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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24회
 
 
 
카페 게시글
고향 소식란 스크랩 우리 마을 땅 이름 이야기
李柱成 추천 1 조회 284 15.09.13 16:0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경남 남해군(南海郡)고현면(古縣面)에 있는 도마 학구 아홉개 마을 의 우리땅 이름 들을 알아본다.

 

 

(이어리. 伊於)

마을형상이 마치 잉어가 노니는것 같다하여 이유리. 또는 잉어리.라고 불리다가.조선 태종 13년 (1413)고현면 설치때 이어리.로 고쳐 불려지고 있다.지금 마을 중심이 되는 등허리를 *여엉등*이라 부르는데 이말은 잉어의등  이 변해서 된 지명이다.풍수 지리설 로는 *금잉어형*으로 남해의 진산(鎭山)인 망운산(望雲山) 수맥이 마을 을 지나 바다로 흘러들어 어부들의 말에 마을 바닷가에 어느지점에(어촌 체험마을  석방렴 아래쪽)  이르면 바다물속에서 민물이 솟는 지역이 있다한다.또한 마을 어디에나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온다.한다.여산 이라고도 불려진다.비지정 문화재로 마을 입구에불망비(不忘碑)와 시혜비(施惠碑) 5기 가 서있다.

 

감송포(甘松浦).감승개 :동네 동북쪽 바닷가에 위치한 뜸인데 옛날에 소나무가 많이 있는 백사장 으로 민가도 몇채

                                 있었고 부산에서 싣고오는 거름배(돛단 화물선)도 백사장에 정박해 있었다. 도마초등학교

                                 단골 소풍장소였다. 솔밭에는강감찬 장군이 앉았던 자리가 있는데 그자리에는 모기가

                                  덤비지 않았다고 구전으로 전해온다.

감앞 : 감승개 앞의 들이다.마을앞 바닷가 들판이름.

밭여 :이어리 동쪽에 있는여 (영 이라고도 불린다.)

새몰 :심천 마을에서 몇호 이사하여 살았기에 새마을을 새몰 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집도 없다.동네 남쪽에 있는

         들이다.

서당골 :동네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밭들인데 옛날에 서당이 있었던곳이다.

아랫땀(아랫모) :웃땀 동쪽에 있는밭

에닥밭 :동네 동남쪽에 있는밭. 지형이 높음

여엄등 :마을의 중심이 되는 등인데 잉어의 등이 변하여 여엉등이라 한다.

웃땀(웃모) :마을 위쪽에 있는마을

은굴등 :마을 남쪽에 있는 등성이. 은을 캐던 은광이 있었다고 한다.

이큰새미 :마을 가운데 있는 큰우물.

이어리 :이어. 이유리.잉어리.여산.등으로 불려졌다.

채골들(채걸들) :동네 등성이 북족에 있는 들판

은기등  :(원기등) 마을 서쪽 산자락에 있는 등성이

       

 

                         (풍산마을.豊山)

 

풍산마을은 본래 이어리에 속하였다.일제 강점기에 알본인들이 은(銀)을 채굴한 곳이라 하여 양은골(良銀谷)

양안골. 양안들 이라 불렸다.여기에 본래 이어리 사람으로 남해읍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김모씨가 축사를 크게

지어서 사용하다가.그자리에 풍산건설 주식회사가 남해 최초로 아파트를 1차 2개동(1992년)2차 1개동(1998년)

지어서  1996년 이어리에서 분동되어 건설회사 이름을 따서 풍산(豊山)마을 아라 한다.

 

양은골 :양안골. 양안들  은을 채굴 하던곳. 지금도 폐광굴이있다.

개장골 :심천고개 너머 풍산리에 이르는 오른쪽 골짜기

진남골 :심천 고개 너머 풍산리에 이르는 왼쪽 골짜기

 

 

                                (대곡.大谷)

 

망운산(望雲山)비리봉과 삼봉산 사이에 큰골(大谷)이 형성되어 고현면 설치 때 *대곡* 이라 부르고 있다.한실은 대곡의 순 우리말 이고 화심곡(花心谷)이라고도 불리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남해현조에 *현 북쪽 15리 지점에  대포(大浦. 한개)*라는 어장이 있다고 하였다.대곡마을 아래 버리들 끝에있는 바다를 만나는 큰 개를  말한다.안동장씨

불망비.시혜비 공적비.3기가 있고 회혼기념비와 행당(이청기) 공적비도 있다.

 

 

감나무  :행댕리에 있는 감나무 .수령약150년

강곳이  :재몰랑. 마을앞 산등성이.

경향볼  :경지정리 하기전에 논에 물을 이끌어 넣던곳.

고동골  :마을 앞에 있는 산골에서 내려 오는골.

고랑모  :향단촌 뒷부분마을 .설천 진목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골안  :행댕이 서쪽에 있는 마을. 골 안쪽에 있는 마을은 골안으로 전국에 무수히 많다.

골안물새미  :골안 새미 위에 있는 샘.

공동묘지  :대곡에서 대계마을 사이 북쪽으로 삼봉산 등허리 남쪽 자락에 도마학구 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동묘지가 있다. 지금은공동 평장묘와 각문중에서 평장묘 도 조성되어 있다.

담골새미  :골안 앞에 있는 샘.

담안  :골안 앞에 있는논.

당산  :대곡 동쪽에 있는산.

당산 밑들  :당산 밑에 있는들.

당산새미  :당산에 있는 샘.

대곡포강  :(대곡 저수지) 신기에 있는 큰못.버리들 의 농수로 70년대 초에 조성했다.

대섭볼  :경지정리 하기전에 논에 물을 이끌어 넣던곳.

대섭들  :행댕이 앞에 있는들.

도로만골  :새모. 신기 사이에있는 산골.

도리쟁이  :한산몰랑 아래에 있는 등성이.

도리정  :마을 입구에 있었던 정장(亭障) 세종때 삼군도체찰사이종무장군의장질 이봉춘 이 평산만호를 그만두고

             경기도 광주에 식솔들을 불러와대곡에 살았기에 마을 입구에 정장을 지었다.

딸밧골  :음지에 있는들.

목정들  :(목진들)대곡리 아래에 있는들 화방사 계곡의 물줄기가 본래 목정들_채골들(채걸)_감승개로 흘렸는데

            큰 홍수가 나서(화방사 절이홍수에 떠내려감) 물길이 지금의 학교 앞으로 바뀌었다.목이 긴(진)들이다.

            서도마에서 대곡 넘어가는 목이 긴등(황새몰랑) 에서 유래?다.

바머리볼  : 경지정리 하기전에 논에 물을 이끌어 넣던곳.

보릿매기  :음지에 있는산.

붉은등  :마을 남쪽 강구산 뒤에 있는 등성이.

삼봉산  :봉우리가 세개 있는 마을 뒷산. 고현면과 서면의 경계를 이룬다.

상거터  :당산밑 들에 있는 향교터.

상볼  :경지정리 하기전에 맨 위에 있던볼.

새모  :마을 북편에 위치한 뜸(新村).신기(新基)

세모새미  :새모(신기)복판에 있는샘.

새볼  :경지정리 하기전에 논에 물을 이끌어 넣던곳.

설맷등  :붉은등 남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경사가 심하여 나무꾼들이 나무를 썰매처럼 끌어 내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눈속에꽃이 피는 매화가 있어 설매라는 설도 있다.

솔찌적  :행댕이 앞에 있는 들.

송곳들  :대곡밑에 있는들 .송곳처럼 길게 생겼다.

송청골  :한내 위에있는골.

송청골 포강  :송청골 소류지. 송청골에 있는못.1969년에 만들었다.

숨바탕  :공동묘지 입구 등성이.  일제 강점기에 면사무소에서 관리하던 산으로 편백나무숲이 조성되어있다.

            면소(면사무소) 갓(산)이라고도 불린다.

신기(새모)  :골안 서북쪽에 있는 새로된 마을. 남해읍 에도 신기 마을이 있다.

신기새미  :새모새미.

아장군바위  :망운산 등산로 아래에 아장군 바위가 있다.동학혁명시 마을 장씨 성을 가진사람이 혁명군을 훈련시킨

                  장소라고 전해오고 지금도 음지에 아장군집으로 부르는 집이 있다.

음지  :마을 동편에 있는 마을 해를 등지고 있기 때문에 음지편 이라 한다.

청룡끝  :마을 입구에 이쓰느 등성이.

채걸내다리  :골안에 있는 다리.

평지밭  :마을앞 산속에 위치한 평평한 곳으로 옛날 소몰고 산에 풀 먹이려 오가며 쉬던곳.

한산몰랑  :(항산몰랑.황새몰랑.)도마초등학교 앞산 등성이(대곡마을 입구 등성이)지형이 황새가 날아가는 형상

               이라  이곳에 있는 분묘(무덤)에 비석을 세우면 황새 등에 올려놓은 격이되어 가운(家運)이 기운다는

              설이 있어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

행댕밑  :(행대밑)골안쪽에 있는뜸. 1920년 까지는 큰 연못(杏塘)이 있었다고함. 행당촌(杏塘村) 이라 불렀음.

            행당밑-행대밑 으로 불린다.

행당촌 새미  :행댕이에 있는 우물

 

           (대 계.大溪)

 

대곡에 속해 있었으나 곡내(谷內)길이가 2Km에 달하고 있어 대곡마을과 같은 마을로 다스리기가 불편해 1938년 분동 되면서 대곡의 대(大)자 와 계재골의 계(溪)자를 따서 대계라 불리었다.마을 뒷산 계곡에는신라고찰 화방사(花芳寺)가 있다. 산닥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152호).화방사 채진루.지소골.분청사기요지. 사당골 화방사 중메구패.시혜비도 2기가 있다. 마을 입구에는 1994년에마을 청년회 에서 망운대계(望雲大溪)를 각자한 마을 표지석을 세웠다.

 

 

갈비골  :(갈미골)대곡 저수지 위에 있는 골짜기.

넙득비렁  :윗대계 뒤편 양지쪽 대밭속에 8자정도의 넓은 바위가 있다.이바위 아래 장군용 칼이 묻혀 있다고 전한다

               형태상으로 보아 제단터 로 보아진다.규모는 8자*7자*높이 50Cm 이다.

뙤밭골  :마을 동남쪽에 있는 골. 딱밭골(닥밭골) 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둥둥곡  :대계북쪽에 있는 골짜기.

물방앗간  :(물례방아간)대계마을과 화방사에는 물방앗간이 4군데 있었다. 현재 대곡저수지 합치되는곳 과 화방사

                는 서암(극락암)아래. 북암(수광암) 입구.  2주차장에 있었다.

벅시거리  :마을 입구를 통하여 화방사로 진입하는데 마을 입구에 장승이  60년도 까지는 있었다

지새골  :(지소골.지싯골)마을 뒤편 화방사  밑에 있는 골짜기.종이 만드는 공방 있었는데 지새골 에 사는 사람들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지소골(紙所谷)

진도고랑  :대곡 저수지 남쪽 골짜기.

진디골  :대곡 저수지 위쪽 골짜기. 진도고랑과 같은지명 으로 추정된다.

배갓골  :(대밭골)구사을실들.

버등  :대계마을 옆 등성이.

앳등  :수원지 옆에 있는 등성이. 지소골 아래인데 기와를 굽던 와요지 였다고 한다.

솔징이  :수원지 윗쪽 등성이.

세밭등  :대계 북쪽위 등성이.

시비골  :세밭등 밑에 있는 등성이.

압록골  :마을 서남쪽골짜기. 지금의 화방동산이 들어선 자리.

양지골  :세밭등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열반장소  :(나뭇골) 찬새미 절터.화방사 스님들이 열반하면 다비 하던 곳으로 현재 화방사 대형버스 주차장이다.

청양지  :화방사 위 양지쪽에 있는 골짜기.

화방곡  :(화봉골)지새골 위에 있는 골짜기 지금의 화방사 입구 근처 골짜기.

화방사 옛 암자터  :남암은 현 화방복지원 위쪽.북암은 현 수광암. 서암은 극락암 자리.

 

           (동도마.東都馬)

 

1945년 급격한 인구 증가로 행정구역 개편시 도마리 에서 분동됨과 동시에 동편에 위치하기에 *동도마*(東都馬)

라 부르게 되었다.신작로 아래에 있다하여 길(질)아래(질알. 지랄)로도 불린다. 도마고개 에는 수령200년된 녹나무가  동목(洞木)으로 있다.고려패총이 있다

 

깍난곡  :동도마 가운데 있는길.

꼬잔등  :(곶안등).고잔.꼬잔.  마을 북동쪽 해안선이 육지 깊숙이 들어온곳에 있는 조그만 산등성.곶-바닷가에 튀어

            나온 지형 을 말한다.

            곶의 안쪽 등성이로 곶안등-된발음 으로 꼬잔등 이다 바닷가 이름으로 고잔은 같은 지형이다. 갈화에도

            고잔이 있고 삼동면 영지에도 고잔이 있다 . 

           

내출  :동도마에 있는들

버리들  :동네 남쪽에 있는들(도마평야) 화방사 벌율원(伐栗員)이 있었다 한다.일설에는 벼리들(으뜸들)에서 유래

            됐다는 설도 있다.벌이들. 벌률들. 바리들 .로도 불린다.

도망곡  :도마고개.

뒷모  :동도마 뒷쪽에 있는마을.

볼마당  :동네에 있는 등성이로 달을 보는 마당 (달맞이장소)  지금도 마을에는 댁호(宅號)로부르는 집이 있다 .

             (볼마당집) 

웃영  :(웃여)동네 아래 바다에 있는여

아랫영  :(아랫여)웃여 에서 조금아래(바닷쪽)에 있는여

안골목  :동네 안쪽에있는길.

당산모  :동네 동쪽에있는마을  옜날에 당집이 있었다.

한개  :마을 아래 바다   대포(大浦.큰바닷가) 순 우리말이다.

한내  :대곡에서 마을 앞을 흐르는 내. 대천(大川큰 내). 옛날에는 명절에한내 다리 아래에서 석사(石射)대회 장소로

        사용 했다. 

한내다리  :한내에 있는 다리 도마초등학교 앞에있다.일제 시대에 건설한 세면트 다리 이전에도 다리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숲밑들  :마을 앞에있는들 옛날에 숲이 있었다고 함.

세탁소  :숲밑들 냇가에 50년대에 도마3구 마을공동 빨래터를조성해 사용 하다가 경지정리때 없어졌다.

 

         (도마.都馬)

 

남해군지나 고현면지를 보면도마리는 신라 신문왕10년(690)남해에 전야산군이 설치될때 군 소재지로서 성산성에 속해 있었고 마을 형상이 말(馬)모양으로 생겨 도마(都馬)라고 불리어진 지명이라고 적혀있다.    1916년 이어리에 있던 임시 고현면 사무소가 도마로 이전하여 사용 하다가 1973년9월3일에 대사리 중앙마을로 이전하였다.

도마 라는 지명을 지금도 나이많은 사람들은 도맘.도마메.도마산.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어 나름대로 뿌리를 ?다보니 우리 땅 이름들이 한자가 아닌 우리옛말 이름으로 전해오는 이름들이 대부분이라  이점에 뜻을 두고 각종 문헌 질의 등으로 연구해보니 말(馬)모양 보다는   *돔안 * 에서 생긴 이름이라 조심스레 주장해 본다. 돔ㅡ 둥근산으로   둘러싸인(우리말 큰사전.고려대학교 편찬)  버리들이나 한개 에서 보면 상짓골 에서 고실등으로 정기몰랑에서 마을 뒷등으로 도마고개로 당산모 까지 둥근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으로 동네가 들어있다.  돔안(돔의안쪽)-도맘.  돔안에-도마메(뫼)-도마산-도마리(행정구역상 한자 표기) 로 순수한 우리말 지명이 오롯이 살아있는 마을 땅이름이다.

도마 란 지명은 말(馬)과는 관련이 없고 순 우리옛말인 돔안 에서 유래된 땅이름으로 밝혀 두고자 한다.   (개인 견해임을 밝혀둔다.도마리 출신 .채남석)  참고로  남해군 에서 지형이 말의 형상으로 생긴 마을 이름은 남해읍 평리에 

마산(馬山)마을이 있다. 뒷산 형상이 말과 같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우리말 옛이름인  몰뫼. 말뫼.로 불리고 있다.

 

중도마  :(양지편) 세마을중 가운데 이며 양지바른곳 이라 양지편이라 불린다.

공신곡  :공신날에 있는골짜기

공신날  :(공세나루)도마리 서북쪽에 있는 산.도산마을 입구 효지비 건너편에 있던나루  세곡선이 기항하던 나루

           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삼별초나 화방사 사당패가 세곡선을 탈취하던 해적소굴로 이용 했다는

            설도 전해온다. 세달.(일제강점기에 공세를 바치던 장소라 전한다)

           남면덕월리 바닷가 에도 공신(功臣)널 이 있다

너더밧골  :도마 북쪽에 있는들.

대밭등  :도마 북쪽에 있는밭. 옛날에 대밭이 있었다고함.

뒷등   :통시미골 북쪽 마을 뒷 등성이 조망이 좋아 옛날 연날리기 장소 였다.

동샛골  :도마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동사가 있었다고한다.

매도봉  :(매도곡.매더부)마을 뒤편 산봉우리 신라 전야산군 소재(성산성) 에서 쓰던 무기를 묻었다고 한다.

           매도봉 위 등성이에 제왕궁터 가 있다.

배강마을  :안마을 북쪽에 있는들.

분댓등  :동네 서북쪽에 있는등성이.

서당곡  :도마고개 서쪽에 있는골짜기.옛날에 서당이 있었다 한다.공신날(공세나루) 에서 남해읍으로 가는 옛길이다

진등  :(진방등. )도마 서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이름 그대로 긴(진)+등성이. 있던 곳이다.

         도산 마을 입구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진방뚝  :매도곡에서 공신날 사이 바다로 향한 긴 등성이  긴(진)방죽이 있던곳으로 추정된다.

           밭언덕에서 도기 파편들이 발견된다.

짐문턱  :도마 서북쪽에 있는 들.

큰돌박  :도마리에 있는산.

통시미골  :(통새미골)동네오른편골짜기에 있던 우물.정기몰랑 정자나무가 큰태풍에 쓰러질때 그 가지 하나 속을

               파서 우물위에나무통을 세워 사용 해서 통시미라 부른다.

아랫시미  :통새미 조금 아래있는 큰 우물 우물도 크고 수량도 많았다.

된까꾸막  :(딘까꾸막)매도곡 에서 종자골 넘어가는 급경사 가풀막. 종자골에서 지게지고 오르면 코가 땅에 닿는다.

               이길도 노량에서 남해 읍성 으로 가는 옛길 이라고 구전 으로 전해온다.힘든(된)+가풀막 의 남해 방언이다.

냇거들  :(냇가들)도마다리 주변 냇가에 있는들.

고랑뚝  :도마회관 에서 마을 입구까지도랑(고랑)이 있어 고랑뚝 이라 한다.

 

 

     (서도마.西都馬)

 

1862년 이후 길밑(동도마)양지(중도마)서편(서도마)로 불리다가 1901년도마산 이라 불리다가 1943년 인구증가로 서도마 로 부르게 되었다. 서편 으로 부르는 마을이다.도마리분묘군.도마리 고려시대 건물지. 도마리 패총. 도마리 유물 산포지가 있다.고실등 고개마루에 당목으로 약100년된 검팽나무(포구나무)가 있다.성산으로 시집간 딸을 기리며 심었다고 전해온다.

 

고실등  :마을서쪽에 있는 등성이. 고(鼓와 슬(瑟)모양으로 생겨서 고슬(고실)등으로 불려진다는 설도 있고 일설

            에는 왕의 유회장소 라는 설도 있다. 서면 장항 에서 남면 넘어가는 고개이름도 고실곡 이 있는데

            유래가 비슷하다. 풍수지리설 로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북과 비파를 닮았다고 전한다. 

구숙모  :동네 중간(마당모와고실등 사이)에 있는마을

마당모  :(마당몰)동네 동쪽에있는마을. 말(馬)놀이터 라고 전한다.

상제골  :(상짓골) 마을 남쪽에 있는 등성이. 쌍저골(쌍젓가락)이라는 설도 있다.

상제막골  :상제골 동쪽 끝자락. 주진날 로도 불린다.

주진날   :주진나루(主津). 군사적 나루였다.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지명이다. 도마초등학교 뒷 등성이

주진날 숲  :예전에 인공적인 조림으로 지금도 큰고목들이 남아 있다.

목징  :고슬등에서 대곡리 골안으로 넝어가는 고개

제왕궁터  :(정안궁터)마을뒤 얕은구릉지에주춧돌이 남아있다. 공신날(공세나루)에세금 바치러 가는 길목을 지키던

              곳이라 전한다. 또한 고려대장경을 판각한 정안 의 국지라고 전한다.서면 서호마을 뒷산 골짜기 에도

               제왕구터가 있는데 삼별초 유존혁의 거점 이라는 주장도 있고 장군터 가 변하여 제왕구터로 불렸다고

               전한다. 두 지명이 같은 뜻으로 보여진다. 

종자골  :(종지골)마을 뒷등성이 넘어 긴골짜기  대한7년 큰 가뭄에도 종자가 나왔다고 종자골 이라 한다

황새몰랑  :(황산몰랑) 도마초등하교 앞산 등성이. ( 대곡마을 입구부터 마을 뒷등성이)지형이 황새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이곳에있는 분묘(무덤)에 비석을 세우면 황새등에 올려놓는 격이되어 가운이 기운다는 설이

               있어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 펄럭이는 만장 앞세우고 꽃상여 매고 공동묘지 올라가는 상여길 이었다.

정기몰랑  :정자가 있는 등성이 예전에 정자가 있었으며 강진바다에서 배들이 삼봉산.정기몰랑.망운산을보며 방향

              기점을 잡고 항해 했다고 전한다.지금 다시 정자를 지어 놓았다.(정자몬당-정자몰랑-정지몰랑)

쌍시미  :구숙모에서 고실등 올라가는 대밭사이 사이 길목에 양쪽으로 마주보는 샘이 있었다.

너메고랑  :(넘어 고랑) 구숙모 북쪽 등넘어 뜸을 너메고랑 이라 불렸다.

 

        (성산.城山)

 

 

신라 심문왕 10년 남해의 명칭을 전야산군(轉也山郡) 이라 칭하고 행정관서를 설치 하였다.이때 군의 소재지 로서

산위에 성(城)을 축성 하였고 성산성(일명 군성) 아라 하였다.현 남해군청이 세종 19년 (1437)에 설치하고 이전 하였으니  747년 동안 남해군청의 소재지였다.1822년 성산성의뜻을 따서 *잘매*라고 불러 오다가 도마리에서 분동 되면서  성산(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성(城)의 순 우리말은 잣. 재. 이다. 잣뫼나 재뫼로 불러야 옳다.이동면 성현(城峴)마을의 순우리말 이름도 잣개 라 부른다.앞으로는 성산도 잘매로 부르지 말고 잣뫼 로 부르는게 좋을것으로 본다. 

성산토성(土城).석성.(石城)고분군(古墳群).비어내부두.(非於乃埠頭)조창지.(漕倉址)조산무지.(祖山塚)등이 있다

 

가운데모  :성산마을 중앙지대인데 중곡(中谷)모 라고도 한다

고망등  :마을의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 이름이다. 성을 바라보기가 가장  좋기때문에 옛날을 바라본다는 의미

             에서 고망등(古望嶝)이라 한다.

군성  :성산성.전야산군.

꽃밭등  :마을 앞에 있는 산등성이 놀이터로서 화초를 많이 심어 봄철에 관원들이 유흥을 하였으므로 꽃밭등

            이라 하며 또는 화전등(花田嶝) 이라고도 한다.

동편  :성산 동쪽에  있는 마을.

성밑등  :마을 뒤의 등성이. 옛날 이 등위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세전등  :성산과 비란 사이에 있는 등성이

욧골  :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옆골*이 와전된 이름으로 옛날 공장터라고 한다.

잘매  :성산(城山)의 순 우리말로 * 잣뫼*재뫼가 잘매로 바뀐 것이다.잣뫼나재뫼로 불러야 바른 뜻이 된다 

장싱이  :마을 서편에 있는 골짜기 이름지형이 길게 뻗어나 있으므로 장승(長承)이가 장싱이로 변했다는 설과

            마을 입구에 장승(벅수)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서면 동정마을 들머리 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고막늘  :고막나루 .고망등 바닷가에 있던 나루,

 

 

             (도산.陶山)

 

질그릇을 만드는 토질의 질로 되어 있어 질개라 부르던 것이 1946년 성산과 분동되면서  도산(陶山) 이라 부르게

되었다. 삼봉산을 주령으로 동으로 뻗어내린 "분대등"을 중심으로 취락을 이루고 동으로 강진바다와 창선의 대방산을 바라보며 서남향으로 망운산과 정남향 에는 금산이 있다. 향토사에 유서 깊은 가청현(加靑峴)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마을의 소지명(素地名)은 질개(陶浦)이며 진흙이 많은 포구 또는 이마을 사람들의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도야(陶冶) 한다는 뜻에서 도포(陶浦) 마을 아라고도 한다. 고씨효자비와 새문화탑.와요등.남해 충렬사 창건자 고승후 묘비가 있다.

 

 질개  :도산

가칭고개  :(가청고개) 도산에서 오곡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임진왜란때 관음포 전투에서 왜선들이 갇혀서

               가칭고개(갇힌고개)란 설과 임진왜란시 안동 류성룡 대감의 숙부벌 인 류치숙이란 사람이중 으로

              가장한 왜놈 첩자를 술로 취하게 대접해서 품속에 있는 지도를 꺼내 지금의 가청고개를 푸르게 바다

               색으로 고쳤다 해서 가청(加靑)고개 라는 설이 있다.

고효자 비각  :진등밑에 있는 비각. 비각 앞 바위에서 낚시를 했다는 설이 있다. 공신날(공세나루)건너편이다.

구릉들  :시빗굴 앞에 있는들.

날끝  :도산에서 오곡의 가청으로 돌아가는 모롱이

대감태골  :마을뒤 삼봉산 아래 골짜기.

독마  :성산마을 과 도산마을 사이에 있는 쉼터.

동뫼  :마을 앞에 있는산

분대등  :도산마을을 감싸고 있는 야트막한 능선.

산밧골  :도산위 저수지 전답을 말한다(골)

상볼  :도산 남쪽에 있는산.일제강점기에 광산(금굴)이 있었다.

새밭등  :마을 뒤편에 있는 등성이.

샛등  :저수지가 있는 산등성이.

시빗굴  :마을 앞에 있는 빨래터.

아랫골 도산 아래 에 있는 마을.

안고랑  :마을 앞에 있는내.

와야등  :(와요등)도산 뒤에 있는 등성이. 기와를 구웠다 하고. 도자기를 굽던 도요지 이다.

웃모  :마을 위쪽에 있는 마을.

장마등  :마을 앞에 갈게 뻗어 내린산.

진등  :마을 앞에 있는 긴 등성이.

진방뚝  :도산 북쪽에 있는 길.

찬새미  :마을앞에 있는 우물 .물이 차고 맑았다.

정자몰랑  :마을 서쪽에있는산.대곡 넘어가는 등마루에 정자나무가 있었다.

 

 

 

 

 

정겹게 불려지던  우리땅 이름들이 잊혀져 가는것이 안타까워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 우리의 후손들이 뿌리를 ?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되어 알아보면서 각종 문헌과 고증.우리말의유래.특히 김우영(金禑永) 선생님의 지명 유래 에서 많이 발췌했고 지역의 원로 들에게 구술된 내용으로 정리 하다보니 잘못 알려 졌거나 빠진 이름도 많을수 있으니 혹시 수정 보완 해야될 지명이나 전설이 있으면 가르쳐 주길 바랍니다.  메일이나 블로그에 답글 바람니다.

참고로 이번 조사에서우리땅 이름들이 순 우리말로 많이 살아있음이 확인되고 지역의 특징으로 댁호(宅號)를 부를때 육지에는 **(지역)댁.이나 남해 에는 **(지역)집.으로 부르고 또한  **네. 라고 부르는 경우는 예전에 그집안에서 부리던 종(從) 이름으로 부르는 특징이 있는바 우리말이다른지역 보다 많이 살아 있음을 알수 있었다. 위의 땅이름 중에서도 고실등.제왕구터.주진날.공신날.매도곡.당산모.사당골.꽃밭등.욧골.볼마당.등은 연구할 가치가 높다고 본다.

 

 

이메일  :tongsime@daum.net

daum  블로그  :통시미

                                              (도마리 출신. 도마초 22회  채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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