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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주님 안에 내가 있는 것이다.라는 인식의 변화는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향하는 꿈을 꾸게 합니다. 그 꿈은 분명 주님께 기도하는 꿈일 것이다. 기도는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성스러운 행위다. 그리고 순례는 익숙한 본향을 찾아가는 길이라 한다면 걸음 여행은 낯선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자유로움이다. 위와 같은 본향과 낮설은 즐거움을 모아 5월 순례와 걸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월은 보석처럼 찬란한 달이죠. 그 안에는 성모님이 계십니다. 성모님에게 드릴 화환을 가슴에 담고 형제적 친교를 도모하면서 순교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증거 한 순교 형장 황새바위을 찾았습니다., 이곳에 사는 하느님의 제민들은 공주 이곳이 바로 한국 천주교의 심장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십니다. 편견없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안으려 하시는 모습은 가득한 그리스도의 상이 보이는 계단에 모두 앉았습니다. 만국기는 펄럭이고, 왜 하필 만국기가 성지 입구에 나란한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금새 스스로 답을 얻습니다. 만국기의 면면을 보니 전교가 필요한 국가가 대부분, 아마 심장이란 자부심으로 전교의 목표를 세운 나라라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동방의 작은나라, 고요한 아침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뜻을 지고지순하게 펼쳐듯이 그렇게 하겠다는 무언의 메세지지가 아닌가합니다. 공주에서 있었던 순교사를 달레신부님은(Dallet, cc) 한국 천주교사를 엮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 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 아시니라-
7시 30분 반포를 출발한 순례자들은 10시 무렵 황새바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금강 지류인 제민천을 앞에 두고 공산성을 마주한 황새바위 성지는 오뚝한 산세를 지니고 있는 산입니다. 그 산에 황새가 많이 살았다는 설과 천주학쟁이를 옭았던 항쇄를 뜻하여 항쇄 바위라는 설이 난무하였지만 여러 고증을 살펴 황새바위라 결정하게 됩니다. 황새바위, 단어를 풀어보면 황새가 앉아 있는 바위가 금세 연상됩니다. 황새가 서식하려면 먹잇감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숲과 소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민화에도 많이 등장한 소나무 위 둥지는 황새의 둥지입니다. 둥지 위로 커다란 보름달 두둥실 떠 있어 더욱더 멋진 민화였던 것과 달리 그렇게 흔했던 황새도 남획과 생태환경의 변화로 자취를 감춰졌습니다. 황새바위를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린 새로 참여하신 형제를 소개하고 성지에서 일정, 걸음 여행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이어서 기도를 드렸고 정체의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성가도 부르며 남도 삼백 리 길을 따라 내려 갔습니다.
10시 즈음 도착한 순례자들을 반겨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주 재속프란치스칸 부부였습니다. 반가움을 표시하시며 친절한 음성으로 격려와 반가움을 표현해 주셨다. 손을 들어 답례 후 계단에 앉아 단체사진을 찍은 후 예수님 앞으로 몰려가 기도를 드리므로서 성지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민천 건너 옛 감영 옥사를 보시는 것 같아 마음이 일순간 짠해졌였다. 전국에서 잡혀온 사람들은 바로 천주학쟁이, . 옥사에 같혀 문초를 받다 죽어간 사람도 있었지만 갖은 형벌을 받으며 심문끝에 처형이 결정된 사람들은 징검다리 건너 황새바위 언덕으로 끌려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퍼런 망나니칼을 맞고 순교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죽는 순간에도 하느님의 영광 안에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하여 수많은 백성들은 황새바위 건너 제민천 뚝과 건너 산으로 몰려 들었다합니다.
순교자 광장으로 들어가려면 석문을 통과해야 합니다.석문의 높이는 아주 낮고 좁았습니다. 허리를 꺽어야 입문이 가능한 석문, 일순간 순례자의 마음을 진정한 겸손으로 이끕니다. 겸손되이 참례해야 할 공간에는 세개의 조형물이 순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사도를 뜻한다는 12개의 빛돌과 망나니 칼 두개을 엇비슷하게 세워 놓은 수교탑, 그리고 순교자의 부활을 의미하는 무덤과 공주에서 순교한 337위 순교자 명단을 새겨 놓은 무덤경당, 경당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가는 길고 좁은 통로는 주님에게 가는 강렬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14처 끝지점엔 야외 성전이 있습니다. 그 광장으로 가는 길목 나무 그루터기에 전국 평신도들 집에서 보내 온 십자가들이 몰려 있습니다. 기도문과 함께 십자가를 봉헌함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선서하는 의미라할까? 그 자체만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야외성전 제대는 황새바위 형상의 커다란 돌로 만들어 졌으며 독서대 또한 돌을 깍아 만들고 사제들의 착좌석도 돌로서.... 그리고 이곳 또한 열 두개의 빛돌로 제대 배경을 꾸몄는데 기 이면에는 이곳에소 순교하신 337위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여사울과 신리를 다녀 온 관계로 이존창 루도비꼬와 손자선 토마스 순교 성인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곳이 바로 순교 현양탑, 쌍칼 사이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보였습니다.
미사참례 후 다시 성지 곳곳을 순례하기로 한 후 성전에 입당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순교성지 공주 황새바위 약사를 성지측에서는 아래와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이조시대 공주는 충청도를 관활하는 충청감사와 감영이 있었다. 그런 연고로 전국 각지에서 천주학쟁이들이 잡혀 왔다. 잡혀온 이들은 감사의 영에 의하여 황새바위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곤 하였는데 맞은편 산위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풍을 이루며 구경을 하였다. 처형된 순교자들의 목은 백성들에게 천주교를 믿지 말라는 경계의 표시로 나무 위에 목을 메달아 놓았으며, 시신은 일반 범죄자들과 섞어 제민천에 버려 금강을 붉은 피로 물들게 하였다. 순교자들은 참수, 교수, 옥사, 아사 등의 방법으로 처형하였다. 교회사가 달레 신부는 공주감영 교수형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 옥의 벽에는 위에서부터 한 자 높이 되는 곳에 구멍이 뚫여 있었는데 밧줄을 죄수의 목에 씌우고 벽의 구멍으로 내려 보낸 후 옥 안에서의 신호에 따라 밖에 있던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힘껏 잡아 당겨 죽인 후 밭에 버렸다. - 공주에서는 병인박해 당시와 다음해에 가장 많은 교우들이 희생되었으며 처형된 순교자들은 내포으 사도 여사울 출신 이존창 루도비꼬와 10여명의 회장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황새바위 최상순 비오 주임신부님께서는 순례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강론을 나눔해 주셨습니다. 순교자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순교자를 통하여 나를 위한 기도를 드려 달라 청하며 내 스스로 하느님께 다가가야 한다.
퇴장성가 285장 사인보드가 켜져있어 나는 할 수 없이 샷다를 누르며 103위 순교성인 성가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샷다를 누르며 개인적으로 삼절의 내용을 제일 좋아 한다. 여기에 옮겨 놓으면 다음과 같다.
생명의 빛을 받아 새로난 겨레 일치의 성령안에 함께 모여서 복되신 마리아의 삶을 따르니 복음을 살아 가는 증인이어라
만백성 찬양하라 사랑의 승리 기쁨을 이 땅위에 빛나시는 하느님의 이름
순례자의 언덕을 뜻하는 몽마르트 언덕 테라스 식탁에 모여 총무님께서 주문하신 찰밥과 소찬을 점심으로 함께 나눠습니다. 5월의 소슬바람과 제민천 넘어로 보이는 공산성의 녹음이 취하도록 아름다운 가운데 점심 또한 꿀맛이었습니다. 배식 봉사로 점심을 이끌어 주신 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일회용 용기를 6월부터는 몰아 내기로 하였다. 각자, 식판과 수저를 준비해야 한다. 잊지 마시고 6월에는 식판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조적 질서를 보존하려면은 소비재를 줄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가난의 영성 깨달음을 통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실천을 주문합니다. 도와주셔요~~~
점심 후 5월 유기서약을 받으신 김정자 안젤라, 정경숙 실비아 자매님의 축하연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형제로를 데레사 자매님의 하모니카반주에 맞춰 부르며 축하 해 드렸습니다.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고 글라라처럼 열혈한 모습을 꼭 보여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다시 한번 더~~ 축하드려요. 축하~~~ 샬롬. 이향임 자매님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냥 축하드려~~~유
다시 성지로 올라 가 무덤경당에 모였다. 그리고 로비로 들어가 잠시 머물며 순교자들을 위한 장문의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아 조선의 순교 선조들이시여~~
둥둥둥 둥둥둥 두 두웅 둥....
금강물 굽이 도는 제민천 모래사장
북소리 강바람에 울려 퍼질 때
그 북소리 천상에도 울렸다.
하늘이 열리고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성모님과 함께 모든 성인들과
천상의 만군을 거느리시고
크오신 기쁨속에 마중하셨습니다.
이는 오로지 창조주를 향한
온전한 향주 삼덕만이 이를 수
있는 기적이요
천주께서도 크게 기뻐하시는 기적이라
천상에 세워진 순교의 기념비와
임들께서 쓰신 월계관은
영원토록 빛나리다.
동방의 꽃 백의 민족 고요한 아침의 나라
삼천리 방방곡곡에 순교의 피, 땀과 눈물
아니 흘린곳 없으니 일만이련가!
이만이련가, 삼만이련가, 기록조차 없으니
그것이 무슨 대수리요
그날이 오면 그때가 오면 아름답게 피어난
무궁화 곷들을 삼라만상이
똑똑하게 보게될 것이다.
신앙의 새싹이 움트자마자 시작된
그처절하고 참혹한 박해로
끊임없이 이어진 임들의 순교사를 되새기다
목이메고 눈물이 앞을 가려
중단한지 몇번이던가!
하오나 그 시련이 제 아무리 크다한들 잠시요
받으시는 천상 영광은 끝없이 무궁하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나이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하신 길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길
그 참혹하고 처절한 사랑의 길
그토록 용감하게 따르신 임들이시여!
참으로 자랑스런 조선의 순교 선조들이여
당신들께서는 모든 것을 팔아 복음속에
진주를 얻으셨으니 참으로 지혜로우셨습니다.
화무십일홍이오, 권불십년이라 하였으니
새상의 부귀, 영화, 명예, 권력, 쾌락이
제 마무리 크고 화려하다 자랑한들
잠시 후면 안개처럼 사라지는 허무요
그 천상의 진주는 영원토록
찬란하게 빛나리이다.
임들은 이젠 천상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서 하늘의 부모님과 모든 성인들
첨사들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무한무궁토록 누리고 계시오니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저희 후손들을 위하여
천주께서 전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나이다.
저희들도 자랑스런 임들의 후손답게 살다가
잠시 후 임들과 해후하여 함께 영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이 모든 일을 오묘한 신비속에 이루시는
사랑과 자비, 은총의 천주께서는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세세에 받으옵소서
아멘~
최상순 비오 주임신부님과 함께 기념촬영~~
걸음여행,이야기
걸음여행 시작점을 공산성으로 잡았다. 성지와 가깝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실은 걸어서 공산성을 찾은 후 무령왕릉과 박물관 견학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낮의 해볕은 복병이었습니다. 이동하기로 하고 공산성-무령왕릉_ 시간상 박물관은 생략한 후 차량으로 부소산성으로 가 - 산성 안의 숲 길을 걸어 사자루, 고란사, 낙화암을 탐방하였습니다.
공산성
사적 제12호. 둘레 2,200m. 웅진성(熊津城)·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금강에 접한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형(包谷型) 산성이다. 475년 백제 문주왕이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사비(泗沘:지금의 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축성시기는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성의 구조는 석축 약 1,810m, 토축 약 390m이다. 석축산성은 안팎으로 돌을 쌓는 협축방식(夾築方式)을 이용했으며, 내탁외축(內托外築)을 한 부분도 있다. 상단의 너비는 약 70cm 정도이고, 안쪽에는 백회를 발라서 성벽의 석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토축산성은 돌을 혼합하여 쌓았는데 대개 높이 1m, 바닥너비 8.5m, 윗면너비 3m 정도이다. 성내에는 깊이 2m 정도의 호(壕)가 형성되어 있다. 서쪽 성벽은 토축된 위에 돌을 쌓아 축조했다. 성에는 진남루(鎭南樓:南門)·공북루(拱北樓:北門)와 암문(暗門)·치성(雉城)·고대(高臺)·장대(將臺)·수구문(水口門) 등의 방어시설이 있으며, 동문과 서문의 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영은사(靈隱寺)·광복루(光復樓)·쌍수정(雙樹亭)·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쌍수산정주필사적비(雙樹山亭駐驆事蹟碑)와 주초석·창고터·연못터 등이 남아 있고, 만하루지(挽河樓址)·임류각지(臨流閣址)·장대지 등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동쪽과 서쪽에는 보조산성이 있어 공산성을 보호하고 있다. 공산성은 백제멸망 뒤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며, 1623년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했던 일화도 있다. 그 때 먹을거리가 마당치 않았는데 촌부께서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 진상하여 도토리묵이 세상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마련되어 지금도 막걸리의 좋은 안주로 자리를 메김하고 있다.
금서루(錦西樓)로 가기 위하여는 비석거리를 지나서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 언덕길의 형태는 갈지(之)자 모습을 하고 있다. 성문으로 오르는 동선을 그만큼 멀게 하여 . 적군이 지체를 유도한 것이다. 적군을 섬멸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곳이다. 이렇게 용의주도한 대비도 백제의 마지막에선 의미가 없었다. 비석을 보면서 비문을 살피자 관직명, 관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차처럼 늘어진 연지로 가기전의 성곽 모습은 성곽으로만 보이지 않고 백제인들의 숨결로 느껴졌다. 그래서 걸음여행자 등을 돌려 세웠다.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을 흉내 내어 표현하면 보니 보기가 좋았다.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정겹다.
우리나라 특유의 지리적 배경은 동고서저형, 즉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다. 그래서 물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른다. 서쪽에서 비단띄를 두른 것처럼 흐르는 물이 바로 금강이다. 그 지류인 백성을 껴안고 흐르는 제민천 넘어 황새바위 성지가 공산성곽 위에서 아련하게 보인다.그리고 최후를 맞이한 백제의 의자왕도 당나라 장수 소정방도 떠오르고 신라의 장수들도 느껴지고 황산벌에서 최후를 맞이한 계백장군 그리고 그리고 황새가 소나무에 둥지를 틀듯 차령산맥 따라 교우촌의 둥지를 틀고 숨어 있다 잡혀 온 하느님의 백성 순교자들의 신음소리도 강바람에 일렁거리는 파문 곳곳에서 묻어 났다. 나는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유심히 보며 그들이 죽어가며 외우던 예수, 마라아를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 강물에 실리는 예수 마리아 모습을 숨죽이고 보고 있었다. 샬롬. 알렐루야!
송산리 고분과 무령왕릉
부소산성
부소라는 뜻은 소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부소산은 백마강을 끼고 있는 산으로서 높이는 해발 106m다. 부소산성은 돌로 기초를 쌓고 석축을 올린 후 겉은 흙을 다져 만든 성이다. 총 길이는 2,5km로서 사비성의 외곽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나성과 동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될 만큼 소나무가 아름답고 왕벚꽃, 상수리, 갈참, 단풍나무 등등 울창한 멋진 숲을 조성하고 있다.
산성내에는 삼층사, 영일루,군장터, 수혈주거지, 부여동헌, 부여객사, 반월루, 태자골숲길, 서복사터, 궁녀사, 사자루, 고란사, 낙화암이 있다. 걸음여행으로 공산성을 걷고 다시 송산리 고분군을 본 후 부소산성까지 온 걸음여행단은
태자골 숲길을 걸어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겼다. 낙화암으로 가는 숲 길은 고즈넉하였다.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쓰러진 백제, 부소산성까지 쫓긴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낙화암에서 3000천 궁녀가 떨어지는 꽃처럼 백마강 강물로 떨어졌다는 전설이 서린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면 백제 멸망에 대하여 애상으로 시름에 잠시 잠겼었다.
사자하(四泚河)·백강(白江)·마강(馬江)이라고도 한다. 그 범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청양군 장평면과 부여군 규암면 경계를 따라 흐르는 금강천(錦江川)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부터 부여군 석성면 위쪽까지를 백마강이라 부른다. 부소산(扶蘇山)을 끼고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심하게 곡류하는 사행하천이다. 부소산의 북쪽 사면을 침식하여 절벽을 이루고 부여읍 남부 일대에 넓은 퇴적사면을 발달시켰다.공격사면인 부소산에는 낙화암이라 하는 높이 약 10m 가량의 침식애(浸蝕崖)가 있으며, 낙화암 상류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강 가운데 조룡대(釣龍臺)라 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적을 쫓아 금강을 건너려 할 때 강물 속에 교룡(蛟龍)이 방해하므로 교룡이 좋아하는 흰 말을 미끼로 조룡대 바위 위에서 잡아올렸다고 하여 강 이름을 백마강, 낚시했던 바위를 조룡대라 했다고 한다. 663년(문무왕 3)에 백제와 나당연합군과 일본의 수군이 격전을 벌였던 백촌강(白村江)의 싸움터가 백마강이라는 설도 있다.
데레사 자매님께서 백마강이란 가요을 선곡한 후 구성지게 불어주어 나의 마음에 깊은 시름이 모이게 하였다. 패주인 의자왕은 실제로 효성이 지극한 명석한 군주였지만 승리자들은 그를 다른 각도로 새롭게 조명하였다.그것은 바로 패주가 겪는 모함이었다.
고란사까지 들러 본 걸음여행자들은 잠시 숲에 앉아 쉬어 가기로 하였다. 쉬는 시간 하모니카 연주로 심신의 여독을 씻어 준 이는 바로 데레사 총무님이다. 백제의 페망으로 나라를 잃은 백제인들을 위로하는 듯, 음악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부소산성 숲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 멈춰던 걸음을 다시 건각을 세우고 부소산성을 빠져 나갔다. 역광과 사광으로 교차하면서 숲은 일몰의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맨 후미에서 6명만 동행하여 서문으로 나왔다. 식당을 찾기 위함이었다. 저녁을 나눔할 수 있는 좋은식탁을 찾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자리 앉아 보니 석식의 만찬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었다. 대충 음식종류를 가늠해 보니 석식으로 손색이 없는 메뉴다.
난 그제서야 정문에 있는 팀에게 연락한 후 인원을 파악하고 식당으로 초대하여 모두 모였다. 간략하게 순례와 걸음여행에 대하여 정리한 후 식사를 나눔하였다.
산체비빔밥, 콩국수, 칼국수, 등등 시킨 후... 하느님 맘마 땡큐~~ 하면서 냠냠 후르룩 ...
하루의 해가 저물어 갔습니다. 백마강 건너 숲으로 지는 해를 보면서 귀경을 서둘러야 하였습니다. 부소산성도 어둥움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6월에도 다시 공주로 와야 한다. 한국 최초로 성모님과 관련된 회합을 갖은 곳이 바로 수리치골 성지다. 그곳을 지금은 미리내 성모신심 수도본회가 있고 성지로도 개발되어 있어 6월에 찾을 계획이다. 그 계획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서울까지 왔다. 서울 도착 시간은 10시30분, 큰 정체가 없었던 덕분이었다. 동행한 순례단 형제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언제나 평화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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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모성월 5월도
중반을 넘은듯
어젠 출발시점부터 좋은 느낌이....
울 리더님의 명강의^^
스승님을 위한 작은 이벤트까지~
찬란한 햇살을 맞으며 도착한
순교의성지 황새바위~
신부님의 강론....
미사시간 내내 감사의
기도가...
아름다운 숲속의 향기와
낙화암!! 악단장님의
하모니카 연주,
5월의 걸음여행은 감사의 마음뿐~♡
서약식을 축하해주신 울 리더님과 총무님.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 감사 드립니다.
알렐루야~~ 아 알 렐 루야~~ 추카추카 드립니다. 샬롬도 샬롬도 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금 생각을 정리할 수있도록 자세히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저의 시원찮은 다리때문에 모두에게 불편을 드린 건 아닌지...걱정됩니다~
집에 와서 앓을 걸 각오하고 왔는데..너무 멀쩡해요~ 나았나 봐요~
성모님~감사 기도가 절로...
서약식 하신 자매님들 축하드립니다~
모든 자매님들..형제님도..또 뵙기를 희망합니다~
샬롬으로 우선 인사를 드린 후, 불편한 걸음이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였는데 그건 기우, 잘 걸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완쾌를..
항상 오셔서 형제적 친교를 나눔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아름답고 성모님 은총이 가득한 오월...
가족에 소중함과 스승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깊이 생각해 보라는 의미의
오월 이기도 하다 ....
한결같이 성지걸음 팀을 이끌어 주시는 세베리노 형제님께..감사에 마음을 전합니다..
화창한 날에 순교성지를 통해 부활에 의미를 깨닭게 해주는 행복한 하루
.함께한 걸음팀 감사하고 유기서약하신 아네스형님 실비아님 향임 세실리아 축하 합니다......
...
이제서야 답글을~~ 죄송 순례 멋진 하루하루 되셔요....
오월 성지순례도 알찼고 신부님 강론도 좋았슈~~~
이런 저런 일로 참석 못하신 분들은 이 글과 사진 만 봐도
다녀 온것보다 훨씬 감동 받을것 같네유~~~
최 비오 신부님 버젼이었슈
그러셨시유~~ 괜찮았던 순례지유~~ 글고 걸음도 좋아지유~~ 고생했시유... 하하하 유쾌합니다.
후기를 읽고 있노라면 입가엔 절로 미소가 번져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걸음걸음 행복이 묻어나는 걸음여행입니다
잔잔한 미소를 더 많이 만들어 드려야 할덴데.... 기다려 보셔요.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