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소 충남 논산 관촉사, 개태사, 송불암, 쌍계사
출발시간 도구면사무소앞 6시 20
인덕이마트앞 6시 25분
포항종합운동장앞 6시 35분
양 학 육 교 6시 40분
여성수영장사거리 7시
관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촉사 [灌燭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개태사
대한불교조계종
936년(태조 19)에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무찌르고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려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하였다.
이후 조선조시대에는 퇴락하여 폐사로 있던 것을 1930년 김광영(金光榮)이 새로 짓고
'도광사(道光寺)'로 이름을 고쳤다가 다시 '태광사(泰光寺)'라고 하였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19호인 사지석불입상(寺址石佛立像), 충남민속자료 제1호인 개태사철확(鐵鑊), 충남문화재자료 제247호인 5층석탑과 제275호인 석조(石槽)가 있다.
예전에 이 절에서 쓰던 철확, 즉 큰 가마솥은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것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개태사 [開泰寺] (두산백과)
송불암
* 전설이 살아있는 사찰, 송불암 *
송불암은 논산시 연산면 화암리 함박봉에 자리잡고 있다.
연산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자그마한 사찰이다.
태고종 사찰이다.
소나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는 사찰. 논산 함박봉의 송불암은 소나무와 미륵부처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곳이다.
송불암이 위치한 자리에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석불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1946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살았던 동상태의 어머니가 2칸의 민가로 송불암을 창건하였다. 송불암은 1970년대부터 승려 경연이 주지를 맡고 있는데, 송불암이라는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송불암의 창건 설화 *
송불암에는 미륵불과 소나무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설은 조선초에 근처 마을인 고정리(古井里)에서 살았던 광산 김씨가문과 관련되며, 아울러 당시 널리 퍼져있던 풍수지리와도 관련된다.
전설의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간씩 윤색되고 이 지역의 토착세력이던 광산 김씨 가문의 허씨부인이 별세하자 황령고개(느르뫼재) 너머 벌곡 쪽에 사는 풍수를 아는 스님이 묘터를 잡아 주었다. 그런데 부인의 묘혈이 왕퉁이혈(穴)이므로 풍수가 항령재를 넘은 뒤에 하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이른 뒤에 풍수는 부지런히 고개를 향해 걸었다. 그러나 지관이 겨우 송불암 쯤 밖에 못 왔는데 상주측에서는 이미 풍수가 고개를 넘었으리라고 짐작하고 하관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왕퉁이 한 마리가 묘혈에서 나와서는 지관이 있는 곳을 향하여 날아가 지관의 머리를 쏘았고, 결국 지관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 때 김씨 가문에서는 불의에 죽음을 잃은 지관을 위하여 묘를 써주고 미륵불을 세웠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송불암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불암(논산)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쌍계사
작봉산(鵲峰山)에 있는 절로, 고려 초기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218)을 건조한 혜명(慧明)이 창건하였다 한다. 경내에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이 있고, 그 밖에 쌍계사 중건비(重建碑)와 9기(基)의 부도(浮屠)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쌍계사 [雙溪寺] (두산백과)
6월 108사찰순레 삼사순례입니다.
회원님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총 무 이영숙 010-9124-3795
회 장 정환대 010-4539-5151
부회장 이복자 010-2803-3854
파라다이스관광 민만기 010-6418-1332
***차량 출발지가 오천에서 도구면사무소앞으로 변경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참석 하실분은 회비 30,000원 선입금 부탁드립니다.
농협 정환대
356-0892-5571-03
추신: 입금순으로 등록됨을 양해 바랍니다.
***송불암은 차량 진입이 어려워서 쌍계사로 대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