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희네는 우리 문중에서 가장 항렬이 높은 집이라 어린 을희가 내게는 할아버지 뻘이었다.
을희 아버지가 우리아버지에게도 할아버지가 되고,을희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에게도 할머니가 되시니 을희네 식구는 마을 사람 모두에게 여자는 어려도 할머니이고 남자는 여섯살난 을희까지 할아버지였다.
을희 할머니 왕할머니는 성품이 곧고 어질어 동네에서 공경받는 어른이었다.
을희 어머니가 꽃 새댁 시절에 점심으로 칼국수를 만들었는데, 양 대중을 못하여 일곱 식구가 먹고 이웃에 두 양재기나 나누어 주었는데도 남았던지 저녁을 지을 무렵 안방을 들여다 보고,
"어머님. 국수가 한 양푼있는데 어쩔까요?"
"소 구시에 갖다 부어주거라."
얼마후에 다시 같은 일을 만들고 이번에는 스스로,
"어머님. 소 구시에 갖다 부을까요?"
하니 할머니는 '그렇게 하거라.' 에다가 '다음부터는 반죽을 반으로 줄이거라'하고 겨우 한 마디를 덧 붙이셨을 뿐 미소를 띠운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수채 구멍에 밥알 몇알만 허옇게 보여도 '네가 남의 살림을 다 말아 먹으려느냐'고 난리가 나던 보리고개 시절에 여느집 시어머니 같았으면 ' 양 대중도 못하여 아까운 걸 번번이 소죽에 넣느냐' '네가 국수 밀어 소 키워 잡아 먹으려느냐' 고 호통이 내렸을 법 한데 말이다.
능숙하지 못한 사람에게 국수 반죽이라는 게 원래 너무 되구나 싶어 물을 조금 더 붓는다는 게 질게 되고, 다시 밀가루를 더 넣어 맞추다 보면 배로 덩이가 커지는지라 두어 번을 더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새 며느리는 국수 양을 적절하게 맞출 수 있었다.
또 참깨를 씻어 오라고 하였는데 소식이 없자 할매가 사립 밖 공동 우물로 나가 보았더니 둥둥 뜨는 게 쭉정이라고 깨는 다 떠내려 보내고 빈 바가지만 들고 돌아오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다시 깨를 가져다 씻는 법을 가르쳐주고 볶아놓으라고 먼저 들여 보냈더니 프라이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볶은지라 할머니는,
"모르는 건 그냥 네 맘대로 하지말고 물어 보거라"
고 젊잖게 한마디 하셨다.
'저러다가 왕 할매네 며느리가 장 담그는 소금도 씻어서 녹이지 않겠냐'고 동네에 말이 돌자 우리 어머니가 을희 할머니께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뭔 판단이나 제대로 섰겠는가? 모르면 하나 하나 가르쳐서 내집사람 만들어야지 어쩌겠는가?"
옳으신 말씀으로 집안 어른 으로서 대접받는 이유가 거기 있었고, 남의 집에서 온 철 없는 며느리를 내 자식처럼 고운 눈으로 보아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할머니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오빠들 밑에 늦으막에 태어났다고 끝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 홀로 끼어 살다보니 그랬던지 행동이 마치 사내아이 같았다.
그 덩치만큼이나 고집도 세서 집 일도 돕지 않고 제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사는 게 거칠 것이 없었다.
집에 타작을 하던지 바쁜 일이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올케 장농을 뒤져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고 어질러 놓기만 하고 그냥 나가고 ,몰래 새언니의 일기장을 훔쳐 보고 온 집안에 소문을 내기도 하고, 그걸 눈치 챈 올케가 장농을 잠구어 놓자 용심으로 열쇄 구멍에다 진흙을 잔뜩 채워 넣으며 제대로 시누이 노릇을 하였다.
왕할매는 거친 망아지 같은 딸의 일이 새 며느리 앞에 여간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못해 어느날은 딸을 불러 않혀 놓고,
"끝님아...네 어찌 새 올케에게 그리 못되게 하느냐? 너도 이제 곧 시집을 가게 되면 남의 집 올케가 되지 않느냐? 그때 네 시누이가 너처럼 못되게 굴면 넌 어찌하겠느냐?"
끝님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다가,
"어머이...... 내가 앞으로는 잘 하겠소."
그렇게 반성하며 마음을 고쳐 먹기로 약속을 하였지만 잘 안 되었던 모양으로 '돈이 없어졌다' '구루무 통을 다 깨트렸다' 는둥 계속해서 집안에 분란이 일자 왕 할매는,
" 외숙모가 몸이 안좋아서 너를 좀 보내달라고 하니 가서 일좀 돕다 오너라."
하며 달래어 끝님을 대구 친정 동생네로 내려 보냈다.
몇달이 지나고, ' 화끈한 성격이 맘에 든다' 며 외삼촌을 따라다니며 다리를 놓아달라고 조르던 '제 눈이 안경' 인 남자를 만나 끝님이 결혼을 하자 왕할매네 집은 그제야 동네 사람들 입에서 내려 앉았다.
왕할매 연세 팔순이 되었을 때 어버이날 학교에서 을희 어머니께 효부상을 내렸는데 상품이 커다란 법랑 냄비였다.
마루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할매가 들어 오는 며느리를 보고,
"그 들고 오는 게 뭔고?"
"예 어머님. 냄비인데요......."
스스로 생각해보니 한 집안의 며느리로 잘 한게 없는 것 같은지라 차마 효부상 받았노라고는 못 하겠고,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 사신다고 학교에서 상을 주었어요."
하고 둘러대니,
"거참 희한하구나.늙은이 오래 산다고 상을 주다니......"
며느리는 부엌으로 들어 가며 혼자 웃었다.
첫댓글 소녀님 완성된 글입니까 안면 미완성입니까...
다 된 것이 이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