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후 감
"늪 텃 집 처 녀" 를 읽 고
(18기 수의학과 김 정 복)
이 책의 작가 셀마 라게를뢰프는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들고 나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생을 탄 작가이다.
1858년 스웨덴에서 출생, 부농의 딸로 태어나 순박한 농촌의 공기 속에서 자랐다. 그녀의 작품 대개가 그렇듯이 "늪텃집 처녀" 라는 이 작품도 전설과 토속적인 정취로 가득한 향토 문학이라 할 수 있겠다.
아름답고 소박한 자연과 인정을 배경으로 낭만적이며 달콤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한 인물들을 부각시켜,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작가의 따스한 정애를 심어 나갔다. 이리하여 작가는 자연주의를 극복하고 시대가 안고 있던 음울한 시대적 고민을 해소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헤르가]와 [구드문트]의 티없는 사랑, 특히 [헤르가]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순애보라 하겠다. 신을 믿고 자연을 사랑하는 독실한 농사꾼의 생활, 거기에서 펼쳐지는 격조 높은 사랑, 그것이 한 외로운 처녀 [헤르가]의 마음씨를 통해 구현되었다.
자기를 짓밟아 사생아를 낳게 한 기혼 남자를 법정에서 용서해 주는 처녀, 자기의 위기에서 도움을 주었던 청년 [구드문트]에 대한 티없는 헌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위에 빛을 던져 주게 된 것이다.
이 여류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독특한 필치와 따뜻한 인간애로써 승화시켜 문학 작품으로 그결실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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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기 문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22기 농생물학과 정 현 희)
- 10월 초순에 -
무너지는 城을 쌓기 위해 존재해 줄 작은 부스러기 같은 날들, 힘써 흔적을 남기자. 아쉽고 그리운 순간이었다. 말하진 말자. 많이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말하리라.
선택 당하는 쪽에 서지는 말자.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한 묶음의 날들을 살자.
모질지 못한 손으로 책장을 넘긴다. 보내고 맞은 날들의 텅빈 공간..... . 목적있는 출발은 을씨년 스럽지 않다. 작고 적은 걸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계단을 오르자. 목적이 있다 함은 자신에 책임을 주어야 한다. 자만일지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
여유! 나를 향해 돌아 앉아다오.
- 10월 중순 경에 -
벌써 토담 밑에서 계절이 허물을 벗어 내리고 있다. 느껴줄 사이도 없이 가을은 이만큼 다가왔다. 이 계절의 풍요로움을 맛보자. 긴 남국의 정열로 덜 익은 포도주에 맛을 들이자. 알차고 단단한 과실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유리창 밖으로 시럽던 하늘, 붉게 물들었던 낙조,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하루에 한 번 뿐이기에 그렇다 했던가?
각박해진 현실에 느껴 온 부담, 우울해진 하늘 모퉁이 끝....... 겉터 앉은 어둠에 두께 만큼이나 마음도 무겁다. 지나간 날들의 초라함. 어드메쯤 밤은 끝나는 것일까?
이 가을에는 코스모스라도 사랑하고 싶은데 ......
- 10월 하순에 -
我의 확인을 위해 써 왔던 글들, 한 번도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써 보지 못했구나. 비가 오더니 바람이 일고, 뜨락에 부서지는 외인촌 시계탑의 자명종 소리 행길로 쏟아진 간절함. 오랜만에 두 손을 잡고 성모 앞에 기도한다.
'" 성모 마리아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 날들이 되게 하소서.
저에게 보여 준 많은 이들의 기대만큼 절실하고 진실하게 노력할 신념을 갖게 하소서. "
이 밤에는 부치지 않을 편지라도 쓰자. 황 동규님의 시집을 꺼내놓고 만지작거리다가 접어 버린다. 자꾸만 자꾸만 불편해 진다.
이 계절은 진실되고 성스럽게 보내고 싶어 작은 코스모스 하나 입안에 삼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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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간 문
가 을 을 느 낄 때
(17기 축산학과 김 갑 주)
Y!
노랗게 물든 은행잎, 해가 떨어질 무렵 길게 늘어뜨린 만추의 그림자가 싸늘함을 심어 준다. 조용히 달리는 초침에 어느덧 가을은 익을대로 익어 버렸고, 오색의 조화 속에 시들어 가는 낙엽들은 차갑게 깔리는 햇살에 더욱 초라해 보인다.
계절을 타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의미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혼자라는 것을 느껴야 하고, 어떤 이상 속에 남아 있는 추억을 동경하는 지도 모른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노랗게 물들어 버린 은행잎은 시간의 아픔을 가득 담고 땅바닥에 잠들기 시작했고,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어느 길 모퉁이를 차지해 버린다.
긴 긴 인생의 여로, 이제와서 이렇게 자신을 찾았을 땐 마지막 빛을 발하는 햇살이 허탈감과 미련 속에 커져 가는 고독을 느끼게 한다.
Y야,
이렇게 깊어가는 가을을 어떻게 생각하니? 국화 향기가 코 밑에 스미고, 또 먼 산엔 오색으로 물들여진 신의 조화를 말이야. 정말 아름답고 자신도 모르게 시인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미로의 연인을 생각하며 열심히 종이 위에 자신을 그려 가는지도....
그렇지만 난 이 가을이 아주 얄밉게 느껴진단다. 꼭 어느 한 쪽을 잃어버린것 처럼 허전하기만 하고,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내 영상 속에 담아 놓고 못내 아쉬워 한단다. 가을을 느끼면서부터 내게는 추억으로 밖에 그릴 수 없는 허탈감에 빠져 버렸단다.
한때는 이상 속에 커져가는 자신을 생각하고, 내 주의의 모든 것을 내가 그린 원 속에 집어 넣고 마치 내 것처럼,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었지.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허황됨을 생각하고 쓰디쓴 웃음만 입가에 담을 뿐이란다.
Y야!
사람이 살아 가면서 이런 저런 여러가지 판단을 하게되지, 그렇지만 이번에 새삼스럽게 느낀것은 성급한 판단은 반드시 실수가 따른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했던 경솔함을 생각하면 끝없는 아쉬움만 따를 뿐이야. 뭐든지 처음과 끝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까지도 망각해 버린 바보였나 봐.
Y야.
이제는 앞으로가 내게 있어서 중요할 뿐이란다.
내 인생의 시작은 부모님이 주신 것이고, 지금까지의 결과야 어쨌든 지난 과거에 얽매인 바보스런 삶은 싫단다. 현실, 그리고 미래가 내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란다. 마라톤 선수가 노상을 질주할때 , 중간이야 어쨌든 골인점에 먼저 발을 내딛는 자에게 금메달이 주어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stamina를 조절하여 꼴인 점을 향해 뛰는 거라고 생각된다. 인생을 마라톤 경기로 볼 때, 대학시절은 인생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 가려는 순간인 듯 싶다. 멋진 인생 보람된 삶을 위해서는 stamina를 안배, 즉 열심히 공부하고 이것 저것을 배워 가며 견문을 넓히는거라고 생각한단다.
Y야,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또 나이를 먹다 보면, 찾고 바라던 이상향이 자꾸 변해 가는 느낌이 든단다. 어쩔 수 없이 변해 가는 거라고 변명도 하지만, 거기엔 부정적인 면이 커져 가더구나. 그래서인지 자고 일어나면 변하고, 변하는 현실에 자꾸 싫증을 느껴 버린단다.
Y야,
나는 어쩌면 어리석은 바보였나 보구나. 너무나 단순한 데서 미를 찾았고 가식 없는 순수미를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거니까 계속 나는 바보일 수 밖에 없겠지?,,,,,,,,
하루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어떤 면에서는 부정하고 싶고, 아니 그냥 의미 없는 변화보다 많은 여운을 남긴 변화가 좋을 듯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