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2,000만불을 주고 Guam과 필리핀을 매입하여
괌을 일찌감치 미국의 영토화하는데 성공한다.
괌을 손에 넣은 미국의 선인들은 넓은 세계를 보는 안목과 장래를 대비한 혜안을 가진 현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미국의 영토가 된 괌에는 미공군의 전진 기지인 앤더슨 공군 기지가
냉전시대에는 사회주의 체제를 이끈 러시아와 중공(현재의 중국 본토)에 대항하여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최근에 일어난 아프카니스탄, 이라크등과의 중동과의 전쟁에서도 항상 이 곳에서 출발하는 첨예의 전투기들이 전쟁의 선봉에 섰다.
지정학적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마리아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그 마리아나의 섬들중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괌은 그런 이유에서 아예 미국의 영토 즉, 미국땅으로 만들어 놓고 절대 놓치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괌 위에 있는 사이판을 포함한 북마리아나의 14개 섬은 1898년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사들일 계획이었으나 비용등의 문제로 고사하고 독일이 이를 매입했던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태평양에서 시작되는 1941년 12월8일 (하와이 진부만을 공격한 날과 같은날) 전혀 군사적인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괌은 사이판의 아스리토 공항으로부터 출발한 일본 전투폭격기의 공습을 받고 이틀만인 12월10일 일본에게 넘겨 주고 만다.
그로부터 약 2년반 후인 1944년 7월21일 미해병 제3사단, 해병 제1임시여단 그리고 77보병 사단이 괌 상륙작전을 시작하였으며 8월10일 미국이 다시 찿게 되었는데 사이판, 티니안, 괌 전투에서 미군은 약 5,000명, 일본군은 약 60,000 명이 전사하였고 신원 미상의 차모로와 캘롤리니안도 사망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해 팔과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마리아나의 다른 섬들에 대한 상륙 작전은 없었다.
Rota섬에 대한 공격(상륙작전)은 없었다.
로타는 5,000명의 일본군과 수백명의 차모로와 캘롤리니안이 있었으며 미군이 온 1945년 9월까지 15개월동안 거의 외부와의 접촉이 끊긴 채 지내는데 로타는 태평양에서 가장 강력하게 무장한 섬들중 하나였다
한 미국비행사는 “로타의 방공포병들은 전쟁이 끝남으로써 가장 최선을 다했다.” 고 조롱했었다.
로타의 사람들은 전쟁 기간 동안 마을을 떠나 동굴로 숨어들어 갔는데 대부분 사바나 지역의 동굴에 숨었으며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족어 갈 정도로 음식이 바닥나 있었다.
티니안 섬에 붙어 있는 Aguiguan 섬은 종종 포격을 받았는데 그 곳에 살고 있는 차모로는 없었고 약간의 일본인과 오키나와인들이 살고 있던 것으로 알려 졌다.
Pagan 섬은 일본군 지령소가 잇었고 와 약간의 차모로, 캘롤리니안들이 살고 있었으며 정규적으로 폭탄 세례를 받는다.
마리아나를 위한 미국의 군사 작전으로 사이판과 티니안의 경제는 거의 무너졌다.
일본 사람들에 의해 빛나던 마을과 바쁜 공장도 미국의 폭격으로 모두 주저 앉았으며 학교, 병원, 우체국 그리고 개인 사업체도 모두 무너지고 집들의 구조물만 서 있었다.
전투를 위해 따라 온 미국의 공병대대는 남아 있는 것마저도 모두 치워버려 평지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많은 고대 차모로 마을 지역이 폭탄에 의하여 파괴되고 불도저에 의해 깔아 뭉개져
전쟁중이라도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은 찿아 볼 수가 없었다.
유럽에서의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에 시작되었고 1941년 12월 태평양으로 전쟁이 퍼지게 된다.
마리아나에 처음 찿아 온 전쟁은 1944년 2월22일 미국이 사이판, 티니안, 로타, 파간섬을 공격하면서 부터였다.
사이판과 티니안의 전투는 1944년 6월11일 미국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공항과 항만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고 미국해병대는 6월15일 사이판에 상륙한다.
마리아나를 공격한 것은 군사적인 목적 때문이였다.
사이판, 티니안, 괌의 점령은 미국인에게 B-29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공습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만들어 주었으며 미국 잠수함들에게 일본의 통화연결선을 자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일본은 1944년전까지는 거의 방어진지를 구축하지 않았고 미국의 상륙 작전이 진행되기 전까지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미해군은 상륙전 4일동안 강력한 폭탄 세레를 퍼부었고 6월15일 해병 2사단과 4사단이 사이판의 남부에 위치한 슈가덕의 좌우측에 각각 상륙한다.
사이판의 차모로와 캘롤리니안들은 그들의 농장과 동굴로 피신한다.
미국 육군 제 27사단은 Aslito rgdgkd을 지키기 위해 상륙하였으며 그 곳을 Isely Field라고 불렀으며 미군은 Naftan Point, Death Vally, Purple Heart Ridge 를 점형하였으며 타포쵸산을 점령하며 미군은 처음으로 언덕을 내려다 보며 전투를 하게 된다.
일본의 최후 공격은 타나팍 북쪽의 해안 평지에서 있었으며 사이판은 1944년 7월9일 확보되었다고 선언 되었다.
괌은 7월21일 공격하여 8월10일 확보 되었으며 티니안은 7월24일 공격이 개시되는데 남쪽의 티니안 마을로 상륙하는 척하는 위장 상륙 작전을 세워 일본군의 주의를 그 곳으로 집중 시킨 후 같은 시간에 티니안섬 북서쪽으로 상륙하는데 사이판의 슈가덕으로부터 White 1, 2 로 바꿔 불리운 Unai Babui와 Unai Chulu로 해안에서 해안으로 상륙 한다.
티니안은 완벽한 수륙양용 작전의 승리였다고 말해지며 1944년 8월1일 확보 한다.
마리아나에서의 전투는 군사적인 전략의 승리였다.
항공모함을 기지로한 일본 항공부대를 궤멸시켰고 일본의 호전적인 내각은 총사퇴하게 된다.
마리아나는 마을과 경제 그리고 고대 차모로의 유산이 파괴된 채 미군의 군사기지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