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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딸려서인가 아니면 재미가 없어서인가. 나는 수업시간에 자주 졸았던 기억이 많다.
7살까지 아무리 걸음 운동을 시키려 해도 걷기를 싫어했던 나는 생일이 한 해를 넘기기 직전 12월 말경이어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8살이 되어 학교를 들어갈 무렵 보통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만큼이 적었다고 한다.
먼 훗날, 초등학교 1-2학년 성적표 기록을 보니 1학년때 17 키로그램, 2학년때 19키로그램이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윗 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무등을 태우고 했던 걸 보면 어지간히 작은 아이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10리가 넘는 학교길을 꼬박 한 시간씩 걸어다니면서 결석을 하지 않는 나늘 어머니는 늘 대견해하셨다고 한다.
학급의 맨 앞줄에 서는 일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지속됐는데 중 고등학교 역시 버스를 갈아타면서 한 시간이상을 꼬박 걸려 가는 먼거리를 다니면서 체력이 부족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선생님 과목이나 3년 동안 매일 책을 읽었던 국어시간에는 한번도 졸았던 기억이 없는걸 보면 재미 없는 과목은 듣는 자체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중 중학교 시절 지리과목은 목소리 톤에 변화가 없는 나이 많은 남자 선생님으로 기억하는데 늘 졸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과목을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 독일에 와서 살다 보니 어렴풋이 그 선생님께 배운 글 한 대목을 기억할 수 있었다.
"석회수를 끓이면 뿌연 침전물이 생기고 솥 밑에 쌓이게 되지만 침전물을 가라앉혀 위에 있는 물을 떠서 먹으면 지장이 없다"는 ~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식수 사정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정수 시설이 발달하고 식수는 의레 사먹어야 한다.
일타원님이 처음 독일 발령을 받아 가게 됐을 때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물값은 대줄테니 물을 사먹어야 한다"는게 나의 당부였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와서 살게 되니 없는 살림에 물을 사러 시장에 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고, 기동성이 없으면 시장에 가는 일도 수레를 끌고 수양삼아 가기 전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 때 40년이 지난 기억의 밑자락에서 지리선생님의 한 말씀이 살아났다. 그리고 물을 끓여 가라 앉히고 정수기를 통해 걸러서 식수를 만들었다.
처음엔 소형 정수기의 필터에 걸르는 물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필터의 기능을 마비시키곤 했는데 이제 끓인 물을 걸러내서 이온수를 만들어 사용하니 포트에서 물을 끓여도 밑에 석회석이 가라앉는 일이 없다.
이제 물을 사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수정되었다. 또한 몇차레 유럽출장시 물을 끓여 보면 아무리 좋은 물도 석회질이 섞여 있는 걸 확인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유럽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유럽에서 수입한 물병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안타깝기조차 하다.
더우기 환경부 회의를 여러차례 참석하면서 한국의 수도관리청에서 얼마나 수질개선을 위해 노력하는지, 그리고 한국의 수질이 세계 최고인지를 잘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이미 부여된 최고의 환경조건에 대해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잘 누리며, 보전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매일 물을 끓일 때 마다 졸립던 수업 시간에 건져낸 그 한 줄의 기억이 물값 비싼 이곳 독일 생활에서 이토록 유용하게 쓰이며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선객들에게도 끓여서 맑게 정수된 물로 연잎차를 대접할 수 있게된 다행감으로 새삼 감사를 드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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