 날씨었다.
이훈웅 친구가 제1번으로 혼자 올랐는데 아마 3시간 20분쯤 걸린 것 같고,
다음으로 최혜택 친구가 3시간 45분쯤, 다음 유정렬이 3시간 50분
조점박은 꼭 4시간 최종걸이 4시간 05분, 다음으로 황현수 이동희
오창영 손정연 김성기 신석흔 성기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12시 45분쯤에
안경하 친구였다.
성판악에서 출발할 당시 모두 도시락을 받아 지고 올랐는데
모두가 사투를 벌린 생존게임 같았다.
유정렬이는 셀파(안경하)에게 도시락을 맡기고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오른 형편이라 3위를 한 것일거고(나중에 안경하 말이 유정렬이 도시락이
점점 무거워 지는 것 같더라고),
가장 가상한 친구는 최종걸이었다. 다리에 쥐가 나서 오른쪽 상박지와
하박지에 침을 3번이나 놓고 정상까지 올랐으니. 나보다 먼저 출발을
하였기에 많이 갔을거라 생각했는데 1,200m 고지 조금 지나니 쉬고 있어서
물어보니 다리에 쥐가 나서 침을 놓았다고, 그리고는 나와 같이 동행을 하며
오르기 시작했는데 2번이나 더 침을 놓고는(밤으로 자면서도 다리에
쥐가 나는 일이 있어 자가 시술 침을 상시 휴대하고 다닌다더군)
그 뻔쩍거리는 앞이마에 구슬같은 땀을 흘리면서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장하기만 했다. 대단하다고 했다.
그리고 먹성좋은 배불뚝이 조점박이 81kg 체중을 싣고 정상까지 올랐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가상하다.
제주도에 살면서 몇번이나 올랐을 산행이지만 친구가 좋아서 같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줄거라고 가정용
전화기통만한 1,000장은 찍을 수 있다는 그 무거운 디지탈 카메라를 메고
외발 다리 까지 들고 정상까지 오른 김성기 친구의 깊은 정은
우리들 마음을 너무 따듯하게 해 주었다.
어쨌던 이번 산행은 체력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어요. 군대를 갈려고 해도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입영이 허락되는
세상인데, 요사이 경노대학원은 아무나 입학이 되는게 아니고 수능으로
체능시험을 치러 합격이 되어야 자격이 부여되니 정상 정복자에
한하여 허락이 된다고(체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곧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경노대학 입학불허).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아니고 경노대학엔 아무나 가나?
많은 친구들이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고는 30분 - 1시간은 보내고
하산한 시간이 3시간 15분 정도 걸렸다. 내려 오면서 한 말이
이렇게 멀고 높은 산길을 내가 걸어 올랐단 말인가고 -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한 성판악에 도착하니 1시간 30분은 먼저 내려온
이훈웅 친구가 기분이 좋아 반기는 모습이 여간 아니었다. 벌써 몇몇 친구들과
막걸리 '조껍데기 술'을 4만원어치나 마셨다고 하는데 혼자서 두어병은
마신 기분 좋은 상태였다. 자기 다음으로 도착한 조점박/최해탁/최종걸이는
자기의 수제자로 인정한다고
참으로 이번 제주도 산행 여행은 여러가지로 우리 동기생들의 우정을
다시 한번 깊게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콘도 한방에 4명이 같이 잠자리를 한 부딪힘이 있었고,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제생활에 조금 여유를 만든 친구들이 돌아가며 만찬을 준비한 일
(김성기 친구가 3일 저녁만찬, 신석흔/양준상 친구가 4일 저녁만찬,
이훈웅 친구가 5일 점심만찬, 유정렬/이응상 친구가 5일 저녁만찬),
그리고 이틀 밤이나 노래방에 모여 노래부르고 지낸일들 참으로 석별이
아쉬운 만남이었다.
아마 다른 대학 동기들은 그런 정은 없을거야.
다음 날엔 양준상/이응상 친구는 부인들과 함게 골프놀이에 갔고
나머지 모두 9시에 아침을 먹고 관광길에 나섰다.
제주의 관광 가이드들에게 명해진 의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집에 돌아 갈 차비 5,000원만 남기고 모두 호주머니를 털고 가도록
유도를 해야한다고 고백을 하드니, 제주도의 농촌 7개 작목반이 모여
결성한 관광시범단지라는 서귀포에 있는 농림부의 지원으로 만들었다는
'석부작 시범관광단지'라는 곳에 끌려 든게 계획에도 없이 영지버섯을
산다고 모두들 몇십만원을 빼았겼다.
그리고는 제주도 사람들은 참으로 무섭다고 했다.
영지버섯은 세계에 250여종이나 있고 그 중에 20여종이 사용된다는데
우리나라에는 2개종이 생산된다나, 그 중에서도 노란색갈을 띄고 있는
'빈테우스'종이 세계 제일의 약효로 인정받고 있다는데
끓여서 마시는 것은 유효성분의 1/50도 섭취하지 못하는 것이고
분말로 만들어 먹는 것이 50% 섭취효과가 있다고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다량으로 값싸게 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마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지도 모른다고
제주는 우리나라 밀감의 최초/최대의 생산지다.
몇년 전까지만해도 밀감나무 대여섯 그루만 있으면 아이들 대학을 보낼 수
있다고 하여 대학나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사정이 너무 다르단다.
아예 원수가 되다싶이 하다고, 재배를 안할 수도 없고, 재배를 하여도 믿지고
있어 다양한 연구를 하고는 있지만 어쩌지 못해서 재배를 한단다.
밀감은 수확을 할 때 비뜰어 꺽거나 가지를 부러뜨리지 못하고 또 잡아당기면
밀감 꼭지 부분의 겁질이 뜯겨 나가기 때문에 가위로 한알 한알을 잘라서
수확을 한단다.
밀감을 사기위해 고를 때 꼭지가 붙어 있어야 하고 가위로 자른 반듯한
절단면이 있어야 하고 싱싱해 보여야 하며, 큰 것보다 작은 알맹이가
더 맛이 좋다고 한다. 덜 익은 것을 조기 출하시킨다고 따서는 카-바이트로
익혀 주는 것이 있어서 꼭지 부분이 상한 것은 정품이 아니라고 -
그리고 서귀포 주변에서 생산된 것이 당도가 많으며, 이달 중에 모두
수확이 되고, 지금 큰 나무에 파랗게 매달려 있는 큰 알맹이들은 '춘귤'로
일본의 '나쓰밋깡'이며 내년 초여름에나 먹을 수 있단다.
특종으로 개발한 '한라봉'이 있는데 알맹이의 배꼽이 한라선 처럼 봉긋
튀어 나온 밀감이 있는데, 이놈은 지금 한창 맛을 들이고 있어서 내년
3월 - 5월에나 본격 출하가 된다고 하니 그 전에는 사먹지 않도록 -
제주도엔 성씨로 고씨가 제일 많고 다음이 양씨이고 다음이 부씨라고 하던데,
자기 할아버지가 옛날에 거기 제주도와 인연이 있었다고 목에 힘을 주는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이 양준상 친구의 제안이 졸업 45주년 기념 여행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카나다 록키가 될련가 중국이 될련가 이북의
묘향산이 될련가 그 때가서 연구하자고.
45주년이면 2007년인데 앞으로 2년반 세월이니 그동안에 유고 있어
부의금 가지고 오라는 일 없도록 건강관리 잘 하시기를 당부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