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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대한민국의 자연, 그 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해당지역의 인문지리, 역사, 풍습, 문화 등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밀도 있게 그려내는 한국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만든다. 제작방향 및 주요 내용 - 가능한 한 잘 알려지지 않은 전국 방방곡곡의 비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는다 - 단순한 기행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취재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 해당지역에 적합한 특수촬영을 통해 새로운 영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 5편 연작으로 하며, 주 단위로 새로운 장소를 보여준다. |
지금 [편성시간표]를 자세히 보니,,
월~금 21:30~(20분간) 본방송을 하고 있는데,,
혹, 그 시간대를 놓친 경우 [재방송] 시간대가,,다음과 같이 마련돼 있으니 참고바란다~!
1. 당해주 전체분 [20분간씩 * 5회분 = 총100분간]을,,
당해주 토욜 저녁 18:00~연속 방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또, 매일 새벽 토욜 06:30~(20분간) [재방송] 하고 있는 것은,,
그 [직전주 방영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지는 확인한 적이 없으나,,
어쨌거나 관심있는 사람은, 이 시간대도 잘 챙겨봐도 될 것 같다~!
---참고2] = 담주 방영 [밀양편] 미리보기
밀양
방송일시 2010년 12월 6일(월)-10일(금)
기획: 류재호
연출: 김한태
구성: 강윤희
촬영: 고민석
제작사: 미디어 소풍
빽빽할 밀(密) 자에, 볕 양(陽).
그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경상남도 북동부에 자리한 내륙도시 밀양은
천혜의 자연 경관 속에 햇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찬란한 땅이다.
남쪽으로는 낙동강과 밀양강 유역의 넓은 평야가 비옥한 곡창지대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가지산, 재약산 등 1,000m가 넘는 드높고 유려한 산세에 둘러쌓여,
'알프스' 못지 않은 경관을 자랑하는 곳.
예로부터 부산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던 영남대로의 초입에 위치해
새로운 문물과 지역민들이 교류하던 길목이었으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비롯해 많은 유학자들과 명신을 배출해 낸
유서 깊은 양반의 고장이기도 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막혀있는 듯 하면서도
강과 강이 한 곳에서 만나 감싸고 돌 듯 열려있는 땅.
밀양이 유구한 세월동안 간직해온 경남 내륙 천혜의 자연 경관과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움터온 밀양의 예술을 만난다.
<1부> 비밀스러운 땅, 밀양의 3대 신비
높고 유려한 산세 속에 둘러쌓인 비밀스러운 땅, 밀양.
이곳에는 밀양 사람들이 밀양의 3대 신비라고 부르는 미스테리가 숨어있다.
만어산의 아침이 밝으면 자욱한 안개 속에 숨어있던 돌 무더기들이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만어사 미륵전에 있는 부처의 모습이 어린다는 어산불영석은
용왕의 아들인 미륵왕자가 돌이 된 것으로,
왕자를 따르던 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그 앞에서 그대로 함께
돌이 되었다고. 펄떡거리며 헤엄쳐 오르는 듯한 이 무수한 돌들은
신기하게도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는데...
해박 1,189m의 천황산 북쪽 중턱에 자리한 얼음골 계곡은
삼복 한더위에는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날 부렵부터 얼음이 녹는
신비한 이상기온 지대이다. 이 돌밭의 미스테리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 얼음골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탓에
이 지역은 유독 일교차가 심해, 부근의 얼음골 마을에서는
올해도 꿀이 가득 찬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제3의 신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려 세상에 알린다는
표충비각의 이야기.
아직 그 원인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저마다 분분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명대사의 애국혼이 담겨 있다고 믿는 이 표충비각 뒤에는
사명대사의 기를 꺾겠다는 명분으로 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커다란 담배수납창고를 세우기도 했다.
정말 이 표충비에는 큰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사명대사의 혼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햇살 가득한 고장에 비밀스레 숨겨져 있는
그 신비로운 이야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2부> 뿌리 깊은 종가, 그늘 깊은 나무
가을걷이가 끝나고 누렇게 빛나는 밀양 땅 위에,
고즈넉한 고택들이 오늘도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고려말 명신이었던 정평공 손홍량 종가의 600년 된 차나무.
일직 손씨 가문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이 낮은 차나무는
오늘날까지 굳걷히 마당을 지키고 서있다.
나무가 보내왔을 기나긴 시간에,
남겨진 후손들은 지금도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고...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기회마을. 이곳에는 영화 '밀양'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기회송림이 있다. 옛 시절, 큰 비가 내리면 인근의 밀양강이 범람해
마을이 수해를 입곤 하자 1881년 기회마을 박씨 가문의 감암 박상일 선생이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여 흔쾌히 넓은 토지를 내놓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방수림을 조성한 것.
강가를 따라 숲을 이룬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유서 깊은 가문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자 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여주 이씨 고택이 모여 있는 퇴로리 마을 입구에는
고송이 마을을 지키듯 그 기다란 몸을 뻗대며 드러누워 있다.
나무 옆에 세워진 작은 사당인 동신각에는 고을도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술을 놓고 가곤 한다.
여주 이씨 가문의 성헌선생이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여
산 속 깊은 곳에 있던 다섯 개의 당산을 모아놓았다는 동신각부터,
여주 이씨 고택 별당의 희귀하고 귀한 나무들의 이야기까지.
밀양의 뿌리 깊은 종가 위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또 다른 나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3부> 한을 풀고, 신명을 싣다
예로부터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이 되면 머슴들이 각종 춤과 토속적인
놀이를 벌이는 백중놀이 한판이 열렸다.
한동안 역사 속으로 그 모습을 숨겨왔던 밀양의 백중놀이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밀양 땅을 지키는 이들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그 신명나는 춤판 속에 4대를 이어 춤을 추는 타고난 춤꾼,
하용부 선생이 있다. 호남이 장구라면 영남은 북!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 위로 하용부 선생의 오북춤이 펼쳐지고...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는 힘찬 가락과
포부 당당한 춤사위들이 밀양의 대지 위로 들썩거린다.
부북면 감천리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이 마을의 감내에서 게가 많이 잡혀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서로 게가 많이 잡히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싸움이 일어나자,
게줄을 당겨서 이기는 마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인데...
감내 게줄 당기기 놀이는 농삿일을 하며 고된 와중에도
신명을 즐기곤 했던 우리 선조들의 배포가 드러나는 밀양의 놀이마당이다.
오랜 세월에 잊혀진 검무의 명인 운심.
인간의 편의를 위해 뒤안길로 밀려나버린 학골마을의 신선바위.
잃어버린 우리네 선조들의 춤사위를 찾아내고 복원하는데
온 힘을 쏟는 이들이 있다.
운심의 뒤를 잇겠노라 양손의 검을 힘차게 휘돌리는 밀양 여성들의
포부 당당한 밀양 검무와,
시리도록 새하얀 두루마기를 나풀거리며 학과 신선의 노름을
유려한 몸동작으로 풀어내는 신선바위학춤까지.
끊임없이 대를 이어오며 선조들의 신명을 이어가는 춤 한바탕이,
오늘도 밀양의 하늘 아래 펼쳐진다.
<4부> 영남의 알프스, 심산유곡을 품다
알프스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밀양의 산을 오르면 결코 알프스에 못지않을 구려한 경관들이
씨야에 한가득 펼쳐진다.
푸르른 하늘과 단풍이 곱게 물든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험난한 산중에 펼쳐진 아이러니, 바람에 흩날리는 천황산 아래
억새평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하는데...
가지산에 자리하고 있는 시례 호박소는 그야말로 오랜 세월로 손수 씻어낸
천연 연못이다. 백옥같은 화강암이 억겁의 세월동안 물에 씻겨 연못을 이룬
이 소는 그 깊이가 실이 한 타래나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예로부터 이곳은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물 속에 재물로 동물의 머리를 집어넣으면 그 아래 사는 용이 솟구쳐 오르며
비를 뿌려준다는 전설이 지금도 밀양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천황산 해발 700m에서 1000m에 걸쳐 있는 약 250만평 산악평원지대인
사자평. 사가자 뛰어놀 만한 평원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된 사자평 일대에는
국내 최대의 고산습지인 산들늪이 있다.
밟으면 폭신하고 발이 쑥쑥 들어가는 이 산들늪은
오랜 세월동안 죽은 동식물의 형해와 진흙이 뒤엉켜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곳으로,
1급 청정수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군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밀양의 높은 땅들이 품고 있는 맑은 물 속에 살아가는 갈겨니, 버들치 등의
토종 어류와, 외래 어종들의 유입에 이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치어방류모습까지... 밀양이 그 비밀스러운 품 안에 한아름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5부> 낙동강 길목, 삼랑진 추억
밀양강과 낙동강. 맑은 물줄기 세 갈래가 모이는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삼랑진.
그 강위로 쪽배를 타고 삼랑진의 마지막 어부 장동일씨는 오늘도
지난 세월을 하나하나 걷어올린다.
겨울의 초입, 이제는 듬성듬성해진 그물 속의 물고기들을 건져 올리며
어부들은 삼랑진의 나루터에서 추억 속 이야기를 나누고...
과거 일반 조창처럼 세곡을 모아 보관했다가 밀양, 김해, 양상, 창녕
등지로부터 모은 세곡을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는 통영으로 보냈던
후조창이 있었고, 동래에서 한양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던 낙동강 중요 길목이자 수로 교통의 요지였던
작원관지. 그 역사의 흔적은 세차게 부는 강바람에도 굳건히 오랜 세월 동안
삼랑진을 지키고 서있다.
이처럼 수운 교통의 요지로 역사적으로 번성했던 나루의 기억을 간직한 곳.
과거가 되어버린 번성했던 삼랑진 포구의 뒷기미 나루를 세월만을
아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있다. 이제는 이를 대신해 5개의 철교가 놓아졌다.
때론 수탈의 길, 때론 개발의 길로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세워진
다리들 위로 오늘날의 차들이 부지런히 달려나간다.
1905년 경전선과 경부선이 생긴 이래 가장 번성했던 철도 교통의
길목이었던 삼랑진 역. 증기 기관차가 운행되던 시절,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물로 세워진 급수탑도
이제는 무성한 수풀로 뒤덮인 채 그 세월만을 자랑처럼 드러내고...
찾는 이는 예전만 못해도 들르는 이들과 사는 이들에게는
많은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삼랑진의 풍경.
지나간 세월을 곱씹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고3] = 지난주(경북 청도편=어머님 고향)
이번주(경북 영주편) 방영분 정보
영주(榮州) 5부 은장도의 고을
선비들의 충절과 여인들의 절개를 상징하는 충효의 도(刀), 정절의 도(刀) 은장도.
금수강산인 소백산 기슭에 한 때 금속기술자들이 많았던 시대가 있었다. 예부터, 영주는 장도 공방이 발달해 장도를 사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붐볐으며, 10년 전만 해도 장인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장인들만이 옛것을 지켜가고 있다.
점점 잊혀가는 수백 년 세월의 장도 비기가 꿋꿋이 그 명맥을 이어가는 중심에는 이면규 장인과 고준정 장인이 있다. 이면규 장인은 갖가지 방법으로 장도를 탄생시키고 있는데, 그 중에 소뼈를 고아서 만든 장도는 백의민족을 상징하며, 영주 지방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고준정장인은 좀 더 섬세한 은장도 만드는 방법을 조카에게 물려주고 있다.
은장도의 종류로는 그 옛날, 음식의 독을 확인하기 위한 젓가락 모양의 첨자도, 부녀자들의 옷고름에 노리개로 찼던 패도, 호신용으로 선비들이 주머니 속에 지닌 낭도가 있다. 또한 은장도는 임금님의 하사품이 되기도 했었다.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의 종택.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가문의 유물을 지켜오는 장덕필씨가 있다. 1466년, 그의 조상인 장말손 장군이 여진족 아지발을 물리친 것에 공을 세워 세조가 하사한 패도다.
‘영풍장도’의 기운을 간직한, 그 곳, 영주로 옛 사람들의 충절과 절개를 찾아 나선다.
영주(榮州) 4부 산골로 숨어든 메밀묵밥
춥고 어려웠던 시절, 아무데서나 잘 자랐던 메밀로 만든 묵밥은 산사람들의 허기와 배고픔을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예부터, 순흥사람들에게 묵밥이란 기다림 속에 얻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 기억으로 지금도 순흥면 곳곳엔 30년 동안 묵을 쒀온 정옥분 할머니를 비롯하여 메밀묵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순흥사람들이 묵밥을 즐겨먹는 이유에는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데, 그 역사 중심엔 금성대군과 단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457년. 정축년. 당시만 해도 순흥면은 순흥도호부라고 해서 영남에서 제일 큰 고을이었다. 이곳에 금성대군이 유배를 와서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발각되면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산으로 도망가는 일이 생겼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산 위에서 생활하면서 잘 자라는 메밀을 키웠고, 묵밥을 먹으면서 아픈 시간을 견뎌냈다.
아직도 순흥면엔 당시의 사건을 증명하듯 죽은 영혼을 달랜다는 경자바위, 청다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 그 피가 죽계천을 흘러 안정면 동촌리 마을에서 멈췄다 해서 생긴 피끝마을 등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순흥면 사람들은 두레골에서 소백산 산신인 금성대군을 기리는 제를 지낸다.
그 옛날, 눈물을 머금은 채 먹었지만, 지금은 추운 겨울, 허기를 메어주는 묵밥. 가슴 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영주 묵밥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영주(榮州) 3부 내성천 물길 따라, 정취가 흐르고
태백산에서 발원해 꼬불꼬불한 길을 거치고 거쳐서 영주시로 흘러오는 내성천. 이 주변엔 예부터 선비의 숨결이 묻어나는 고택이 즐비하다.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덕산고택과 괴헌고택이 나란히 내성천을 앞에 두고 자리 잡았다. 약 200년 동안 조상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들. 뿐만 아니라, 조상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이 되면 연안 김씨 후손들을 시제를 올리고,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면, 시어머니께 배운 궁중요리를 덧붙여 손님상을 차린다.
이산면 두월리를 지나 문수면 수도리까지 흐르는 내성천. 하천은 수도리 무섬마을을 한 바퀴 돌고 또 흐르고 흐른다. 물위의 섬이라는 뜻을 간직한 무섬마을엔 약 40가구 주민들이 한데 모여 산다, 논도 밭도 없는 마을이지만, 옛 선비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해우당, 만죽재 등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 많아 휴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기운이 바람을 타고 모이는 내성천 주변. 그리고 유난히 이런 좋은 땅이 많았던 영주. 옛 선비들의 삶을 지키고 지켜온 그들의 후손들을 지금 만나러 간다.
영주(榮州) 2부 인삼향이 물씬, 풍기의 힘
예부터, 약초의 명산이라 불리며 삼이 많기로 유명했던 소백산. 그리고 병풍처럼 소백산이 둘러싸인 지형, 영주시 풍기읍에선 올해도 인삼을 낳는다.
1541년, 중종 31년에 주세붕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했고, 일찍이 산삼을 조공으로 바치며 살아가는 영주 사람들에게 소백산 자연 산삼씨앗을 선물해 주었다. 깊은 산중에 있던 영주 사람들은 농사 대신 삼을 캐는 데 노력했고, 그 결과, 풍기인삼은 영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이 되었다.
어김없이 아침 6시가 되면,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5년 동안 공들여 키운 인삼 수확을 위해 아침부터 분주한 30년 인삼농사꾼 박헌기씨. 자식마냥 소중히 키운 인삼은 소백산 자락 품에 안겨있어 더 잘 자랄 수 있었다 말한다.
풍기인삼은 인삼농사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30년 째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이영자씨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특별한 날이면 가마솥에 80마리를 한꺼번에 끓인다는 이영자씨는 풍기인삼 대량수확 덕에 닭과 인삼을 끓인 계삼탕을 삼계탕이라 불렀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음식으로써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말한다.
풍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살맛나는 존재가 되어주는 인삼. 겨울 초입에 들어선 지금, 뿌리가 튼실한 인삼을 만날 수 있는 그 곳 영주로 떠난다.
영주(榮州) 1부 소백, 겨울의 길목에서
소백산의 정기를 가득 품고, 사람을 부르는 곳. 경상북도 최북단, 그 곳에 자리 잡은 영주다.
백두대간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사시사철 천혜의 자연환경을 만끽하고, 소수서원, 부석사 등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영주. 또한 ‘정감록’의 제1승지로써 사람이 살기 좋은 풍요로운 땅과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선사하고,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단양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으로는 영월군과 접경을 이루며 교통의 중심도시이기도하다.
영주를 품고 있는, 바람의 산이라 불리는 소백산. 첫눈이 내린 소백산에는 이른 월동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인삼 첫 재배지인 풍기에선 이맘때쯤 5,6년 된 인삼 수확을 시작한다. 겉으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금성대군과 단종의 슬픈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한 영주.
선비와 양반의 문화가 유유히 전해지는 영주, 수백 년의 시간을 이어온 영주로 지금 여정을 시작한다.
1부
소백산 능선아래, 첫눈이 내린 경상북도 영주. 그럼에도 유난히 햇볕이 푸근한 산은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을 부른다.
깨끗한 죽계구곡의 흐르는 물소리와 더불어 부석사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소백산. 부석사 북소리로 아침을 시작하는 소백산 기슭에 첫눈이 내리던 날. 일찍이 내린 첫눈에, 소백산 품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월동준비로 분주하다.
소백산 기슭에 20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달밭골마을. 그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던 마을인 이곳에 이북이 고향인 최현관 삼형제가 이곳 마을에 터를 잡았고, 지금은 달밭골 마을 19가구 중 8가구가 최씨 가족이다. 산 속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아가는 삼형제 가족이 이제 막 달밭골 마을의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알이 찬 배추를 뽑아 내년에 먹을 김장을 준비하고, 얼마 전, 수확한 겨우 내내 이들이 먹어야 할 식량 감자들은 삼형제가 만든 토굴에 저장을 해두고, 겨울나기를 위한 땔감을 미리 산속에서 얻어온다.
달밭골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종지기 김진선씨가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영주에서 태어나 잠시 객지에서 살다가 6년 전에 돌아온 그는 소백산을 찾는 이들을 위해 집 앞에 자유의 종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화전민들의 음식이었던 옥수수막걸리를 어머니가 빚었던 방식 그대로 아내와 빚어서 등산객들에게 선사한다.
영남의 알프스,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소백산. 그 산에 조금씩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청도 5부 재 너머 삶이 있네
우리 조상들이 평생에 걸쳐 가장 소원했던 것은 흰 쌀밥에 고깃국, 그리고 '고개를 잘 넘는 것'이었다는 말이 있다. 국토의 70%가 산이었던 탓에, 고개는 우리 선조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장애물이었던 것. 그만큼 고갯길엔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
부산으로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모두 깊은 산에 둘러싸여 있던 청도는 다른 고장에 비해 고갯길이 유독 많은 곳으로 손꼽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영남대로 구간 중 문경새재 다음으로 험했다는 팔조령. 대구와 청도를 가르는 이 고개는 길이 하도 험해 8명이 한조를 이뤄 넘었다해서 '팔조령'이라 불렸다고...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옛길에는 당시 무사히 고개를 넘게 해달라며 빌었다는 성황당이 남아있다.
이런 청도에는 최근 옛길에 버금가는 새로운 고갯길이 생겼다. 그 이름은 '몰래길'!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씨와 개그맨 전유성씨가 함께 만든 길로, 우리의 길을 복원해 아끼고, 자연을 가까이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소원풀이길에 기차놀이길 등 이름도 재미있는 그 길엔 조금씩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소나무 터널이 장관을 이루는 화악산의 고개로, 명산이라 불리는 남산과 연결되는 밤티재! 그 고갯길 너머엔 봄맛의 전령사로 알려진 미나리가 가을 수확에 한창이다. 향이 짙고 맛이 뛰어나 여느 농번기보다도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데...
재 너머 우리네 소박한 삶이 있는 그곳으로 여정을 떠나본다.
청도 4부 비단강, 세월을 담고 흐르다
산과 물이 푸르고, 인심이 좋아 예부터 삼청(三淸)의 고장이라 불리는 청도. 낙동강의 지류로 물이 맑기로 알아주는 청도를 흐르는 '동창천'은 비단처럼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한데다,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 비단 금자에 내 천자를 써서 금천(錦川), 즉 비단강이라 불렸다.
흐르는 물길 따라 세월과 삶을 담아내서 청도인에게는 젖줄과도 같은 동창천! 물길을 따라 흘러오다보면 물줄기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해 온 특별한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광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신지리 마을이 바로 그곳으로 조선 중기 성리학자 소요당 박하담(1479~1560)이 무오사화 등을 겪은 뒤 벼슬을 사양하고 들어와 살며 이룬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이 곳에는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운강고택과 만화정을 비롯해 마을 구석구석 고택들이 산재해 있어 마치 조선시대를 옮겨 놓은 듯 기품 있는 운치를 뿜어내는데... 늦가을 콩과 깨 타작이 한창인 신지리는 청도 양반들의 터전이었던 마을답게 마을 곳곳에 역사를 지금까지도 잘 보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선암서원은 동창천 물이 굽이쳐 흘러 경관부터가 일품. 여기에 또 하나, 조선시대 내시가 대대로 살았다는 '임당리 김씨 고택'이 있다. 1500년대부터 400여 년간 16대에 걸쳐 내시 가계를 이어 온 집으로 건축 구조부터 남달라 한옥 연구가들에게 관심이 대상이 되고 있다.
한옥의 고향과도 같은 곳, 청도! 아름다운 동창천 물길 따라 세월을 담고 있는 그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청도 3부. 구름도 쉬어가는 곳. 운문사
형형색색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의 절정, 만추(晩秋)! 청도는 만추(晩秋)의 꽉 찬 느낌과 비어가는 느낌을 함께 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지금 이맘때, 청도는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오색 빛 단풍의 황홀한 모습과 고즈넉하고 청아한 늦가을의 정취를 통해 사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
이 계절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담아내는 사찰 하나가 있으니, 바로 신라 진흥왕 시절 창건된 천년고찰 운문사. 이곳은 국내 최대 비구니 도량으로 매일 새벽, '도량석'과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깨우치는 '법고'. 게으른 수행자를 질책하는 '목어' 등으로 이뤄진 예불로서 하루를 경건하게 시작한다. 여느 사찰보다도 대규모를 자랑하는 운문사 안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탱화 등이 모셔져있어 역사의 뿌리 또한 깊다.
하늘과 더 가까운 그곳에는 약 25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오늘도 삶의 깨달음에 한발 더 정진하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데... 겨울이 조금 일찍 찾아오는 운문사에는 요즘 내년 초파일까지 먹을 김장준비로 스님들이 분주해졌다.
비옥한 땅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에 기꺼이 만족하고 감사해하는 일상. 그 소박한 모습이 운문사의 가을과 함께 무르익어간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곳, 운문사로 여정을 떠나본다.
청도 2부 우직함으로 승부를 겨루다. 싸움소의 고장
한 집 건너 싸움소를 기르고 있을 정도로 청도는 싸움소의 고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싸움소로 대결을 벌이는 소싸움은,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후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해 시작한 것이 그 시초. 이후, 그 규모가 점차 확산되고 부락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과시의 장이 된 것이 지금의 소싸움으로 발전한 것이다.
청도에서 소싸움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999년. 이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싸움소를 가진 명실상부 싸움소의 메카로 거듭났는데.. 그 명성을 잘 유지하기 위해 지난 2000년도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싸움소 관리센터를 운영하여 1년 연중 싸움소를 훈련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이렇듯 역사나 그 노력이 오래된 만큼 청도에는 집안 대대로 싸움소를 길러온 이들도 적지 않다.
무려 5대째 싸움소를 키우며 명맥을 잇고 있다는 김재욱 할아버지.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손수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일을 하고 있다는데... 빛바랜 앨범엔 할아버지의 그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집안의 싸움소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현재는 그의 손자 김창섭씨가 뒤를 잇고 있다.
그런가하면, 청도에서 나고 자라 싸움소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는 손만식 화백! 그는 싸움소를 그리는 화가다. 1990년대 말부터 매년 약 200여 마리의 싸움소를 화폭에 담고 있을 정도로 그 애정이 남다르다.
우직한 소처럼 활력 넘치는 싸움소의 고장, 청도로 떠나본다.
청도 1부 우리 마을은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었소!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하여 동으로는 경주와 대구, 남북으로는 창녕과 밀양, 그리고 경산과 접하여 수려한 자연경관에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전원도시, 청도! 예로부터 산과 물이 푸르고 인심이 후박하다하여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렸다. 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생산된, 씨 없는 감인 반시가 주홍빛으로 물들어 온 마을이 오색단풍에 버금가는 풍경을 자아내는 곳! 농한기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소로 힘겨루기 하던 것이 발단이 돼, 이제는 전국 최고의 '싸움소의 고장'으로 거듭난 청도! 어느 지역보다 재(고개)가 많아 그만큼 구전으로 전해오는 전설도 많고 사연 많은 고개 너머엔 지금도 소박한 삶을 꾸려나가는 이웃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라 천년 고찰인 운문사에는 25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닦고, 비단강이라 불리는 동창천 물길을 따라서는 유서 깊은 고택들이 보존되어 있는 뿌리 깊은 고장! 화려한 역사에 자연경관 수려하고, 마을인심에 풍경까지 풍요로운 청도로의 여정을 시작해본다.
1부
청도의 사계는 색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을은 색에 있어 절정을 이루는 계절! 눈길 닿는 곳 마다 진녹색의 푸른 산과 함께 주홍빛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는데, 그 환상적인 색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감'이다. 집집마다 담장 너머는 물론 가로수까지 주홍빛으로 물들 만큼 청도는 대표적인 감의 고장! 실제로도 전국 감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청도 감은, 생긴 모양이 둥글납작하고 씨가 없어 '반시(盤枾)'로 불린다.
조선 명종 1년(1545)에 청도 새월마을 출신인 박호 선생이 중국에서 감나무 묘목을 들여와 접목시켜 심은 것이 지금의 청도 반시의 효시. 그렇게 뿌리 내린 감나무는 군 전체에 숫꽃이 없어 씨가 없다는 특징을 지녔고, 산세가 깊고 일교차가 큰 지형적인 영향으로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특히 씨가 없다는 점을 한껏 활용해서 청도에는 감의 2차 가공도 다양한다. 감을 조각내 인공건조와 태양건조를 번갈아 시킨 쫀득한 식감의 감말랭이는 전국구 간식으로 자리 잡았고, 풋감으로 만든 즙에 소금만 첨가해 숙성시킨 물로 염색한 원단은 비단보다도 아름다운 빛깔을 뽐낸다는데...오색단풍 부럽지 않은 주홍빛 감이 물들어가는 고장, 그와 함께 추억도 무르익어가는 '감 고을' 청도로 떠나본다.
출처 :고려대학교80학번교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 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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