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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로빌에 대해선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는 책을 읽어서인지 낯설진 않았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In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의 가사 내용이 실제로 지구의 한 지역에 구현된 곳이라고 넘겨짚었다.
국가도 없고 죽일 것도 없고 그것을 위해 죽을 것도 없는, 종교도 없는 그런 곳.
소유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다만 인류에 대한 형제애만 있는 곳.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바로 오늘을 위해 살 수 있는 곳.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곳.
오로빌에서 묵은 게스트하우스의 야외 식당 벽화. 오로빌의 지주 마더의 사진. 이 벽 앞에서 매일 식사를 했다. 일종의 뷔페식.
잠자리를 바꾸면 일단 첫 날은 뜬 눈으로 밤새는 것은 기본이고 변보는 장소가 편안하지 않으면 며칠 동안 배변도 못하는 체질이라 걱정이었는데, 새벽 세시에 도착한 허름한 숙소에선 왠일인지 곧바로 잠들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내려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의자 좌석은 왜 그리도 좁던지), 장시간 흔들려서인지, 오는 내내 경적을 오부지게 울려대는 버스 소리에 지친 탓인지(누구를 위한 경적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운전자 자신이 잠을 깨려고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우니 천정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어지럽긴 했지만.
습하기는 했지만 날씨는 따스해서 꽁꽁 처매고 온 겨울점퍼를 배낭에 묶어 넣어두었고 아침엔 쾌변에 성공했다. 거의 기적이었다.
오래전부터 여행을 계획한 동행인들은 애초에 인도에선 가급적 술 담배를 금하고 묵언까지 해보기로 약속했었단다.
모든 일정에서 그 정도의 금욕과 절제를 하기 힘들다면 라마나 마하리쉬 아쉬람이 있는 아루나찰라에서만이라도 그렇게 하기로.
그리고 머무는 곳 마다 각종 요가와 힐링 프로그램을 자유선택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하긴 요가학과 석, 박사 과정이라니 그럴 만했다. 돌발적 참가자인데다 국외자인 나로선 약간 궤도에서 벗어나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더 좋아할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일행의 일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오로빌에선 ‘아쉬탕가’ 요가수업에 일주일 참가했다.
아쉬탕가 요가는 아주 조금 맛본 한국에서의 요가보다 꽤 빡세게 진행되었다.
짜이 한 잔과 간단한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아쉬탕가 요가 선생 모니카의 집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아쉬탕가 요가 선생 모니카의 집 정원. 가는 길도 아름답거니와, 정원과 요가를 하던 옥상의 거실도 조용하고 시원했다.
갖가지 아열대 나무와 연꽃이 희게 핀 작은 연못, 햇살이 왕창 쏟아지는 옥상을 머리에 인 그녀의 집은 수업하기 전 해먹에 누워 흔들리고 있노라면 천국이 이런 데일까 싶었고, 한 시간 넘게 요가를 하고 나서 사바아사나 자세(송장자세)로 누워 있노라면 쳐 논 발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혼곤한 잠을 불러올 정도로 평화로웠다.
모니카 집 걸어가는 숲길.
그 집 바람 시원한 정원, 해먹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기도.
그 짧은 순간 꿈을 꾸었다.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누워 사바 아사나(송장자세)에서 잠에 빠진 것은 오 분 남짓.
밑도 끝도 없이 내가 길고 하얀 국수다발을 그냥 후르룩 들이마시는 꿈이었다.
친구가 꿈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석해보자고 했다. 흰 빛깔과 국수다발은 아마도 영적인 어떤 꿈일 거라면서.
결론인즉슨 내가 어서 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멋있어지고 훌륭해지고자 하는 조급한 욕망을 가진 것으로 도달했다.
근래 3년 동안 아주 빨리 도를 트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졌음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도마저도 남보다 빨리 닦고 싶어서 아주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
실소. 천천히 가자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 것을 알면서도 나는 누굴 보여주려고 그다지도 급하게 하얀 국수를 들이켰던 것일까.
요가수업이 끝나면 해변을 떠돌아 다녔다. 인도 여행을 떠나기전 강화도 도보 여행을 다녀와서 생긴 물집을 터뜨리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면서, 헐렁한 샌들을 하나 사 신고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어버버버 상태인 영어로는 누구와도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할 말도 많지 않았다.
해변에 위치한 이름마저도 고요한 <콰이어트 힐링 센터> 나무 벤치에 앉아 쉬다가 두 개의 힐링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아유로베딕 마사지와 리퀴드 플로. 아유로베딕 마사지는 인도의 전통 힐링 마사지.
오로빌, 콰이어트 힐링 센터. 저 위의 꼭대기 방에서 아유로베틱 마사지을 받았다.
나무로 지은 오두막 같은 방에서 거의 홀딱 벗고, 그것도 인도 남자 힐러의 손에 온 몸을 맡기고 거의 한 시간 넘게 푸른 색깔의 오일을 바르는 마사지를 받았다. 머리칼부터 가슴과 팔과 배와 다리에 이르기까지 정말 민망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이어지는 마사지에 솔직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 마사지가 그냥 마사지인지, 에로틱 마사지인지, 영적인 마사지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때 생각에 "이거, 이거 불교 대학원 교수님이 강력 추천해 주신 거 맞는 거지? 내가 도를 안 닦아 이런 건가? 너무 몸이 반응 하는 거 아냐?" 싶었다.
길고 긴, 그리고 정성스런 마사지가 끝난 후 힐러는 말했다. “너의 몸은 참으로 부드럽다.”고.
나는 말했다.
“고맙다. 마사지를 받는 내내 나는 마치 아기가 되어 엄마의 손길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진짜 행복했다.”고.
사실은 엄마의 손길 보다는 연인의 손길 같았었다.
아유로베딕 마사지가 끝났을 때, 콰이어트 힐링 센터에는 힐러도 그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손님도 나 이외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씩 문을 잠그며 내려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방금까지 T-팬티 같은 쪼가리 하나만 걸치고 저 위에 오두막 같은 공간에 둘이만 있었단 말인가...
끝은 거기가 아니었다.
택시를 불러 우리가 묵는 숙소인 유스센터로 와야겠는데, 그가 자신의 오토바이에 타라고 했다. 그 센터를 잘 알고 있고, 어차피 집으로 가려면 그 방향이라는 것.
그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집에 가는데, 그가 자신의 집은 오로빌이 아니라 '케랄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케랄라...
인도 오기 전에 읽었던 좋아하는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이 케랄라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어쩌면 이름이 저리도 이쁠까. 케랄라... 케랄라... 작가 이름도 리듬감이 있었다. 아룬다티 로이.
이 힐러도 거기가 고향이구나...
아마도, 나는 그 때 그 힐러의 손길에, 외모에, 고향에, 여하튼 모든 것에 잠시 매혹되었던 모양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스 센터로 들어오기 전, 마구 내달리는 그 의 뒤에 앉아 허리춤을 붙잡고 앉아서, 잠시, 이 대로 저기 멀리,
아직 가보지 않은 케랄라까지 단숨에 넘어가버렸으면 하고, 바랬었으니까.
뭘 어쩌겠다는 계획도 없이, 작심도 없이, 그냥 나를 데리고 내빼주었으면 하고 바랬으니까.
그러나, 그가 뭐가 아쉬워 나를 데리고 어디 먼 데로 내빼겠는가.....
그는 얌전히 숙소 앞 길에 나를 내려놓고, 부앙, 부앙....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뭔지 알 수 없게 섭섭한 기분... 하얀 옷이, 아유로베딕 마사지 액체가 묻어 파랗게, 파랗게 염색되어 굳어져 갔다.
그 마사지를 받은 후에는 샤워하고 잠들지 말라기에 씻지 않았다.
파란 물에 온 몸을 담그고 있었던 것처럼... 아직 그 파란 물 속에 있는 것처럼, 강렬했던 그 아로마가 밤새 온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힐러, 아니다. 콰이어트 힐링 센터 아래, 오로빌 바닷가.
다음 날, 아침.
다시 힐링 센터를 찾아갔다. 리퀴드 플로우를 예약해 놓았었다.
리퀴드 플로우는 엄마의 자궁 속 양수의 온도와 비슷한 ‘웜 워터’에서 힐러의 손길을 따라 온 몸을 내맡기고 그저 물에 떠다니는
이른바, ‘자궁 체험.’
언제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가 눈을 감고 둥둥 떠다녀보았던가.
싱크로나이즈드 선수들처럼 코를 막고 내 아버지처럼 나이든 아저씨에게 온 몸을 맡기고 그 따스한 물속을 이리저리 떠다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인지 수영장 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느 날,
엄마의 뱃속에서 이렇게 막막한 듯, 슬픈 듯 눈을 감고 따스한 기운에 몸을 맡긴 채 떠돌아다녔을 내 몸과 마음이 떠올랐고,
이 몸을 배 안에 넣고 걸어 다녔을 엄마의 몸이 떠올랐고, 엉뚱하게도 아주 슬픈 몸을 가진 아버지의 늙은 얼굴이 떠올랐다.
의식 깊은 곳에 묻어둔 아버지가 떠오른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내 부모는 자신들의 나이 마흔 살 그 즈음에,
도대체 무슨 슬픔으로 나를 만들었기에 그 최초의 자궁 체험에서 그토록 가슴이 미어졌던 것인지.
힐러는 ‘플로팅’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치유의 에너지를 보내주었다.
눈물을 닦고 옷을 입은 후 난 말했다.
“아이 필 소 딥 그리프.”
그는 아버지 같은 눈으로, 아버지라면 으레 딸에게 보내줄 것 같은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리얼리? 깊은 그 슬픔이 뭘 의미하는지 너 알겠니?” 라고 물었다.
영어로 더 이상은 길게, 또는 깊게 말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첫댓글 몸과 영혼이 그곳을 떠나기 싫다고 할 것 같은.. ^^
리퀴드 플로우에 있는 그 아저씨 힐러분.. 저도 만나고 싶네요~..
그러게요.. 오로빌은 의외로 좋았어요. 사실 오로빌은 인도특유의 느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힐러들도 거의 서양인들이고. 거리도 구획되어 있고, 만들어진 공동체니까 아무래도... 그렇긴 했죠.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근데, 이 마리가 그 마리일까요? 여러번 만난 그 마리? 그리고 에스더. 리퀴드 플로우 하던 아저씨 힐러분은 많이 포근했어요. 서양인인데도 꼭 우리나라 할아버지 같은. 아직도 힐링센터에 살고 있을까요? 돌연 궁금해지네요.
그 서양인 힐러 아저씨가 ' 너.. 마음은 괜찮니?? ' 라며 깊은 눈으로 물어봐주면.. 좋을것 같은 오늘이에요.
아니요, 저는 동점님이 알고계신 그 마리가 아닌 듯 하네요 ^^
인도에 가면 꼭 가보고 싶네요. 오로빌...
아, 그 마리가 아니었군요... 새로운 마리군요. 반갑습니다. 자유영님. 저도 그 순간 오로빌에 있을 때는 참 마음이 널뛰고 불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평화로웠던 것 같아요. 다시 가면 저도 좀 여유가 있어질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