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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시간의 배후☆]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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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배후]
김가연 시집 / 열린시학기획시선 74 / 고요아침(2013.10.2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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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배후
김가연
티브이에서 마술쇼를 하는 동안
누군가 세차게 문을 두드리며 지나가네
오랫동안 허공을 흔드는 파장,
이 파장은
허기진 속임수
마술사가 미소짓네
텅 빈 상자 짐짓 흔들어 보이고는
새가 돌아오지 않는 빈 둥지나
불 꺼진 진열장에서
어둠의 옷을 입은 마네킹처럼
둥근 침묵을 끌어안네
이별이 다시 이별을 만나네
하지만 이것은 마술,
시간의 배후엔 항상 속임수가 존재하네
문득 잊어버린 약속을 줍듯
못질한 상자를 열어 보네
잠들지 못한 이별이
충혈된 아침으로 서 있네
문패
김가연
어머니 열여섯에 대문도 없는 집에 시집 와서 머리행상 십 년 만에 비로소 문패를 달았다 벽돌담에 양철대문 달린 집으로 이사 온 첫날 밤 큰아이는 대낮처럼 환히 밝힌 전구를 올려다보다가 어질증에 비틀대고 코흘리개 작은아이는 집에 가자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가장家長의 이름을 새겨 문간에 걸고 올려다본 하늘이 파랗게 일렁였다 하늘색 대문 옆에 자리 잡은 문패는 밤이면 드높고 드넓은 별세계를 날아다니고 대문을 펄럭이며 들락거리던 아이들은 애틋하고 가련했던 세월을 건너는 동안 일곱과 아홉수를 넘기며 어느새 자기 이름자 새긴 문패 하나씩 갖게 되었다 문패가 한 해 두 해 낡아가고 이제 문패 높이보다 더 자란 손님 같은 거뭇한 자식들이 건성으로 안부를 묻고 돌아간 뒤 사람도 늙고 집도 늙는데 문패만 새것이면 그도 이상한 일이라며 가만히 돌아눕는 밤, 빛바랜 문패가 낡은 대문을 지키고 있다
초록, 잠들다
김가연
아버지가 떠난 뒤로
우리 집 대문은 가슴을 열고 잠이 들었다
문고리가 쩍쩍 얼어붙는 매서운 추위나
잡초가 문틈을 기웃거리는 한낮에도
대문은 늘 한쪽으로 비켜서 있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대문은 뻣뻣해진 목을 돌려
신작로를 바라보곤 했는데
눈길이 닿는 자리로 깊은 우물이 생겨나
달빛이 자주 빠지곤 했다
미루나무 잎사귀 사이로 바람이 주춤거리는 밤
개 짖는 소리가 흔들리는 어둠을 물어뜯으면
대문은 먼 곳까지 귀를 열어놓았다
바퀴 없는 계절이
천 년의 수레를 끄는 동안
대문은 초록을 벗고 잿빛으로 바래가며
점점 마른 기침 소리를 냈다
눈보라를 뚫고 달려와
풍치로 남은 초록
어느새 가슴속 이름마저 하얗게 잊어버린 초록이
차가운 벽에 기대어 바람의 손을 잡는다
어머니의 겨울
김가연
눈 내리는 소리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깊은 밤이면
달빛 창문가에 뜨개질하는 어머니의 실루엣이
푸르게 빛났다
어둠과 어둠을 엮어 밤하늘 별들을 수놓듯
흐릿한 창문 너머로
어머니의 뜨개질이 마냥 길었다
숱 많은 바람의 이야기들이
아침이면 무지갯빛 목도리며 장갑의 형상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새들이 찍어 놓은 발자국마다
아린 사연들을 내려놓고
추위를 뚫고 다시 되살아오는 아침
창밖 시린 눈빛이 고요하니
어젯밤
뜨개질하던 어머니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도라지꽃
김가연
참 거룩하게도
울음이 기댄 자리마다
꽃이 피는구나
두 손 모아 기도하듯
피어난 별 꽃
눈물꽃 만발한
산길을 오르면
보랏빛,
꿈결에 듣는 어머니 목소리
사막에 대하여
김가연
나는
달린다 밤마다
바람을 엎고
달리고 또 달린다
달리기를 멈춘 아버지는
허공에 손을 넣어 바람의 손등을 쓰다듬는다
바람 속 고요가 가만히
나무의 이마를 짚어 본다
수명을 다한 건전지처럼
희미한 전류가 나무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나뭇잎들이 시든 기침 소리를 내는 동안
아버지는 자꾸 바람 소리를 모방하고
바람은 자꾸 아버지를 복사한다
나의 사명은 오직 사막을 지나 봄날로 달려가는 것
아, 그러나 ‘봄날병원’의 봄은 오지 않았다
안으로 자물쇠를 건 나무들은
쉽게 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막에 펼쳐놓은 짐승의 주검처럼
나무들이 일제히 손을 뻗어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리켰다
아무리 달려도 길은 없어, 누군가 말했다
또 길을 잃고 말았다
어둠을 복제하다
김가연
바람이 엎드려 밤의 유서를 쓴다
어둠이 자기복제를 하며 빠르게 증식하는 동안
유리창 촘촘 새들이 발자국을 찍었다
새들의 발자국 사이로
흐린 밤이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달의 꽃대를 밀어 올린다
가장 빛나는 어둠만이 모든 걸 볼 수 있어
밤의 충고는 언제나 진지하고 절실하다
오래된 물음에 대한 해답이듯
깜깜한 밤이 환하게 눈을 뜬다
슬픔에도 오차가 있어
단단한 슬픔이 가면을 벗는다
벗어놓은 가면의 틈새로
별들이 돋아나고 새들이 날고
히말라야로 떠난 애인의 눈동자와
우주여행을 떠난 어머니의 관절염이
눈꽃처럼 피어나는 밤
그날은 좀처럼 아침이 오지 않았다
새
김가연
하늘은 푸르고
새장은 열려 있다
윤기 잃은 날들이 시들어 가고
밤마다 빈 둥지를 더듬는
밤하늘이 적막을 읽는다
바람이 자꾸 낮은 곳으로 머리를 둔다
우주로 떠난 새와
시간을 정지시킨 풍경
순간이었다
또, 놓쳐버렸다
남루한 가죽
김가연
한 줌 재가 된
아인슈타인의 살이
미루나무 이파리에 내려앉는다
헌 부대처럼 헐렁해진
세익스피어의 외투가
나뭇가지를 흔든다
눈이 먼 새 한 마리
허공을 물고 날아간 뒤
억의 억겁을 거치며
구름이 되었다가
빗물이 되었다가
별이 된
쓰라린 남루한 가죽이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집으로 가는 길
김가연
벌써 두 시간째
공부보다 미끄럼 타기에 더 지친
동생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
산등성을 넘어가는 햇살이
자꾸 등을 떠밀어도
나는 최대한 천천히 산길을 걷는다
찔레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낮게 날아올랐다 다시 내려앉았다
어둠이 몰려드는 빈집은 무서워
식구들이 모이는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추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자꾸만 앞서 가는 동생의 그림자를 잡아당긴다
지금쯤 아버지는 어둠이 스며드는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산길을 내려오시고
땀에 절은 어머니는 콩밭에서
저녁 햇살처럼 시들어가고 있으리라
지친 해가 흐릿한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어둠이 산길에 촘촘한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발목에 채인 어둠이 흩어질 때마다
새들이 놀라 푸드득 날아오르고
동생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산길을 벗어나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염소의 울음소리에 달큰한 생솔가지 타는 냄새가 묻어왔다
어깨에 묻은 어둠을 털어내며
부엌문을 열고 왜들 이제 오나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울컥 서럽던 저녁
지금도 그 길목에 서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집으로 가는 길
박꽃
김가연
언니의 밤마실이 잦아지면
어김없이 박꽃이 피었다
길게 누운 산밭에선
여름 내 새순이 나고 넝쿨이 퍼지고
온통 박꽃 천지가 되었다
수많은 박꽃들이 한꺼번에 피어
달빛에도 불이 붙는 여름밤
옆방에선 마실 얘기가 길어졌다
하얗게 쏟아지는 졸음 속으로
언니의 발짝 소리를 따라가면
산밭 모퉁이를 돌아 내게로 오는
눈부시게 하얀 박꽃
여름이 끝날 무렵
그 많던 박꽃들이 하나 둘 지고 나면
내 유년의 여름도 박꽃처럼 지고 있었다
무심코
김가연
능소화 붉은 실핏줄들이
죽은 나무를 휘감고
기억의 무늬를 더듬는다
빛나는 수천 년의 발자국들
차갑고 아픈 기억 위에
붉게 피어나는 노래
바람이 지나는 길목마다
꽃들의 노래가
마침내 별이 되는
저 빛나는 저녁
우주에 떨어진 꽃씨가
꽃대를 밀어 올리듯
별이 떨어진 자리로
염소가 지나가듯
시린 계절이
씨앗 하나 가슴에 품듯
군살처럼 무뎌진
상처를 들여다보다가
플라타너스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긴 그림자를 보며
무심코 너를 생각한다
말을 걸다
김가연
또 말을 거네
나무에게 꽃에게 풀에게
바람에게 어둠에게 슬픔에게
차츰 말 거는 일이 잦아지네
누군가에게
말 걸 일이 많아진다는 건
내 몸에 세월이 든다는 것
바람 든 무처럼 숭숭 구멍 뚫린 내 몸이
세월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는 저녁
목화꽃 같은 별에게 또 말을 걸고 있네
사랑니
김가연
밤새 치통에 시달리다 치과에 갔다
한 입 가득 치통을 물고 들어선 나를 보고
그녀가 웃는다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미련을 탓하며
아픔을 견디는 동안
통증은 차츰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입 속에서 사랑니가 자라는 만큼
가슴 한쪽에선 통증이 함께 자랐다
결국 사랑니 하나 뽑아내지 못하고 돌아서는 날 보고
그녀가 또 웃는다
집에 돌아와 온 몸으로 퍼진
통증을 들여다본다
시린 그대가 거기 있었다
시
김가연
선명한 핏줄을 가진
달의 족보
밤의 혈관을 짚으며
우주의 길을 지나온 벌레의 몸이 뜨겁다
장미에게
김가연
사랑은 이미 껍데기
초록이 끝난 자리마다
붉은 슬픔이 번지네
노을을 끌고 가는 바람이
바다를 건너는지
비릿한 물결 소리 들리네
그날은 새벽이슬이
발목 적시며 오는 날
슬픔을 허락한 사랑이
파랗게 웃는 날
만취한 이별이 목젖을 타고
바람처럼 흐느끼는 날
잿빛 구름이 담장 너머로
무거운 변명을 내려놓네
장미는 떠나고
빈 병상엔 가을이 누워있네
수명을 다한 배터리처럼
또 한 계절이 쿨럭거리네
하루살이
김가연
언제부터인가
펼쳐놓은 시집에 앉아
하루살이 한 마리
시를 읽네
갈 길도 바쁠 텐데
할 일도 무진할 텐데
시집에 파묻혀
오도카니 골똘하네
돌아온 탕아처럼
속죄하듯 엎드려
시를 읽네
시를 쓰는 일도
저처럼 무릎을 굽히는 일이라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듯
저처럼 겸허해질 수 있다면
내 죄가 흐려질까
오늘은 하루살이만이
한생을 바쳐
온몸으로 시를 쓰네
벽
김가연
벽은 언제나 우연의 길로 나 있어
기대고 있거나 돌아설 때마다
번개와 천둥으로 폭풍을 노래했다
그때마다 나는
어둠과 절제와 사랑에 대하여 또는
무수한 꿈들에 대하여
많은 밤을 할애하곤 했다
바람이 만들어 바람이 드나드는 벽은
밤마다 낯선 얼굴로 목에 슬픔을 밀어 넣거나
몇 번씩 모양을 바꾸어 벽을 드나들었다
어느 날 개미 한 마리가
굽은 어둠의 등줄기를 타고
뱍 속으로 들어갔다
아주 조용하게
벽과 마주보는 시선이 흔들렸다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싱싱한 꿈의 행렬들이 다시 몸을 곧추세웠다
오늘 밤
꿈의 껍데기들이 깃발을 올리며 되살아나올
저 벽을 열어보면?
골목에 내리는 비
김가연
하루 종일
빗소리가 골목에 고인다
비의 발짝 소리가 무성하다
바람이 쉬지 않고
젖은 발자국을 씻어낸다
자꾸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거기, 누구!
슬픈 유물
김가연
시계를 돌리는 거야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어느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에 대하여
유골은 썩고, 썩지 못한 머리카락에 대하여
또는 우리의 전설에 대하여
물어보는 거야
내 슬픈 땅
전설은 언제나 저만치 앞서 가고
우리는 유물 뒤에 숨어서
뱀 한 마리가 땅을 끌고 가는 이유에 대하여
다시 이야기해 보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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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슬픔을 고집하는
바람의 말이거나
어둠을 어루만지는
달빛의 서성거림으로
투병 중인
불면의 밤들
내내 낯설고 어설픈
설익은 것들에 대한 보고서
2013년 10월
김 가 연
▲겉표지(좌)와 속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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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연 詩集 [※시간의 배후※]
[ 해설 ] -
익숙하고, 따뜻하고, 대지적인 여성성
― 김가연 시인의 작품 세계
이 지 엽(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인)
1. 익숙한 것들 속의 낯설고 넓고 깊은 영역
김가연 시편들에서는 잘 익은 모과와 같은 빛깔과 내음이 있다. 장독대와 아궁이와 낮달과 도라지꽃이 있다. 자연과 내통하고 있되 그것만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그의 노래는 아주 신선하고 발랄하다. 마치 오래된 가곡풍의 노래가 오페라처럼 신선한 분위기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다. 오래된 풍경을 신선하고 낯설게 만드는 법! 자기 갱신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시인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익숙한 풍경으로 독자의 시선을 잡는 것은 낯설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보다는 힘들다. 그런데 그녀는 이러한 작업을 능숙하게 해낸다. 오랫동안 정련의 과정을 거쳤다는 얘기다.
병실에는 위로의 말 대신 침묵이 쌓이고
마른 입술 사이로 힘겹게 넘어가는
숨소리가 위태롭다
로봇에 건전지를 갈아 끼우듯
의사가 몸속에 호스를 바꿔 끼워 넣고 나가면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녹슨 관절과 가쁜 숨을 잠재우던
진통제의 위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저만치 강둑을 거닐던
어머니의 모습이 흐릿하게 젖어 왔다
의사가 가족들을 불렀다
박명을 타고
먼 우주에서 달려오는 열차 소리가 들렸다
덜컹, 문이 닫히고
곧이어 우주 열차는 떠났다
동승하지 못한 식구들은
병원 귀퉁이에 모여 연거푸 밤하늘에 불을 붙였다
배웅하듯 별빛이 손을 흔드는 밤이었다
-「우주여행」전문(볼드체:필자)
「우주여행」에서는 마지막 순간을 견디는 어머니의 모습이 초반부에 그려진다. 이 진지하고 어두운 풍경은 이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이 낯익은 풍경에 시적 자아는 건전지를 갈아 끼운다. 그리고 우리를 마치 은하철도를 태워 배웅하듯 우리를 허공에 떠다민다. 허공은 곧 죽은 혼의 공간인데 그것이 그로테스크하거나 동화적이지 않다.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것은 과거에 경험하거나 느끼지 못한 신선한 맛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죽음의 통과 의례를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해치우다니! 그 솜씨가 비상하다. 사실 이렇게 보이게 하는 데는 시적 자아의 남다른 노력이 담겨있다. 볼드체로 표시한 부분에서 우리는 그 노력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볼드체를 제외하고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그러나 제외하고 읽으면 낯익은 풍경-임종의 순간을 나타내는 병실의 밋밋한 풍경 이상의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볼드체의 문장을 삽입하는 순간 시적 상상력은 그 공간을 병실 밖으로 확대시킨다. 특히, “먼 우주에서 달려오는 열차 소리”나 문이 닫히고 떠나가는 상황들의 긴박한 문맥들은 그 공간을 거의 무한대로 확대시킨다. 이 문맥들은 낯익음 가운데 가장 낯설고 넓고 깊은 영역으로 우리를 일시에 끌고 가버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닌 늘
낭떠러지를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칡꽃은 낭떠러지에 집착했다
텅 빈 죽음과 부르튼 삶의 중간에서
날개가 젖은 하늘빛 꿈이 절벽을 오른다
(… 중략 …)
비탈진 절벽을 오르는 일은 나의 일상
물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이며 절벽을 오르는 동안
환청처럼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꽃무늬 거실 바닥을 헤엄쳐 다녔다
칡꽃 냄새가 허공을 뒤덮고
낭떠러지 아래로 봄이 일렁였다
길고 긴 밤을 통과한 아침 햇살처럼
칡꽃이 절벽을 넘고 있었다
-「칡꽃」1연, 3연
이 작품 역시 낯익은 풍경이다. 비탈진 절벽이 있고 그 밑에는 온갖 잡풀이 자라고 있는 공간이다. 칡넝쿨이그 절벽을 한사코 오르고 있는 배경이다. 이 공간에 낯설음은 “칡꽃은 낭떠러지에 집착했다”라는 문장 때문이다. “칡꽃”이 그냥 피는 존재가 아니라 의지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어렵지 않게 “칡꽃”은 칡꽃이면서 칡꽃을 넘어선 비유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시적 자아를 대변하고 있는 존재로 읽어야 더욱 의미 있게 읽히는 것이다. “칡꽃”이 시인의 다른 모습임을 가정하면 3연의 문장들은 시적 자아가 겪어온 고난과 아픔의 세월을 함유하는 표현으로 다시 살아난다. 칡꽃과 잡풀이 얼크러진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의 생애가 그러한 것이니 “낭떠러지에 집착”한 극적 모멘트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평범함보다는 예리함을 택하는 시적 자아의 취향은 “마음이 떠나/마음이 없어/텅 비어 있는//사월이나 오월처럼 차오르다가/시월이나 십일월처럼 비워내는//……지독한 모순”(「텅 빈」)을 오히려 더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역마산 숲길을 내달음쳐 내려오면
목화밭이 활짝 문을 열었다
살포시 내 손을 잡는 목화송이가
터질 듯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몽실몽실한 숭어리를 따서 입에 넣으니
달고 부드러운 목화 즙이 입안에 번졌다
목화 한 송이가
화, 하고 햇살처럼 피어올랐다
문득 꽃부리의 싱그러운 붉은 맛을
네 입에도 넣어주고 싶었다
저녁 햇살이 간질이는 목젖을 타고
꼴깎,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달콤함을 지켜보고 싶었다
때 아닌 함박눈을 그리워하며
여기저기서 꽃망울이 터지고
놀란 새들이 재 너머로 날아갔다
꽃망울을 펑펑 터뜨리며
너는 차츰 멀리로 달아나고
마치 그물을 펴듯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달콤한 초록」전문
이 작품은 목화 한 송이가 시적 자아의 몸을 통해 타자에게로 전이되는 과정을 통해 간절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목화 한 송이는 “목화밭→ 목화송이→ 목화즙”을 거쳐 시적 자아의 몸을 통과한 후 “화,하고 햇살처럼 피어”나 “꽃부리의 싱그러운 붉은 맛”으로 피어오른다. 그러나 사랑은 늘 멀리 있는 법이어서 쉽게 동일화가 되지 않는다. 자꾸 달아나는 안타까운 사랑……그러나 그것을 이제는 애달아하지 않는다. 이내 자신의 향기가 “땅거미가 깔리” 듯 “그물을 펴”서 그 사랑을 거둘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보면「달콤한 초록」은 아마 낯익음의 표현이 가장 원숙하게 도달한 자리처럼 보인다. 낯설음까지 다 밀어낸, 그러나 긴장이 결코 풀어지지 않는 촘촘하면서도 따뜻한 사유가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2. 따듯하고 성스런 성전의 날들
김가연이 시편들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사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타난다. 이들 기록을 통해 대강의 모습을 유추해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자리를 매고//어머니는 생솔가지를 때서/수제비국을 끓”이는(「수제비국」) 평범한 가정이었다. “장날이면 술 취한 어둠을 엎고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 흐린 개울둑을 따라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비틀거리면 동생과 나는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낮달」) 어머니는 뜨개질하시기도 하고(「어머니의 겨울」) 된장국을 잘 끓이시기도 하지만 농촌 살림을 접고 도회지로 접어든 뒤에도 “항아리”의 힘을 믿는(「항아리는 말씀이다」) 평범한 주부였다. 그렇지만 “열여섯에 대문도 없는 집에 시집와서 머리 행상 십 년 만에” 집 장만을 하는 억척과 강단이 있는 분(「문패」)이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외지를 돌아다니셨다.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그렇게라도 써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쓰고 다니시던 모자가 없이 덩그러니 남았있는 것을 시적 화자는 바라보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름진 아버지의 꿈을 안고 무작정 달려가던 겨울바람처럼 그 겨울 못 자국이 선명한 아버지의 모자”에 대한 인상은 두고두고 시적 화자의 뇌리 속을 떠돌고 있었던 것이리라.
아버지의 모자가 언제 다시 집을 나섰는지
바람벽엔 빈 나무못이 혼자 잠들고
애련히 떠나간 발자국만이 눈길을 뒤돌아보며
아득히 먼 길까지 쓰러져 있었다
주름진 아버지의 꿈을 안고
무작정 달려가던 겨울바람처럼
그 겨울 못 자국이 선명한 아버지의 모자는
어둡고 쓸쓸한 세상을 가로질러 달렸다
밤늦도록 아궁이 앞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뒷모습이
부엌문 사이로 얼핏얼핏 반짝이던
그날처럼 하늘이 차츰 무거워지고
점점 아버지의 시린 발자국을 닮아가는 내 꿈이
자욱한 연기 속으로 하얗게 피어나고 있다
또 눈이 오려나 보다
-「아버지의 모자」에서
“아득히 먼 길”이나 “어둡고 쓸쓸한 세상” 등의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무작정 달려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어머니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렇지만 시적 자아의 꿈은 어머니의 꿈보다는 아버지의 꿈을 좇고 있다. 아마 시를 생각하는 시적 자아에게는 “밤늦도록 아궁이 앞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뒷모습” 보다는 미지의 세상을 가로질러 건너는 “못 자국이 선명한 아버지의 모자”가 훨씬 더 시적이었으리라.
어머니가 인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아버지는 기다림이거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강물이 갈대의 흔들림 속에서 빛나던 저녁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배고프던 밤 슬픈 기억”(「기억의 저편」)을 시적 자아는 가지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바깥으로 떠돌 때는 “대문은 가슴을 열고 잠이 들”고 “먼 곳까지 귀를 열어” “점점 마른 기침 소리를” 내며 여위어(「초록, 잠들다」)가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적 자아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함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 한 장”을 가지고 있다.
시린 겨울을 지나온 아버지는
단풍 든 발을 아랫목에 밀어 넣었다
이불 속에서 가랑잎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른 저녁에 지핀 군불은 이미 재가 된 지 오래
구들은 간절한 기도처럼 온기를 품고 있었다
바람이 몇 차례 창문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말없이 들여온 어머니의 밥상을 말없이 받아든 아버지
늦은 밤 좁은 방은 된장 냄새로 가득 찼다
자꾸만 매운 내를 게워내는 아궁이 앞에서
어머니는 아궁이 가득 생솔가지를 밀어 넣었다
붉은 꽃을 피운 초록이 뜨거운 열기로
이맛돌을 지나 고랫등을 도는 동안
겨울밤이 한없이 깊어만 갔다
밖에선 연신 골바람이 휘몰아치는지
탄내 나는 슬픔은 자꾸만 역류하며
어머니의 가슴을 새까맣게 그을렸다
토수가 새치미를 하듯 구멍 난 슬픔의 틈을 메우는
어머니가 토닥토닥 아궁이 속 불을 달래는 소리 들렸다
-「온돌」1연
시적 자아는 이곳이 “따듯하고 포근한 성전聖殿” 이었음을 얘기한다. 이를테면 가장 가난하고 힘든 기억의 자리- “늦은 밤 좁은 방은 된장 냄새로 가득”차고 “자꾸만 매운 내를 게워내는 아궁이 앞에서/어머니는 아궁이 가득 생솔가지를 밀어 넣”은 곳이었음에도 그곳이 안온한 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족은 마치 ‘온돌’과 같은 것이어서 “이맛돌을 지나 고랫등을” 돌면서 추운 겨울밤을 붉은 꽃의 뜨거운 열기로 바꾸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시적 자아에게 어머니는 인고의 모습만을 보여 준 것은 아니다.
참 거룩하게도
울음이 기댄 자리마다
꽃이 피는구나
두 손 모아 기도하듯
피어난 별꽃
눈물꽃 만발한
산길을 오르면
보랏빛
꿈결에 듣는 어머니 목소리
-「도라지꽃」전문
3. 벌레들의 집, 대지적 여성성을 찾아
시인의 심성은「청개구리」에서 보듯 자동차 보닛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청개구리 한 마리 때문에 비오는 퇴근길에 흐르는 빗물 닦지 못할 정도로 섬세하고 여리다. 그렇지「겹벚꽃이 지고」에서의 “달처럼 둥근 허리를 가진” 관능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가족사적인 것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김 시인의 시편들에서 의미가 크게 갖는 것은 ‘어머니’라는 여성 화자가 시적 자아에게 전승되며 확산,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음의 두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은 동그랗고 따뜻한 밥그릇이다. 그 전설을 따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 어머니를 닮은 내가 있다 아궁이 앞에서 밥을 푸던 어머니의 모습이 작고 초라한 내 밥그릇에 포개진다 누추한 모든 것은 불꽃이 되고 숯이 되고 재가 되어 다시 아궁이에서 서로를 부등켜안는다 저승보다야 이승의 인연이 소중하듯 환희와 고통의 날들을 끄덕이면서 다시 물결무늬를 새긴 밥그릇을 굽는다 뜨거운 불길이 혈관을 타고 달리는 것을 가늠하며 작은 밥그릇에 밥을 담는다 밥그릇 하나에 비비고 볶고 지지는 것들을 담아내며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내 딸의 딸이 이어 나갈 동그랗고 따뜻한 밥그릇을 감싸든다
-「밥그릇에 대하여」전문
이 시에서 ‘밥그릇’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어머니에게로, 다시 나에게로 내려와 내 딸과 “내 딸의 딸”에게로 이어져 내려가는 계승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이 “작고 초라한” 밥그릇일지라도 “환희와 고통의 날들을 끄덕이면서 다시 물결무늬를 새”기고 “뜨거운 불길이 혈관을 타고 달리는 것을 가늠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밥그릇’은 여성성 자체이며, 이 땅 여성들의 힘이고, 원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쑥국을 끓이던 어머니가
아직 새싹이 다 돋지 않은 둑길에서
꽃샘추위로 쪼그리고 앉아 쑥을 뜯고 있다
무딘 칼끝을 조심조심
애꿎은 뿌리 위에 찔러 넣으면
으즉, 하고 시푸르게 드러눕는 봄
칼자국이 스며있는 쑥은
조촐한 저녁 밥상에 쑥국으로 올랐다
(… 중략 …)
겨울과 봄의 그네에 걸터앉아
아침저녁으로 올라오던 쑥국을 생각하다가
안개 속 꿈인 듯 깨어보니
꽃샘추위를 깨고 나온 병아리 같은 봄이 피어오르고
갑자기 내 몸에서 쑥 냄새가 났다
-「쑥국」전문
‘쑥국’은 가난한 봄 식탁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보릿고개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봄의 “가난은 겨울보다 더 시리고” 그러기에 이 땅의 어머니들은 “풋나물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 “어머니의 몸에서는 짙은 쑥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데 중요한 것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냄새가 시적 자아에게로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어머니의 모습이 어느덧 시적 화자의 모습으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물림은 어머니가 가진 전 생애가 시적 화자로 옮겨옴을 의미한다. 앞서 얘기한「밥그릇에 대하여」에서 어머니의 밥그릇이 내게로 계승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전설 하나가
풀잎 위에 눕는다
까마귀가 날고
바람이 돌아앉는다
불을 덮고
그녀가 잠든다
무슨 꿈을 꾸는 지
자꾸만 몸을 접는다
불의 눈동자를 쓰다듬으며
별빛 가득한 육개장 국물을 마신다
붉은 슬픔이 꾸욱 식도록 누르며 내려간다
-「불의 눈」전문
꽃피울 일 없어 몸이 시들어 갑니다
초록의 기억은 아직도 푸른데
계절의 길목을 지키는 새들의 노래가
마음을 벱니다
피 흘리는 마음들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위로합니다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가 꽃이 핍니다
비로소 내 몸이 빈터가 됩니다
-「나목」전문
인용된 두 작품은 상당히 상반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의 작품「불의 눈」은 고통과 아픔을 인내하는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까마귀가 날고/바람이 돌아앉는” 분위기는 음울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불”은 절망, 고통, 혹은 죽음의 상징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인내하느냐의 자세 문제인데 여자는 이를 “자꾸만 몸을 접”든지, “불의 눈동자를 쓰다듬으며/별빛 가득한 육개장 국물을 마”시든지 한다는 것이다. 혼자서 극기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밖에 대고 떠들지 않고 자신의 탓으로 삭히며 “붉은 슬픔”을 꾹 견디는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작품「나목」은 이와는 상반되게 모든 것들이 다 가고 나서 ‘빈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 흘리는 마음들이 서로를 쓰다듬”어 위로하고 있으니, 그리하여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가 꽃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것이다. 타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니 비로소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됨을 얘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상반 된 인식이기는 하지만 결국 이 두 작품은 인내하며 견디는 과정과 비워내며 참자아를 발견해 내는 과정까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 둘의 접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음의 작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흙이 되리
산비탈 호젓한 바람 아래 누워
잘 익은 한 줌 흙이 되리
어머니 숨결 같은
따스한 흙이 되어
벌레들의 집이 되고
싸리나무의 고향이 되리
봄이면 들꽃의 춤이 되고
여름 내내 새들의 노래가 되어
풀잎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손길로
순하디 순한 사랑이 되리
그리하여
늦가을 감나무 너머로
빨갛게 익어가는 하늘을 지나
추운 겨울을 도닥이며
연분홍 꽃잎에 젖을 물리는
복숭아나무 흙밥이 되리
-「흙밥」전문
이 작품에서 여성성은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대지적인 모성성과 만난다. 시적 자아는 모든 식물의 어머니인 흙이 되기를 간구한다. “벌레들의 집”과 “싸리나무의 고향”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온전히 자신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나무에게로 옮겨가면 “연분홍 꽃잎”이 되고 초록의 광휘가 되고 감나무나 복숭아나무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앞서 살핀「나목」을 생각해보라. 죽어서 더 큰 숲이 되고 대자연이 될 것이다. 시적 자아가 나아가고자하는 대지적 모성성이다.
「말을 걸다」라는 작품에서 이 여성성은 다가오는 세월에 익숙하게 말을 건넨다. 그것이 비록 슬픔이라하여도「불의 눈」보다는 덜 고통스럽게 이를 잘 견디며 극복하는 것이다. 이에 유의하여 살펴보면 “나무에게 꽃에게 풀에게//바람에게 어둠에게 슬픔에게//차츰 말 거는 일이 잦아지네”나 “목화꽃 같은 별에게 또 말을 걸고 있네”에서 보듯 자연에의 기탁이나 조응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에코이즘과 페미니즘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 양자는 둘 다 생산성과 치유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쉽게 조응될 수 있지만 이를 시에 도입하여 창작하는 여성 시인들은 많지가 않다. 나는 최근 몇 편의 논문을 통하여 21세기 구원의 시학 한 방향이 에코페니즘(eco-feminism)에 있음을 밝힌 바 있다.(「한국 여성시의 특징적 몇 국면과 미래시학의 방향」.『현대문학이론연구』제59집, 2009.91면-118면). 이제 첫 행보를 내딛는 감 시인의 시편들이 바로 이 대지적인 모성성을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 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매몰되고 중심이 해체되는 21세기에는 부분보다는 통합, 단절보다는 소통이 필요한데 김가연 시인의 경우 이에 대한 대안을 기종의 시편들에서 상당 부분 보여주고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잘 형상화 시킬 능력이 있음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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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김가연 시편들에서는 잘 익은 모과와 같은 빛깔과 내음이 있다. 장독대와 아궁이와 낮달과 도라지꽃이 있다. 자연과 내통하고 있되 그것만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그의 노래는 아주 신선하고 발랄하다. 마치 오래된 가곡풍의 노래가 오페라처럼 신선한 분위기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다. 오래된 풍경을 신선하고 낯설게 만드는 법! 자기 갱신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시인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익숙한 풍경으로 독자의 시선을 잡는 것은 낯설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보다는 힘들다. 그런데 그녀는 이러한 작업을 능숙하게 해낸다. 오랫동안 정련의 과정을 거쳤다는 얘기다.
― 이지엽(경기대학교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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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가연 시인∥
∙ 본명 김인옥
∙ 충남 서산 출생
∙ 2009년《열린시학》신인상 등단
∙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수료
∙ 흙빛문학회, 진단시문학회, 서안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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