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명-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감동적인 책이라 독후감을 적어봤다)
저- 구드룬 파우제방
출- 보물창고(2006.8.`10.224쪽)
독정-2019. 8. 24
핵의 공포에 노출될 미래를 경고한 작가, 구드룬 파우제방(1928.체코 보헤미안 출생. 2차대전뒤 독일로 이주. 교사 생활함. 1970년 아들이 태어나자 청소년 책 작가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 취리히어린이도서상. 구스타프 하이네만 평화상 북스테후더불렌 상 수상)이 쓴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은 장면 묘사나 상황묘사가 너무 섬세하게 쓰여져서 허구가 실화처럼 쓰여졌다. 우리의 내일, 어쩌면 오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작가는 책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이렇게
「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죠?”
학생이 선생님인 아빠에게 질문하가 아빠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기원을 담아둔다.
「 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너희들은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줄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대호하는 법을 배워 당장 치고 박고 사우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어울려 찾아 내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해도. 너희들은 쉐밴보른에 남은 최후의 아이들이니까.」
이렇게 작가가 당부하는 것은 전쟁으로 사람들의 품성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우 까닭에서다. 우리 모두의 양심을 뒤흔들어 깨우는 이야기다. 이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은 핵폭발이 휩쓸고 지나간 후 피폐해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지를 밝혀 적고 있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달라지는 품성 묘사 글을 보자.
① 엄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 할머니가 별로 놀라지 않으며 말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엔 모두들 너무 잘 지내서 아무도 도와 줄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사는 걸 잊어버렸단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국가가 맡아 해결했거든.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그저 저만 생각하는 거란다. 너의 엄마 아빠도 바로 정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이해해라.“
“살아남고 싶으면 지금 같은 때엔 자기 가슴에 따귀를 한 대 때려야 해. 기독교적인 이웃 사랑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다면, 그 사랑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②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 나쁘지 않아. 그래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더 많아지니까.”
나는 놀라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내 말이 어디 틀렸나?”
할아버지는 날 아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처럼 생각했다. 모든 생각이 먹을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을이 가까웠다. 낮이 더 짧아졌고, 날씨도 선선해졌다. 사람들은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품삯으로 돈을 받으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품삯 대신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오로지 곡식 알갱이뿐이었다. 우리는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을 무릎걸음으로 걸어가며 이삭을 주워 모았다. 들판은 이삭을 줍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래도 바닥보다 짚단에서 낟알을 더 많이 얻을 거라는 사람들은 들 가장자리에 보자기를 펼쳐놓고, 그 위에 볏짚을 쌓았다. 나무 막대기나 돌멩이로 이삭을 타작했다. 석기 시대가 따로 없었다.
③ 바싹 마른 초원에는 썩은 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뼈만 남은 것들도 꽤 있었다. 하지망 어디에서도 까마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폭발 때 밀려든 압력의 파동 때문에 산 중턱에 있는 전나무들이 성냥개비처럼 쪼개져 있었다. 도로 곳곳에는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연못에는 죽은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낸 채 둥둥 떠 있었다. 폭탄이 떨어지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특히 나무 아래로 자그마한 새들의 벼가 발에 밟혔다. 전신주 한 개가 다리로 넘어져, 끊긴 전선들이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다리 위에 서서 잠간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물은 회색으로 매우 탁했다. 담황색 버들 숲 옆에 시체 몇 구가, 그러니까 쪼그라든 살이 붙어 있는 작고 새까만 뼈들이 서로 뒤엉켜 동강이 난 채 들러붙어 있었다. 불체 타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 위로 강가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목초지는 그슬려 있었고 들은 바짝 발라 있었다. 불에 타 버린 숲은 겨울처럼 잎이 다 떨어져 있었다. 풀다 강변에만 녹색 기운이 조금 보였다.
④ 국경선 울타리가 뒤집혀 있었고, 울타리 기둥들은 부서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굴삭기를 밀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우리 근처에도 철조망이 끊긴 곳이 많았다. 그곳으로 사람들이 자주 오갔는지 길들이 생겨나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국경선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인식 못 한다. 모든 게 엉망으로 망가졌는데, 경계선이 대체 무엇 대문에 필요한가? 베를린 주변으로는 돌멩이 하나 제대로 남지 않았다. 동쪽으로 갈수록, 긴 거리만큼 죽은 살마 수가 많아진다. 거기선 아직도 계속 죽어나가고 있어. 전영병병으로만 죽는 게 아냐. 방사능도 있고.“
“그럼 지금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된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도대체 요즘 사람들이 뭘 알기는 제대로 아는 겁니까? 그저 소문만 들들 뿐, 어쩌면 정부조차 없을지 몰라요. 누가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겠나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자기만 살고 보자는 생각들뿐인데.”
“맞습니다. 그 동안 받은 좋은 교육들을 전부 다 잊어버였어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도덕모 말이죠. 사람들은 점점 동물이 되어 가요. 늘 먹을거리가 문제지요. 먹을거리가 문제가 되면 서로 물어뜯곤 합니다. 거기선 가장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저씨는 내 얼굴이 고난스런 예수 얼굴 같다며 햄 한 덩어리를 꺼내 주었다.
“아무쪼록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⑤ 우린 낮 동안엔 화덕이 있는 부엌에서 생활했다. 집에서 따뜻한 곳이라곤 부엌밖에 없었다. 밤 되면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방에서 잤다. 엄마는 손빨래를 하여 이 쪽 벽에서 저 쪽 벽으로 걸어 놓은 빨랫줄에다 말렸다. 부엌에선 음식 찌든 냄새와 재 냄새. 세제 푼 물과 땀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우리는 금새 익숙해졌다. 부엌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⑥나와 단 둘이 있을 때 아빠가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죽음이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오고 있는 거야. 이르든 늦든 간에 우리 모두에게 차례가 돌아오지, 그냥 차례차례 순번에 따라 오는 거야. 그리고 아무도 갑작스런 공포에 빠지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지나가지.” 피곤해 장작을 더 얹지 못하면 다음 날 화덕이 차가워져 있었고 이웃집에 불씨를 구하러 가야 했다. 불은 이제 음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미 시내에는 소금이 동난 상태였고 물물교환 때에도 값이 아주 높았다. 벌써 오래 전부터 우리는 사료용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음식들은 맛이 다 밍밍했다.
⑦ 크리스마스 선물로 엔스에게 엄마는 빨아서 깨끗해진 곰인형과 낡은 털실로 뜬 꼭두각시를 선물햇다. 그리고, 서랍장에서 꺼내 온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서툰 연주 소리를 감동스럽게 들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는 손수 나무를 깍아 만든 팽이를 엔스에게 주었다. 엔스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죽은 아이를 떠올렸다. 엄마가 울자 아빠가 손을 꼭 쥐어주었다. 나도 엄마 아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하지만 엔스가 보지 못하도록 식탁 아래에서 울었다. 그 아이에겐 즐거운 크리스마스였으니까.
그 애는 이다끔 지독하게 비명을 지르며 울어 댔다. 그러면서 옆의 아이를 꽉 붙들었다. 그러면 얼굴 망가진 아이가 달려와 쓰다듬어 주고, 꼭 안아주며 아이가 다시 조용해질 때까지 옆에 있었다. 한 아이는 걸을 때 비틀거렸다. 고막이 터져 속귀에 상처가 났을 거다,
⑧ 소시지가 많지만 나워주지 않는 부잣집 지하실에 아이들이 몰려갔는데 주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돌진해 지하실로 내려갔지만 이미 소시지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이들이 잽싸게 먹어 치웠던 것이다. 무릎에 앉아 있던 어린 꼬마들만 아직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뱃속에서 소시지를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먹을 것이 없자 사흘 동안 눈만 핥아 먹었다.
⑨ 유모차에 태워 다니며 밀어주던 아이가 죽자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이는 나무에 목을 메고 죽으려고 한다. 내가 발견했지만 안 도와줄 수 없어 힘껏 밀어주고 아이가 죽자 유모차에 태워 동굴로 데려가 묻어주려고 유모차를 밀고 가다 부인이 묻자 쓰레기라고 한다. 동굴은 나무 쀼리 사이에 놓여 있었는데 높이가 아주 낮아 쪼그리고 앉아야 했고 팔도 거의 뻗을 수 엇었다. 나는 입구에 쌓인 눈을 치우고 안드레아스를 그 속으로 밀어 넣었다. 동굴은 아이가 몸을 쭉 펴고 누워 있기에 넉넉한 크기였다. 평평한 돌로 동굴 입구를 막았다. 돌을 바닥에서 떼어 내는 일은 힘이 들었다. 추운 날이었다. 유모차는 채석장 비탈진 곳으로 밀어 버리려 했지만 문든 새로 생길 동생이 생각나 유모차를 집까지 밀고 왔다. 엄마는 유모차를 발견하고 깨끗이 씻어서 손질했다.
“귀엽지 않아?”
엄마는 계속 물어 보았고, 칭찬 받고 싶어 했다. 아빠와 나는 서로 눈길을 건넸지만, 당연히 엄마에게는 감격한 것처럼 행동했다.」
인류의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핵이 폭발하자 그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인간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했던 인간들의 어리석음, 그에 따라 잔인하고 처참하게 망가지는 우리 삶을 간결한 문체로 낱낱이 그려 낸다. 핵폭발이 지나간 자리, 그 어디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찾아 볼 수 없어 일그러져가는 인간들이 맞닥뜨린 상들!
「① 차-나무를 피해 들판으로 운전할 때 슬라룸 경주(깃발 사이를 지그재그로 달리는 자동차 경주)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래도 다행이었다. 바람에 불꽃이 옮껴 붙긴 했지만, 다락방 한쪽 벽만 약간 그슬렸을 뿐이었다.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꾼 것이다. 북풍이 불어오면서 이미 다 타 버려 폐허가 된 집들로 다시 불꽃이 날아갔다. 아빠는 아직 남아 있는 불씨를 끄다가 벽 사이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빨간 자동차 주인, 드레젠은 반들반들 광 낸 자동차를 차고에서 꺼내어 몰았다. 카 오디오의 볼륨을 끝가지 올리고 네 거리를 몇 시간 째 반복하여 뱅뱅 돌았다. 부모가 그를 멈춰 세우고 진정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아들 차에 치일 뻔했다. 그는 차를 속도를 올려 이 길 끝에서 저 길 끝가지 오갔다.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온 도시에 울렸다. 모두 길가로 나와 음악을 들으며 감동했다. 그는 남문으로 휘어져 들어가지 않고 똑바로 직진하더니 전속력을 다해 폐허더미로 차를 몰았다. 폐허더미는 거리 전체 폭만큼 넓은 대다 거의 건물 1층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그 곳에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거기 쌓여있을 것이다. 그의 멋진 차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는 차 안에서 불타 죽었다.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불타는 자동차에서 몇 초 동안 더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이상야릇한 한숨 ㅅ리 같은 걸 내면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에워싸고 몸을 녹인 뒤, 불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동안 사람들은 말만 꺼내면 그 자동차와 음악 이야기를 했다.
“아름다운 죽음이지. 자동차 광을 위한 고전적인 죽음이랄까.”
아버지가 말했다.
② 엄마의 고집으로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고향 떠나는 길 묘사
“짐승 썩는 냄새와 사람 태운 냄새가 진동하는 이 곳에서요? 이게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마련해 주고 싶은 세상인가요?”
“머리 위에 지붕도 있고 할머니 옷 가득 찬 옷장도 있고 화덕과 불 지필 장작도 있지 당시느 우리가 다른 사람들 보다 유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모르겠어?”
“나는 희망 없이는 아이가 살아서 세상에 태어날 수 없어요. 하루에 한 사람당 사분의 일 리터의 우유만 준다며, 일주일에 오백 그램의 빵만 준다면 사람들은 최소한의 살림살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 알기나 해요!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그건 맞아.”
아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당신, 프랑크푸르트가 아직 남았다고 인정하는 거죠?”
“아니, 프랑크푸르트도 인정 못하고 보나메스도 못해.”
“증거를 대봐요. 그렇게 해야 조용히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은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걸 이야기한 거예요. 그 사람한테는 얻어갈 감자가 더 중요했던 거라고요!”
“당신은 우리 모두를 불행으로 몰고 가고 있어, 당신도 함께 말이야.”
아빠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이뇨, 당신이 혼란에 빠진 거예요. 당신은 더 이상 제대로 생각하지 못해요. 나는 우리 모두를 구하고 싶어요. 나와 함께 가면 당신과 아이들이 구원되는 거예요.”
아빠가 말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짐 대문에 어려울 것 같았어. 그리고 무슨 일이 닥쳐오든지 우리가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고 우리는 정말로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엄마가 곧 돌아가자고 하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오늘 안으로 돌아가자고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빠 생각은 빗나갔다. 엄마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계속 걸어갔다. 엄마는 두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운이 좋았다. 모도 길 옆에 탑처럼 쌓여 있던 눈 더미 속으로 넘어졌다. 우리는 목장 옆 지붕이 덮인 가축들의 피신처에서 잤다. 눈이 녹을 정도로 날씨가 풀렸다. 그런 날씨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다. 지붕 없는 곡물 창고와 눅눅한 침낭 속에서 잠을 자고, 새는 신발을 신고 눈과 진창 속을 걸었다. 우리 자신도 그렇게 잘 견대 내는 것에 놀랐다. 쓰레기더미에서 고장 난 유모차 바퀴를 대신할 다른 바퀴를 찾는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빠와 내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말 ‘더 이상 못 가겠어 되돌아가요.’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③ 아빠가 그쪽 길을 잡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아직 개들이 잡아먹히지 않았고 유리창도 깨지지 않고 말짱했다. 주변엔 쓰레기더미도 거의 쌓여 있지 않았으며. 쓰러진 나무들 때문에 막혀 버린 도로도 없었다. 외단 시골 마을 몇 군데는 티퓨스도 유행하지 않았다. 가끔씩 집 앞을 지나는 불상한 사람들을 무심하게 지나쳐 보내지 않는 농부를 만날 때도 있었다. 겨울 호미를 심은 들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을에, 폭탄이 떨어지고 난 뒤에 씨를 뿌린 것이었다. 녹고 있는 눈 속에 자그맣고 파란 싹이라니 눈을 의심했다. 온 들판을 가득 채운 파란 신기루!
“모든 것이 황폐해졌는데도 해야 할 일을 해 놓았구나. 믿기 힘든 일이야.” 아빠는 오랫동안 들판에 서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갖게 되는 거란다.“
엄마가 말했다
④ 죽음-
계속해서 죽은 사람을 묻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중간 중간 생각이 툭툭 잘려 나갔다. 마음이 텅 비고 바짝 발라 버린 기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생활이 이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날마다 새 소문이 들렸다. 그러나 정확이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신문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전화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방송이 나오지 않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은 환자들이 차고 넘쳐서 오래 전에 문을 닫아 버렸다.
아이들은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면서도 부모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울며 돌아다녔다. 부모들도 다친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자기가 토해 놓은 토사물 위에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몸에서 흘러나온 피에 잠겨 있는 사람도 있었다. 똥, 오줌 냄새도 물씬 풍겼다. 목이 타서 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애걸하는 소리와 신음 소리, 탄식 소리가 물결치듯 한 번은 크게, 한 번은 작게, 그다음 엔 다시 부풀어 올라 거친 울부짖음이 되어 길거리로 밀려왔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팔과 디리를 붙잡고 그네를 태우듯 흔들어 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다. 나는 죽은 아이의 엄마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모에 열이 나고 노란 가래를 토하며 계속 물을 찾았다. 어두운 반점들이 온몸을 뒤덮더니,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겨 내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할아버지는 짐짝처럼 실려 갔다. 열매들은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산나무 열매를 꺾을 용기를 낼 사람은 없었다. 평화로운 풍경도 더 이상 없었고 자연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생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숲이나 샘에서 그저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매번 길어 오는 수고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사람 은 아무도 없었으며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을 끓여서 씁시다”라고 서로 약속만 할 뿐이었다.
·병원 안에서 엄마나 아빠가 죽어도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누구 아이인지 아는 사람도 없고 담당 관청도, 인명 기록부도 없었다.
·죽어가는 엄마가 빨간 바지 입은 아이가 자기 아이라며 자기 아이를 챶아 엄마가 잘 있다고 좀 전해 달라고 했지만 아이를 찾았을 때 빨간 바지가 얼마나 더러운지, 더 이상 빨간색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벽에 기댄 채 다리를 죽 뻗고 앉아 있는 누나 무릎 사이에서 잠들어 있었다. 집에 데려가 보살피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네 엄마에게 알려주러 병원에 달려가도 아줌마를 찾을 수 없었다. 병실을 다 뒤져도. 이미 시체 처리할 풀밭으로 실려 간 것 같았다.
·누나의 머리카락 다발이 눈에 들어오자,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다. 나는 베개로 입을 막고 엉엉 울어버렸다.
물이 오염되었을까 봐 걱정이 된 염마는 강물을 떠다 먹는 것을 반대했다. 아빠에게 강물 대신 샘물이나 우물물을 찾아보았다. 숲 주변에 샘물이 있다 했지만 거기까지 걸어가기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이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면 물, 공기, 땅에 발을 대지 말아야 해. 오염을 완전히 피하려면 여기에 있지 말아야지. 이곳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만지고 먹고 마실 수 있겠지, 하지만 벌서 오래 전에 모든 것이 오염되었다면 이미 때를 놓친 거야.”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말해야 되겠어요. 당신?”
그 와중에도 엄마는 그릇을 소독할 물을 끓였다.
“삶는 걸로는 기껏해야 티푸스균 따위나 예방해.
헛간에는 오래 된 석탄 화덕이 세워져 있었다. 폐품 수거용 쓰레기로 버릴 거지만 우리는 그것을 부엌으로 들여 와 전자레인지 대신 사용했다. 엄마는 다시 불 피우는 연습을 해야 했다. 다 타서 숲 검댕이가 된 지붕 뼈대의 버팀목들을 톱으로 잘라 부엌에서 장작으로 썼다. 물을 양동이데 담아 반은 나에게 부어주고 절반으로 몸을 씼었다. 엄마는 아이를 대야에 넣어 씻긴 뒤 그 물로 부엌을 청소했다.
엄마는 창밖을 보는 내 어깨를 감싸더니 창문에서 멀찌감치 떼어놓았다.
“저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돼. 그럼. 저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해.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잘 간수해야 해.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밉지만 너희들을 희생시켜가면서 다른 사람을 구해 줄 수는 없잖니?” 엄마의 우울한 목소리를 듣고 집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볼게 아주 많았다. 할머니는 쓰레기더미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 자루에 담고 있었다.
“아직 농사 지을 밭도 있이, 최소한 굶어 죽을 지경은 아니야.”
“앞으로가 막막하니까 그렇지…….
<전염병>은 빠른 속도로 퍼졌다. 집집마다 환자들이고 병원에 데려가 봤자 자리도, 약도 없었다. 의사들도 감당해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줄지어 누워 있는 환자들 사이를 오가며 친절하게 이쪽저쪽 고개를 끄덕여 주고 물은 한 모금씩 컵에 따뤄 먹여주는 게 다였다. 마지막 병원에 남아 있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 기어갈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병원을 떠났다. 곧 병원에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이 누워 있게 될 터였다. 노숙자들은 서둘러 주변 숲으로 옮겨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그렇게 하면 전염병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무릎 깊이 정도 되는 물 위에 죽은 사람들이 둥둥 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건져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며 깊은 수영장에서 물을 길었다. 일가친척들조차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에겐 남아 있는 일가친척이 한 명도 없었는지 모른다.
< 생명을 살리는 감자>
아빠가 밭에서 공기돌보다 작은 감자를 훔쳐왔다.
엄마가 저장물품을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자 엄마와 아빠는 서로 맞붙어 씨웠다.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으란 말예요?”
“곧 겨울이 올 거야. 그러면 우리는 뭘 먹고 살지?”
몇 주 전만해도 엄마는 집 잃은 사람들이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갈 때 나를 창문에서 떼어 놓았고, 그들이 먹을 걸 구걸해오면 거절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엄마가 달라졌다. 내가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끔직한 갈증을 가셔 줄 물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나를 놓지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해 주전자를 잡아당기거나 플라스틱 컵을 물고 돌려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주먹으로 쳐서 스스로 방어해애 했다. 그리고 옷을 꽉 붙잡고 늘어지는 그들의 손가락을 떼어 내야 했다. 그 사람들이 내 목숨을 원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마치 내 목숨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막내 동생 케르스틴과 병원에서 데려온 아이 질케가 티푸스로 죽자 티푸스로 누워있던 엄마 아빠에게 누나가 동생들이 죽은 걸 나에게 말하라고 했다. 내가 전해야 할 소식을 힘들여 내뱉자. 엄마는 절규하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빠는 두 눈에 눈물 가득했다.
“애들은 거기서 잘 지낼 거야. 우리 앞에 닥쳐 올 일을 누가 알겠어.”
“너 아이들을 어떻게 했니?”
엄마가 낯선 사람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밤에 할아버지의 작업장 뒤에다 묻어 주었어요. 퇴비더미 옆에요. 아이들을 그 사람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덤이 별로 깊지 않아요. 힘이 없었거든요.”
“아, 다행이구나. 애들이 땅 속에 있어서.”
엄마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성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 물었다.
“문을 열어주었어요. 가고 싶은 사람은 가렴. 이젠 너희들에게 먹을 걸 주 사람이 없어. 들판으로 가서 낟알을 찾아와. 옥수수 알갱이도 찾아 먹고, 감자도 캐어 먹어. 숲에 가서 버섯도 따 먹고, 정원마다 먹을 만한 게 있으면 훔쳐서라도 먹어.‘라고요. 아이들 몇이 떠나갔지만 대부분 남았어요. 우리가 다시 와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때 이후로 그리고 올라가 보지 않았아요. 많은 아이들이 병에 걸렸거든요.
·<전쟁 속 탄생과 죽음> 엄마가 낳은 동생을 아빠가 무릎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나는 앤스의 이불과 따뜻하게 안감을 댄 아빠 재킷을 뒤집어쓰고 벽에 몸을 기댄 뒤 무릎을 한껏 끌어올렸다. 나는 금방 난 여동생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움직일 엄두도 내조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베개 덕분에 나는 따듯해졌다. 깨어 있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가슴과 무릎 사이 우묵한 곳에 아기가 놓여 있어 쉽게 미끄러져 내랄 수는 없었다. 나는 아기가 숨이 막히지 않도록 소심해서 돌보았다. ‘응애’소리를 내며 올 때난 꼼지락거릴 때마나, 나는 행복한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렇게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나도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구걸도, 도둑질도, 약탈도 하리라 다짐했다.
·길을 떠났고 남쪽으로 갔고 여태껏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쩌면 소문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아빠와 나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벌써 한 번 떠났다가 호되게 당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내내 여기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다. 이따금씩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대신 말해 주고 있다.
“여긴 아직도 살아서들 움직이고 있네요.”
핵폭탄이 떨어지던 날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해에 뒤이은 두 해 겨울을 나는 동안 죽었다.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나무를 충분히 해 놓지 않은 사람, 더 이 상 겨울옷이 없었던 사람, 병든 사람, 밤낮으로 불씨가 꺼지지 않게 살피지 못한 사람들은 추위에 목숨을 잃었다. 먹을거리를 저장해 놓지 못한 사람도 굶어 죽었다. 핵폭탄이 떨어진 다음 해엔 거의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들은 대부분 경작되지 않았다. 감자 몇 개라도 심고, 몇 줌의 곡식 씨앗이라도 파종한 사람들조차 거두어들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던 것이다. 봄에 싹이 튼 것도 보잘 것 없이 연명해 갔다. 경치는 싱싱한 초록불결로 덮이는 대신 병색이 완연한 유황색으로 서서히 덮여갔다. 침엽수와 활엽수에선 모두 잎사귀가 나오지 않았다. 가장 억센 잡초만이 견뎌냈다. 핵폭탄이 떨어진 뒤 맞이한 첫 번째 여름, 가을, 겨울에 사람들은 풀과 나무껍질을 먹고 살았다. 식물 뿌리를 모았고, 송충이와 같은 벌레들을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풀다 근처에 파묻혀 있던 지하 군사기지의 거대한 통조림 재고품들도 한몫을 했다. 청년들 몇 명이 우연히 발견한 뒤, 강제로 열어 샅샅이 뒤져냈다. 지나 겨울 굶어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연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시무시한 피해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억센 풀들은 다시 무성하게 자라났다. 지난 봄에는 도시 주변이 다시 녹색을 되찾았다. 잿더미 속에서 풀이 돋아났다. 그 풀들을 뽑아내려면 제일 튼튼한 연장을 사용해야 했다. 중요한 사실은 끔찍한 잿빛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활 태도를 바꾸었다. 핵폭탄이 떨어진 뒤의 초라한 삶에 적응했다. 더 이상 외부에서 올 구조대나 기적, 구원 같은 걸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구제하는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했다.
곳곳에서 감자를 심은 화단과 작은 텃밭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생활에서 감자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화젯거리다. 새들이 죽고 없어서 해충이 급격히 늘어나 계속해서 지독한 병충해를 겪어야만 했다. 오래 된 자동차 타이어와 나무판자로 신발을 만들어 신는다. 옛날처럼 깨끗하지 않다. 제대로 된 목욕탕도 없고, 미용실도 화장품도 없다. 비누도 없다. 우리 몸에선 땀 냄새가 풀풀 난다. 우리 몸은 노동의 냄새를 풍긴다. 다가올 겨울을 무사히 보내기 윟 말 그대로 중노동 그 자체다. 물 길어 오는 일, ‘빨래하는 일, 심고 수확하는 일, 바느질 하는 일, 폐허를 치우는 일, 집 짓는 일 등 정말이지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한다. 이제 기계 같은 건 없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남김없이 이용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불안을 숨기고 자기가 처한 위험을 떨쳐 버리고 모른 척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들 미쳐 버릴 것이다.」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 나갈지에 대해 묻는다. 모든 상황이 실제로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 문제가 수시로 불거지는 한반도에 사는 국민으로서, 핵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 지구 위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전하는 경고를 직시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