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집단에서 자기네들끼리 정해 놓고 자기네들끼리
사용하는 언어가 소위 말하는 ‘은어’다.
군대에도 이 은어는 있고, 늘 대화 속에 끼여든다.
그것들은 풍자성이 짙기 때문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눈을 흘기듯이 어떤 울분을 뒷구멍에서
폭발하게 만드는 언어들이다.
* 도루목이다.
‘도루목’ 이라는 바닷물고기 이름에 ‘이다’라는 조사가 붙은 말이다.
지금은 도루목이 꽤 값비싼 고기가 돼 있지만,
당시 군대에 있어서는 석식(저녁밥)을 장식하는 생선 중에서
제일 하찮은 고기였다.
대가리와 지느러미뿐인 이 고기는 맛도 없거니와, 국 속에서
윤곽조차 찾아볼 수 없어서 고기 다운 맛이라곤 전혀 없다.
‘애써 봐야 헛일이다’, ‘내겐 이익이 없다’라는 뜻이 되겠는데,
앞에다 ‘말짱’이라는 말을 붙여 ‘말짱 도루목이다’라고 하게 되면
그 뜻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 새십이다.
‘새’라는 말과 ‘십(강하게 발음)’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말이다.
‘십’을 강하게 발음하면 속된 말로 여자의 성기를 뜻하고,
또 남녀간의 교합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새들의 짝짓기
행위를 말한다. 우리가 보아온 조류의 짝짓기 행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만다. ‘아무 흥미 없다’, ‘얻어지는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면 좋고, ‘도루목이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이해가 간다.
* 장화 신고 건너갔다.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이 나올 때 쓰는 말이다.
이들 고기가 사병들에게 배식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방법은, 취사반에서 일단 삶아낸 고기를 잘게 썰어 식깡
뚜껑에 담아 중대 일직하사에게 주고, 일직하사는 그것을
각 소대별로 분배하고, 소대에서는 그것을 다시 각 분대별로
분배한다.
둘째 방법은, 썰어 놓은 고기를 국에 휘저어서 배식하는 것이다.
첫째 방법은 통상적인 배식 방법이고, 이 둘째 방법은 배식해
줄 고기의 양이 예상외로 적다고 생각할 때(어떤 이유로
적어지게 됐는지 모르지만) 사용하는 배식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다 보면 최고 많이 먹는 자가 세 점
정도이고, 대개는 기름만 둥둥 뜰뿐, 아무리 스푼을 휘저어 봐도
고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다.
가마솥에서 푹 삶아져야 할 돼지, 닭, 소가 장화를 신고서 가마솥을
지나가 버리고 부재했다는 뜻이다. 돼지와 소는 장화를 두 켤레
신었을 것이고, 닭은 한 켤레를 신었을 것이다.
동태, 꽁치, 갈치 등이 나올 경우엔 ‘헤엄쳐 지나가 버렸다’ 라고 한다.
고기의 부재에 관해 은밀한 조크를 던지고 있는 이 말은,
훈련소에선 들어 볼 수 없고, 기성부대에 가서야 들을 수도,
또 사용할 수도 있다.
* 잘 빠졌다.
“아야아야 해서 어찌 나왔냐!”
“완전군장으로 빠졌구나. 나올 때 검문소도 없었나 보지?”
“넌 판초우의(비옷) 뒤집어쓰고 나오다가 검문소에 걸렸지?
와이루(뇌물) 쓰고 나온 새끼!”
즉, 어머니의 뱃속을 나올 때를 일컫는 것으로,
아니꼬운 녀석에게 한마디 던져주거나, 즉석에서 한마디를
건네줄 계급이 되지 못할 경우에 뒷전에서 “참 잘 빠졌지!”하고
수군대는 야유의 상징 같은 말이다.
‘잘 나왔다’ 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 시피엑스(CPX)
원래 군사 용어다. ‘작전연습(Command Post Exercise)’ 이라는
영어의 약자가 ‘CPX'다. 시피엑스에는 사단 시피엑스,
군단 시피엑스, 전군 시피엑스가 있다. 시피엑스가 발령되어
비상이 걸리게 되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완전군장을 갖추고,
그러니까 전쟁에 임하는 장비를 갖추고 집합해야만 한다.
군대에서는 모든 일이 ’집합‘으로 시작되고 ’해산‘으로 끝난다.
기압을 받을 경우에도 그렇다. 은어에서 “오늘 시피엑스가
걸린다” 라고 하면, 기압을 받기 위해서 집합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통뼈
두 가닥으로 되어 있지 않고 통처럼 한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는
뼈를 ‘통뼈’ 라고 한다. 한마디로 ‘거물급’을 뜻하는 말이다.
‘용가리(공룡)’ 라는 말이 앞에 붙어 ‘용가리 통뼈’,
또는 ‘코끼리’가 앞에 붙어 ‘코끼리 통뼈’ 라고 하면 그 묘미가
더욱 돋보인다.
*퉁수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
퉁수(퉁소)는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높은 사람들의 잔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너는 지껄여라,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다는 뜻이며,
고참이나 상관이 잔소리를 하는 동안에도 군복무 기간은
흐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