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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수암산(381m : 충남 홍성-예산)
*일 시 : 2005. 2. 13(일), 제15차 RTNAH산악회원(27명), 날씨 (맑다)
*코 스 : 용봉초교-용봉산-369봉-마애불-수암산-덕산온천 관광호텔
오전 9시 35분.
산행 들머리인 충남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용봉 초등학교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2001년 2월 18일(쾌청) 방문 이래 만 4년만의 재회다. 주차장 산행 들머리에는 한눈에 읽을 수 있는 山圖가 그려진 커다란 안내도, 그리고 매표소 직원이 일행을 맞아준다. 영상기온예보대로 따뜻한 겨울 햇살이 내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완경사 길이다. 걸쭉한 음성의 매표소 직원의 방송이 일행들의 뒷꼭지에다 흘린다.
“맑고 고운 오늘 용봉산을 찾아온 ‘알티나’ 산악회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의 즐거운 산행을 기원하며……“
저으기 상업적인 멘트지만 싫지 않은 표정들이다.
해발 381m에 불과한 충남의 금강산 용봉산이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아름답게 펼쳐있다. 정상에 이르는 동안 진경산수화를 연출하듯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풍광에 어느 한 지점에 눈을 고정시킬 수 없다. 가을철 단풍도 볼만하다는 용봉산은 암산답게 기암괴석이 기기묘묘한 형상을 빚어 여느 명산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高山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 壽石이나 盆栽를 해 놓은 용봉산의 특징 앞에 잠시 넋을 잃는다.
이 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용봉산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산록마다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암봉과 암릉에 소나무 군락이, 장군바위-병풍바위-거북바위 등 보이는 절경 모두가 일품이다. 백제 때 고찰인 용봉사와 보물 제355호인 마애석불을 비롯한 문화재가 산록마다 산재한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덕숭산(수덕사)-서산의 가야산-예당평야의 시원한 경치는 오늘의 덤이다.
용봉산을 낀 홍성 일대는 충절의 고향이라는 얘기답게 만해 한용운선사-백야 김좌진장군-최영장군-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 등 생가와 9백 의총 등 위인들의 삶의 흔적은 물론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 등 역사유적지가 도처에 남아있다.
수암산을 안은 예산에는 매죽헌 윤봉길 의사 생가와 湖西 제1일의 가람 수덕사.
이웃한 서산에는 무학대사 출생지인 간월암과 안면도 철새도래지인 A·B지구 방조제가 있어 겨울철 테마여행지로도 적격이다. 최근 천연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이 풍부한 홍성온천이 개발되어 예산의 덕산온천과 더불어 온천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미륵암 0.3Km, 정상 1.2Km>
용봉초등학교를 끼고 올라가는 길은 과거와 달리 포장된 소로다.
제몫을 챙기지 못하고 남을 원망하는 표정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휘청거린다.
분노한 마음과 관용하는 마음의 무게 차이를 생각해 봤다.
그래도 우울은 떨궈야 했다.
오전 9시 45분.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미륵석불이 있는 미륵암 앞에 섰다.
<미륵암 대웅전 불사 도중>
거석을 이용한 석불미륵입상은 향토적 취향의 입상이다. 지방문화재 제 87호로 지정된 미륵입상은 아기를 못 낳는 사람이 빌면 아기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12m-폭 5m의 자연석을 이용한 磨崖石佛立像은 고려시대 지방양식이다. 소발의 머리에 가늘고 긴 눈, 넓적하고 낮은 코, 작은 입 등이 얕게 浮刻된 石佛像에서 현대적 감각의 코믹한 표정이며 無垢靜光의 표정이다. 화재 이후 새로 단장중인 대웅전과 요사채가 막 낚아 올린 싱싱한 바다고기 같다. 화재 전의 본당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추억과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본격적인 산행이 되는 돌계단과 바위가 깔린 오르막이다.
10분 후 진 초록색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사각목조 쉼터에 서서 후미를 기다렸다.
다른 지방에서 이곳을 택한 등산회도 꽤나 있어 입구부터 붐빈다.
새 회원 000씨, 지난 상해봉 이후 두 번째로 참여한 000씨, 달마봉 이후 두 번째 참여한 000선생님, 작년 치악산 매봉이후 참여한 000선생님 등 반가운 얼굴들도 함께하는 오늘이다. 암릉길과 바위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올라가는 등로에는 단애와 기암이 흐르고 각양각색의 거대한 바위들이 얹어진 암봉은 각기 제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빚는다. 적당한 배경을 뒤에 두고 환호하며 포즈를 잡기에 바쁜 일행들이다.
오전 10시 20분.
고만고만한 높이의 암봉이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라선 기쁨은 여유롭다.
북서방향으로 덕숭산이, 그 뒤엔 가야산이 정수리에 상투같은 레이더 군사시설이 보인다.
가야산-덕숭산-삼준산을 잇는 전망이 뚜렷하다. 용봉산의 남쪽은 홍성읍과 삽교천유역의 드넓은 예당평야를 내려다보는 가슴은 후련하기 이를 데 없다. 비록 높이가 낮은 용봉산이지만 조망만은 일품이다.
오전 10시 22분.
<노적봉0.3Km, 최영장군 활터 0.2Km>
우측으로 뻗은 지능선 암릉 끝이 활터다.
쉼터마다 평상을 설치하여 휴식하기에 좋은 장소를 제공한다.
10시 32분.
우측으로 내려가는 수련원 삼거리다.
시차를 두고 쉬어가며 이동했다.
10시 34분.
노적봉 암봉에 올랐다.
<정상 0.4Km ↔ 악귀봉 0.3Km>
암봉을 피해 우회하는 회원도 보인다.
암봉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다.
좌측 산록의 덕산면 동막마을과 서해안 고속도로로 뻗은 622번 도로가 뜨악하도록 한가롭다. 일요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가.
10시 46분.
악귀봉 암봉이다.
암봉 정수리에 올라갔다. 사방을 조망하는 쾌감에 전율이 인다.
가야산 정수리의 레이더기지가 더 가깝게 보인다.
斷崖와 怪巖들의 전시장이다. 암봉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능선이 철로처럼 뻗어있다. 북서방향으로는 오전 햇살에 몸을 녹이는 용봉 저수지와, 호서 제1의 가람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이 瞳孔에 찬다. 호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덕숭산(495m)은 언제 봐도 아담하고 예쁘장한 이웃집 처녀처럼 참신해서 좋다.
덕숭산 너머로는 가야산이 조망되고, 正北쪽으로는 우리들이 縱走해야 할 능선이 꿈틀거리고 있다. 다시 남쪽의 홍성읍과 삽교천 유역의 광활한 예당평야에 시원한 시선을 들어 멀리 오서산으로 옮긴다. 동남쪽의 예당저수지 옆 봉수산도 한눈에 든다.
악귀봉 아래 쉼터에 일부 일행들이 모여 숨을 돌린다.
사각형 각목으로 턱을 만든 나무계단이다.
다시 만난 다른 팔각정 쉼터에 잠시 멎었다. 행동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곳곳에 평상이 있는 쉼터도 여러 곳이다.
오전 11시 7분.
<용바위 0.3Km, 마애석불↓>
마애석불이 있는 용봉사로 내려가는 길이 우측으로 열린 삼거리다.
보물 제355호인 마애석불은 안은 수덕사 말사인 용봉산.
절 뒤로 보이는 바위봉우리와 능선의 곡선이 절 지붕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이라는 평이다.
11시 12분.
대피소 삼거리다.
우측으로 지능선 암릉엔 기암들이 즐비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천국이다.
11시 14분.
<임간휴게소 악귀봉 ← 용바위, 병풍바위↓, 덕산 → >
송림이 들어선 육산능선 이다.
11시 15분.
수암산 등산안내 간판이 서있는 삼거리다.
이곳은 예산과 홍성의 군계다.
갑자기 군용헬기가 굉음을 내며 낮게 지나간다. 죽일 놈들이라도 찾는 걸까.
전형적인 육산능선은 30년 내외로 추정되는 송림으로 들어차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좌측 산록 아래로 동결된 용봉저수지가 온몸으로 따스한 햇살에 젖어있다.
11시 43분.
우측은 둔리, 좌측은 목리로 내려가는 사거리다.
<용봉산 ← 둔리 ↑↓목리 → 수암산>
헐벗은 쌍분이다. 돌보지 않았는지 봉분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수암산 방향으로 뻗어간 긴 능선은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경쾌한 행보다.
요소마다 설치된 쉼터 및 팔각정은 도시의 근린공원을 걷는 기분이다. 간혹 만나는 악천후를 피하거나, 때에 따라선 野營터로 이용하기에 적격이다. 능선 아래로 보이는 좌우 평야지대로는 바둑판처럼 정렬된 논들이 보기에 따라선 장관이다.
정오가 막 지난 12시 5분.
팔각정, 잔솔나무와 앙상한 잡목들이 뒤섞인 수암산 정상에 올랐다.
秀岩山!
이름 그대로 ‘빼어난 암릉과 암석을 자랑하는 산’이란 뜻이다. 발치 끝에 덕산 온천장 지붕이 걸리고 그 너머로 玉溪池가 강렬한 정오의 햇살을 뜨겁게 반사하고 있다.
아직도 산불흔적을 지우지 못한 좌우능선은 어린 소나무들이 자리고 있다. 퍽 척박한 땅이다. 각목 턱 계단을 지난 리기다소나무가 들어찬 능선이다.
누군가 재래소나무가 아니냐는 질문이다.
2엽송, 3엽송, 5엽송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부연했다.
우측 609지방도로를 교차하는 차량들의 행렬이 발치 아래에서 오간다.
12시 38분.
스탠딩휴식을 취하는 쉼터를 지났다.
2분후 8각정이 있는 쉼터엔 두 개의 원뿔형 돌탑과 여러 개의 평상과 벤치들이 놓여있다.
홍성군청과 예산군청의 남다른 노력으로 이룬 각종 쉼터 시설이다.
암봉에 올랐다. 시원한 바람은 겨울바람이 아닌 따스한 봄바람이다.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의 대륙에서 길게 뻗어 나온 반도 국가로서 4계절이 뚜렷한 대륙성 기후다. 또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거대한 아시아 대륙에 접한 반도적 기후로 척추인 백두대간 등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악 지형의 영향으로 국토는 좁지만 그 내용적인 기상현상은 복잡다단하다. 겨울이 도래하면 차가운 대륙에서 북서계절풍이 몰아닥치며 한파가 오지만 12월까지 한파의 강도는 그리 강하지 않다.
하지만 1월에 들어서게 되면 시베리아 고기압의 힘은 한층 강해지고 우리나라의 기압배치는 본격적으로 西高東低 형태다. 이렇게 북서계절풍이 불게 되면 서해안(전라도, 충청도)지역엔 많은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대륙고기압이 북풍을 보내줄 땐 강원도 영동지방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게 된다. 겨울이라고 해서 이런 극단적인 서고동저 형 기압배치로 추위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겨울형 기압배치는 사나흘을 주기로 바뀌게 되어 이른바 "삼한사온"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시베리아고기압이 무너진 사이를 틈타 동중국해 일대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이동해 오면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는 생태계의 혼란으로 한반도의 겨울철 특징인 삼한사온은 옛 이야기가 돼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오늘 어쩌면 눈을 만나리라고 예상했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눈과 인연이 멀었던 금년 겨울이다.
12시 48분.
삼거리 갈림길이다.
<덕산온천 ↖ ↗ 세심천>
좌측으로 내려서는 하산로는 지루한 각목으로 턱을 만든 계단이다.
철계단-시멘트계단을 내려가면 <덕산온천 원탕>이란 표지가 요소마다 붙어있다.
우측 아래로 덕산온천 원탕 적색건물인 관광호텔과 주차장이 들어온다.
오후 1시 5분.
신설도로가 있는 산록에 내려섰다.
아직 시설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아스팔트 포장이 어린아이들 설빔옷처럼 산뜻하다.
1시 15분.
덕산온천 관광호텔 앞 주차장에 닿았다. 15분 시차를 두고 후미일행 모두가 도착했다.
김기사께서 예약한 호텔 내 한식부에서 치르는 식사시간이다.
명색이 호텔 내 식사라며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다.
주문한 우렁된장 찌개는 짭짤한 여운을 남길 만큼 수준작이다.
삽교댁 두 여인(두 김연자씨)이 배려한 점심식사다. 고향땅을 밟은 감회치곤 상상 밖이었다. 말릴 겨를도 없이 그렇게 처리했노라는 김총무님의 일방적인 통보다. 고마운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제다.
27명 회원 중 온천탕에 들어간 사람은 4명뿐이었다.
온천욕을 즐기는 회원들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간이주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추렴을 대신해 최영복씨가 회원들을 위해 배려하는 여유를 가졌다.
오후 3시, 각자 거나해진 표정을 실은 버스가 주차장을 떠나 귀가에 올랐다.
이른 귀경이다. 아직도 서녘에 걸린 태양이 속없이 게을러졌다는 생각이다.
여의도 6시, 당산역 6시 5분, 도시가스 6시 15분, 하이웨이 6시 20분, 발산역 6시 23분, 그리고 공항주유소 앞과 김포시를 향한 운행이 계속될 것이다. 끼리끼리 흩어지거나 모여 미진한 밤을 위한 오늘의 巡杯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밤은 포유동물의 천국이던가?
*등산코스 :
1) 용봉초등-미륵암(석불입상)-대피소-수석봉-초고봉-노적봉-악귀봉-용바위-전망대
- 수암산-덕산(약 3시간30분소요)
2) 용봉초등-미륵암-투석봉-최고봉-최영장군 터-사조마을 (약 1시간30분소요)
3) 구룡대-병품바위-전망대-용바위-악귀봉-노적봉-위사장-사조마을(약2시간 소요)
4) 구룡대-용봉사-마애석불-악귀봉-노적봉-투석봉-미륵암-용봉초등(약 2시간 30분소요)
*교통안내 :
1)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29번국도-9.7km-홍성읍내-덕산온천방면 609번 지방도-상하리
2) 경부고속도로 천안IC-아산-21번국도-예산-홍성-609번 지방도(덕산 방향)
-상하리(용봉초등학교)
3)서울남부터미널-홍성행 직행버스(40분 배차. 첫차 7시, 막차 7시 30분)-홍성-수덕사행
(30분 배차 첫차 7시45분, 막차 8시30분)
4)현지교통 : 홍성~용봉산 입구 시내버스 10회 운행, 10분소요(06:30∼20:40, 1시간 간격)
*현지숙박 : 홍성읍내 여관 이용
화신프라자(041-632-3182), 제일파크(634-7301),월산파크(631-4455), 승원장여관 (634-4811), 램파트호텔 (041-631-1300), 리베라여관(634-6625)
*주변볼거리(홍성-예산군청 제공)
-윤의사 사적지 (사적 229호)
수암산 북서쪽에 있는 사적지에는 영전을 모신 충의사-생가의거탑-동상-기념관 등
-덕산온천
알칼리성 라듐천으로 유명한 온천에는 공동탕과 신, 구관 17실에 1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충남 지역의 유명한 온천중 하나이다.
-용봉사
용봉산 북서쪽 병풍바위 밑 아늑하게 자리한 이 절은 확실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절위에 있는 마애불이 고려 초기이전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절의 역사는 백제 시대로 미루어 볼 수 있다.
-수덕사
호서지방의 금강산이라 일컫는 덕숭산(495m) 자락의 유서 깊은 사찰로 599년 백제 지명법사가 세운 뒤 원효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충렬왕 34)에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국보 제49호)이며 일주문, 종루, 관음바위, 만공탑, 금강문 등이 곳곳에 눈길을 끈다. 절 안에는 신라시대 때 세운 3층 석탑과 여승들이 거처하는 견성암이 있으며 절터가 상당히 넓고,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평양조씨의 묘
조선조 중엽에 당시 세도가였던 평양조씨가 절터로 명당이란 풍수설을 믿고, 권력으로 웅대했던 절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병조 판서를 지낸 선조의 묘를 설치하였으나, 그 후 조씨 일가는 멸족되고 지금은 절에서 무덤을 관리해 두고 있다.
-덕산 온천
예산군 덕산면 사동, 신평, 시량리 일원에 위치하고 굴진심도는 평균 300m이고 수온은 최고 52℃ (평균 42℃) 수질은 PH8.3~9.3 중탄산나트륨(Na-HCO3)온천으로 온천수의 효능은 혈관순환촉진, 관절염, 신경통에 효능, 신경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쇠약한 신경성 환자의 운동에 효능과 신진대사 촉진, 만성염증치료에 효능이 있다.
-용봉사마애불
용봉산 용봉사 입구 석벽에 양각된 입불로서 불상 오른쪽에 조성 경위를 밝힌 음각 27자의 명문을 통하여 통일신라 소성왕 1년(799)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고대의 마애불중 명문이 있는 것으로는 월성군 단석산 마애불군, 함안군 방어산 마애불(802년), 경주 남산 윤을곡 마애불(835년)이 전할뿐인데 용봉사 마애불이 한국 최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마애불의 명문은 3행 종서로 새겨져 있으며 한자의 크기는 가로세로 약 10cm 안팎이며 모두 31자이고 그중 4자는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수 없다.
그 내용은 "신라 소성왕 1년 4월 인부의 ㅇㅇ을 발원했는데 만든 이는 대박사인 대조법사이며 후원자는 관인 장진대사"로 되어있다.
높이 21m의 암벽에 부조되어 있는데 얼굴이 풍만하고 큼직한데 비해 손이나 팔이 작고 신체 역시 평면화 되는 등 신라하대 불상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마애석불
이 석불은 용봉사위에 있으며 백제 말기의 작품으로 추측되며 주위에서 백제 때 기와조각을 찾아 볼 수 있다.
높이 4m의 암석에 양각으로 된 이 석불은 그 수법이 경탄할 정도로 정교하며 앞면에 불상윤곽을 따라 감형을 이루면서 조각한 입상과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상호는 비대하다.
눈은 가늘고 코와 입은 작은 편이며, 귀는 길고, 짧은 목에 삼도가 뚜렷하다.
어깨는 직선인데 통견의 법의를 입었고 배 앞의 반원형 주름, 두 다리의 타원형 주름, 그 밑의 V자형 주름, 군의(치마) 자리의 간단한 주름등 모두 평면적이어서 박력이 없다.
오른손을 늘어뜨려서 옆에 붙이고 왼손은 가슴 앞에 들어서 시무외인같이 되었으나 손가락을 구부린 듯하다.
광배는 음각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그렸고, 머리 위에는 방형의 별석을 얹어 놓았다.
석불의 규모는 몸높이 210cm, 머리높이 56cm, 얼굴높이 40cm, 어깨높이 67cm이다.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고대 백제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