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자연은, 내 마음속의 서재 저도 저희 아내도 책에 대한 욕심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다 읽지도 못하면서, 보고 싶은 책을 사오곤 하죠. 그래서 저희 집 거실에는 책이 매우 많아요. 때로는 책을 너무 많이 사서 책을 비치해 둘 곳이 없을 정도인 경우도 많고요. 책이 많아서 저는 마음이 부자예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절대 남 주지 말라고 하죠.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책 없이는 못 살 것 같거든요. 저는 식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제 마음속의 서재는 ‘평강식물원’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가 책을 읽으면 느끼고 배우게 되잖아요. 그것처럼 내 마음이 자연을 읽고,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보면서 배웁니다. 그래서 제 몸은 서울에 있어도, 제 마음은 평강식물원 쪽에 가 있죠. 저는 평일에는 한의원에 있고, 거의 매주 주일마다 식물원에 가는데요. 매번 식물원에 갈 때마다 보는 식물들의 모습이 너무 달라요. 풀이나 나무, 꽃뿐만 아니라 곤충들의 변화도 그렇고요. 저희 식물원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물원 서쪽호에 보면 귀뚜라미랑 메뚜기가 많거든요. 한 시인은 귀뚜라미를 두고 ‘가을의 주인공이다. 시를 가장 많이 읊는 것은 귀뚜라미이다. 귀뚜라미가 시인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저도 식물원의 식물들과 곤충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계절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제 서재의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처럼, 제 마음속의 서재에는 제가 사랑하는 식물이 가득 차 있는 거죠. 그래서 자연이 제 마음속 서재입니다. 산골 소년 이환용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들 저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책을 좋아했어요. 한번은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책이 너무 좋아서, 선반 위에 있는 책을 허락도 없이 꺼내서 읽었죠. 그런데 나중에 친구가 고자질해서 꾸중을 듣기도 했고요. 어릴 때는 학교에서 빌려주는 책을 밤새서 읽고, 또 빌려 오고 또 빌려 오고 했죠. 제가 살던 곳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가을에는 밤에 초롱불이나 등잔불 밑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어요. 또 밖에는 달빛이 있으니까, 방에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면서 책을 보기도 했고요. 우리 마을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어요. 도서관은 없었지만 학교 말고 책을 빌려주는 곳이 한 곳 더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희 지역이, 서울의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인 리라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이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마을 분이 그 학교에서 보내준 책을, 한 집에 다 모아두었어요. 그 집에만 가면 별의별 책이 다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저녁만 되면 그 집에 책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거예요. 책을 빌려주시던 분이 저를 참 좋아하셨어요. “너는 참 부지런하구나. 어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니? 네가 이곳을 가장 많이 이용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거든요. 성경을 보면서는 영의 양식을 얻고, 책을 보면서는 교양의 양식을 얻잖아요. 책을 통해서 교양의 양식을 많이 얻게 되면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죠. 마음이 살찌니까요. 그때 읽었던 책 중에 「돌아온 래시」라는 책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래시는 개 이름인데요. 가난해서 팔려간 래시가 온갖 고생을 하다가 백 여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책을 읽고 펑펑 울었어요. 제가 하도 우니까 어머니가 왜 우느냐고 물어보셨죠. 그래서 엄마에게 울면서 내용을 설명해 드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또 그때 읽었던 책 중에 빅토르 위고의「장발장」도 있었어요. 장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쳐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잖아요. 그 사람이 한 신부의 사랑으로 변하는 걸 보면서, 저도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지나다가 걸인을 보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먹었으면 해서 저도 모르게 돕곤 합니다. 어린 시절에 제가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어른이 되어 책을 쓸 수 있는 문학성과 감성을 기르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청소년기에 푹 빠졌던, 자연을 그린 시들 저는 문학도 좋아했지만, 특히 시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전원의 아름다움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 전원시집, 그리고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의 시를 많이 읽고 외웠죠. 저는 어릴 때 시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또 중학교 때까지 충청남도 서산에서 살았는데요.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와서 느끼는 고향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시를 읽으며 달랬죠.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박목월의 ‘나그네’ 같은 시들을 좋아했어요. 김소월 시인의 시집도 참 많이 가지고 다녔고, 외우기도 많이 외웠는데요. 특히 ‘진달래꽃’을 읽으면 제가 고향 마을에서 진달래꽃 따 먹던 기억도 나고, 친구들이랑 진달래꽃을 따서 길가에 뿌리고 흘리기도 했던 추억들이 떠올랐거든요. 노천명의 ‘사슴’도 좋아했고요.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시들 중에 특히 자연과 고향에 대한 시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학교 오가는 길에 많은 시인의 시들을 달달달 외우고 다녔죠.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거의 다 외웠어요. 시들이 주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이 감동 했거든요. 7전 8기, 한의사 이환용이 있게 한 시편과 잠언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집이 무척 가난해서 제 무릎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침도 배우고 지압도 배웠어요. 그러다 한방에 매료된 거죠.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했거든요. 내신은 마지막 등급에, 문학을 너무나 좋아해서 문과를 선택했으니 한의대에 가기 어려웠죠. 그래도 저는 한의대에 꼭 가고 싶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한의대는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서 계속 재수를 하다 보니까 9수를 하고서야 한의대에 들어갔어요. 재수하면서도 저는 오전에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해서 학원비 벌고 그랬거든요. 그때는 부모님께서 돈을 대주셔서 오후에도 공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렇게 8수까지 하다가 9수를 할 때는 성경책을 학원에 가져다 놓고 읽었어요. 아침에 학원에 가자마자 한 10분간 성경을 읽고,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읽었어요. 그랬더니 공부가 너무 잘 되는 거예요. 그때 주로 시편과 잠언을 읽었는데, 그해에 9년 만에 한의대에 합격했죠. 나중에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아이가 지혜롭고 총명해지라고 제가 시편과 잠언을 많이 읽어줬어요. 물론 제가 시편과 잠언을 단편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요. 세상적으로 말하면 시편은 평안과 안정을 주니까 EQ를 높여줄 수 있고요. 또 지혜를 주는 잠언은 IQ를 높여줄 수 있죠. 성경 안에는 제가 출석하는, 사랑의교회 담임 목사님이신 오정현 목사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무한 지평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시편과 잠언을 많이 읽어줬더니 아이들이 총명해지더라고요. 대학 시절, 한의학도 이환용이 즐겨 읽었던 책들 한의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사실 바빠서 책은 많이 못 봤어요. 한의대는 단순히 한의학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양방과목도 같이 공부해야 하거든요. 양방, 생리, 병리, 해부학 같은 것들이요. 전공 공부하면서는 본초학을 특히 좋아했는데 식물, 광물 등에 대해 배웠죠. 당귀, 작약, 인삼 같은 약재에 대한 내용도 배우고 야생화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특히 야생화는 사실 약초가 아닌 것이 없거든요. 그렇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초학을 좋아해서 관련된 책들을 봤어요. 식물을 워낙 좋아해서 석사도 본초학으로 받고, 박사도 본초학으로 학위를 받았거든요. 또 전공 책 외에 다른 책들은 잘 못 읽어도 성경은 많이 읽었습니다. 저는 주로 기독교 서적인 믿음의 글들도 많이 읽었는데요. 용기와 꿈을 주는 내용의 한경직 목사님의 책이라던가. 조용기 목사님 책처럼 유명하신 목사님의 저서를 즐겨 읽었어요. 옥한흠 목사님의 「평신도를 깨운다」도 잘 읽었고요. 두 아이의 부모로서 읽게 된 책 우리 가족이 모두 크리스천이다 보니까 아내랑은 아무래도 성경책을 가장 많이 함께 읽었죠. 저는 지금도 주로 신앙의 책들을 즐겨 보는데요. 젊은 시절에 제가 너무나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나는 책을 좋아해요. 도전적이고 비전과 꿈을 주는 책들이요. 교사였던 저희 아내는 아무래도 저에 비해서 시집 같은 문학 서적들을 많이 읽는 것 같더라고요. 강영우 박사님의 「원동력」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분 나이대의 시각장애인들은 거의 점쟁이나 안마사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강영우 박사님은 꿈이 있던 사람이었어요. 16살에 맹인학교 중학교에 들어가시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들어갔잖아요. 강영우 박사님도 대단하시지만, 사모님도 또 두 아들도 대단하죠. 이 아들들은 좋은 대학을 나온 것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안과 의사와 최초의 동양계 미국인 연방대법관을 꿈꾸는 변호사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죠. 인물은 길러지고 명문가는 만들어진다는 내용인데, 저는 이 책이 너무나 은혜롭고 좋아서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어요. 우리는 흔히 “너 성적 몇 점 받았니? 몇 개 맞았어?”라고 하는데 박사님은 ‘너의 꿈이 무엇이냐? 너의 비전이 무엇이냐? 너의 목표가 무엇이냐? 너의 자존심이 어디에 있느냐? 너의 자부심은 어디에 있느냐?’ 이런 것들을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하시거든요. 흔히 실력만 좋으면 교육인 줄 알잖아요. 그런데 강영우 박사님은 자기 큰아들이 지식만 따르다 계속 실패했던 이야기에서부터, 아이에게 자존감과 자부심을 심어주니까 영재학교에도 들어가고 큰 인물이 되게 되었다는 내용도 책 속에서 전하고 계세요. 꼴찌를 하던 한 일본 아이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아이의 어머니가 강영우 박사의 강의를 듣고 아이를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었대요. 아이들은 남과 비교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다 사람마다 각자 달란트가 있으니까요. 아이에게 강영우 박사님 이야기를 해주면서 “너는 지금 공부를 못할지라도, 학교는 제때에 가지 않았니?”라고 뒤늦게 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강영우 박사의 꿈과 비전을 얘기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도 꿈과 목표를 세웠고 나중에 세상에서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요.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면 되는데 부모가 강제로 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이런 책을 읽으면,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지식 하나, 암기 하나 더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이가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게 되고, 분명한 목표와 꿈을 갖게 해주는 것들이 정말 큰 힘을 키워주는 방법이죠. 부모들이 이 책을 꼭 읽고 몇 점 점수만 더 따기 원하는 마음을 바꾸었으면 해요. 「원동력」은 정말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고 있거든요.
말씀으로 양육한 아들의 책,「파란 날을 달리다」 제 아들 준엽이가 쓴 「파란 날을 달리다」도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책이에요. 준엽이는 지금 아이비리그에 속한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 다녀요. 녀석이 좋은 학교에 가게 된 건, 제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잠언과 시편을 읽어줬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모들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느라 바쁠 때, 저는 (물론 학원도 보내기는 보냈지만) 성경 과외를 시켰어요. 선교사님을 모셔다가 성경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죠. 왜냐하면, 모든 지혜와 총명의 왕은 하나님이시고, 모든 지혜는 성경에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애들이 공부도 잘하더라고요. 이 책은 아들이 18살 때 배낭 하나 메고 갭 이어(Gap year :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보통 일 년간 쉬면서 학교 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 해. 주로 여행이나 봉사활동 등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앞날을 그려보는 기회로 활용한다.)를 보낸 이야기인데요.
저는 제 눈에 어린애로 보이는 아들이, 오지를 자꾸 찾는 여행객들 때문에 오지 사람들 고유의 문화가 잠식될까봐 걱정하는 것에 특히 감동했어요. 또 인간의 거센 탐욕 때문에 이스라엘이 24번의 전쟁을 치르고, 예루살렘도 3번이나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품어주시고,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사는 현실은 너무 다르죠. 그래서 저는 항상 아들에게 남을 위해서 살라고 얘기합니다. 또 아들이 다녔던 필립스 아카데미의 교훈도 ‘남을 위하여 산다.’이고요. 저는 제 아들이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않는 백로가 아니라, 그런 곳에 먼저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인지 아들도 「파란 날을 달리다」로 얻은 모든 수익을, 유니세프와 해비타트 운동에 사용하더라고요. 또 한 겨울 태안반도 기름 유출 때는, 기름 냄새가 지독한 옷을 입고도 종일 봉사활동을 하고 왔고요. 녀석은 한의원에 놀러 오면 전기 아끼라고 성화고요. 음식점에서 밥 먹다 남겨서 쓰레기로 버리는 것을 못 봐 죄다 싸와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사람으로 성장한 거죠. 사실 행복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잖아요. 크리스천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면, 탐욕이라는 병에 끊임없이 걸릴 수 있어요. 그런 인생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들에게, 남을 위해 살고 남을 도울 때 행복할 거라는 얘기를 합니다. 아이들을 기를 때는 항상 부모가 겸손의 본이 되어야 해요. 애들은 엄마?아빠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보잖아요. 그래서 제 아내도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갑니다. 그러면 그날 저녁에 돌아올 때, 애들이 너무 즐거워하거든요. 그곳에서 정말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는 것보다, 봉사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가 가진 행복을 피부로 직접 느끼니까요. 사람이 자꾸 낮아지고 겸손해져야만 자기 마음도 살찐다고 생각해요. 교육이라는 게 뭐 별다른 거 있나요. 저도 사실 그렇게 모범이 되지 않는데 자꾸 교만한 말을 하고 있네요. 그저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잘 커 주니까 감사할 뿐이죠.
평강식물원 이야기가 담긴, 「평강으로 가는 오솔길」 저는 초등학교 때 책을 빌려서 보고 가져다줄 때 줄곧 오솔길을 따라다녔어요. 산길 따라, 논을 따라, 오솔길 따라가서 책을 빌려 오곤 했었거든요. 「평강으로 가는 오솔길」은 사실 제가 집필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고요. 사랑의교회 국제제자훈련원 김명호 목사님께서 식물원에 한 번 다녀오시더니, 식물원에 대한 책을 좀 썼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쓰기 싫어서 계속 사양하다가 여러 번 목사님께서 말씀하셔서 결국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책을 쓰려고 하니까 너무 막연하더라고요. ‘내가 과연 책을 낼 수 있을까?’ 했는데 식물원에 가서 산책하다 보면 신기하게 또 글이 잘 나와요. 특히 새벽에 일어나면 글이 쉽게 잘 쓰였어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할까요? 놀라운 아름다움, 태양의 웅장함. 자연의 그런 모습들이 저를 맞아주니까요. 새벽에 날이 새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개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처럼 새벽에 식물원에 있으면 어둠을 이불 삼아 덮고 있던 자연이, 찬란한 태양 아래서 새날을 맞죠.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 항상 너무나 신기해요. 특히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아서, 마음속에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서가 살아 있거든요. 이 점도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서재에서 책을 읽듯이 눈으로 자연도 읽거든요. 제가 부유하게 태어났으면 그런 경험을 못했겠지만, 산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나서 맨날 나무하러 다니고 많이 걸어 다니고 하면서 자연과 친구가 되고 친밀하게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죄다 고층 건물이라 시멘트 바닥밖에 볼 수 없죠. 사람들 사이도 그래요. 아파트에서는 이웃집끼리도 서로 문단속하느라 바쁘고, 문만 잠그는 것이 아니라 맘도 잠그고 전부 서로 폐쇄되는 느낌이죠. 우리가 요즘에 가두어서 기르는 소나 닭 같은 짐승들도, 시골에 풀어주면 활개를 치면서 그렇게 좋아하잖아요. 사실 사람도 이렇게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야 하거든요. 그런 뜻을 담은 「평강으로 가는 오솔길」을 쓰면서 저도 신이 났어요.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가 자연을 보는 느낌 그대로가 글이 되니까 쉽고 재미있었거든요. 이 책을 쓰면서 하나님께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늘을 천장 삼고” 해는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그림 그리며 산 너머로 갈 때
물속의 달이 떨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물 위로 소금쟁이가 지나가면 물속에 있는 달도 흔들리고, 산도 흔들리고, 나무도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잖아요. 우리 평강식물원은 잔디가 참 예뻐요. 잔디에서는 드라마도 많이 찍고 그러는데. 거기서 누워 있으면 나무를 벽을 삼고, 하늘을 천장 삼게 되는데. 하늘에는 별도 있고 달도 있고 너무나 아름답죠.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특히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속에 빠져 너무 바쁘게 움직이기보다는, 자연이 준 풍성한 것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해요.
식물원을 반대했던 아내와 함께 꾸민 암석원 처음에 식물원을 만든다고 할 때 저희 아내가 무척 반대했어요. 저는 한의사고 아내는 교사인데 누가 뚱딴지같이 식물원을 하느냐고 했거든요. 초창기에 돈이 하나도 없을 때인데 지금 한의원이 있는 강남역 이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로 달랑 40만 원을 가지고 병원을 계약했거든요. 그 뒤로도 계속 어렵게 살다가, 비염치료제인 ‘청비환’이 이름이 나면서 그제야 겨우 돈을 벌었어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식물원을 하겠다고 하니까 아내가 극구 반대를 했죠. 어느 날 아내가 우리 어머니, 매형, 누나, 형님, 형수님 다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참 고맙게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은 가족회의였던 거죠. 우리 아이 아빠가 좀 살만하니까 엉뚱한 행동을 한다. 가족들이 말려달라는 거였죠. 가족들도 다 반대했지만 저는 항상 잃어버린 마음속 고향을 되찾고 싶었거든요. 진달래꽃도 먹고 아카시아 꽃도 먹고. 삘기랑 띠 뿌리도 먹고. 산에서 밤 따 먹다가 밤송이가 머리에 뚝 떨어져서 고생했던 기억도 있고요. 그런데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곳에서 개발이라는 핑계로 동네 사람들이 다 쫓겨났어요. 그러던 차에 제가 다니던 CBMC(한국기독실업인회)의 회원 한 분이 유럽 식물원을 다니는 유럽여행 코스가 있다고 제게 소개해 주셨어요. 결혼식 할 때도 외국여행을 못 갔는데, 아내에게 다녀오라고 하니까 아내가 무척 좋아했어요. 사실 저는 아내를 세뇌교육 하려고 보낸 거거든요. 일행 중에는 식물학자도 많고, 한국에서 식물원을 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결국, 아내도 제 뜻대로 그분들한테 세뇌당해서 왔죠. 그런데 제가 아내가 도착하자마자 잘 다녀왔느냐고는 한 마디도 안 묻고, 지적도를 보여주면서 이 땅이 식물원 하기에 이렇고 저렇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아내가 아니 어떻게 부인이 외국에 갔다가 10여 일 만에 왔는데, 잘 있다가 왔느냐는 얘기는 안 하고 땅 얘기만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식물원을 세울 부지를 찾는 데에만 푹 빠져 있어서 다른 게 하나도 안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아내가 직접 외국에 가서 암석원 책을 열심히 사다 줬어요. 그래서 우리도 암석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내의 제안을 따라서 만든 평강식물원의 암석원이, 동양에서 제일 커요. 암석원에는 한라산, 백두산, 알프스, 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에 사는 식물들이 천 여종이나 있어요. 그 식물들은 고산지대에 사는 식물들이라 바람을 피하려고 땅에 딱 붙어서 가늘게 자라요. 그런 식물들이 바위틈에 자라는데 너무 멋지고 아름답죠. 우리 아내는 암석원을 보면 그런 얘기를 해요. 어떻게 당신은 내가 식물원에 그렇게 많이 관여했는데 대문짝만 하게 당신 사진만 걸려 있고 내 사진은 한 장도 없느냐고. 그러면 저는 그럽니다. 사진 같은 거 없어도 다 아내의 내조로 만들어진 식물원이라는 걸 사람들이 잘 알지 않느냐고 얘기하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 두 가지, 마타리와 느릅나무 식물원의 식물들을 보면 꼭 다 제 자식 같아요. 우리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라고 하잖아요. 식물 하나하나마다 다 매력이 있고 특징이 있으니까요. 저는 평강식물원에서 들꽃 동산을 가장 좋아해요. 계절마다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거든요. 들꽃 동산의 식물 중에서 저는 특히 마타리를 좋아합니다. 마타리 꽃은 찬란한 금빛이에요. 그런데 진짜 금빛보다 마타리 꽃이 가진 그 빛깔이 더 아름다워요. 그 색깔을 보면 저는 껌뻑 넘어갑니다. ‘살아 있는 꽃이 어쩜 이렇게 광채가 나면서 아름다운 금빛을 낼까.’하고요. 9월이 되면 들꽃 동산에 마타리가 가득 핍니다. 저는 그 마타리 때문에 매년 가을이 기다려져요. ‘아 올해도 마타리를 보고 싶다.’라고 하면서요. 마타리는 뿌리에서 장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패장이라는 속명을 가지고 있는데, 염증에 사용해 사람을 낫게 하기도 하는 식물이죠. 코나무는 느릅나무 뿌리껍질을 말하는데 옛날에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찾아서 집에 갔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느릅나무 뿌리를 식량으로 캐러 갔었다고 해요. 저희 한의원에서 코나무를 이용해서 비염과 축농증 같은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기도 했고요. 또 코나무는 저희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물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자기는 평강 공주, 저는 바보 온달이라고 불리거든요. 그리고 느릅나무 때문에 평강식물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질경이마저도 인간들의 병을 치료해주잖아요. 그러니까 식물 하나하나 모두 귀하지 않은 것이 없죠. 그래서 저는 모든 천연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인간의 건강은 자연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죠. 그래서 아직 찾지 못한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식물 안에서 언젠가는 다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비전과 기도제목 저는 의사이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살고 싶어요. 세계적으로 20% 정도가 코와 관련된 질병을 앓고 있거든요. 또 요즘 저는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좀 더 나이가 들면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제약회사를 세우고 싶어요. 제가 전 세계의 코 질환과 아토피성 피부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이요. 또 저는 창조과학회 이사이고 OM선교회 이사잖아요. 그래서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면 평강식물원에 OM 선교센터도 하나 세우고 창조과학관도 하나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희 식물원이 단순한 식물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강의 동산이 되기를 바라거든요. 학교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뜻을 담은 병원도 그곳에 세우고 싶어요.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할 만한 곳. 이 세상이 저로 말미암아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어요.
- 인터뷰 진행&정리 : 신은정 작가 |
출처: shekina 원문보기 글쓴이: shek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