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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 뒷간 이야기
매일매일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똥"! 타인의 눈을 피해 조용히 은밀한 장소에서 맛보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배설의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똥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흥미를 끌고도 남음이 있다. 왜일까? 이번호에서는 결코 점잖지는 않지만 "똥과 뒷간" 이야기를 신명나게 해보고자 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공공화장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시골 화장실도 제법 그럴싸한 현대식 좌변기로 바뀌었지만, 불과 십 여 년 전만 해도, 어쩌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님 댁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떠나기도 전부터 늘 염려되는 것이 바로 '뒷간'이었다. 특히 서울보다 일찍 날이 저무는 시골의 저녁은 한 치 앞 사물조차 구별을 허락하지 않을 요량으로, 빼곡하게 압축된 어둠은 어린 마음에 검정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래서 으레 밤이면 내게는 요강이 필요했고, 서투른 요강 다루기로 인해 아침이며 번번이 방바닥에서 야릇한 흔적을 남겨있던 기억들이 있다. 하긴 이런 기억은 나 말고도 여러분들의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 추억 속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밤뿐만이 아니다. 벌건 대낮에도 가기 싫은 곳이 뒷간이었다. "빨간 휴지를 줄까? 파란 휴지를 줄까?" 옹기종기 모기장 속에 모여앉아 시작하는 여름밤의 잡담에는 단골처럼 "뒷간 귀신"이 등장하곤 했는데, 그러면 으레 온 몸이 갑작스레 긴장되고 오줌보가 빵빵해지면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조차 어려워지곤 했으니! 그만큼 뒷간과 변소 귀신은 우리의 생활의 일부였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이를 추억함은 우리에게는 즐거움이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옛 시대의 낯선 생활 모습을 낱낱이 알려줄 수 있어 멋진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언젠가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우리 삼촌이 어느 날 똥통에 빠졌다고 한다. 할머니가 삼촌을 씻기고 또 씻겨도 구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았고, 삼촌은 그 후에도 한동안 똥독이 올라 피부병을 앓아야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는 단 한번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오랫동안 삼촌의 이미지의 한 가지가 되어 내 머리에 각인되어져 있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아이가 똥통에 빠지게 된 까닭을 뒷간 귀신이 노여워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게다가 이 뒷간 귀신은 음력 6일, 16일, 26일에 주로 등장해서 이미 겁을 집어 먹고 있었지만 참다못해 뒷간을 찾은 아이들을 놀려주었다곤 하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뒷간 귀신의 노여움을 사게 된 아이들은 오랫동안 무병장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들은 뒷간 귀신의 노여움을 풀어 아이가 무병장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없던 살림에도 밀가루나 쌀가루를 찢고 빚어서 뒷간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사가 끝나면 고사떡으로 쓰인 똥떡을 뒷간 똥통에 빠진 아이의 손에 직접 들려서 이웃집에 나눠주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요즈음의 서양식 좌변기는 그 구조상 자신의 항문에서 똥이 나오는 과정을 잘 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반면 일본에서 들어와 지금처럼 양변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대중적이었던 구식 변기는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항문을 뚫고 나오는 변 모양새를 보면서 내장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된 구조이거니와, 모든 힘을 직장과 대장 쪽으로 모으는데 유리한 체위를 만들어 주어 좋았다. 요즈음도 가끔 공중 화장실을 써야 할 경우, 나는 서양식 좌변기보다는 쪼그려 앉아 누워야 하는 일본식 변기를 선호한다. 그러는 이유는 내장의 건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외에도, 이 사람 저 사람의 엉덩이가 닿은 변기 위에 앉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쪼그려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항문에서 끊어지지 않고 나오는 변 모양에 자연스레 방앗간 기계에서 막 나오는 뜨끈한 가래떡을 연상하게 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잃고 계신 분들은 내가 무슨 변태라도 되는 냥,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배설물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있다고 프로이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소설가 김훈 씨도 그의 여행수필집 <자전거 여행>에서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119쪽) 그러니 내게 있어 자유와 해방의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불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선암사 해우소 입구
해우소, 걱정을 끊어버리는 곳이란 뜻의 해우소에 들렀을 때 나는 옛날식의 뒷간이 반드시 무섭고 칙칙하고 악취 풍기는 음습한 장소가 아님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낮은 햇살이 창살을 통해 뒷간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다소 어둑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는 않았다.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자.’는 해우소 입구의 게시문을 읽은 뒤 안으로 들어가 쪼그려 앉은 곳에서 또 다른 낙서를 보고 그만 ‘쿡’하고 웃어버렸다. ‘파리야 극락가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내 것 네 것 가릴 것 없이 쌓여 있는 똥산 위에서, 푸세식 변소(뒷간)이야 말로 친환경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갓 배설된 똥이야 독하겠지만, 시간에 묵힌 분뇨통 속의 오래된 똥들은 스스로 해독되어 자연 퇴비와 거름으로 거듭나 자연의 생명들에 도움이 되어준다. 물론 똥산이라고 의식하는 순간, 더럽다는 생각을 다시 갖게는 된다. 하지만 나는 명나라 초기에 살았던 예운림(倪雲林)처럼 결벽가가 아니다. 그는 나방의 날개를 잔뜩 모아서 단지 속에 넣어 두고는 변을 본 다음에 뿌려주었다고 한다. 변을 본 뒤 반짝이는 나방의 날개가 춤추듯 낙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똥 누는 순간의 찰라적 아름다움을 이토록 멋지게 장식할 수 있다니! 하지만 너무나도 사치스럽다. 여름밤이라면 나방 잡이가 쉽겠지만, 겨울에는 어디서 나방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돈도 많았던 예운림은 많은 일꾼을 써서 여름 동안 몇 만 마리의 나방을 잡아 일 년 동안의 사용량을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생리적 행위는 무의식과 닿아있다. 화장실이니 뒷간이니 변소니 모두 배설을 위한 장소이고, 배설이야 말로 생리적 행위 중 대표 격이다. 우리 인간들의 무의식 세계란 은유나 상징으로 채 가공되지 않은 귀신과 도깨비 혼령들이 출몰하는 곳이다. 그러니,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뒷간과 관련된 귀신이야기가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의식의 꺼풀이 절 반 정도 벌거벗긴 뒤의 무방비 상태가 되면, 노출된 자신의 무의식에 스스로 긴장하게 된다. 그 두려움을 알아본 무의식은 때를 놓칠 세라, 바로 귀신, 도깨비, 혼령이라는 모양으로 둔갑해 의식을 놀려주는 것이다.
율리도 화장실 괴물이 무서워요
율리는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애이다. 화장실 변기 속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믿는 어린애이다. 오늘도 율리의 엄마는 율리에게 유치원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쉬를 하고 오라고 말했지만 율리는 화장실에 혼자 가기가 무서워서 쉬도 못했다. 유치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오줌이 마려워 율리는 바지에 찔끔찔끔 오줌을 쌌다. 유치원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했던 율리는 신발을 벗기 무섭게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다 급한 중에도, 율리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솟아났다. ‘유치원 화장실에도 괴물이? 혹시 하수구로 헤엄쳐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율리는 부리나케 교실로 돌아가 처음으로 눈에 띤 친구에게 물었다. “너 나랑 화장실 안 갈래?” 하지만 그 때 선생님이 화장실은 혼자 가는 거라고 알려준다. 여전히 혼자서는 화장실에 갈 용기가 없는 율리는 이젠 다리까지 비비 꼬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끔찍한 일은 터지고 만다.
아이들이 율리 주변으로 달려와서 바지를 입은 채 오줌을 싼 율리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율리와 작은 오줌 바다!” 여자 애들은 킥킥거리고 남자 애들은 서로 보려고 야단이었다. 율리는 창피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선생님은 오줌 바다를 닦고 율리를 교무실로 데려가 여벌의 바지로 갈아입힌 후 율리를 데리고 함께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율리를 보자마자 또 다시 놀려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놀림에 기가 죽은 율리는 다시는 유치원에 오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넘어뜨렸다. 그 벌로 혼자 교실에 남게 된 율리에게 카트린이란 여자 친구가 달려와 말을 걸었다. “율리아, 괜찮아? 그 바지 정말 안 어울려.” 카트린은 진심으로 염려해서 율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이미 아이들의 공격을 받은 율리는 과민하게 반응했다. “나가! 안 그러면 때려 줄 거야.” 카트린은 잠시 주춤했지만 율리 옆에 오히려 바짝 다가와 자신도 오줌을 쌌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카트린의 고백에 기분이 나아진 율리가 화장실에 괴물이 있다고 말하자, 카트린도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괴물을 본 적이 있노라며 맞장구를 친다. 그리고 자신은 그 괴물의 머리에 오줌을 갈겨 퇴치했기 때문에, 이제는 걱정 없이 혼자서도 화장실에 잘 간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 날 율리는 카트린의 말을 기억하고 자신의 집 화장실에 혼자 들어갔다. “당장 꺼져 버려. 이 괴물아. 안 그러며 오줌을 싸 줄거야.”라며 혼잣말을 하며 힘차게 오줌을 누웠다. 그랬더니, 정말로 괴물은 오줌을 무서워했던지, 다시는 율리네 화장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 율리처럼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조카는 놀다가도 화장실에 혼자 잘 간다.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스스로 볼일을 보는데 혹시라도 이 그림책을 읽어주면 화장실에 잘 가고 있는 아이에게 화장실 귀신 이미지를 마음 깊숙이 심어주게 되는 것이 아닌지 괜시리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조카의 경우는 아직 세 살이므로 공포심이란 감정이 제대로 분화되어 발전되지 않은 상태일지 모른다. 인간의 공포심이란 누가 가르쳐줘서 알게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원초적으로 습득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나의 어린 시절의 나와 마찬가지로 율리도 변기 속에서 괴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목에 이르러,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라는 동네 언니들의 이야기 탓에 불쑥 변기 속에서 귀신 손이 올라올까 불안해져 변기를 들여다보는 이상한 버릇이 생기지 않았던가! 특히 주거 공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전통적 한옥 구조의 뒷간에서는 뻥 뚫린 분뇨통은 깊고도 넓다. 깊고 넓은 만큼 상상에 허용된 공간도 넓고 깊다. 이 그림책의 글을 쓴 크리스턴 보이에는 1950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교사를 했던 경력이 있다. 또한 그림을 그린 유타 바우어는 1955년 독일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미술대학을 나왔는데, 2001년도에는 <소리 지르는 엄마>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림작가와 글작가가 모두 함부르크와 관련 있는 사람이라 내가 잠시 함부르크에 머물 때, 독일 친구 칼(Karl)의 집에 놀러갔던 시절의 일이 생각난다. 그의 집은 5층에 있고, 화장실의 변기는 세면기나 욕조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나무로 만든 삼단 층계 위에 있던 변기의 역시 나무로 된 뚜껑을 열면, 아래로 뻥 뚫려있는 구멍과 그 구멍에 연결된 커다란 관을 볼 수 있었다. 그 파이프는 지하에 묻혀있는 분뇨통까지 연결되어 있다. 칼은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자기네 집 변기는 친환경적 구조의 변기와 분뇨통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때까지 그와 같은 구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함부르크처럼 대도시에 걸맞지 않는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후 함부르크를 둘러싸고 있는 주말 농장들을 둘러보고야, 그 해답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인공 비료를 사용하는 대신 자신들의 분뇨를 이용해 야채를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시간을 위한 음악 ‘바람의 소리’
내가 좋아하는 곳이 있다. 생각이 풍성해지고, 몸과 마음의 구멍들이 바깥세상을 향해 활짝 열리도록 도움을 주는 곳, 바로 화장실이다. 하지만 나는 외계와 완전히 차폐된 화장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커다란 창이 있어 햇살과 소통할 수 있는 곳, 바람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몸에서 배출된 악취를 싣고 열린 창을 돌아나갈 수 있는 그런 화장실이어야만 비로소 온 마음과 몸이 긴장에서 풀려난다. 본연의 내가 되어 무의식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위해 나에게는 열린 화장실은 필수 조건이다. 만일 거기에 추가 조건이 덧붙여진다면, 나는 명상을 위해 알파파를 활성화시켜주는 음악을 꼽고 싶다. 그리고 소란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엉덩이를 까고 앉아 내면에서 나온 결과물(똥)로서 나의 내면을 돌이키는 데는 단연코 김영동씨의 ‘바람의 소리’의 최고임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영동씨의 최근 앨범 <바람의 소리>에 담긴 동명의 곡 ‘바람의 소리’는 화장실 밖의 인습으로부터 스스로의 둑을 무너뜨리고 침참된 내면의 욕구를 이끌어내주는 몰아의 오르기(orgy)상태를 가능케 해준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그가 ‘바람의 소리’를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사악한 존재라고 믿는 메뚜기떼를 줄을 휘휘 돌려 그 원심력이 일으키는 바람과 소리로 쫓아내듯이, ‘바람의 소리’는 플라스틱으로 된 호스를 빙빙 돌려 주변에 바람을 모으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서서히 정적이 찾아오며, 깊고 잔잔한 심연의 호수 속에서처럼 묘하게 생긴 ‘훈(壎)’이란 악기가 낮은 소리를 낸다. ‘훈’이란 황토를 구워 만든 동그란 전통 악기이다. 더 이상 투박할래야 투박해질 수 없을 정도로 멋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자기에 다섯 개의 구멍(智空)을 뚫어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한국 전통악기 중 토부(土部)에 속하는 공명악기다. 이 구멍을 모두 막으며 황종음이 나고 모두 열면 응종음이 나는 모두 12율(律)의 각기 다른 낮은 소리를 만드는 악기인데, 본래 이 악기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의 극동 지역에서 제례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곡의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김영동씨는 이미 ‘귀소’,‘산행’,‘화’ 등의 명상음악을 펴내며 명상음악가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10대 때는 당시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소에 필기시험만 합격한 상태로, 인간문화재 김범수 선생으로부터 대금 정악을 배우고, 김병호 선생으로부터 가야금과 아쟁을 배운 그가 대금 산조의 명인 한범수 선생의 아현동 집을 찾아가 산조를 배웠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우리 음악사랑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서울대 국악과 2학년 시절인 1971년, 오태석씨 연출의 전무송씨의 모도 드라마 <이식수술>의 음악을 맡음을 계기로, 이후 <태>,<초분>등의 연극 음악도 작곡하게 되고 허규 연출의 <한네의 승천>으로 출세를 하게 된다. 1978년에는 ‘개구리 소리’와 ‘누나의 얼굴’과 같은 국악동요를 발표함으로써,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적도 있다. 한편 독일 괴팅겐 음대에서의 4년간의 유학은 그로 하여금, 에술가의 자기 중심 찾기를 필생의 화두로 삼을 수 있도록 그의 음악 철학을 변화시켰다. 요즈음 김영동씨는 동양음악의 근원을 음양사상에 두고 동양적 수와의 밀접한 관계를 음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의 작업을 주역(周易)을 음악화에 바치겠노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바람의 소리’ 역시 그 틀에서 이해될 수 있는 명상곡이다.
‘바람의 소리’에는 전통 악기 훈 이외에도 서양의 전자악기인 신디사이저가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꽤 현대적이면서도 고풍스럽기도 하다. 한 때 음악계에서는 크로스오버가 유행했는데, 이 곡도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이 뭐 별거겠는가? 꼭 좌선하고 면벽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선(禪)’은 아니다. 내면의 열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진아(眞我)를 만날 수 있고, 그 연장의 끝에서 우주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허물덩이리라며 천대 받는 ‘똥’이 다름 아닌 내 몸 안에서 나올 때 겸허한 자세로 한 없이 스스로를 낮추고 열린 화장실 창문을 통해 마음껏 무의식의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면 배설의 시간이야말로 참선을 생활화하는 일상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아침 시간, 물리적으로도 나를 비우고 그와 더불어 찌든 일상의 욕망을 씻어 내리고자 할 때, 화장실 창을 활짝 열고 새 소리와 함께 김영동씨의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렇게 몇 번만 해보면 내가 앞서 누누이 말한 대로, 똥을 누는 것이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저급한 욕구에 불과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다. 그렇게 몇 십 번만 하다보면, 열린 몸과 마음의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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