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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형 : 사립박물관
전 화 : 043-544-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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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충북 보은군 수한면 동정리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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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림(碑林)이란? ☞ 역사(歷史), 문학(文學), 종교(宗敎), 회화(繪畵), 조각(彫刻), 서예(書藝) 등 역사상(歷史上) 위대偉大)한 인물(人物)의 업적(業績)을 비석(碑石)에 각인(刻印) 영구(永久)히 보존(保存) 하여 문화유산(文化遺産)을 계승(繼承) 하며 고귀(高貴)한 정신(情神)을 숭상(崇尙)하고 민족문화(民族文化)가 발동(發動)하는 정신문화(精神文化)의 교육도장(敎育道場)을 조성(造成)함으로서 국민(國民)의 모든 얼과 힘을 결집(結集) 하고 국가(國家)의 번영(繁榮)과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함과 동시에 민족문화(民族文化)를 보급개발(普及開發)하는 것을 비림(碑林)이라 한다. ※ 비림(碑林)의 유래(由來) ☞ 비림(碑林) 은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인류(人類)가 문화(文化) 전적(典籍)을 전(傳)하고 보존(保存)하는 중요(重要)한 형식(形式)이다. 아직 한국(韓國)에는 비림(碑林) 이 없기 때문에 중국(中國)비림(碑林) 에 대하여 고찰(考察)할까 한다. 중국(中國)의 비림서법예술(碑林書法藝術)은 중국민족(中國民族)의 근면(勤勉)과 지혜(智慧)를 체현(體現)하였고 정미(精美)로운 고대문화예술(古代文化藝術)과 역사발전(歷史發展)을 반영(反影)하였으며 중국(中國)에는 역대(歷代)의 비림(碑林) 이 많이 있다. 이것이 중국문화(中國文化)의 전통(傳統)을 이루었고 석고문(石鼓文은) 진(秦) 나라의 문화유물(文化遺物)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전국(全國) 각지(各地)를 유람(遊覽)할 때에 봉산(峰山), 태산(泰山), 랑야(琅邪), 갈석(喝石), 회계(會計) 등지에 석각(石刻)으로 역사(歷史)를 기록(記錄)하는 것이 성행(盛行)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漢) 나라 희평년간(熹平年間)에 비림(碑林) 이 형성(形性)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년전(二天年前)의 일이다. 중국(中國)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비림(碑林) 은 서안비림(西安碑林)인데. 서안비림(西安碑林)의 시작(始作)은 당(唐)나라 말 오대시기(五代時期)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송(宋)나라 철종(哲宗) 원우오년(元佑五年)에 비림(碑林)을 정식(定式)으로 건립(建立)한 시기(時期)이며 지금으로부터 약 구백년전(九百年前)의 일이다. 이곳은 중국(中國)에서 비림(碑林)을 가장 많이 보존(保存)하고 있으며 서예(書藝)의 보고(寶庫)라고 정평(定評)이 되고 있다. 한(漢)나라 위(魏)나라 이래로 이천삼백여점의 비석(碑石)을 소장(所藏)하였고, 진(秦)나라 이사(李斯)의 봉산석각(峰山石刻), 한(漢)나라의 을영비(乙瑛碑) 조전비(曹全碑) 북위(北魏)에 원정묘지(元楨墓地) 등이 있으며 당대(唐代)의 것이 가장 많다. ※비림(碑林)의 역할 ☞ 비림(碑林)은 서각예술(書刻藝術)로 입체적(立體的)인 조각군상(彫刻群像)을 이루어 보통(普通)인쇄품(印刷品)으로는 도저히 감상(感想) 할 수 없는 정미(精美)로운 예술특색(藝術特色)과 매력(魅力)을 구비(具備)하고 있다. 훌륭한 비림(碑林)은 그 나라의 지명도(地名度)를 높이고 그 나라의 문화발전(文化發展)과 관광(觀光)에도 매우 효과적(效果的)인 역할(役割)을 할 것이다. 비림(碑林)은 또한 현대(現代) 예술가(藝術家)들의 예술(藝術)진품(眞品)을 전시(展示)하여 선전(宣傳)하는데도 공헌이 있을 것이다. ※중국(中國)의 비림(碑林) ☞ 서안비림(西安碑林) : 중국(中國) 역대(歷代) 명가(名家)들의 정품(精品)들을 집중(集中)하여 오천년(五天年) 역사(歷史)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비림(碑林) ☞ 한원비림(翰園碑林) : 하남성개봉(河南省開封), 창건인(創建人) 이공도선생(李公濤先生)이 많은 고난(苦難)을 겪으면서 우공정신(愚公精神)으로 기여 자기전재산(自己全財産)과 각계각층(各界各層)의 협조(協助)로 성사(成事)된 최고(最高)의 비림(碑林) ☞ 황하비림(黃何碑林) : 황하강(黃何江) 유역(流域)에있는 비림(碑林) ☞ 논어비림(論語碑林) : 산동성곡부시(山東省曲阜市) 공자의 고향에 규모(規模)가 아주 큰 논어비림(論語碑林)을 건립(建立)하기로 결정(決定), 공자(孔子0의 논어 (論語)를 512개 비석(碑石)에 새기기로 하였다 ※중국비림(碑林)의 서체(書體) ☞ 예서체(隸書體) : 대지신사비(大智神師碑) 당(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가 쓴 석대효경(石坮孝經)등 ☞ 초서체(草書體) : 지영(知永), 회소(繪素), 장옥(張旭), 천자문(千字文)등 ☞ 행서(行書) : 회인집(懷仁集) 왕희지(王羲之) 성교서(聖敎序) 등 ☞ 해서(楷書) : 구양순의 황보탄(皇甫誕), 우세남(虞世男)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안진경(顔眞卿)의 다보탑비(多寶塔碑), 근례비(勤禮碑) 유공권(柳公權)의 현비탑(玄秘塔), 원(元)나라 조맹부, 명(明)나라의 동기창(董其昌), 청(淸)나라의 강희(康熙), 유석암(劉石菴), 임측서(任則徐) |
소장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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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와 진흥왕순수비 등 비문을 비롯해 조선왕과 안중근 의사 명필, 김정희 선생, 신립, 남이장군 서체 등 당대의 내노라하는 역사적 인물이 남긴 작품과 왕희지, 안진경, 구양순 등 중국 진과 당나라 시대의 명필 작품 원본이 그대로 돌에 새겨 전시되어 으며, 마루타관, 폐류산호관, 미술관등의 관람실이 있으며, 각 관람실에서는 많은 양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