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발역 2번 출구를 나와 조금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영장삼거리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삼거리 슈퍼를 왼쪽에 끼고 좀 걷다 보면 왼쪽에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 우측 마을길로 들어가면 왼쪽에 소령원 신도비각이 보인다.
백살은 족히 되었을 듯 싶은 전나무 참나무 숲길을 걸어가면 소령원 입구다.
출입 허가서를 관리인에게 제출하고 홍살문 안쪽 참도를 걸어 정자각 위에 올라선다.
정자각을 돌아 비각 앞에 서서 조선국 화경 숙빈 소령원 비문을 본다.
시호 묘호 원호로 이루어진 비문이다.
몇 발짝 위에 또 비각이 있고 원으로 격상 되기전 소령묘의 비석이다.
소령원은 19대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무덤이며 숙빈에 얽힌 많은 이야기 전해온다.
비록 한미한 집안 출신의 후궁이 였지만 아들 영조 임금의 효심이 엿보인다.
원침에서 뻗어 나온 용맥의 긴 능선이 정자각 쪽으로 흘러내려 장엄하게 보인다.
우리는 원침에 올라 주과포를 상석에 진설하고 잠시 묵념을 올렸다.
숙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정자각 쪽으로 내려와 샘물로 목을 추기고
영조가 시묘 살이를 했다는 집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부 담장만 확인했다.
소령원을 나와 우리는 수길원으로 향한다.
수길원은 영조 후궁 정빈 이씨의 무덤으로 소령원 숙빈의 며느님이다.
맏아들 효장세자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았고 영조가 즉위 후
세자로 책봉하였으나 아들마져 10세에 그만 죽고 말았지만 사도세자 사건 이후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결정함으로써 정조 즉위 후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소령원에 비하여 초라하기 그지 없다.
정자각은 주춧돌만 남았고 비각도 없다.
역사가 주는 교훈에 관해 생각하며 원침에 올라 잠시 묵념을 올렸다.
나오는 길에 소령원 신도비를 둘러 보았다.
만행의 근본은 효라 했던가 부모가 효자면 아들도 효자다.
우리들의 행동거지를 보고 아이들도 따라 배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렇게 답사를 끝내고 입구 개울가에 자리 잡은 소령원 장단콩 두부마을에서
이슬이 맥주 데불고 마넌의 행복 속으로 빠저 들며 못다한 이야기 남김 없이 토해낸다.^^
59년전 오늘이었다면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오금이 저렸을 텐데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다.
민간인 포함하여 250만 명이 죽고 천만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는 6.25전쟁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령원 수길원을 돌아보며 6.25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다시는 이땅에서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없어야겠다.
친구들 잘 들어 갔겠지?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