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화 나무인형의 집
금세 날이 밝아왔다.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자고 있는 쥰의 눈에 비췄다. 눈이 부시는 듯한 느낌을 받은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제까지 학교를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더 자고 싶었지만, 햇살이 비추고 있었기에 더 이상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막 이불을 걷히고 일어나려고 할 때, 무언가 침대에 눕혀져 있어 깜짝 놀랐다. 그의 옆에는 어제 악몽 때문에 잠자리를 옮긴 신쿠라는 인형이었다. 평소에는 그녀는 잠을 잘 때 나무상자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데, 오늘은 왠지 그의 곁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본 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그녀를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 나무상자에 눕혀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세 명의 인형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물론, 그녀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킁킁이 탐정이야기다.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들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었으니 정말 재미있는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그는 킁킁이에 대해 관심이 없는 그는 그런 인형들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어보았다.
“그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미있어?”
“응,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냄새로 추리하는 킁킁이의 모습이 정말로 멋있어.”
“개니까 당연히 후각이 뛰어날 뿐이지.”
“어머, 킁킁이는 보통 개하고는 다르다고요! 당신도 킁킁이를 본받아 멋지게 행동하세요.”
“에? 내가 개에게 본받으라고? 터무니없는 소리!”
약간 심술이 난 쥰은 리모컨을 들어 전원버튼을 눌렀다. 그 바람에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꺼지자, 갑자기 인형들이 태도가 확 달라져버렸다. 워낙에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지 보고 있는 것을 왜 전원을 끄냐며 그에게 달려들어 여기저기 꼬집고, 때리고, 심지어 깨물기까지 했다. 완전히 잠을 자고 있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 된 쥰은 세 명의 인형들의 떼어놓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이 인형들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기에 전원을 눌러주지 않으면 자신은 귀찮은 고통을 계속 겪어야만 했다.
“아, 이것들이 왜 이래?! 당장 떨어지지 못해?!”
“감히 감상하고 있는 킁킁이를 사라지게 만들어요?! 다시 살려내요!”
“맞아! 쥰 나빠! 빨리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알았어, 살려줄게!”
그가 다시 리모컨 전원을 누르자, 다시 TV에서 킁킁이가 나와 탐정놀이를 하고 있었다. 킁킁이가 다시 나오자 금세 조용해진 인형들. 만약에 이 상태에서 다시 전원을 눌러버린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았기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렇게 실랑이를 펼쳐 갑자기 배가 고파진 쥰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그의 누나인 노리가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식탁에 올라온 음식은 없었다. 방금 부엌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그는 부엌에서 먹다 남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평소 때처럼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올린 물건이 팔렸는지 안 팔렸는지 확인을 해보면서 시간을 보는 일이 그의 하루일관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왠지 인터넷 중독자로 여길 것 같은데, 그는 아직도 자신이 정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모습이 좋지 않는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하나, 자신은 자신이기 때문에 굳게 믿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설령, 내 자신이 싫다고 해도 말이다.
잠시 후, 나무상자를 열고 나오는 신쿠. 그녀는 분명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무상자에 돌아왔는지 알고 싶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내 옆에서 자고 있더라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침대에서 잔거야?”
“그건 하인이 알 필요 없어. 자는 틈에 옮긴 거야?”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바보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언가 들린 것 같아 뭐라고 했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단추가 떨어졌다고 꿰매달라고 명령(?)했다. 그는 그녀의 명령에 따라 컴퓨터를 끄고 바느질 세트를 꺼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바늘 이외에 다른 물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오랫동안 그녀의 단추를 꿰매주며 생활했기에 물품이 떨어진 것이 당연했다.
그는 잠시 다녀올 것이 있다고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니, 그녀는 갑자기 어젯밤에 꾸었던 악몽이 다시 생각이 났다. 자신의 화려한 꿈속에서 갑자기 일어난 기습. 무언가 노리고 그것을 빼앗기 위해 일종의 경고 메시지인 듯했다.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느낌이 들어 그녀는 몸을 움직여 아래층으로 내려간 쥰을 따라갔다. 거실에서 킁킁이의 프로그램을 감상하고 있던 인형들이 그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상점에 좀 갔다 올게.”
“그러면, 히나이치고도 쥰을 따라 갈래.”
“그냥 있어, 괜히 안 좋은 일 생기면 어떻게 해.”
“싫어! 싫어! 나도 따라갈 거야!”
하면서 그녀는 그의 팔을 붙잡으면서 같이 데려가라고 졸랐다. 깜짝 놀란 쥰은 이리저리 흔들어대면서 이거 놓으라고 그녀를 말렸지만, 그녀는 딱딱 달라붙는 문어처럼 데려간다고 말을 할 때까지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의 고집이 이렇게 세단 말인가? 어떻게 안 된다고 하는데도 꼭 해달라고 고집을 피워 말하는 것일까? 이런 경우에는 확실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건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는 할 수 없이 허락하자,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바로 그녀의 머리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형주제에 사람을 코끼리처럼 취급하는 것 같지만, 인형은 인형이니까 그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쥰, 나도 데려가.”
이번에는 그의 뒤를 따라온 신쿠차례였다. 그는 역시 히나이치고에게 했던 것처럼 안 된다고 말해주었지만, 그녀의 말하는 한마디가 왠지 압도적으로 들려왔다. 하인은 토를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고...... 다른 인형들을 몰라도 신쿠라는 인형은 달라보였다. 상대방을 매섭게 바라보는 두 눈에 딱딱 끊어지는 말투. 정말 분위기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녀의 공격은 다른 인형들보다 화려하고, 날카롭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싸움을 걸지 못했다. 그녀의 라이벌만 제외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그는 할 수 없이 그녀도 데려가기로 했다.
*
그가 도착한 곳은 여러 가지 인형들을 파는 어느 가계였다. 그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색의 실과 단추, 질긴 헝겊을 사고 가계 안에 잔뜩 쌓여있는 여러 인형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들과 비슷하게 생긴 인형들, 솜으로 꽉 찬 갈색 털의 곰 인형, 질긴 헝겊으로 만든 인형 옷들 등등 인형에 관한 물품은 전부 여기에서 팔고 있었다. 그를 따라온 그녀들은 이 인형가계가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 아저씨, 이것도 인형인가요?”
그는 여러 가지 인형들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나무토막들로 이어진 인형을 바라보고 가계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말로는 그 인형은 피노키오처럼 나무인형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이 나무인형만 따로 파는 가계가 있는지 물었다.
“자주 등산을 즐기는 뒷산 입구 쪽에 나무인형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계가 있지.”
“그 곳에서 사가는 사람이 있나요?”
“주로 연극하는 단체들만 사 가더라고. 우리 같은 사람은 솜 인형을 사 가지만, 연극할 때는 나무인형을 사용하기 때문이지. 직접 와서 사가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주문예약으로 해서 사 간다고 하더구나.”
쥰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계 밖으로 나왔다. 나무인형에 대해 궁금해 하는 그녀들은 나무인형가계에 한번 가보자고 졸라댔다. 그러나 그곳은 여기에서 굉장히 멀기 때문에 그는 굉장히 귀찮아하면서 다음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를 말 한마디로 제압하는 그녀가 그의 왼팔에 안겨져 있기 때문에 차마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뒷산 입구 쪽에 있는 나무인형 집으로 향했다. 나무인형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계답게 곳곳에 나무인형들만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멍한 표정이라 왠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쥰은 먼저 가계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문을 잠그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버린 모양이다. 그녀들은 각종 나무인형들을 둘러보다가 열려져있는 방안으로 발을 들어놓게 되었다. 그 안에는 밖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나무인형들이 셀 수 없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 중에서 연보라색 헝겊조끼를 입고 있는 한 나무인형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 인형은 특이하게 앞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아래로 향해 시선이 맞춰있었다. 이 나무인형이 신기하기 느껴지는 히나이치고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다.
-딸깍!
그때, 갑자기 아래로 향해 있던 검은 동공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있는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이에 깜짝 놀란 그녀는 신쿠와 함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쾅!
활짝 열려있었던 문이 순간 쾅 소리를 내며 굳게 닫아버렸다. 아마도 그녀들을 곧게 내보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벽에 기대앉아있던 그 인형의 입이 위아래로 씰룩거렸다. 그것보다 더 소름이 돋는 것은 그의 말투였다.
“하.하.하. 내.집.에.잘.왔.다. 나.무.인.형.의.집.에.잘.왔.다. 아.하.하.하.”
로봇처럼 딱딱 끊어 말하는 나무인형. 이 나무인형은 어젯밤 자고 있는 신쿠와 스이킨토를 지켜보았던 그 나무인형이었던 것이었다. 무언가 경고를 주기 위함의 악몽을 꾸게 해주었던 그 나무인형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