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혼자 잠에서 깨었다. 이곳은 나 혼자 사는 방 하나짜리
유닛이지만, 그동안은 여행가는 동생들, 한국으로 돌아가는 동생들,
일본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혼자인 집안은 생각보다 넓게 보인다. 주워온 매트리스 세개를 층층히
쌓아서 만든 침대, 여행가는 동생들이 전에 살던 집뜰에 버려져 있던
것을 가져온 컴퓨터 책상, 그 위에 한달에 75불씩 주고 렌트한 사양
낮은 컴퓨터,K-Mart에서 20불 주고 산 전화기, 그리고 분홍빛 휴지,
재털이, 모발폰,12mg짜리 50개 들이 HORIZON담배 한갑.
침대 바로 옆에는 얼마전에 한국으로 돌아간 여자애들이 주고 간
세칸짜리 파란 수납장, 그 옆에 놓여 있는 통기타.
뒷편에는 전에 살던 유닛의 위층에 살던 중국 아줌마가 준 커다란 장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엔 카세트, CD 플레어어, 비디오데크, 티브이 안테나, 시계, 데스크램프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것들도 모두 아는
이들이 주고 간 것 이거나, 여행가는 이들이 맡기고 간 것이다.
장 옆에는 작은 책장, 그리고 작은 의자와 팬히터, 이것들이 내 작은
방에 놓여 있는 것들이다.
내 작은 MD에 연결해 놓은 스피커에선 어떤날'의 소녀여'가 나오고
있고, 나는 담배 한대 피우며, VB라는 맥주를 마신다.
이 작은 유닛을 들어서면, 그다지 작지 않은 거실이 나오고, 거실을
지나면 방하나, 그리고 방안에 욕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다지 큰
유닛은 아니지만 혼자 살기엔 어딘지 쓸쓸함을 느낄만한 크기이다.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거실이였지만, 컴퓨터를 렌트한 이후로는 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참, 거실의 한 부분엔 부억이 있다.
부엌쪽엔 냉장고와 전기렌지, 밥솥 등이 있고, 거실엔 커다란 옷장과
침대하나, 티브이, 라디오, 비디오데크, 플레이스테이션이 있고,
아주 커다란 소파 여섯개와 탁자가 있다.
그리고 방과 거실엔 각각 커다란 창문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일층이라
항상 커텐을 내린채로 지낸다. 남들이 들여다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다.
이 집을 이루는 이렇게 많은 것들 중에 내가 직접 산 것이 너무나도
적다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TV, 밥솥, 플레이스테이션,
작은 책장, 컴퓨터, 싸구려 전화기, MD, 통기타, 냉장고 빼고는
전부 남들이 기증해 준것이다.
내 방 창밖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가 있는 세탁장과 빨래를
너는 곳이 있다. 빨래는 너는 것은 가운데에 회전할 수 있는 기둥하나
에 윗부분이 우산 같은 살이 펼쳐져 있다. 가끔 바람이 불때면
빨래들이 돌아가면서 여러가지 색들이 보여진다. 책상에 앉아
있다보면, 사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 물론 가끔은 정말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한다.
지금은 약 두달간의 방학중 한달이 지나버린 시간, 그 동안은 집
구하랴, 이사하랴, 짐 정리하랴, 전화 놓고, 컴퓨터 렌트하고 하느라
많이 바빴었고, 이제야 조금 조용해 졌다.
어제는 오랜만에 혼자서 잠이 들었고, 혼자서 잠이 깨었다. 일어나서는
사진 정리를 했다. 그 중 맘에 드는 몇개는 추려서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오랜만에 인터넷으로 조선일보를 보았다. 역시 한국은 언제나 복잡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 맥주를 하나 꺼내왔다. 오랜만에 편지나 써야지
하는 생각. 서랍을 뒤져 어떤날이 녹음되어 있는 MD 디스크를 꺼내
틀었다.
12시가 넘은 시간, 아직 배는 고프지 않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니
내 안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것들이 꿈틀거린다. 무엇인가 미치고
싶은 욕망.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은 욕망, 문화적 갈증, 기호가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취하고 싶지만 재미가 없다. 작은 VB병 맥주를 두개나 비우고 나의
나약함에 아쉬워한다. 기타와 내 작은 카메라와 함께 훌쩍 여행이나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