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대교는 총연장 1,964m에 폭은 10m에서 18.4m 2차로이며, 이중 교량이 900m, 교량 형식은 3경 간 중로 아치교(무지개다리)로 최대 경간(기둥 사이)은 180m, 접속도로는 1,064m로 지난 2005년 10월 11일(화) 오후 3시 기공(착공)식 이후 약 4년 6개월 만인 2010년 3월 30일 오후 5시 증도대교라는 이름으로 당초 기간보다 앞당겨 개통되었다.
증도 본도의 옛 두 섬이던 전증도와 후증도 각 마을에서 도보로 출발하여 광암나루(진번)에 도착하면 여기에서 나룻배를 타고 사옥도 지신개나루로 첫 번째 바다를 건너게 되며 이어 도보로 약 4㎞ 길을 이동한 다음 사옥도 탑선나루에서 지도읍 감정리 고사나루(고사포구)까지 두 번째 바다를 나룻배로 건너서 다시 약 11㎞ 길을 도보로 이동해 자동리나루터(진변마을, 나릿가)에서 건너편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의 양월나루까지 세 번째 바다를 건너야만 비로소 육지로 나갈 수 있었다.
지도읍 내양리 인근 사람들은 강산나루에서 바다 건너 육지인 해제로 나갈 수 있었으며, 나룻배로 증도에서 무안군의 해제까지 다니던 기간에 탑선나루에서 고사나루로 건네주던 나룻배가 발동기 엔진을 탑재한 통통배로 대체되면서 나룻배보다는 편리하게 지도읍 읍내선착장까지 다녔으며, 목포에서는 증도까지 약 2시간 30분에서 느린 배는 3시간 동안 대진호·세종호·조양호·천신호·한양호 등을 이용하며, 화물선은 짱뚱어다리 아래와 농협 창고 옆 갯골에서 목포로 짐을 실어 날랐다.
1975년에는 무안군(해제면)과 지도읍이 둑을 쌓아 이어졌고,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섬이라는 송도(솔섬)가 1983년 지도읍과 연륙교로 연결되자 신안군 지도읍의 송도선착장에서 증도의 버지선착장까지 카페리(철부도선: ㈜한양해운·㈜재영해운 등 운영, 신안호·재영호·증도호 등)로 약 30분, 병풍도 보기선착장 경유 시 약 50분 배를 타고 증도에서 육지(지도·송도)로 다니게 되었지만, 증도는 1해리 이상 거리라는 이유로 꽤 비싼 도선요금(1톤 용달 24,000원)을 지불하고 다니게 되었다.
나룻배와 여객선 이후 지도읍 송도선착장에서 증도면의 버지선착장까지 그나마 카페리가 불편한 가운데 운항하였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었던 이유는 위도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가 있으면서부터 이 사고를 이유로 법이 바뀌게 되어 태풍주의보만 내리면 배를 자주 통제하는 바람에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만 했고, 카페리가 운항하는 동안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태풍주의보 때 오히려 더 위험했던 긴급 후송 선인 한길호(개인이 운영하는 사선)를 이용하여 사옥도와 증도 구간 바다를 목숨 걸고 건넸었다.
증도에서 무안군 해제면의 양월리까지 위험한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3번씩이나 건너면서도 발에 쥐나도록 걸어야만 했고, 지도읍과 해제면의 건널목인 자동리나루터 주변 진변(나릿가)마을을 중심으로 1955년부터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도읍 5일장(매월 끝자리 3일과 8일)은 해제면과 지도읍이 연육교로 이어지면서 지도읍 읍내리로 자연스럽게 옮겨져 증도 사람들도 광암나루 건너 사옥도 탑선나루에서 통통배를 타고 지도읍에 도착하여 재래시장을 이용하였다.
지금도 광암나루↔지신개나루를 건네주던 증도 마지막 나루 사공이신 안승대씨가 구분포 마을에서 사시고 계시며, 나룻배 이후 약 3시간 항해하던 배 안에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훈훈한 섬 이야기 정담 나누던 때가 있었으며, 명절날 고향을 찾을 때는 혹여 태풍주의보라도 내려질까 봐 일기 예보에 귀 기울이면서 가슴 조이던 시절들이 지금은 이미 잊혀진 옛이야기가 되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1997년 12월 31일 착공한 지도대교가 약 7년 만인 2004년 9월 1일 견고한 모습으로 완공되게 되었다. 지도대교는 완공되었지만, 지도↔사옥도 구간의 비좁은 비포장도로에 선착장 정박 시설 미흡으로 철부도선이 송도선착장에서 정박해야만 했기에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고, 박우량군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여객선 야간 운항과 관련하여 신안군에서 약 1억 원을 보조하여 주는데도 실행에 옮겨주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개선하고자 증도면에서는 증도발전협의회를 주축으로 많은 예산을 지출하면서 우리나라 주요 기관 및 인물들을 만나고 유속측정, 대화 녹음, 화물선 투입 의지 등 피나는 노력 끝에 지신개선착장에서 버지선착장으로 10분대 가까운 항로로 운항하게 되었으며, 야간운항도 타결이 되어 지역 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증도를 찾는 관광객 또한, 크게 늘면서 다방면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선사측에서는 차량이 밀렸어도 약속을 지켜주지 않거나 정규 시간인데도 운항을 결항하는 일도 있었으며, 관광객의 차량이 많아지면서 선착장에 미리 도착하지 않으면 차를 배에 싣지를 못하고 다음 배를 이용하게 되는 섬으로서의 불편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증도대교는 2005년 10월 11일(화) 오후 3시 기공식을 시작으로 과연 이 다리가 언제쯤 완공될까? 가능이나 한 일인가? 기대와 설렘 속에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무겁고 긴 시멘트다리가 증도 광암쪽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밀려올라 갈 때마다 우리는 눈을 의심했으며 기적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10년 3월 30일(화) 오후 5시, 약 4년 5~6개월여 만에 예정보다 앞당겨 개통되게 되었다.
섬사람들에게 뭍으로 연결이 되는 다리야말로 그동안 증도를 거쳐 갔던 많은 사람의 크고도 엄청난 숙원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또 하나의 사건이다. 증도대교 개통과 함께 응급환자 수송, 광케이블 연결, 장흥댐(탐진호) 상수원 연결, 대중교통 개선, 관광수입, 각종 물류비 절감 등으로 획기적인 증도 발전의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
증도대교를 건너오면 증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증도 환경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한 비용 등의 일환으로 1인 1,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