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고공공포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항공기는 겁난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그리고 철도나 선박, 버스로 장거리여행을 갈 때는 여행보험에 잘 들지 않으면서도 항공기 여행을 할 경우는 가입하게 되며 대부분의 여행사에서도 이를 적극 권유하거나 때로는 아예 단체여행경비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철도역이나 여객선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에는 보험회사의 창구가 잘 보이지 않은데 비해 공항에 가보면 화려한 간판을 내건 보험사들이 카운터를 마련하고 친절하게도 자동가입기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그만큼 장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항공기여행이 가장 안전하다. 통계적으로 보면 승객 1억명을 1킬로미터 수송하는 경우의 사망자수는 자동차가 218명 정도, 철도가 0.22명인데 반해 항공기는 0.08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처럼 항공기는 가장 안전한 것으로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그 충격의 여파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항공기가 가장 위험한 교통수단이라고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인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때문에 철저한 정비와 안전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나 IATA(국제항공운송협회) 같은 국제기구가 선두에 나서서 엄격한 지침을 내세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魔)의 11분간(Critical Eleven Minutes)이라는 말이 있다.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를 개시한 후의 3분간과, 공항 진입에서 착륙할 때까지의 8분을 합친 11분 동안이 항공기의 사고율이 가장 높은 때라는 것을 의미한다. 항공기가 운항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이륙→상승→순항→진입→착륙의 다섯 단계로 나뉜다. 이륙이라는 것은 항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해 활주로에서 공중으로 떠올라 상승을 개시할 단계까지를 말한다. 또한 착륙은 항공기가 공항으로 접근하여 활주로에 내릴 후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를 말한다.
“Critical Eleven Minutes”란 마의 11분간이라는 뜻으로 우리들에게 소개되어 있으나 이 말은 미국의 트랜스월드항공(TWA=2001년에 AA와 합병)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제트 여객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59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TWA가 집계,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는 이륙 후의 3분간과 착륙 전의 8분 합쳐서 11분간에 집중되어 있어 70%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래서 동사는 조종사들로 하여금 이착륙시의 긴장된 국면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를 배제시키고자 전사적으로 무사고달성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 때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Critical Eleven Minutes, 마(魔)의 11분간”이었다고 한다. 이후 이 표어는 전 세계의 항공사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무사고운동의 대명사처럼 됐다. 이 무사고운동은 Crew Coordination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지금도 여러 항공사에 CEM 위원회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조직이 있어 비행안전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으며, CRM(Crew Resource Management, 승무원자원관리)는 필수용어이다.
이륙한 후 목적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일정한 고도와 속도에서 순항하고 있을 때가 가장 안정되어 있는 상태가 되는데 비행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이륙과 착륙시의 11분을 뺀 나머지 시간은 걱정할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토파일럿(autopilot)도 이때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륙과 착륙의 양 단계에서 항공기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통계학적으로 가장 높다는 것이다. 사실 항공사고의 발생 시점을 중심으로 통계치를 내보면, 이착륙시의 사고율이 74%(이륙시 28%, 착륙시 46%)로서 모든 사고의 4분의 3정도가 이 "마의 11분"에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장을 비롯하여 전 승무원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들이다. 흔히들 기장은 이 11분을 위하여 고된 훈련과 이에 따른 영광이 주어진다고 할 정도이다. 마의 11분간의 사고기록은 그 옛날 TWA가 집계한 통계자료보다 더 높아져서 최근엔 거의 90%수준이라고 업계전문지는 전하고 있다.
그러면 이륙과 착륙은 어느 쪽이 위험한가? 이런 질문을 수없이 많이 접하게 되는데 딱 잘라서 어느 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위험성에 관해서는 이미 통계가 나와 있지만 그래도 조종사들을 상대로 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현직 기장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착륙할 때보다 이륙할 때의 긴장감이 더 높다”라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 이유는 착륙 시에는 항공기의 속도를 점점 줄여나가는데 비해 이륙할 때는 반대로 속도를 늘려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공기는 이륙할 때 엄청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엔진을 풀가동시켜야 하고 때문에 불꽃 하나 잘 못 돼도 폭발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륙할 때는 연료가 가득 실려 있어 항공기 자체가 무겁기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같은 조건이라면 착륙보다 이륙 쪽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제로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도 착륙시에 일어난 사고에서는 반드시 살아남는 사람이 여러 명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잠정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올만하다.
이 마(魔)의 11분 동안, 조종실 못지 않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객실승무원들, 그들에게는 그 11분 중에서도 이륙직전과 착륙직전 각각 30초씩 STS(Silent Thirty Seconds)라 불리는 “침묵의 30초”라는 것이 있다. 그 30초씩은 만일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그 대응책을 머리속에 이미징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점프시트(Jump Seat)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않히는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