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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회합과 단원 (179-194쪽) |
여기서 다루는 회합은 상급 평의회 회합도 포함되겠지만 주로 쁘레시디움 회합을 의미한다.
단원은 쁘레시디움 회합에 매주 참석해야 하므로 회합은 단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주회는 레지오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모임이다. 회합은 레지의 조직을 강화하고 힘을 양성하는 훈련장이고 단원들을 레지오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수련도장이다. 회합을 통해 단원들은 성모군인으로 양성되며 단원 서로가 연결된다.
1. 회합을 존경하자 (179쪽 ,1항)
회합과 단원 사이에는 일치가 있어야 한다. 부부 사이에 존경심이 없이 서로 무시한다면 일치하지 못하고 가정이 파탄되기 쉽듯이 매주 갖는 회합도 단원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 조직이 와해될 수 있다. 자연 질서 안에서의 힘의 전달은 그 연결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회합과 단원 사이에 일치를 위한 효율적 연결 장치는 존중심과 충성심이다. 레지오 조직은 회합에 대한 단원들의 존중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회합은 늘 성모님을 모시고 진행하므로 건성으로 참석할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참석해야 한다. 단원들이 회합을 경시하면 출석률이 저조하고 분위기가 산만해지며 일의 의욕과 효과도 감소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단원들은 레지오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2. 쁘레시디움은 존경받도록 힘써야 한다. (179쪽, 2항)
쁘레시디움이 단원들로부터 존중되려면 회합의 운영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쁘레시디움은 단원들을 양성하는 학교이다. 프랭크 더프의 말대로 레지오 시간은 수업 시간이다. 즉 레지오 이외의 시간을 더 훌륭하게 살수 있는 방법을 익히기 위한 수업이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49). 레지오 수업 시간인 회합을 통해 단원들의 수준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단원들은 쁘레시디움을 존중한다.
교본 본문은 쁘레시디움의 규칙 존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
"단원이 쁘레시디움을 존중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 단원에게는 레지오의 생명이 많이 전달된다. 레지오 정신의 본질적 요소는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쁘레시디움은 그 자체로서 단원들의 존중을 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단원들에게 그만큼 큰 감회력을 발휘할수가 있다. 쁘레시디움 자체가 레지오의 운영 규칙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단원들에게만 존중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모래위에 집을 짓고자 하는 것이다. 이 교본 전체를 통하여 회합 순서나 전체적 진행 절차를 규정대로 엄격히 따라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3. 쁘레시디움은 규율을 지켜야 한다.(180쪽, 3항)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규칙을 어기거나 단장의 지도력이 결핍되면 단원들의 질이 저하된다. 그런 쁘레시디움과 단장은 단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다.
4. 쁘레시디움은 성실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180-181쪽, 4항)
쁘레시디움은 꾸준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주회는 실제로 모임을 가질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이유로도 걸러서는 안된다. 만일 교회의 큰 행사와 시간이 중복되거나 국가의 명절 또는 천재 지변 등으로 정해진 주회 일시에 도저히 회합을 가질 수 없을 경우에는 다른 날로 옮겨서 회합을 가져야 한다. 질병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단원들 대다수가 결석한 경우라도 회합을 가져야만 한다.
적은 수의 단원이라도 회합을 하는 것이 전혀 안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 회합에서는 처리할 일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쁘레시디움이 그 가장 중요한 의무를 이행한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단원들이 쁘레시디움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심이 더 커지고 앞으로의 회합에서는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쁘레시디움이 꾸준함의 본보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5. 난방과 조명 (181쪽, 5항)
단장은 쁘레시디움의 관리자로서 주회가 정시에 시작될 수 있도록 회합실의 난방, 조명, 좌석 배칠 등 모든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단장이 못할 경우 간부에게 맡길 수 있다.
6. 좌석 배치(181쪽, 6항)
회합실은 밝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좌석은 단원들이 앉을 만한 의자여야 하며 긴 의자도 괜찮다. 그러나 학생용 걸상이나 간이 의자는 무질서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조명, 난방, 좌석, 설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즐겁고 순조로운 회합진행에 분심을 들게 할 것이고 질서있는 레지오 정신도 길러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 단체 모임은 교회 건물에서 갖게 된다. 레지오의 회합실 역시 성당 부속 건물에 두는 것이 관례이다. 가정에서 회합을 갖는 것은 부적당하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단원의 가정에서도 가질 수 있겠다. 그 경우 비 단원 가족들에게 활동 보고 내용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
7. 주 회합 시간은 단원들이 편리한 시간으로 정한다. (181-182쪽,7항)
쁘레시디움은 정기 주회 일시를 결정할 때 단원들이 편리한 요일과 시간으로 정해야한다. 대부분의 단원들은 낮에 일을 하므로 회합은 대게 저녁때나 주말에 열린다. 직장에 다니지 않은 가정주부들은 평일 낮에 회합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저녁이나 밤 근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들에게도 알맞은 시간에 회합을 갖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원들이 모두 출석하기에 편리한 시간에 회합을 갖는 것이다.
직장의 근무 시간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신자들도 고려해야한다. 교본에 의하면 그들은 단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주회 시간이 서로 다른 두 쁘레시디움이 협력해야한다. 이 경우 그 단원은 어느 한 쁘레시디움에 적을 두고 쉬는 시간에 따라 쁘레시디움을 번갈아 출석하면 된다. 여기서 수반되는 업무는 부단장이 맡는다.
쁘레시디움 주회 일시와 꾸리아 등 상급 평의회의 회합일시가 중복되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주회 일시를 바꾸어야한다. 평의회에 출석하는 것은 쁘레시디움 간부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8. 회합은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낸다. (182쪽, 8항)
쁘레시디움 회합의 최대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회합 진행 시간은 지정된 개회 시간부터 1시간 반을 넘기지 않도록 해야한다. 만약 정해진 개회 시간보다 늦게 회합을 시작한다면 늦은 시간만큼 줄여서 회합을 끝마쳐야 한다. 따라서 회합은 정시에 시작하여 한 시간 반 이내로 끝마쳐야 한다. 그런데 회합을 순서에 따라 요령 있게 진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일거리를 자주 줄이거나 진행을 서둘러야 하는 쁘레시디움은 대개 할 일이 과다하거나 단원수가 너무 많은 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상급 평의회와 의논하여 쁘레시디움을 두개로 분할해야 할 것이다.
9. 회합 시간의 길이(182쪽, 9항)
주회의 지속 시간은 너무 짧은 것도 문제이다. 주회 지속 시간의 최소한도 규정은 없다. 그러나 회합이 자주 1시간 이내에 끝난다면 어딘엔가 잘못된 점이 있다. 레지오 기도문과 영적 독서, 회의록 낭독과 훈화만 하더라도 30분이 걸리는데 나머지 주회 진행이 30분 이내로 끝나 버린다면 그것은 단원수가 너무 적거나 단원들의 주간 활동 의무 소홀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해결책은 단원 모집을 하거나 단원들이 2시간 이상의 주간 활동을 이행하여 보고를 제대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10. 지각과 조퇴 (183쪽,10항)
불가피한 경우에 지각 또는 조퇴를 하는 단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주 그렇게 하는 단원은 좋지 못한 표양을 보이는 것이다. 회합은 동료 단원들과 더불어 성모 마리아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결석뿐만 아니라 지각이나 조퇴도 동료 단원들 및 성모님과 함께하는 복된 시간을 놓치는 것이 된다.
시작 기도와 마침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레지오의 정신에 위배되므로 지각이나 조퇴를 하는 단원도 반드시 레지오 기도를 바쳐야 한다. 시작 기도 이후에 출석한 지각 단원은 로사리오 기도를 생략한 시작 기도 전부를 개인적으로 바쳐야 한다(우리나라에서도 한발 뒤로 물러서서 기도를 바친다). 지각 단원은 로사리오 기도를 회합에 참석하러 오는 동안에 바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로사리오 기도를 주회에서 공동으로 바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한편 회합이 끝나기 전에 조퇴하는 단원은 먼저 단장의 허가를 받고 마침 기도를 개인적으로 바쳐야 한다(우리나라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기도를 바친다).
11. 바른 질서는 규율의 뿌리이다 (183-185쪽,11항)
강력한 질서 체계는 레지오의 특성이다. 레지오는 엄격한 질서와 조직 체계 속에서 교본에 명시된 규정에 따라 규칙을 어김없이 지키는 단체이다. 레지오는 회합을 원리 원칙대로 진행한다. 만약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이유로 타협 심리가 작용하여 회합 진행 규율을 어기게 된다면 질서 체계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레지오 규율은 성모군의 군법이다. 레지오 깃발이 질서 정연한 것은 단원 모두가 군법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레지오가 꾸준히 발전하면서 교회에 공헌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러한 규율의 정신에 있다.
교본은 강력한 질서 체계가 레지오의 기본 요소임을 밝히면서 "레지오는 규칙의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질서 체계를 마련하고 그 규칙의 모든 세부 사항까지도 빈틈없이 지키는 정신을 의무적으로 요구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레지오는 회합을 교본의 규율대로 운영함으로써 성모님의 정신을 배운다. 레지오는 조직적이고 외적인 규율뿐 아니라 내적인 규율도 중요시 한다. 규율의 정신은 값진 보물과 같다. 레지오는 규율의 정신면에서 보화를 지니고 있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레지오는 다음 4가지 방식으로 단원들 안에 규율의 정신을 기른다 :
1) 회합의 차힘을 규율에 따라 마련한다,
2) 하나하나의 업무 절차를 질서있게 이어간다.
3) 규정된 시간에 따라 일을 꼼꼼하게 처리한다,
4) 질서의 원천인 마리아의 정신을 스며들게 한다.
신앙적인 목적에 헌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규율을 지킨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지만 반면에 규율이 없다면 단원들의 행동은 통제력을 잃고 자연 본성의 충동에 내맡겨져 좋지 못한 결과를 낼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의 모든 구성원들은 바른 질서가 규율의 뿌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2. 시간을 지키자. (185쪽,12항)
레지오는 규율과 질서를 중요시하므로 주회 진행시간을 엄수할 것을 요구한다. 회합의 시작에서 마침가지 순서에 따라 시간 안배를 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단장은 정해진 시각에 회합을 시작하고 적절한 때에 까떼나를 바치며 정해진 시간 안에 회합을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단장은 자기 앞에 시계를 놓아 두고 회합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시간 지키기와 질서의 원칙은 회합의 시작에서 끝날때까지의 모든 절차에 적용되어야 한다. 만일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회합 진행에 있어서 시간 지키기와 질서의 원칙을 어긴다면 단원들이 충고를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원들도 그것을 돕고 조장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13. 기도는 정성스럽게 바치자. (186쪽,13항)
단원들은 회합에서 레지오의 기도문을 교송하거나 합송한다. 기도문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문의 내용을 경건한 마음으로 새기면서 또록또록하게 발음해야 한다. 기도문을 외우고 있다고 해서 빠른 속도로 합송하거나 빨리 해치우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
예컨대 로사리오 기도의 성모송을 교송할 때 그 전반부가 채 끝나기 전에 후반부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교본에 의하면 로사리오 기도는 성모상이 놓인 자리에 실제로 나타나 계신 성모께 바치는 것처럼 엄숙하고 존경스런 태도로 바쳐야 한다.
교본 본문은 기도문 합송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성급한 사람들은 기도를 하는 데도 침착성이 없다. 이렇게 기도를 잘못 이끌어 가면 전체 쁘레시디움으로 하여금 불경스런 태도로 기도를 바치게 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실제로 얼마간 일반화되고 있는 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문을 너무 빨리 바치는 일이다. 이는 성모상 대신에 성모님이 직접 그들 가운데 나타나 계신 것처럼 기도하라고 한 레지오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된다."
14. 기도는 회합과 한 덩이가 되어야 한다. (186-187쪽,14항)
레지오 조직은 회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회합의 일치성은 레지오 조직의 필수 조건이므로 기도와 회합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로사리오 기도를 포함한 모든 레지오 기도는 반드시 회합실에 레지오 제대 앞에서 정해진 진행순서에 따라 바쳐야 한다. 시작 기도와 훈화를 합동으로 먼저 듣고 강복을 받은 후 주회실로 간다든지 로사리오 기도를 성당의 감실 앞에서 바친 후 회합실로 가는 것은 기도와 회합 간의 일치성을 깨뜨리는 것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교본 본문은 회합의 통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
"회합이 하나의 모습으로 통일 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회합의 진행절차가 두드러지게 기도하는 특성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대부분의 기도를 다른 장소에서 바친다면 그러한 통일성에서 오는 열매를 잃고 만다. 그러한 변동은 회합의 전체 성격을 바꾸게 되며, 나아가 레지오 자체를 변질시키고 만다."
15. 다른 신심 행사 중에 바쳐진 레지오 기도문 (187쪽, 15항)
또한 교본은 교회의 신심 행사에서 이미 레지오 기도를 바쳤다고 할지라도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생략해서는 안 되며 다시 바쳐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는 기도와 회합의 일치성과 통일성을 재삼 강조한 것이다. 레지오 기도에 있어서 일치성과 통일성을 잃은 변질된 회합이라면 아무리 큰 업적을 낸다 해도 이미 레지오 마리애는 아닌 것이다.
16. 회합에서 레지오의 기도문 외에 다른 특별한 기도를 바치는 문제 (187-188쪽,16항)
교본 본문은 레지오 회합 중에 기도를 어떤 특별한 의향으로 바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
레지오 회합에서 바치는 통상 기도는 레지오의 모후이신 복되신 성모님의 의향을 위해 바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문에 특별 기도를 의향으로 바칠 수 없다. 또한 레지오의 통상 기도문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특별 기도를 덧붙여서도 안된다. 다만 레지오와 관련된 특별 기도가 필요한 때에 한하여 짧은 기도를 추가하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추가 기도는 자주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레지오와 관련된 특별 기도가 필요한 때란 어느 경우인가?
꼰칠리움에서는 아직 한 번도 레지오의 기도문에 짧은 기도를 추가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짧은 기도를 추가해야 할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소속 쁘레시디움 단원이 중병에 걸려 위독하거나 사망했을 경우 등 주 회중에 전체 단원의 긴급한 기도가 필요한 경우가 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한 번의 기도를 끝나야 한다'(Once off)고 강조하고 있다.
17. 성실한 보고가 겸손에 어긋나는가? (188쪽,17항)
활동 지시와 보고는 예수님이 제자들 양성을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루가 10장 참조). 활동보고는 레지오의 활동에 대한 흥미를 지속시켜 주고 회합에 정보를 제공 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으며 단원들을 훈련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하나 하나의 보고는 회합이라는 건물이 벽돌이다. 따라서 활동 보고가 없으면 회합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프랭크 더프에 의하면 레지오 조직은 단원들의 활동을 영성화 하고 세속적인 나약함에 균형을 잡도록 만드는 두 가지 기능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활동 보고를 통하여 이 두 가지 기능이 제 몫을 하게 된다. 그는 또한 활동 보고에는 영성적인 면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각 단원은 다른 단원들의 활동 보고 내용을 잘 살펴 모든 것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였다(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p.228-229).
어떤 단원들은 자신이 실천한 선행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숨겨야 하는"(마태6,3-4) 겸손의 덕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단치 않은 활동보고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단원들도 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교본 본문은 '겸손은 가장한 교만'이라고 하면서 단원들이 활동 보고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
"활동 보고가 겸손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단원들은 교만이 그 생각 속에 교묘히 작용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하며 아울러 쁘레시디움의 자상한 지도를 벗어나려고 하는 욕구가 암암리에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참된 겸손이라면 그런 그릇된 행동을 보이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행동이야말로 만일 다른 사람들이 모방하게 되면 쁘레시디움을 망치고야 말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교적 단순성은 단원에게 그러한 특이한 행동을 삼가도록 하고 조직체의 규칙과 관례를 기꺼이 따르도록 하며, 또한 각자가 회합을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될 기능을 다하도록 요구한다. 하나하나의 보고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회합을 쌓아올리는 한 장의 벽돌이 된다."
18. 회합은 일치의 표시이다. (188-189쪽,18항)
프랭크 더프는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재치있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 줄 알았다.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고 친절과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는 편지를 쓸 때 '나'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으며 레지오 단원들간에는 서로 형제, 자매로 부르도록 하였다. 단원들간의 화합을 위해서였다(cf. Hilde Firtel, A Man for Our Time, pp.67-68).
사랑과 일치의 표시인 화합을 중요시한 그였기여 레지오 회합이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것을 당부하였다. 교본 본문은 일치의 표시인 화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
"화합이란 회합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정신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큰 힘을 발휘한다. 레지오에서 말하는 능률도 이 화합의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합을 깨뜨리고 얻은 성과란 그 가치가 의심스럽다. 레지오에서는 화합의 정신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결점들은 마치 전염병처럼 피해야 한다. 독선, 흠잡는일, 화를 내는 성질, 비꼬는 태도, 잘난 체하는 것 등의 결점이 회합에 끼어들면 화합이 잘된 분위기가 금방 사라지고 만다."
19. 동료 단원의 활동에 모든 단원들이 관심을 갖자. (189쪽, 19항)
회합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고 회합 질서를 문란시켜서는 안된다. 회합 도중에 잡담을 하거나 사사로이 웃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비록 다른 단원들의 활동 보고가 따분하고 흥미없을지라도 경청함으로써 친밀한 유대감과 직접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회합에서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일은 일부 단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모든 단원들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 반드시 비밀을 지킨다. (190-192쪽, 20항)
주회의 활동 보고에서 단원들은 활동 대상자의 인적 사항과 활동 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활동 대상자 중에는 신앙 생활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활동대상자의 인적사항과 활동 내용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활동 대상자 자신은 물론 레지오 마리애 자체가 타격과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단원들은 비밀을 지켜 주어야 한다.
상훈에서는 "회합에서 토의된 사항이나 레지오 활동과 관련되어 알게 된 모든 일에 대하여 반드시 비밀을 지킬 것"(109쪽 ; 교본 35장 7항, 299쪽)을 강조한다.
그뿐 아니라 비밀 엄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레지오 단원의 의무 가운데 하나로서 "레지오 단원은 회합에서 들었거나 활동 중에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엄격히 비밀을 지켜야 한다"(194쪽 ; 교본 28장 5항, 199쪽)고 못박고 있다. 그러므로 단장은 매월 첫 주 회에서 상훈을 의무적으로 낭독할 뿐 아니라 신입 단원이 있을 때마다 유의사항으로서 비밀 엄수를 당부해야 할 것이다.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알게 된 일을 밖에서 말하는 것은 레지오에 대한 배반 행위이다. 군대의 기밀 누설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활동 수첩을 사용할 때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그 내용이 비 단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보관해야 하며 관련된 사람이 있는 앞에서는 기록을 하지 말아야 한다(194쪽 참조 ; 교본 28장6항, 199-200쪽 참조)
어떤 이들은 이웃사항과 비밀 보장의 견지에서 활동 대상자들의 인적 사항이나 활동 내용을 주회 중에 공개적으로 보고하지 말 것을 주장하지만 교본 본문은 그러한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왜냐하면 모든 조직체는 당면 사례들을 논의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합에서 맞갖는 보고의 의무를 없애는 것은 단원의 지도, 감독 기능까지 없애는 것이 되고 숫제 쁘레시디움 자체를 해체해 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단원들의 활동을 주 회에서 검토하는 일이 없다면 여러 가지 무분별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의 비밀 보장을 위해서는 쁘레시디움이 활동보고를 바탕으로 단원들을 교육하고 장악해야 한다. 한마디로 쁘레시디움은 이웃 사랑과 비밀 엄수의 단위일 뿐 아니라 그것들을 붙드는 밧줄이다.
사적인 비밀에 붙여야 하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영적 지도자에게 일임하는 것이 좋다.
21. 발언의 자유 (192쪽, 21항)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자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님 나라 확장 사업을 위해 복무하는 영적 군대이므로 쁘레시디움의 분위기는 딱딱한 군대식이 아니고 회기 애애한 나자렛 성가정의 가족적 분위기여야 한다.
회합에서 단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발언해야 한다. 발언 없이 듣기만 한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고 활기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원들의 자유로운 발언과 공정한 논평은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도전적인 어조로 발언이나 논평을 한다든지 혹은 간부들에 대한 존경심을 져버리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단장의 경험 부족으로 주 회 진행이 서툴거나 실수를 범하게 될 때 역대 간부나 고참 단원이 모든 단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럴 경우 주회가 끝난 후 개인적으로 조언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부득이 주 회 중에 지적해야 할 경우 겨로 단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또한 단장은 단원들의 올바른 발언과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단원들에게 순명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합리화시킨다면 주회의 분위기는 딱딱한 군대식이 되고 발언의 자유도 구속당하게 될 것이다.
22. 회합은 단원 생활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192-193쪽, 22항)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 생활을 지탱하는 밧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밧줄이 바로 쁘레시디움 회합이다. 레지오 회합은 단순한 인간의 노력을 초자연적인 성취로 변화시켜 주는 영적 발전소이다. 단원들은 회합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부터 뒷받침을 얻을 수 있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풍부한 기도, 의식 절차와 독특한 분위기, 활동 보고, 축복 받은 우정, 규율의 힘, 활발한 관심, 정연한 질서 등으로 이루어지는 쁘레시디움 회합을 통하여 단원들은 뒷받침을 얻게 된다. 쁘레시디움 회합의 구성 요소들은 노력이 허비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단원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마음을 굳게 떠받쳐 준다."
레지오의 기본 요소 중 하나로서 단원 생활의 지탱 밧줄인 쁘레시디움 주회에 대해 교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쁘레시디움은 풍부한 기도, 신심에 찬 말씨, 그리고 형제애의 감미로운 정신으로 조성되는 초자연적 분위기 속에서 주간 회합을 개최한다. 이 회합에서는 각 단원에게 활동을 배당하고 또한 각 단원으로부터 활동 보고를 받는다. 이 주회는 레지오의 심장이며 여기서 생명의 피가 모든 정맥과 동맥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간다. 주회는 빛과 동력이 생성되는 발전소이다. 주회는 레지오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대어 주는 보화의 곳집이"(71쪽 ; 교본 8장 5항, 53쪽)
레지오는 회합을 통해 성공적인 활동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단원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이런 확신이야말로 꾸준한 레지오 단원을 만드는 근본 바탕이 된다. 회합을 통해 양성된 단원들이 충실히 활동한다면 성모님이 원하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3.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이다. (193-194쪽, 23항)
레지오 마리애는 개인적 사도직 보다는 단체적 사도직을 더 강조한다. 왜냐하면 레지오는 각 개인을 하나의 조직체 안에 결속시켜 단체적인 사도직을 수행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단체적 사도직과 개인적 사도직의 관계는 전례와 개인 기도와 관계가 비슷하다.
그리스도 신비체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둘 이상의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듯이(마태 18,20 참조) 신비체의 어머니인 성모님 역시 그러한 모임에 함께 계신다(128쪽 참조; 교본 240쪽 참조)
레지오는 초창기부터 성모상을 모시고 회합을 해 왔다. 세계 최초의 회합에서 단원들이 성모님을 위해 봉사하고자 회합실에 들어섰을 때 놀랍게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상이 두 팔을 벌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 성모상을 통해 성모님의 나타나심 즉 성모님의 현존을 깨달았으며 성모님의 모성적 보살핌을 느꼈다. 그 후로 세상 어디서나 줄곧 그와 같은 성상을 모시고 회합을 실시 하였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회합에 참석함으로써 성모님을 만나게 된다. 모임의 시작에서 끝까지 성모님은 줄곧 단원들과 함께 계신다. 성모님은 회합을 통하여 단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다. 성모님은 당신의 봉사자들과 함께하려 하신다. 단원들이 모인 쁘레시디움에 성모님은 기꺼이 나타나시고 현존하신다. 그리고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의 모성적 보살핌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지속된다.
성모님은 당신께 기꺼이 협조하는 이들의 봉사를 통하여 성자를 세상에 낳아 주는 임무를 계속 수행하신다.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의 그러한 임무를 돕고자 단원들은 성모님 손에 맡겨 드린다. 단원들은 성모님의 손발이 되어 성모님의 임무를 도와드리고 성모님은 쁘레시디움을 통해 단원들에게 은혜를 전달해 주시고 모성적 보살핌을 재현하신다. 따라서"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의 일면이 나타나시는 것"이다.
프랭크 더프는 "이 말은 레지오 단원들이 어떤 특정한 임무를 띠고 함께 활동을 펴고 있는 장소나 다루고 있는 문제에 성모님도 자리를 함께 하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성모님의 위력이 발휘되기 때문"(cf. F. Duff, Victory through Mary, p.333)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경우 쁘레시디움 회합에 성모님이 함께 계셔서 도와 주신다는 영신적인 원리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