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 제32회차 산행
■ 산행구간 : 석개제~통리재
■ 산행일자 : 10. 4. 24 ~ 4. 25(맑음)
■ 산행거리 : 22Km(누적거리 454km)
■ 참여인원 : 6명
(문석기, 한건희, 오충렬, 최광춘, 도경숙, 이선혜)
---차량 이동조치 : 백승호, 도화숙
◦ 주중에는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하늘이 돕는지 지난주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날씨가 화창해져 바깥나들이 하기에는 정말 좋은 날씨다. 97년도 몰운대에서 낙동정맥 구간종주를 시작한지도 해수로는 4년째다. 이러한 대장정을 이제 거의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간을 1구간 남겨놓은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벌써 낙동정맥의 마루금에 가 있다. 대구서 석개재까지는 빨리 가도 4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출발시간도 앞당겨 오후 5시로 하고 석개재에 도착하여 바로 1박을 하고 난후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산행계획이 잡혔다.
◦ 오후 5시 범어동 하늘채에 집결하여 만촌동을 경유 북대구 인터체인지에서 오충렬 전회장을 태워 석개재에 도착하니 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석개재에 도착했다. 잘 조성된 소공원내의 팔각정자안에 텐트를 치고 1박 준비를 끝내니 시간은 오후 9시다. 이산맥의 전통이 술산맥인데 바로 잘 수 는 없고 해서 오충렬 전회장이 가지고 온 정종과 한건희 회장이 가지고 온 오리고기 안주로 초봄의 밤기운을 후끈하게 달구고 또한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뜨거운 토론으로 상현달이 서쪽하늘에서 사라질 때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밤하늘의 별까지도 우리의 후끈한 열기를 알았는지 은하수와 함께 우리 곁에 다가와서 별빛이 하얗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와 호흡을 같이했다.
◦ 인천에서 온 관광버스의 엔진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 3시30분, 텐트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니 약 30여명의 산악회원들이 답운치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버스기사도 우리가 야영을 하고 있는 줄 알 텐데 약 20분 동안 계속시동을 걸어 놓아 조용한 석개재의 분위기를 다 망쳐 놓아버렸다. 물론 덕분에 조금 일찍 기상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기상은 새벽5시에 이루어졌다. 그동안은 자는 둥 마는 둥, 기상시간을 놓치게 되면 오늘 산행은 엉망이 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떡국과 콩죽으로 아침을 하고 주변을 정리하니 시간은 6시 30분이다.
<석개재...잘 지어놓은 정자에서 1박...>
◦ 동해쪽에는 벌써 여명이 터 오는 지 붉은 기운이 더 세다. 표지기가 달려있는 곳으로 산행을 시작하니 발걸음도 가볍다. 어제 저녁 가볍게 한 잔 한 때문인지 모두들 스타트가 좋다. 오른 쪽 동해 쪽을 바라보니 동해는 가물거려 보이지 않는다. 추측으로만 저 만치에 동해의 넘실거리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겠지라며 중얼거려본다. 초입부터 오르막은 가파르다. 약 20여분을 힘주어 오르니 1009.3봉이 나온다. 여기서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11시 방향 면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1009.3봉에서 광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순탄하다. 970봉을 지나 구릉지에 가까운 산은 여기저기에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는 집의 벽체로 보이는 허물어진 담도 보인다. 벽돌까지 이용한 것을 보면 최 근래까지 화전민들이 살았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낙엽송과 잣나무들도 즐비하게 잘 자라있다. 누군가가 가꾸어온 것이리라. 광평을 지나니 우측으로는 제법 가파른 낭떠러지가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하다. 햇볕이 잘 드는 경사면은 갖가지의 야생화가 갓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노루귀 등 제법 일찍 꽃을 피우는 야생화는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한 자태로 손님을 맞이한다. 원추리도 눈에 많이 띠여 일부는 막걸리 안주용으로 하기 위해 채취해본다. 원추리를 채취하는 동안 이산맥 대원들은 꾀 앞서 나갔다. 일행들과 너무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비닐봉지에 원추리를 넣고 배낭에 넣은 후 오르막길을 속력을 내어 올라가 본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체력이 바닥나고 호흡도 가빠르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속력을 늦추고 호흡을 차분하게 하면서 보폭을 좀 더 크게 내딛는 방법으로 선두와의 거리를 좁혀나가니 얼마가지 않아 후미에 붙게 된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위치는 면산을 약 1킬로미터 정도 남겨두는 위치다. 등고선이 1100을 넘으니 잔설도 보인다. 일부 음지쪽은 등산화가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있다. 목도 마를 겸해서 아직 녹지 않은 부분 중에서 깨끗한 곳을 골라 눈을 한 움큼 쥐어 입속에 넣어 본다. 속력을 내느라 약간 입도 말라있었던 터이라 차가운 눈은 갈증과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보내 주는 듯 했다. 오충렬 전 회장에게 면산 정상에서 원추리를 약간 데쳐 막걸리를 한잔 하자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눈 쌓인 면산으로의 오르는 길은 미끄럽기 까지 하다. 일부 양지 바른 곳에는 눈이 녹아 질퍽도 하다. 면산이 바로 앞에 보이지만 바람이 자고 햇볕도 잘 들어오는 곳에 이미 한건희 회장은 자리를 잡아 놓고 쉬어가자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원추리를 데쳐 막걸리와 삶은 돼지고기로 간식을 멋있게 했다.
<원추리를 끓는 물에 데치고 있는 모습>
◦ 08시 40분 면산 1245.2 봉 정상 도착. 사진을 찍고 구랄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면산 정상의 음지 쪽 등산로는 눈이 더 많다. 때론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와 우릴 더 성가시게 만든다. 하지만 그 눈 속 한 켠엔 현호색이 연한 자주색 꽃망울을 터트려 눈속에서도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구랄산이 바로 정면에 보이는 1010봉에 이르니 야생화가 지천에 깔려 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꿩의 바람꽃과 개별꽃이 봄 바람에 살랑이며 엷은 미소로 반겨주었고 노란 생강나무 꽃과 뻐국다리도 이에 질세라 마음 것 뽐내 보인다. 그리고 고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달래도 군생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야말로 이곳 구랄산 정상 아래는 야생초화류의 보고인 듯 하다.
<면산 정상석 옆에서...>
<꿩의 바람꽃...백색꽃이 이채롭다>
<색깔이 다른 꽃을 만개한 노루귀...^^>
◦ 10시 구랄산 정상도착, 11시 토산령 도착. 조릿대로 둘러싸인 토산령은 표지기가 없으면 령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고갯마루는 2~3평 정도의 평평한 마당이 있었고 좌우 사방은 조릿대가 감싸고 있다. 이 곳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산악회원 3명을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며 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한다. 하지만 이산맥은 사양하고 마루금을 밟았고 나는 그 곳에서 혼자 남아 도토리묵과 막걸리 2잔을 연거푸 건네받아 들이키고는 즐거운 산행이 돼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구랄산 정상석...문고문님은 뭣 때문인지 돌아앉아 계신다...>
<토산령...부산에서 오신 산꾼님들이 미리 자리잡아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계신다>
◦ 12시 10분, 1080봉 도착. 11시 방향으로 보니 정자로 보이는 건물이 산마루에 덩그러니 서 있다. 점심을 저곳에서 먹으면 이번 산행은 그야말로 정자에서 자고 정자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정말 유례없는 행운이 되리라는 마음에 한달음에 정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정자는 정맥과는 다른 능선으로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측에서 고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지어 놓은 것이었다. 정맥 마루금에서는 약간 벗어났지만 그래도 기분이니 만큼 정자가 위치한 곳까지 갔다. 정자로 가는 길에는 처녀치마가 봄 바람을 맞아 정자를 보며 치마를 살랑거리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정자는 망해루라는 명판까지 붙여져 있어 제법 품격이 있다. 우리는 누각 2층으로 올라가 제법 편안한 자세로 식사를 하고 낮잠까지 자려고 하였으나 바람이 불어 포기하고 13시 50분에 다시 정맥길에 올랐다.
<정자로 가는 갈림길에서...>
<휴양림 전망대...망해루>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처녀치마>
◦ 북서쪽 10시 방향으로 보니 둥그렇게 높이 솟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으로는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백병산(1259미터)이 틀림없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를 몇 번 반복하니 제법 넓은 평지가 나온다. 여기가 백병산으로 가는 갈림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주변은 온통 조릿대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0분이다. 배도 고파온다. 이제는 그동안 아껴왔던 홍어와 막걸 리가 나올 차례다. 홍어를 못 먹는 여성대원들을 위해 삶은 계란도 꺼내 놓으니 제법 푸짐하다. 막걸리를 다 마시고 나니 오충렬 전회장이 이제는 고량주를 꺼낸다. 몇 모금 마신 고량주는 뱃속까지 짜릿하다. 오늘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백승호 등반대장도 열차를 이용 석포역에서 택시를 타고 석개재에 주차해 놓은 승합차를 이쪽으로 운전하여 온다는 연락도 받고 해서 별로 걱정 될 게 없는 이산맥은 고량주를 다 비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병산...삼거리에서...오충렬 전회장님>
◦ 16시 30분, 1158봉에 이르니 통리역 쪽에서 들려오는 기차소리가 들린다. 이 곳이 그 유명한 스위치백 철도가 놓인 곳이라 생각하니 조용한 낙동의 준령에 정적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열차에서 나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1095봉을 거쳐 통리재(해발 720m)에 도착하니 도화숙 실장과 승합차만 우릴 반긴다. 백승호 등반대장은 이산맥을 마중 나가고 없다.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전화로 되돌아 오라는 연락을 하니 시간은 벌써 18시를 가르킨다.
<통리역이 위치한 통리재의 모습>
◦ 다음 종주종료 산행을 위하여 다음 구간 시작지점을 확인한 후 저녁식사와 하산주를 하기 위해 석포면 대현리에 소재한 식당에 도착하니 저녁 7시다. 맥주와 소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하산 건배주를 한 후 청국장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음 종주 완료식에 대해서 토론에 들어갔다. 차량은 버스를 임차하기로 하고 완주기념패는 문석기 고문에게만 수여하되 당일 전달치 말고 특별한 날을 잡아서 수여토록 했다. 행사 진행은 대부분 버스내에서 이동하면서 진행하는 것과 고유제도 회원이 각각 제수를 준비해오는 것으로 결론 났고, 버스 임차에 들어갈 비용마련을 위해 오충렬 전회장이 금 50만원을 내어 놓겠다는 반가운 말도 나왔다. 저녁 8시 30분. 식사를 겸한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대구를 향해 출발하니 다음 날 1시쯤 최종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함으로써 무사히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