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전신기, 모스 부호의 탄생
‘모스 부호’라는 이름을 만든 새뮤얼 모스(1791~1871)가 화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미국 내셔널 디자인 아카데미의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뉴욕대학교(NYU)에서 미술을 가르치기 위해 강단에 서기도 했다.
미술 연구를 위해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선상에서 전자석 연구가인 드나 교수의 전자기학(電磁氣學)을 접하게 된다. 이것은 우연치고는 다소 독특한 면이 있다. 전화기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성학 연구자였고, 텔레비전을 발명한 존 로지 베어드가 전기공학자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다소 생뚱맞게 느껴진다. 어떻게 그는 모스 부호의 발명가가 된 것일까.
미국에 돌아와 전신기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 새뮤얼 모스였지만, 그에게는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했다. 마침 프린스턴대학교의 동료 교수였던 조지프 헨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스는 헨리가 전기의 자극신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로 그 시점에 그는 유럽의 연구 내용에 대해 조언을 전해준 것이다. 조지프 헨리는 모스의 이야기를 듣고 알프레드 베일이라는 전기 기술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전기 신호를 통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전신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둘은 합심 끝에 전신 부호와 전신기를 개발하였다. 조지프 헨리는 개발 완료된 전신 부호와 전신기를 아이디어의 제공자였던 새뮤얼 모스에게 최초로 알려주었고, 새뮤얼 모스는 1843년 두 사람 몰래 이것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여 특허권을 따내게 된다. 이른바 모스의 욕심, 헨리의 이론, 그리고 베일의 기술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모스 부호’인 것이다.
심지어 이 전신기는 최초의 것도 아니었다. 전기 신호로 의미를 전달하는 기계는 1809년 바이에른 왕의 주치의였던 자무엘 토마스 죄머링이 만든 것이 세계 최초였다. 새뮤얼 모스가 특허를 따낸 것은 기껏해야 여섯 번째에 불과했지만, ‘전신기의 발명가’라는 역사적 영예는 그가 얻게 되었다.
전신, 디지털의 모태가 되다
이처럼 등장한 모스 부호는 처음에 국가자금과 유럽에서의 특허권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전기신호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1843 년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의 시험선 가설비 3만 달러의 예산을 획득한 전신기술은 1844년 최초의 연락에 성공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망을 구축하게 된다.
모스 부호는 짧은 발신 전류(•)와 긴 발신 전류(-)를 적절히 조합해 알파벳과 숫자를 표기한다. 각국의 문자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국제적으로 비슷하다. 긴 발신 전류로 나타내는 장점(長點, dash)은 짧은 발신 전류의 단점(短點, dot)의 3배이다. 문자와 기호 사이는 각 3단점 길이의 간격을 취한다. 이는 일종의 띄어 쓰기와 같다. 통신사가 키를 눌러서 전류의 단속 혹은 전압의 고저로 변화를 가하여 전송하면, 수신자가 음향 또는 인쇄 기록으로 받아 문자로 옮겨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885년 9월 28일 서로전선(西路電線)이 개통되어 한성과 인천 사이의 전신업무가 개시되었을 때 일본과 청나라를 통하여 도입된 전신부호를 처음 받아들였다.
이에 앞서 조선 정부에서는 김학우(金鶴羽)를 일본에 파견해 모스 부호를 연구하게 한다. 어릴 때부터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 동경에서 성장한 김학우는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해 이 방면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김학우는 연구 끝에 최초의 국문 전신부호인 ‘국문자모 호마타법(國文字母 號碼打法)’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2진법 체계의 모스 부호였다. 또한 오늘날 2진법을 이용한 디지털 전송방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가 만들어낸 이 2진법이 지금의 한글 코드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최신 기술이었던 모스 부호는 아직도 첨단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재등장한 모스 부호
지난 2012년 초 미국의 씨넷 TV에서 소개된 전자 신호 단말기 ‘티워스 키(Tworse Key)’는 모스 부호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전통적인 형태이다. 다만 170년 전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터넷 연결을 할 수 있는 랜선이 있다는 점과 제품 내부에 모스 부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API가 적용된 기판에 인터넷 연결 칩셋이 장착됐다는 것뿐이다. 이 단말기는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것을 이용해 ‘트위터’에 글을 작성할 수 있다고 한다. 마틴 칼텐브루너가 고안한 모스 부호 방식의 트위터 전용 단말기의 사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사용자는 랜선 포트에 이 단말기를 꽂고 트위터를 바로 전송할 수 있다. 액정 화면 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송된 글의 내용이나 상대방의 글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올린 계정의 글을 삭제할 수는 있다. 이 제품을 만든 칼텐브루너는 현재 이 단말기를 이용해 자신의 트위터 계정(https://twitter.com/tworsekey)에 글을 올리고 있으며, 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출발점이 되는 아날로그적인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것을 사용하는 것일까. ‘티워스 키’의 발명가 칼텐부르너는 이것을 “디지털 고고학을 이용한 일종의 디자인 운동”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고고학’이란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복원 기술을 의미한다. 편지나 복사기의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사람들은 훨씬 수많은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한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란 쉽지 않다. 데이터 복구기술을 다루는 ASR사의
CEO, 앤드류 로센은 이와 같은 상황을 “마치 개구리 뛰기 경주 같다.”고 표현하며 데이터 복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데이터 파괴 기술도 따라서 발전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효율적이고 간략하게 전달했던 모스 부호 시대가 가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휩쓸려 다니고 있는 것이다. ‘티워스 키’ 같은 도구의 등장은 바로 그런 맹점을 지적한다. ‘디지털’이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간단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나온 방식인 것이다. 21세기에도 모스 부호는 현대인들에 게 디지털 본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2013 iNSIGHT | 옛 시절 그 과학 글 함승우(고려대학교 MNB Lab 연구원)
모스부호의 탄생.zip
첫댓글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전혀몰았던사실을 알게되였읍니다,,, 가끔 좋은정보 읽고 통신공부 잘하고 갑니다,,,, ECY/OM, 님 고맙습니다,,
네~
저도 이거 읽어 보고 놀랐습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사실 상 사무엘 모오스는 비과학자로서 사기꾼입니다.
미국의 특허제도는 과거 선발명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발명자를 최대한 보호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모스가 몰래 진행한 특허 출원은 그 당시 미국특허법하에서 소위 "모인출원"에 절도 출원에 해당한다 보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읽어 보고 깜짝 놀랐으며, 이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습니다.
조지프 헨리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더니,
확실히 모스가 조지프 헨지의 전신 관련 특허를 도용한 것으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