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있지만, 80년대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멜로디는 차치하고라도 가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또한 정파대립이 극심했던 것도 한 이유이다. 그래서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당시 집회에서 애국가 대신으로 민중의례시에 유행하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으로 시작하는 민족해방가를 주로 불렀다면, 인터내셔널가는 끼리끼리 골방에서 부르는 노래였다. 그리고 또한 레드 콤플렉스도 작용하였다. 민족해방가까지는 허용된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내셔널가는 좀더 확고한 신념(?)을 요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했던 88년도에 이 노래를 접했다. 당시엔 지금과 다른 가사가 번안되어 불리워졌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 우린 울었다.…" (이 가사는 예전 노래책에 나와 있는데, '역사의 새주인'이라는 제목으로 악보가 나와있다)
처음부터 뭐랄까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면 전율 같은 것이 왔다.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노래가 몇 개가 있는데, 소리물결에서 부른 '민중의 노래(레미제라블 삽입곡)', '녹슬은 해방구', '영원한 노동자', '저 평등의 땅에',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한 '투쟁의 물결' 등이 그런 노래였다. 아마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노래를 약간 과시 삼아 불렀다. 내 자신의 신념이나 세계관이 이러하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그런 우쭐한 태도로 말이다. 그래서 집회나 행사 등의 뒷풀이 등이 끝난 뒤에는 과친구, 선후배들과 모여 인터내셔널가와 과가(불나비를 개사한 것이다)를 불렀다. 그것으로 남과 구별된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던 것이다. 그 때 내 나이또래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러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젊을 때의 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근에 불리워지는 인터내셔널가 가사는 시인 김정환이 '노문연(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으로 있을 때 번안한 것으로, 90년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공연하면서 이를 정식으로 불러 퍼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버전보다 더 혁명적이고 원어 가사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모든 행진곡 풍의 노래가 그렇듯이 인터가 또한 여럿이서 함께 부를 때 빛이 난다.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때면 다수의 대중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우선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내걸고 혁신하다가 '낫과 망치'가 새겨진 붉은 깃발을 내릴 무렵 열렸던 소련의 공산당대회에 관한 기사가 문화방송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폐회 장면에서 인터내셔널가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소련의 붕괴를 알리는 장송곡이었달까? 그때 난 인터내셔널가가 일국의 국가로서 사용되는 것에 분노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련의 국가는 따로 있었다. -_-;;)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마 91년 지하 노동운동 세력이 합법적인 진보정당을 내걸고 나와 당의 깃발을 올린 한국노동당 창당대회장(아마 무역회관 코렉스 빌딩이었던 듯하다)에서 창당선언문을 낭독할 때 인터내셔널가를 배경음악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약간 충격적이었고(확실하게 빨갱이의 음악이었으니까..), 그 노래를 만명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부른 최초의 순간은 92년도 올림픽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백기완 민중후보의 대통령 선출대회였던 듯하다. 이후에 인터내셔널가는 점차 큰 부담 없이 불리워지는 노래가 되었다. 작년 노동절 때 대학로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합창한 것도 커다란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인터내셔널가는 그 연주 또한 감동적이다. 현재 내 홈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도 인터가의 피아노곡이며, 또 Z.E.N이 첫곡으로 내놓았던 '아빠와 전태일'의 간주도 인터가이다. 가끔 티브이에 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좌파의 이야기를 다룰 때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올 때가 있다.
우리가 인터내셔널가를 대중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은 영화를 통해서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장면은 켄 로치 감독이 만든 'Land and Freedom'에서 친한 동지를 땅에 묻으면서 나오는 부르는 것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당시 민중들의 투쟁과 갈등을 그린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는 원곡이 소리가 작은 관계로 볼륨을 높여야 잘 들을 수 있다.( mms://cast.inp.or.kr/music/inter-landnfreedom.wma )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던 장면은 존 리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 [Reds]에서 리드가 동지들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선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인터내셔널가이다. 또 [양철북]에서도 이 노래가 나오고, [1900년]에서도 나오며, [에어포스 원]에서 악당의 콧노래로도 나온다.
참,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때 우리는 아지를 한다. 그 전주처럼 사용되는 아지(agitation)은 인터내셔널가를 함께 부를 때 주문과도 같다. 나는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문장을 사용하여 하는 아지밖에 몰랐는데, 최근에는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레히트의 시 '예심판사 앞에 선 16세 봉제공 엠마 리이스'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가
체르노비치에서 예심판사앞에 섰을 때
그녀는 요구받았다
왜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는가
그 이유를 대라고
이에 답하고나서 그녀는 일어서더니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을
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하자
그녀의 소리가 매섭게 외쳤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자본가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 앞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투쟁! 투쟁! 투쟁투쟁투쟁!
1.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 들어라 최후 결전 승리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라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자유평등 그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이 절은 맨 마지막에만 부른다)
2.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 반복
3 억세고 못박혀 굳은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태양은 지평선에 떠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