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재판이건 형사재판이건 재판의 결과로 선고되는 판결은 그 본질이 復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판결이 그 토대로 삼고 있는 법률의 역사가 어느 유명한 법학자의 표현처럼 바로 복수를 이성적으로 제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의 권리와 이익을 빼앗은 피고인과 피고에게 법률과 판결은 그 반환을 명하거나 손해배상을 명함으로서 빼앗긴 자의 복수감정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그런데 복수는 또 복수는 낳는다는 속담 처럼, 판결 또한 또 다른 복수를 파생할 수 있기 때문에 판결은 분쟁해결의 평화적 방법으로서 기능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따라서 판결보다는 화해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종국적인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해는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하는 제소전 화해와, 소송을 제기하고 난 뒤에 하는 재판상 화해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양쪽 당사자가 서로 마음을 비우거나 양보를 하고 아무런 불만 없이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쌍방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거나 반목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화해는 애당초 불가능하고 그런 경우에는 부득이 판결로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쌍방이 분쟁의 大勢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서로간에 화해에 접근할 수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미세한 부분에 대해 감정정리가 덜 되거나 이해관계를 양보하지 못해서 화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까지 화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판결로 해결하는 것은 너무 불합리하므로 이때 법원이 중재자 역할을 해서 법원이 생각하는 해결 선을 제시해 제도적 구속력을 가지도록 한 것이 바로 화해권고결정이라는 제도이다. 이것은 법원이 구술로 화해를 권고하는 것보다는 결정이라는 명시적인 문서로 화해를 권고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화해를 권고하는 법원의 공정성과 권위에 대한 신뢰성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재판 실무에서는 상당히 많이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화해권고결정은 말 그대로 화해를 권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받은 당사자는 어느 쪽이라도 이의신청을 함으로써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불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화해권고결정에 대해 당사자 쌍방이 아무런 이의신청도 하지 않으면 그때는 재판상 화해를 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분쟁은 종국적으로 종결된다. 종국적인 종결이라는 것은 그 화해결정에 더 이상 불복해서 다툴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점에서 판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고 있다. 판결은 항소, 상고를 통해서 대법원까지 가야 분쟁의 최종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반면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면 1심 단계에서 최종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화해권고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그 심급의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이의신청을 한 사람이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이의신청을 취하할 수가 있으며, 이의신청기간은 화해결정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로 되어있다. 화해권고결정은 기본적으로 원고나 피고가 조금씩은 자신의 주장을 양보해야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은 승소판결을 받을 것이 확실한데 일부라도 양보해서 화해권고 결정을 받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항변할지 모르겠으나, 판결은 앞서본 바와 같이 근본적으로 복수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또 다른 갈등이 파생될 우려가 있음을 고려해 볼 때, 화해권고 결정은 서로간에 더 이상 피를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분쟁 당사자들의 괴로움을 법원이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정은 소리 없는 결투장이다. 화해권고결정이 결투장의 냉기를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더욱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 주 현(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