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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싸릿골에 뿌린 눈물
지윤은 서울 외곽에서 조그마한 카센터를 운영한다. 오전 열 시다. 전화벨이 울린다. 지윤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정리를 하다가 무심코 전화기를 들었다.
“네, 민이 카센터 조지윤입니다.”
“내다.”
싸릿골에 계신 아버지다. 지윤은 전화기를 고쳐 잡고 의자등받이에 비스듬하게 눕혔던 자세를 바로 세웠다. ‘할매가 많이 편찬으시다. 너를 찾는다. 가능하모 오늘 중으로 내리오모 좋것고, 며칠 말미를 챙기 온나. 추석도 다가오는데 벌초도 해야 하고. 할 이약도 있다. 굳이 둘이 올 필요는 없다만 알아서 해라.’는 것이었다.
“할머님이 많이 편찮으신가요? 병원에 계세요?”
아니란다. 다만 맑은 정신일 때 지윤을 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 문장이 지윤의 뇌리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굳이 아내와 동행할 필요 없다는 말씀이 이상하리만큼 서늘했다. 지윤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고에 들어가 담배 한 대를 깊이 빨았다. 왜?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으실까. 머릿속은 금세 과거를 향해 달음박질 쳤다. 아내와 연애시절이었다. ‘사귀는 처녀가 있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취직만 하면 결혼하려고 한다.’했을 때 할머니와 아버지는 흔쾌하게 허락을 하셨다.
그런데 막상 그녀를 데리고 시골에 인사를 갔을 때다. ‘아버지는 뭘 하시냐. 고향이 어디냐. 서울에서는 언제부터 살게 됐느냐’ 등등, 집안 내력을 물었다. 경아는 ‘본적은 경북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백부님이 많이 도와주셨다’는 말을 했다. ‘백부님은 어디 사시나. 어떤 분이냐? 고마운 분이구나.’하셨는데.
“백부님이 육이오 때 경남지역 계엄사령관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 육이오 사변 때 말이지?”
경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어른은 깜짝 놀라는 눈치셨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결혼 이후 경아를 별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셨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지윤은 내성적인 집안 내력이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다. 헌데. 할머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데. 손부를 꺼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단은 아내 의사부터 물어볼 수밖에.
지윤은 서둘러 아내에게 전화를 넣었다.
“경아, 싸릿골 가야 하는데 갈 수 있겠어? 할머님이 위독하신가 봐.”
“마침 잘 됐네. 바람 쐬고 싶었는데. 할머니 핑계 대고 한 사나흘 연가 낼까?”
지윤은 아버지 말씀이 머릿속에 걸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혼자보다 둘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는 늘 경아를 어려워했다. 평생 홀아비로 늙어가는 아버지시다. 언젠가 ‘아버지도 재혼 하세요. 저는 대찬성입니다. 할머니도 덜 힘드실 텐데. 저는 엄마 얼굴도 기억 못하잖아요. 할머니께 효도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아버지께서 빙그레 웃으며 ‘글세, 니 어미가 민이어미랑 비슷했니라.’하셨다. 지윤은 아버지의 그 한 마디를 가슴에 새겼다. 정말 아내가 엄마 같을 때가 있다. 아버지도 며느리가 아내 같을 때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윤은 카센터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며 아내와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아내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지윤은 공무원시험에 불합격한 그 해 홧김에 군대를 다녀왔다. 2년여 공백을 깨고 나온 복학생이었다. 첫 동아리 모임에서 수인사를 했을 때 아내는 ‘초식 동물 중에 육식 동물이 들어온 것 같네. 선배, 우리 인사해요. 난 국문과 2학년 김경아’라며 손을 내밀었다. ‘지리산 유독골에서 세상 구경 나온 복학생 조지윤임다. 잘 부탁하요.’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았다. 찌르르! 감전사 할 뻔했다. 경상도 말로 첫 눈에 뽕 갔다. 그녀는 훤칠한 키, 어깨만큼 오는 생머리,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었다. 거기다 성깔도 보통내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어느 날, 동아리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지윤은 싸릿골로 향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선배 안 오고 뭐해?”
“나, 못 가. 지금 시골 내려가는 중이거든”
“낼이 내 생일인데. 언제 올라와?”
지윤은 깜짝 놀랐다. 경아의 생일이 엄마의 제사 파짓날이라니. 운명 아닐까? 아내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부잣집 딸이다. 반면 지윤은 경상도 보리문둥이다. 그것도 지리산 자락 오지 중의 오지 싸릿골의 가난한 농갓집 외동아들이다. 지윤은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 못한다. 지윤은 할머니의 금지옥엽이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유별났다. ‘할매 떡!’하면 떡이 나왔고, ‘할매 엿!’하면 엿이 나왔다. ‘할매 홍시!’하면 홍시가 나왔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귀하디귀한 내 새끼’였다.
그 귀한 할머니의 손자가 사랑을 찾았다. ‘내 사랑, 당신은 내 것’하는 여자를 만난 것이다. 지윤은 경아라는 단맛에 취했다. ‘경아 힘 딸려’하면 지글지글 끓는 석쇠불고기 집에 앉았고, 수시로 떡도 나오고 엿도 나오고 덤으로 야들야들한 젖무덤에 파묻혀 살맛도 봤다. 경아는 내숭을 떨지 않았다. 여걸 같았다. 지윤은 ‘우리 저기 어때?’ 모텔을 바라보며 농담 한 번 했다가 오쟁이 졌다고 우스개를 한다.
“왔어? 준비 끝났습니다. 작업복과 간편복 기타 등등.”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이미 여행 준비를 끝내놓고 기다렸다. 지윤은 신바람이 난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괴이쩍다. 당연히 노 할 줄 알았던 아내가 흔쾌히 예스라고 했으니 그것부터 수상쩍다.
“시집만 와 봐라. 내가 금 방석에 앉혀 줄게 하던 당신, 골치 아플 때 싸릿골 바람이 최고지. 갑시다. 내 차? 당신 차? 아무 거나 오 케.”
“싸릿골이라면 넌덜머리난다더니 웬일이야?”
“그러게. 나도 신기해. 있잖아. 사실 통한 거야. 어딘가 나르고 싶었거든. 숫자만 바라보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할 때였어. 당신 전화가 어쩜 그렇게 반갑던지. 싸릿골이 구세주야.”
아내가 너스레를 푼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도착하자마자 밥순이 해야 하는데도? 당신 부엌데기 싫어하잖아. 싸릿골 가는 것도 싫어하고. 아무래도 수상한데? 무슨 꿍꿍이속이야?”
“됐네요. 갑시다. 서방니이임”
그렇게 출발했다. 지윤은 자신의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는 아내가 새삼스럽다. 반짝인다. 왤까. 지윤은 부부란 천연염색한 옷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예쁜 물을 들인 옷가지도 빨면 빨수록 희끄무레 해진다. 색깔이 바래고 낡고 닳아도 편하고 좋아서 자꾸 입는 옷 같은 게 부부 아닌가 싶다. 사랑이 연민으로 연민이 인간애로 살다 가는 인생, 길거나 짧은 마지막 길을 향해 가는 여정이 인생이라든가.
“내가 설거지는 책임진다. 사실 할머니는 이제 남자 거시기 떨어진다고 나무랄 연세도 아니지. 많이 아프신 것 같아. 어지간하면 우릴 오라고 하실 아버지도 아니고.”
경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할머니 흉내를 낸다. 정색을 하고 지윤을 노려보며
“어디 감히 하늘같은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켜. 남편 체통을 세우는 것도 안사람 몫이다. 아녀자가 남편 이름을 탕탕 부르는 것도 남의 입질에 오르내릴 일이야. 아가는 공부도 많이 했담서? 자고로 여자는 삼종지도를 따라야 하는 게야. 요즘 젊은 것들 쯧쯧”
경아는 할머니의 눈에 걸리기만 하면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파닥거려야 했다. 새댁시절부터 할머니께 혼쭐이 났다. 당연히 시댁에 들어설 때부터 시댁을 떠날 때까지 아내는 묵언 아닌 묵언에 부엌데기 못 면했다. 두 아이가 나고 자라는 동안 아내는 슬슬 시자 들어간 말만 들어도 멀미난다 했다. 시골 나들이도 거부 했다. 시할머니의 시집살이가 맵고 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만 좋아한단다. 그 할머니가 올해 아흔 다섯이다.
“당신 그럴 때 꼭 우리 할머니 같아.”
“그치, 나도 참 고생 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면 엄청 눈물 날 것 같어.”
지윤은 주마등처럼 스치는 삽화들 중 한 개를 잡았다. 한 때 밥벌이를 생각하다 공무원 시험을 쳤었다. 시골사람들에게 공무원은 과거시험에 해당됐고, 말단 공무원이라도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영리하고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의 꿈이 국가공무원이나 지방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지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1차 시험은 너끈히 합격했다. 면접도 잘 봤다. 자취방에서 합격통지서만 기다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보 한통이 날아들었다. <금일 急來>.
겨울 방학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지윤은 뜻밖의 전보를 받고 그날로 시골집에 내려왔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하시고 무슨 큰 변화의 조짐이 없는 한가롭고 조용한 집이었다. ‘잘 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를 반갑게 맞이할 뿐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지윤도 아버지께서 입을 열 동안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 저녁상을 물린 후 아버지는 조용히 사랑채로 지윤을 불렀다. 지윤은 드디어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인가 하실 것을 예감했다. 지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다란 쇠죽솥이 걸린 사랑채 앞에서 지게문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버지!”
지윤이 지게문을 열었다.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야 드나들 수 있는 문이다. 방에 들어섰다. 더운 김이 훅 하고 풍겼다. 어두침침한 방안이다. 사물은 흐릿했고 아랫목에 정좌한 아버지 모습도 흐릿했다. 아버지는 등잔의 심지를 돋우셨다. 아버지 앞에는 개다리소반에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손수 술상을 마련한 것이었다.
“우선 공무원 시험 본 거 축하한다. 너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거나 진배없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신원조회가 남았는데. 신원조회만 통과하면 돼요. 혹 경찰서에서 연락 온 것 있어요?”
아버지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요? 무슨 문제가 있어요? 신원조회에 걸릴만한”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왜요? 우리 집안에는 금치산자도 범죄자도 없잖아요.”
“있다. 너의 큰아버지, 구월구일에 제사 모시는 큰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했고 지리산에서 실종 됐다. 경아 큰아버지가 토벌대 사령관이었다고 했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살아있는 것이 국가 보안법이고 연좌제니 하는 거다. 네가 기름때 묻히고 살면 평생 몰라도 될 일이라고 생각한 아비의 소견이 짧았구나.”
“그건 과거사예요. 전두환 정권 때 연좌제법은 폐지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은 20세기에요. 아버지. 케케묵은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겉만 그렇다. 암묵적으로 아직 연좌제 법은 살아있다. 큰 기대는 하지 마라.”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과거를 회상하셨다.
“나도 한 때 공무원이 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했던 나는 포부가 있었다. 공무원이 되어 우리 집안을 일구는 것이었지. 할머니께 효도하는 길은 내가 출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급제를 해서 할머니께 보답하고 싶었다. 고 3학년 때였다. 너처럼 국가공무원 시험도 쳤었지. 성적은 일등이라더라. 하지만 신원조회에서 빨간 줄이 그어져서 떨어졌다는 경찰서장의 통고에 절망했었다. 그때 할머님께서 나를 불러 앉히고 차분하게 하신 말씀이 내 인생을 바뀌게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너에게도 말해 주마.”
아버지는 그 일로 인해 한동안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눈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조차 가면을 쓴 얼굴로 자기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정신적 충격은 방황으로 이어졌고 아버지는 공부를 접고 소설책 속으로 도망을 쳤다. 학교수업은 대충 때우고 시립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조지 오웰의 <1984년>, <동물농장>,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고골리의 <어머니>, <외투>, 루쉰의 <아큐정전>같은 소설과 <새로 쓴 한국현대사>를 다시 읽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이니 연좌제니, 오제도 검사니 하는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공부를 다시 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고 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그동안 가식적인 삶을 산 것 같았다. 백성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정치판, 거짓과 공모가 판치는 세상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태백산맥이 왜 금서가 되었는가.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국가보안법 폐지 운운하는 뉴스들, 연좌제에 연류 된 사람들 근황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때도 아버지는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그 즈음 시립도서관에서 일하던 한 여자를 만났다. 우린 금세 친해졌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헤어졌다. 나는 싸릿골로 들어와 농사꾼이 되었지. 여러 해가 지나갔지.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싸릿골로 찾아온 여자가 있었다. 그녀였다. 노총각 노처녀로 다시 만난 우리는 부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너를 낳고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먼 길 가더라. 먼저 떠나 미안하다던 사람, 가여운 사람”
그때 바라본 아버지의 얼굴은 어둡고 깊었다. 가물가물 흔들리는 등잔불 앞에서 세상 모든 것을 다 체념해버린 쓸쓸한 얼굴, 지윤은 그 밤을 생각하면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다.
서울에서 싸릿골까지 네 시간이 걸렸다. 지윤과 경아는 싸릿골 면소재지 마트에 들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홍삼알사탕과 복숭아를 샀다. 고향집이 지척이라는 생각에 느긋했다. 싸리골 들입에 섰다. 동네 앞을 지키는 수령 몇 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는 여전히 건재했다. 느티나무 아래 빙 둘러 나무를 덧댄 평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길손이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길섶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느티나무 아래 섰다. 주변을 빙 둘러 봤다. 넓었던 강은 실개천으로 변했다. 나룻배가 다니던 강은 그의 머릿속 잔재만으로 남았다. 강은 돌밭과 모래와 작은 솔밭 사이로 명맥만 유지한다. 강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싸릿골이 아슴푸레 시야에 들어온다. 다랑이와 산비탈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싸릿골은 고즈넉하다. 대숲에 반쯤 감춰진 싸릿골, 저녁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 고향마을, 어린 삽화가 필름처럼 돌아간다.
지윤은 차에 시동을 건다. 싸리골 향기는 맑고 상큼해서 좋다. 미세먼지에 주눅 들어 살아야 하는 서울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알싸한 바람향기, 거의 들리지 않는 차량의 소음들, 사람의 말소리조차 없는 그 곳에 길손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해거름이 찾아들었다. 안온하다. 지윤은 서둘러 들녘을 지나 동네 골목 안으로 차를 몰았다. 동네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한 집, 창문만 열면 푸른 저수지와 저 멀리 너른 강이 보이는 집, 옹치면 한 줌 밖에 안 될 것 같은 할머니가 기다리는 집이다.
그러나 싸리골도 변했다. 울창한 대숲의 반이 사라지고 그 위에도 현대식 양옥집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던 옆집도 사라지고 그 곳에도 말끔한 현대식 이층집이 자리를 잡았다. 마당과 담장이 갖추어지지 않은, 공사가 현재 진행형인 집이었다. 국적불명의 집이지만 산뜻하고 밝아 보였다. 두 집 사이에 낮게 앉은 고향 집은 할머니처럼 낡아 보였다. 여전히 대문은 없었다. 꽤 넓었던 마당이 좁아보였다. 마당 한쪽에는 아버지의 트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양지쪽에 놓인 평상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 있었고, 텃밭에는 가을무와 배추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싸릿골은 이미 가을이었다.
“할머니 지윤이 왔어요. 경아도 왔어요.”
승용차를 아버지의 트럭 옆에 세우고 나오자마자 고함을 쳤다. 승용차에서 선물을 꺼낼 즈음 현관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버지께서 먼저 나오셨다. 몇 달 못 본 사이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더 백발이 되었고 볼은 홀쭉하고 주름이 더 깊어졌다.
“같이 왔구나. 잘 왔다. 너거 올 때꺼정 기다린다고 저녁 전이다. 어여 들어가자.”
아버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쿠, 니가 왔구나. 우리 손자가 왔어.’ 할머님이 기어서 문지방을 넘는데 눈은 벌써 젖어 있다. ‘할매, 할매, 우리 할매’ 지윤은 선물을 거실바닥에 놓자마자 달려가 할머니를 덥석 안았다. 병색 짙은 할머니의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쳤다. 그에겐 향기로운 냄새였다. 할머니는 앙상한 두 손으로 지윤의 얼굴을 감쌌다.
“어이쿠, 내 새끼, 어디 보자..... 저 아는 누고? 가만, 니 지윤이 에미 아이가?”
“할매는 옴마가 아니라 손부며느리 민이에미잖아. 할매 나는 누고?”
지윤이 어리광을 부리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자 할머니는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아내를 빤히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제 정신이 돌아온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민이 어메라? 우째 꼭 우리 지윤이 에미를 보는 것 같어. 아가, 일로 온나. 잘 왔데이.”
경아도 다가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때 아버지께서 저녁부터 먹자고 말씀하셨다.
“니 방 치아 놨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나. 밥만 퍼서 상만 들고 오모 된다. 요새는 내가 밥을 해 묵는다. 할매가 반찬 맹그는 거 일일이 갈차 주신다. 정신이 맑을 때만 그렇다. 가끔 정신 줄 놓을 때가 는다. 그럴 연세도 됐지만 조금이라도 본정신 가지고 계실 때 보고 가라고 불렀다.”
“아버지 힘드셔서 어떻게 합니까?”
“심들 거 없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머가 심드노.”
거실에 두레상을 펴고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녹두죽을 드시는데 새 모이만큼 드시고 숟가락을 놓았다. 아버지와 셋이 밥을 먹는 사이 할머니는 당신 방에 들어가 잠이 드셨다. 경아가 부엌으로 향한 후 아버지께서 할머니의 근황을 말씀하셨다. 요즘은 온종일 현관 밖으로 나가려고도 않으시고 자리에 누워 지내신단다. 자다가 깨다가 하시는데 잠이 깨면 ‘윤이가 왔나?’하시며 나를 찾으신단다. 오늘 아침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할머님이 급하게 아버지를 찾으시더니 ‘그 아를 불러라. 당장 오라 캐라. 그 아를 봐야겠다.’ 하시더란다.
경아는 다과상을 차렸다. 지윤은 다과상을 들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아랫목에 누워 주무시고, 지윤은 아버지랑 윗목에 앉았다. 아버지께서 평소 마시던 소주병을 챙겨 오셨다. 술잔을 기울였다. 아랫목에 누워 계시던 할머님이 ‘윤아! 우리 새끼 왔나?’하신다.
“할머니 저 여기 있어요. 저예요.”
지윤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님이 눈을 뜨셨다. 지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할머니의 눈빛이 형형해지며 ‘내가 또 깜빡했구나. 그래, 우리 새끼가 왔제. 밥은 묵었나?’하며 일으켜달라고 하셨다. 할머니를 벽에 기대 앉혔다. 할머니는 지윤을 손을 꼭 잡았다. 지윤은 할머니 앞에 퍼질러 앉아 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잡았다. 돌아보니 아버지 혼자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고 계셨다. 경아는 거실에 나가 텔레비전을 봤다.
“아가, 내 죽기 전에 니 핏줄의 내력은 갈카 주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 인자 니를 봉께 내 한도 다 풀리고 속도 후련하구나. 고맙다. 내 좀 뉘피도고(눕혀 달라).”
할머니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려 있었다.
“할매, 뭔 말인교?”
지윤은 재차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손아귀 힘만 더했다. 백수가 다 된 노인의 손아귀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셌다.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눈물 글썽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를 푹신한 요위에 곱게 눕혀 드렸다. 할머니는 금세 잠이 드셨다. 쌕쌕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곁에 다가가 앉았다. 아버지께서 내미는 술잔을 받아 벌컥 마셨다.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듯 몽롱하다. 술 몇 잔에 헛소리를 들었나. 할머니 쪽을 다시 봤지만 할머니는 편안하게 잠이 드셨다.
“아버지!”
지윤은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더니
“니는 보도연맹이란 것에 대해 올매나 아노?”
“뜬금없이 보도연맹은 예? 할매가 한 말이 무슨 뜻입니꺼?”
“낼 이약하자. 너거도 피곤할 낀데. 나도 자야겠다. 산밭에 참깨 쬐끔 심은 거 벤다고 용을 썼더니 몸이 묵지근하구나. 묻고 싶은 기 있어도 낼을 기약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않겠다고 작심하신 듯 술상을 들고 나가셨다.
지윤은 살그머니 현관을 나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집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둠에 눈이 익자 비스듬히 드러나는 풍경이 아늑하다. 아래위집에 불이 환하다. 골목마다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나는 마을이 색달라 보인다. 지윤은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만감이 교차한다. 생각이란 놈은 질서가 없다. 제멋대로 왔다가 가는 기억의 파편들이 혹독하다. 지윤은 집의 난간을 쓰다듬었다. ‘그래, 이 집 지은 지도 꽤 됐지.’ 아버지 회갑을 맞아 헌 재래식 집을 뜯어내고 양옥집을 지어드렸다. 어쩌면 재래식 부엌살림에 익숙하지 못한 아내를 배려한 조치였는지 모르겠다.
“당신 또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시골에만 오면 무슨 청승이야? 한밤중에 옥상에 올라와 별이랑 달이랑 놀고 나랑은 놀아주지도 않고, 부엌에서 울고 있는 바리데기 생각은 한 푼도 안 해주는 잔정 없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내가 옥상으로 올라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조잘거렸다.
“조용히 하세요. 마님, 아버지 할머니 깨십니다.”
“뭐 심각한 일 있어요? 나도 잠이 안 오더라. 당신이 옆에 없으니까.”
“그냥 아버지가 보도연맹에 대해 생각 좀 해 보라기에.”
아내는 손전화로 보도연맹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더니 그대로 읽었다.
“보도연맹의 정확한 이름은 국민 보도연맹이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후 격동기에 좌익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든 것이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은 자의도 있지만 타의에 의한 것도 많았다.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시국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입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렸다가 억울하게 즉결처분된 사람들도 많았다. 아이, 임신부, 노인, 모두가 대상이었다. 군인과 경찰은 군용 트럭에 그들을 싣고 와서 깊은 골 인적 없는 곳에 구덩이를 파게 해 놓고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이상입니다.”
지윤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 어깨 너머로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지리산둘레는 노인들의 입을 통해 안개처럼 무성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모두 쉬쉬하면서 입 열기를 두려워했다. 자칫 빨갱이로 몰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몰살당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골로 간다거나 물귀신 된다는 말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라는 일설이 있다. 전국 어느 곳이나 아픈 역사의 현장이 없는 곳이 없겠지만 지리산 둘레는 마지막 빨치산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어느 동네나 아픈 가족사가 있다. 연좌제에 걸려 자식들 앞길이 막힌 집이 한두 집이 아니다. 아버지도 피해자다. 거기에 구월구일은 특별한 날이다.
음력 구월구일은 양수가 겹친 기일이라 하여 중양절이라고 한다. 그 날 밤 싸릿골은 집집마다 제사가 있다. 산사람을 따라 갔거나 실종된 가족이지만 대 놓고 이름도 부를 수 없는, 침통한 기운이 마을의 공기조차 오염시키는 날이었다. 그 날만큼은 동네 아이들도 조용했다. 타작마당에 함께 모여 자치기도 할 수 없었고, 전쟁놀이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침통한 기운이 아이들에게도 전가되었다. 지윤도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날은 큰아버지 제삿날이다. 싸릿골 뒷산을 아홉산이라 부른다. 아홉산 너머 지리산 천왕봉이 빠끔히 내려다본다. 아홉산에서 흘러내리는 긴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를 싸리골짝이라 했다. 싸릿골은 골짜기가 깊고 물이 넉넉하다. 그 물 덕에 골짝 양 옆으로 손바닥만 한 다랑이가 줄지어 있었다. 골짝은 봄이면 하얀 싸리 꽃과 붉은 명자 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흰빛과 붉은 빛이 어찌나 탐스럽던지 황홀했다. 새하얀 꽃무더기가 골짝 양옆으로 무성하게 흘러내려 동네 옆의 논두렁까지 점령했다. 유난히도 탐스럽게 피었던 싸리꽃, 그 틈새에 핀 선홍색 명자꽃은 핏빛 같았다. 할머니는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혼백이 깃든 꽃, 저승꽃이라 했다. 싸릿골의 지명은 죽마을이다.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싸릿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 아마도 육이오 전쟁 이후라고 했다.
할머니는 어린 지윤에게 골짝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어울려 싸리꽃을 꺾어오거나 가재를 잡아오면 할머니께 혼이 났다. 가재는 도랑에 버리고 회초리 맛만 된통 봤다. 육이오 때 억울하게 죽은 육신을 먹고 자란 가재요. 그 영혼들이 구천을 헤매다 맺혀 피는 꽃이 싸리꽃이요. 저승사자가 깃든 꽃이 명자꽃이라 했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은 어린애를 좋아한다고 했다. 귀신에게 홀려버린 아이는 미쳐서 죽거나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지만 거긴 보물창고였다. 모래를 뒤적이면 탄피나 수류탄이 흔하게 나왔다. 엿을 바꿔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예닐곱 살 때였다. 그 날 지윤은 단짝 친구 석구를 따라 골짜기에 들어갔다. 석구와 지윤은 깡통에 녹쓴 탄피를 주워 담았다. 두 아이는 달달한 엿과 바꿔 먹을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우리 딱지 내기 하자. 이거 캐면 터질까? 안 터질까?’ 석구는 탄피 중 녹이 덜 쓴 것을 꺼내 들어보였다.
“안 돼. 우리 할매가 터지면 다친다고 했어. 하지 마. 고마 가자.”
말렸는데도 석구는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괜한타. 이건 터진 기다. 암시랑토 않다.”
석구는 납작한 돌 위에 탄피를 올리고 주먹만 한 돌을 들었다. ‘안돼 하지 마. 하지 마’ 지윤은 들컥 겁이 났다. 동네 쪽으로 달려갔다. ‘겁쟁이’ 석구의 목소리가 꽝! 폭발음에 묻혔다. 그 사고로 석구는 오른손 엄지와 금지 두 손가락을 잃었다. 석구가 가장 억울해 한 것은 현역으로 군대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윤이 군대에 가는 날도 제대를 하고 온 날도 석구는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결국 석구는 사십을 못 넘기고 죽었다. 군대 가기 싫어 온갖 방법을 연구하는 요즘 청년들이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슨 말을 할까.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지. 비관은 왜 하냐. 군대 가는 자식들이 어리석지.’라고 하지 않을까.
“당신은 작은방에서 혼자 자야 할 것 같아. 나는 할머니 옆에서 자고 싶어. 오늘밤만은. 그래도 될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러십시오. 할머님도 아버님도 혼잔데 어쩔 수 없지요. 귀한 당신은 할머니 차지.”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하늘 가운데 북두칠성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저 별들 중에 엄마별도 있겠지. 엄마의 제사 파짓날이 생일인 아내는 늘 엄마를 위해 손수 만든 음식을 생일날 아침에도 먹었다. 지윤이 끓여주는 미역국에 찰밥만 다를 뿐. 그것도 감지덕지하는 아내였다.
지윤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야야, 아침 묵자.’ 아버지의 목소리에 이어 ‘아이, 어쩜 좋아. 아버님 좀 깨워주시지 그러셨어요? 너무 해요.’ 아내의 애교스런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렸다. 지윤은 기지개를 켰다. 눈을 뜨자 지윤을 지긋이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의 눈과 딱 마주쳤다. 오도카니 앉은 할머니는 언제부터 지윤 옆에 있었을까. 지윤은 싱긋 웃었다. 밤새도록 잠 못 들어 뒤척였는데도 기분이 상쾌했다. 기지개를 쭉 펴고 할머니 손을 덥석 잡았다. 할머님이 웃었다. 소녀같다. 지윤의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리셨다.
“밥 묵자. 민이에미가 늦잠 잔 기 아니고 너거 애비가 새복 잠이 없니라. 애기는 집에 두고 너거 애비랑 오데 좀 댕기 온나. 길은 애비가 잘 안다.”
지윤은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아버지와 길을 나섰다. 아버지는 지윤에게 배낭을 내밀었다. 배낭은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묵직했다. 배낭 밖으로 쑥 나온 것은 두 개의 몽둥이는 낫자루 같았다. 승용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동네를 벗어나 들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 옆으로 크고 작은 다랑이의 흔적이 묵정이로 남아 있었다. 경지정리도 안 된 곳이었다. 묵정이가 된 다랑이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골짝 주변은 온통 대나무만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예전에는 싸릿대만 무성했던 곳인데 언제부터 대나무가 뿌리를 뻗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대나무 밭을 지나자 고향집이 아슴아슴 보였다. 어려서는 그렇게 넓고 깊게만 보이던 골짜기가 작은 실개천으로 변해 있었고 주변에 쌓였던 돌담도 어찌나 낮은지. 기어오르기도 힘들어 끙끙 대던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물소리가 제법 굵게 들렸다. 다랑이가 끝나고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에는 나무 서너 개를 묶어 걸쳐둔 다리가 나왔다. 낡아서 금세 부서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다리 앞에 서서 산능선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지윤도 아버지 곁에 다가가 아버지의 눈길을 따라 골짝 위를 바라봤다. 안개가 살짝 감산 산 중턱에 시커먼 너럭바위가 내려다 봤다.
“아하, 저기 기억나요. 폭포가 있었는데. 그 옆에 작은 암자도 있었고. 지금도 절이 있어요? 제가 예닐곱 살 때였든가. 친구들과 저 폭포에 갔었어요. 그 날 할머니께 매 타작 엄청 당했지요. 앞으로 또 거기 가면 할머니 얼굴 다시는 못 볼 줄 알라고. 한 주전자나 잡아온 가재를 몽땅 도랑에 갖다 부어버리시고.”
무섭게 화를 내던 할머니 얼굴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진작 없어졌지. 불이 났어. 원인도 모르고. 절을 지키던 노인은 불과 함께 탔지.”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유난히 희어보였다. 등도 구부정해졌다. 지윤은 가슴 깊은 곳에서 서글픔이 스물거리며 올라왔다. 울컥 토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아버지 좀 쉬었다 가시죠.”
“아니다. 이 다리만 건너면 앞이 확 뚫린 곳이 나온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나무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한참 올라갔다. 갑자기 시야가 훤해졌다. 능선에 오른 것이다. 싸릿골 반대편 능선 아래는 펑퍼짐한 언덕이 펼쳐졌고 산비탈 아래 풀이 무성하지만 둥그스름한 둔덕이 보였다. 무덤 같았다. 나직하지만 넓게 펼쳐진 무덤 예닐곱 기가 눈에 띄었다. 그 위에 커다란 상수리나무 몇 그루가 산을 등지고 우뚝 서 있었다. 상수리나무와 나무사이에 플래카드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언덕 아래를 살펴보자 이웃 동네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길이 쭉 뻗어보였다.
“가자.”
아버지는 능선을 따라 난 길을 버리고 플래카드가 붙은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아버지의 어깨가 더 쳐지고 굽어 보였다. 지윤도 서둘러 그 곳으로 갔다. 플래카드에는 <이곳은 싸릿골 양민학살 현장입니다.>적혀 있었다. 그 옆에 표지판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역사의 현장이었다. 신원조회 사건 이후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비극의 역사가 그 곳에 펼쳐져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이웃집 외팔이 아저씨는 ‘너거 학교 통시 칸에는 귀신이 나온다. 우리가 핵교 댕길 때는 운동장에서 빨갱이 새끼들 두개골에 새끼줄을 칭칭 감아 공으로 찼다.’며 껄껄 웃으셨다. 빨갱이들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그는 공비 토벌 작전 때 총을 맞아 한쪽 팔을 절단 했다고 들었다.
“저기 자리를 펴고 술 한 잔 쳐 놓고 절해라. 배낭 안에 다 있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은 봉문 형태를 겨우 갖춘 무덤 앞이었다. 지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배낭 안에 네모반듯하게 접은 비닐을 꺼내 자리에 깔고 일회용 접시에 막걸리와 육포와 마른 오징어, 사과 한 알을 차렸다. 아버지와 같이 절을 했다. 두 번의 절이 끝나도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통곡이 아버지의 가슴에서부터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지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버지 옆에 멍청히 서 있었다. 아버지는 실컷 오열을 쏟아 부은 후에 일어나 막걸리를 무덤 여기저기에 부은 후 주섬주섬 자리를 걷었다.
“저기 상수리나무 밑으로 가자.”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몇 개의 납작한 돌이 놓여 있었다. 지윤과 아버지는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봉문 같지도 않은 묏등이 발아래 펼쳐졌다. 아버지는 지윤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지윤은 막걸리를 쭉 마시고 빈 잔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술잔을 비우고도 도통 말을 안했다. 누가 저 봉문에 묻혔는지. 알 길이 없다. 아버지 앞에 벌 서는 아이처럼 조용히 앞만 바라봤다. 멀리 싸릿골 들입의 느티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볼이 서늘하다.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언제부터 지윤을 바라보고 계셨는지 불그레한 눈에 슬픔을 가득 담고 지윤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저기 예닐곱 개의 무덤은 공동 무덤이다. 7백여 명의 민간인이 군인과 경찰의 손에 학살당해 합동으로 묻힌 장소다. 아이와 임신부와 아녀자와 노인들이었다고 한다. 이젠 너도 알아야지. 나의 내력을 들려주마. 이거는 집에 계신 할머님이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다. 할머니는 나를 가슴으로 낳아 키운 어른이다. 나는 저기 골짝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목숨이다. 너거 친할머니가 묻혀 계신다. 친아버지도 묻혀 있을지 모르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 와서 어떻게 총살당했는지. 68년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비극이다. 너도 알다시피 육이오 사변은 동족간의 상잔이었다. 그러니까 1951년 3월경이었다지. 어떤 이는 2월이었다고도 하더라. 민간인 인솔 장교는 경남지구대 계엄사령관이었다 하더라.”
“경아 백부님이요?”
그 날 오후 두 시경이었다. 빗방울도 굵었고 눈발조차 흩뿌렸다. 좁고 미끄러운 벼랑길을 따라 싸릿골로 들어서는 차량이 있었다. 한 대의 장갑차가 앞장서고 그 뒤로 민간인을 싫은 버스와 군인이 타고 있는 트럭 행렬이 이어졌다. 버스가 열 몇 대였다. 싸릿골 면소재지 사람들은 누구나 바짝 긴장해서 숨기 바빴다. 숨어서 그들을 주시했다. 군인과 경찰은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면 소재지에 차를 세우고 버스에 탄 사람들을 내리게 했다. 담요, 식기, 냄비등, 살세간살이가 든 보퉁이를 든 사람들, 아이를 등에 업은 여자와 남자들, 임신부,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군인들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긴 행렬은 싸릿골로 향했다. 진눈개비는 더욱 세차게 뿌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눈비를 그대로 맞으며 오돌오돌 떨면서 걸었다. 그들은 싸릿골을 지나서 산골짜기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관단총이 거침없이 불을 뿜었다. 총소리가 멎고 군인들이 떠난 후 마을 이장은 장골과 아녀자들을 인솔하여 산골짜기에 들어갔다. 골짝은 이미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붉디붉은 핏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남자들은 서둘러 등선 아래 구덩이를 팠다. 그 사이 여자들은 골짝에 뒤죽박죽 된 시체를 꺼냈다.
그때 할머니는 가녀린 숨소리를 들었다. 한 여자의 가슴에 안겨있는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갓난아이는 울지도 못했다. 누가 볼세라 잽싸게 치마폭에 쌌다. 할머니는 소피 보고 오겠다며 절간으로 뛰어갔다. ‘아가, 절대로 울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부처님이 지켜 주실 거다.’ 할머니는 아이를 방석에 싸서 부처님이 앉아계신 법당 좌대 밑의 공간에 밀어 넣었다. 좌대를 싸고 있던 붉은 휘장이 가만가만 아이를 닦아 주었다. 할머니는 시침 뚝 떼고 참척의 현장으로 돌아와 동네 사람들과 시체를 거두어 묻어 주었다. 그 일이 끝났을 때 싸릿골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사방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 날 밤 할머니는 아이의 생사가 걱정되어 안절부절 못했다. 그 아이를 부처님이 살려주신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도 혹여 누군가 알고 고자질이라도 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그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어떻게 가나. 온갖 궁리를 하던 차,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사람은 아들이었다. 지리산 인근 마을은 어디나 사람 살 곳이 못 됐다. 밤에는 빨치산이 낮에는 경찰과 군인이 사람들을 잡도리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에 좌익운동을 하던 아들, 지리산 빨치산 부대에 들어간다며 사라졌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온 것이다. 산에 간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야밤에 여자 혼자 그 무서운 현장 옆으로 갈 엄두가 안나 발을 동동 구를 때였으니 ‘부처님이 도우신 거라.’ 할머니는 큰아버지를 앞세우고 절간으로 찾아갔다. 스님도 탁발을 가셨는지 절간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피투성이 아이는 곱게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상처 하나 없었다.
할머니는 갓난쟁이를 숨겨 키우다가 업둥이를 얻었다고 소문을 냈다. 아침에 삽짝에 나가니 누가 강보에 싸서 버렸더라고. 할머니는 그 아이를 남편의 호적에 올렸다. 그 날 밤 아버지를 구한 큰아버지는 육이오 사변이 일어나자 빨치산 부대를 따라 떠난 후 실종 처리 되었다. 할머니에게 아버지는 금지옥엽이었다.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태어난 나 역시 외동아들로 그쳤지만 내 핏줄의 윗대는 영원히 그 공동무덤 속 누군가였다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후손들, 멸족된 집안도 있다고 들었다. 할머니는 내게 핏줄 이상이다. 할머니는 내게 생명과 새 족보를 주신 어른이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주었고 너를 세상에 있게 해 준 어른이다. 다음 대에서도 네 자식에게 이것만은 알려줄 수 있길 바란다. 내게 살과 피를 주신 친부모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살아있다. 그들은 모두 민족상잔의 비극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나도 그 중 하나다. 내 아들인 너에게 알려주는 것도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생각한다. 굳이 이런 사실을 알려 너를 힘들게 할 필요 있겠나 싶었지만 할머니의 말씀은 달랐다. 핏줄의 내력은 바꿀 수 없다고 하시더라. 경아 역시 무슨 죄가 있겠냐 하시며 손부로 맞아들이신 어른이다.”
지윤은 말없이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다.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들썩했다.
그날 밤 할머니는 지윤과 경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운명하셨다. 할머니는 당신이 할 일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떠나셨다. 참 고운 죽음이었다. 아버지는 한 손에는 지윤의 손을 한 손에는 경아의 손을 잡아 할머니의 가슴에 얹었다. 핏줄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를 완성한다.
<2019. 9. 경남작가 사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