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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지의 내부는 심플하면서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한 집이었다. 뱀부(이 곳의 대나무)로
엮어 만든 바닥과 침대, 토마스를 위한 싱글베드도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머리맡의 협탁위의 호롱불은 어린시절 시골
할머니댁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옷장을 지나 화장실 겸 샤워 룸에는 깨끗한 타일이 붙여져 있었지만 최대한 인공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지은 모습이 역력했다. 직원들이 미리 가져다 놓은 짐을 대충 풀고 발코니의 해먹에 덜렁 몸을 드리웠다. 큰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과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 눈앞에 밀려 온 잔잔한 파도의 속삭임... "아~~ 바로 이거야!" 하면서 나의 탁월한 선택에 또 한번 만족해 했다. 빨리 돌아보고 싶은 조급함에 비치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약 10M 이상 뚝뚝 떨어진 다른 코티지들은 제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팀이 함께 묵을 수 있도록 독립된 두 코티지가 하나의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는 코티지("젠장 부모님을 모시고 왔더라면 저 집에 묵었을 텐데"라는 아쉬움!! 사실 부모님을 모시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셨던 부모님 생각이 났다) 넓은 탁자와 의자들이 발코니를 채우고 해먹은 바로 앞 나무그늘에 따로 달려있는 코티지 등등 다양한 모양으로 자리 잡은 코티지들은 각자 손님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기에 충분했다. 간간히 보이는 직원들은 손님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일부러 코티지 주변을 피해 다니는 듯한 세심한 배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시간이 다가 왔다. 정갈하게 차려진 부페식 탁자에 밥과 야채볶음, 그리고 계란 오믈릿, 그리고 오징어를 단면으로 잘라 야채를 채워넣은 오징어, 생선구이(이름이 너무 길어 외우질 못했음). 두번씩 접시에 담아 쩝쩝거리며 배부른 식사를 했다. 커피와 코코아는 언제든 마실 수 있도록 보온병의 더운물까지 24시간 준비해 두었다 . 그리고 식후엔 언제나 작은 케익 또는 망고과일로 디저트를 서비스 해 주었다. 그리고 끼니 때마다 랍스터 또는 쇠고기, 게찜, 야채ㅤㅃㅗㄲ음 등 새로운 반찬에다가... 변화를 주었다 생각외로 우리 입맛에 거의 맞추어진 듯하게 맛이 괜찮았다. 가져 간 튜브식 고추장은 등장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해질무렵 석양이 하루를 정리해 주었다. 스스로 해먹에 드러눕게 만드는 것이 무슨 마법에 걸린 듯이 마음이 차분해졌다. 토마스는 앉아서 그림일기를 그리고.... 해먹에서는 "등대지기", " 바위섬" 등의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거여지면서 난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리포사에.... |
4편
석양이 지고난 마리포사는 더욱 오붓하고 멋진 해변의 밤이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별들... 하늘에 이렇게 많이 별들이 있나 느낄 정도로 수많고 또렷한 별들이었다.
간단한 칵테일과 맥주를 즐길 수있는 바(bar)로 산책을 나갔다. 바텐더 겸 관리인은 "브라이언" 19세의 귀여운 청년이었다. 수줍어 하면서도 손님이 뭘 원하는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순박한 청년!!..
산
미겔 한 잔과 함께 즐기는 마리포사의 밤은 이국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데 조금의 방해물도 없었다. 맥주 한병은
50페소.. 맥주 한잔이면 정신 못차리는 내 아내도 한병을 거뜬히 해치운다. 토마스는 얼음 띄운 망고쥬스를 단숨에 비우고는
다시 별을 보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다.
벨기에인 다이버는 오늘 촬영한 수중 사진을 노트북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이 마리포사의 앞바다는 2차대전 당시 14척의 일본 군함이 미 폭격기의 폭격으로 침몰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포인트라
많은 동서양 많은 다이버들의 매력포인트라며 앤디가 당시 빛바랜 흑백위성사진을 조심스레 꺼내 보여준다.
" 흠! 내일
나도 바다밑의 군함을 보러 들어가리라..." 기대가 되어 흥분이 앞선다. 코디지로 가는 길에 밝혀진 마당의 가로등(?)이 눈에
들어온다. 조약돌로 쌓아올린 기둥에 큰 조개껍데기가 모자를 쓴 듯 서 있었다. 그 안에 조그만 램프 하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연의 모습을 유지할려는 앤디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앤디의 이 섬에 대한 철학은 "자연 그대로의
보존과 그것을 영원히 즐기는 것" 그리고 "현대문명과의 단절(?)" 짧은 영어로 알아들은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조개껍데기 하나도 보고, 즐기되 함부로 개인이 가져나가는 것은 금물이란다. 왜냐면 다음에 방문하는 어느 누구 도 그 자연을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에....
숙
소로 돌아 와 해먹에 누웠다. 파도소리와 쓸려 내려가는 모래 소리가 무슨 현악 2중주를 듣는 듯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셋이서 한 해먹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체중을 함께 더해 보면서 해먹의 줄을 쳐다보는 순간, 이건 뭔가?
"
반딧불이"를 본 것이다. 청정한 곳에서만 겨우 볼 수 있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 아닌가? 토마스에게 반딧불이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발코니의 전구에 몰려드는 벌레가 몇 없다. 모기도 없고.. 이상하다. 전구 근처에 손가락만한
도마뱀 몇 마리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려 매달려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놈을 "리잘" 또는 "리자르" 라고 부른다) 이 놈은
마닐라에서도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바퀴벌레 보듯이.. 근데 이놈이 모기 등 날파리 같은 귀찮게 하는
놈들을 소리 없이 해 치우는 것이다. 사람에게 다가온다든지 해를 입히는 일이 없기에 걱정할 것이 없다. 오히려 귀엽다.
우
리의 여름같이 끈적거림이 없지만 그래도 샤워를 한번 해야겠기에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호롱불이 협탁에 켜져 있다. 누군가가
취침등을 밝혀 주고 간 것이다. 손님에게 전혀 신경 안 쓰게 하는 장면이 또 연출된 것이다. 여긴 전기를 자가발전하여
사용하기에 12시 경 되면 섬 전체의 전원을 내린다. 꼭 필요한 곳 빼고는.. 그래서 호롱불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샤워물도 염분이 조금 배여 있는 듯 하지만 샴푸하는데는 이상이 없을 정도로 쓸만하다.
토마스는침대위의 모기장 속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다 그냥 잠이 들었다. "짐 줄이느라 색연필 한통 못 넣게 하고 스케치북만 준비한 것이 후회가 된다. 어찌
이쁘게 잘 그리던지..ㅍㅎㅎ.." 첫날밤 해먹에 누워 "파도가 부서지는 바윗섬~~ " 등등 쉴새없이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헌(?)니문의 밤은 깊어만 갔다.
"파도소리에 잠을 깨어 본 적이 있는지?" 적막한 섬에 오직 파도소리 뿐...
파도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6시.. 동이 트 오는 것이 보였다. 벌떡 일어나 팬티차림에 밖을 나갔다(아무도 뭐라할 사람이 없기에...)
또 하나의 장관을 보았다. 해가 뜨는 것이다. 캠코더를 꺼내어 정신없이 담았다. 일단 담고보자는 성급함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저기 보니까 한 할아버지 직원이 해변을 쓸고 있다. 밤새 밀려 온 해초들을 걷어 내고 있었다. 손님들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유물들이라 미리 서두른 것인지...
굳모닝 인사에 굉장히 반가운 미소로 답을 한다. 그 이상은 말없이 할일만 한다.
우
와!! 원숭이들이 식당 뒷마당으로 내려와 놀다가 놀란듯이 사라진다. 나무위의 한 놈은 어디선가 코코넛 한 통을 구해서 양손으로
들고 뒤뚱뒤뚱 그리고 흘끗흘끗 날 쳐다보며 사라진다. 한 40~50마리는 될 것 같다. 재밌는 놈들이다. 이구아나 같은
도마뱀도 있다던데 그 놈은 안 보인다. 언제가는 나타나겠지...
이 섬에 세퍼트가 2마리 있다. 엄청나게 크다.
아들놈은 "스팅" 그 애미는 이름이 기억이 가물...("갤락"인 것으로 기억..). 스팅은 장난꾸러기 이다. 언제 왔는지
스팅이 장난을 걸어온다. 좋다고 그러는 것이 발목을 깨물기도 하고, 슬리퍼를 빼앗아 물고 도망가기도 한다. 손님이 와서
흥분을 하는데 토마스는 처음에 기겁을 했다. 제 보다는 큰 개 2마리가 엉겨붙는데 나도 처음엔 겁이 났지만 차차
익숙해졌다. "stand up!" "sit down!" "GO out" 이 세마디로 모든 대화가 되었다.
그 덕에 토마스는 이 세마디는 확실히 배웠다. 스팅을 쫓느라 아빠에게 달려와서 물어 보고는 외우며 가다 잊어버려 또 와서 물어보기를 세 차례쯤... 확실히 기억하는 몇 마디다. 영어학습지 몇 장 한 것보다 낫다고 웃었다.
아침식사를 기다리며 한참이나 원숭이들의 움직임을 즐기며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5편
"Good Morning!"이라는 아침인사로 이 섬의 모든 손님들이 함께 아침상을 받았다.
버터와 잼이 함께 하는 빵이지만 오믈렛 그리고 갖은 야채가 곁들여진 풍성한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각자의 오늘을
설계한다. 누구의 간섭과 구속됨도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준비한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코미디 "미스터 빈"의 주인공을 닮은 스위스인은 여전히 해먹에 누워 독서에 열중하고, 우린 스노쿨링을 떠난다. 먼저 준비실(내가 붙인 방이름)에 들어가 싸이즈에 맞는 오리발과 마스크, 그리고 구명자켓을 준비하고 준비된 방카에 올랐다. 약 10분을 달려 "펄 팜"이 보이는 한적한 바다 가운데 멈춰섰다. 여 기서 잠깐 "펄 팜"에 대해 얘기 해 본다. 진주양식장을 말하는데 필리핀의 유명 기념품 가운데는 진주를 빼 놓을 수 없다. 이 펄팜은 국가가 관리하는 곳이라 인근 해역을 해군이 지키고 있어 해적의 접근도 불가능한 안전 해역이라고 한다. 특히 팔라완의 해역은 세계적으로 정한 청정 생태보호구역이라 더더욱 해상관리는 엄격하다고 한다. 배가 머춰 선 자리에서 우린 오리발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뛰어들었다. 토마스는 꽤나 겁을 먹어 두려워했으나 엄마아빠가 지르는 함성에 그만 스스로 바다밑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 키가 넘는 물깊이지만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수족관을 방불케 한다. 서울63빌딩의 수족관이나 해운대 아쿠아리움의 대형수족관에 들어 온 기분이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손에 닿을 듯한 물고기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쫓아다닌다. "아아~ 이 맛으로 다이빙을 하나 보다" 그 어떤 표현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설명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익숙치 않은 오리발을 배 위에 벗어던지고 한참이나 바다밑 세상을 구경했다. 배가 다시 출발하여 멈춰 선 곳은 아마존의 늪지대처럼 수초가 무성한 지역.. 물풀 사이로 카약이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방카에서 카약을 내려 탐험대마냥 물풀 사이를 히집고 들어갔다. " 이건 또 뭐람?" 큰 바위 틈 사이에 뜨끈뜨끈한 물이 고여 있는 해수탕이 있지 않은가? 약 너댓명이 함께 들어갈 만한 공간에 짭짜름한 해수온천이 있었던 것이다. 참 신기하다. 어찌된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바위틈에 나오는 것 말고는 자신도 모른단다 그 일대가 뜨끈뜨끈한 물인데 어느 지점에서는 갑자기 찬 바닷물로 연결되는 것이다. 어떤 뚜렷한 경계도 없이... 바위 밑에서 토마스를 안고 앉아 한참을 온천을 즐겼다. 무슨 신선이 된 느낌이다. 쾌적한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가까울 것 같다. 다시 섬으로 돌아 오니 다이빙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장비를 점검하고 오후에 있을 첫경험을 설레여 하며 점심식사를 했다. 몇번의 식사를 통해 낯이 익은 여직원"로안"과 "아즈넥"이 제법 세심하게 토마스의 식사를 챙겨준다. 그 마음씀씀이 고마워 내가 챙겨 간 향수 미니어쳐를 선물로 주었다.(당시 화장품대리점을 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좋아했다. 남자친구 주라고 남성용까지 하나씩 더 주니 식탁주변을 맴돌며 상당한 관심을 보여준다. 정말 순수하고 티없는 아까씨들이다. 제법 "토마스"를 부르며 입맛에 맞는 음식을 권해 주는 정성이 갸륵하다. 항상 큰 유리잔에 물을 가득 부어줘서 부담이 된다. 매끼니 때마다 남는 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아즈넥에게 말했다. " 담에 한국손님이 오면 물을 약 절반만 부어 줘도 된다. 혹시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면 되니 아까운 물을 항상 가득 담지 말아라" 라고 충고했다. 육지에서 보트가 들어올 때마다 식수를 항상 준비해 싣고 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 섬은 개인 섬이라 이 섬주인의 보트외에는 아예 정박(?)을 할 수 없다네요) 아내와 선홍이를 섬에 남겨 둔 채 다이빙을 떠난다. 배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목이 쉬라 아빠를 부르는 토마스의 멀어져 가는 모습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나와 함께 한 다비빙 가이드는 "이직". 아들 둘을 둔 아빠이다. 아들과 아내는 약 30분 떨어진 육지에 살고 있고 자기만 이 섬에 근무한단다. 배 가 멈추자 다른 다이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비를 착용한 뒤 첨벙첨벙 물 속으로 뛰어든다. 영어로 된 간이챠트를 펼쳐들고 나에게 기초교육을 시작했다. 근데 당황된다. 일상적인 대화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건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생명과 직결된 주의사항을 설명하는데 그냥 끄덕일 수만은 없으니.... 난생 처음 다이빙을 하는 나로서는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이 나비투어 사장님께서 준비해 주신 한글판 "다이빙 가이드북"을 함께 뒤적이며 챠트북을 마스터했다. 이젠 장비착용!! "이직"의 도움으로 산소통까지 둘러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그것이 아니다. 잠수 중에 발생할 만약의 사태를 위해 실습을 하는 것이다. 마스크의 물이 들어 왔을 때와 산소공급에 문제가 있을 때의 모든 상황을 몇번이나 연습을 시킨다. 우왁 힘들다. 대충 들어갔다 올 줄 알았는데 꽤나 세심하게 교육을 시킨다. 드디어 입수!! 설설 내려가는데 귀가 아프다. 수압에 의한 당연한 고통이거니 생각했는데 너무 아프네... 이직에게 귀가 아프다니 코를 꼭 쥐고 바람을 불어라는 시늉을 한다. 복어마냥 입을 바람을 불어넣으니 뚱! 하고 귀가 뚫리며 고통이 사라졌다. 그 순간 다양한 색상의 산호들과 물고기 떼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노쿨링 때의 바닷속이 어항이라면 이번엔 수족관이다. 토마스만한 가재 한마리가 꿈틀거린다. 희귀한 모양과 색을 띤 물고기를 쫓아 나도 모르게 헤엄을 치며 물 속을 배회했다. 그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호흡을 놓칠 정도였다 . 이젠 산소게이지를 한번 쳐다보는 여유가 생길 정도다. 첫 입수때는 20분이상을 넘기지 않는다는 "이직"의 교육내용이 생각 나 마음이 급해진다. 바로 그 때 이직이 툭툭 치며 왼쪽을 보라는 것이다. 뭔가 시꺼먼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와~! 말로만 듣던 침몰된 시꺼먼 군함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놀라는 것을 눈치챈 이직이 미소를 띤다.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펴서 펼쳐진 장관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군함의 외벽에 엉겨붙은 산호들... 부서진 대포같은 물체사이로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쫓아 내려가다 보니 밑바닥에 오리발이 닿았다. 겁이 덜컹 났다. 얼마나 내려왔기에 발이 닿은 것일까? 순간적으로 몸을 위에 올렸다. 순간 머리가 물 위로 쏙 떠올랐다. 이직이 서서히 물 위로 오르고 있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한참을 물고기를 따라 다녔던 것이다. 내 발이 닿이는 얕은 곳에서 물고기와 놀았던 것이다. 짜릿하고 상쾌했다. 먼저 올라온 프로다이버들이 첫 입수자에게 배위에서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물 속의 그림같은 모습을 되뇌이느라 한참을 배 위에서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어느 새 배는 섬으로 돌아왔다. 모래장난을 하고 기다리던 토마스에게 물 속 그림들을 설명해 주느라 나 자신도 몹시 흥분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의 다이빙가이드 "이직"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뭘로 감사의 뜻을 전할지 고민하다 미리 준비한 한국담배와 토마스가 기내에서 선물받은 장남감 자동차를 몰래 슬쩍해서 이직에게 주었다. 아들에게 주라고.... 너무나 좋아하던 "이직"의 선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사소한 인연으로 친구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많은 필리핀사람들은 한국인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자신의 친구, 친척들이 한국에서 대우받지 못한 채 착취과 저임금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알기 때문이다. 왜 필리핀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한국업주들은 그렇게 비인간적인지 모르겠다. 정말 각성해야 한다. 우리도 70년대에서 사우디로, 독일로 ,미국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나라에서 많은 고생을 하며 이 나라를 일으켰는데 정말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발 갛게 물든 상갓아일랜드(마리포사 비치의 이곳 정식명칭이다)의 석양이 또 하루를 정리한다. 필리핀 여인과 결혼한 이 섬 주인 앤디의 두딸이 주말을 맞아 아빠가 있는 이 곳으로 들어왔다. 사촌인 두명의 여자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젊잖은 서양인 노부부가 새로 손님이 되어 들어 와 코코넛쥬스를 대접받는다. 첫날의 우리처럼 상기된 모습으로.... 오늘은 생애 첫 다이빙의 한 탓인지 산 미겔맥주의 맛이 더욱 일품이다. 새로 합류된 손님들 때문인지 "스팅"은 더욱 흥분해 날뛴다. |
6편
또 하루의 아침을 연다. 오늘 아침은 일부러 동트기 전의 모습을 감상할 요량으로 몇번을 일어났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다가 벌건 태양이 올라올 무렵 문을 열고 나갔다. 순식간에 해가 올랐다. 저 편 하늘엔 아직 달이
보이는데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것이다. 서서히 떠 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두둥실 떠 있는 방카의 모습은 연말연하장의 사진
또는 달력 속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카메라를 챙겨 들고 식당 뒷마당을 살금살금 갔다. 원숭이들을 만나고 이구아나 같은 도마뱀을 보기 위해서였다. 뒷마당에 앉아 카메라를 여는데 아즈넥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아마 오늘 아침식사 당번인 모양이다.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자기도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원숭이들은 천지로 보이는데 이구아나는 못 봤다고하니 보호색을 띠고 있어 나무나 바윗틈에 있으면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구아나가 아니고 "모네타 리잘"이라는 부른다고 설명해 주었다. "모네타?" 짧은 영어에 더 이상 의미를 묻지 못하고 계속 원숭이들의 동태를 관찰했다. 아침이 완전히 밝도록 "모네타 리잘"은 보이지 않았다. 내일 아침을 놓치면 못 보는데.... (참고로 이구아나=모네타 리잘=바야왁) 아 침 식사 중에 앤디가 오늘의 스케쥴을 물어 온다. 이건 뭔가 거꾸로되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 하라니... 마리포사의 또다른 매력이 아닌가? 어제의 다이빙을 한번 더 하고 싶었지만 토마스가 함께 놀지 않으면 따라 가겠다고 떼 쓰는 통에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은 정말 후회가 되지만.) 항상 아빠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토마스를 위해... 러브빌라 를 봐야 하겠다고 했다. 앤디는 예약한 손님이 올 때만 오픈한다고 했다. 난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마리포사를 취재해야 하는 리포터라고 설명했다. 내 직업인줄 알고 TV냐 잡지냐 하며 매체를 물어왔다. 한국에 당신섬을 소개하는 임무라고 설명하며 3대의 카메라를 앞으로 내미니 흔쾌히 승락한다. 저 앞에 카누를 타고 다녀오라고... 카누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으니 불안한지 이멜다에게 동행을 부탁한다. 뜻밖에 이멜다가 몹시 좋아한다. 이멜다는 작은 카누 한척을, 토마스와 우리식구는 큰 카누를 뭍에서 끌어와 올라탔다. 올라타는 것부터 힘이 든다. 앤디가 까만 박스를 가져다 준다. 카누에 물이 들어 올 수가 있으니 카메라를 넣을 방수가방이라고... 정말 세심하고 친절한 앤디다. 뒤뚱뒤뚱하며 카누를 몰아 약 5분만에(바위섬 하나만 돌아가면 보인다) 러브빌라에 도착했다. 약 10미터 길이의 작은 모래사장이 보였다. 그리고 한채의 아담한 집 한채.. 이멜다가 신이 나서 앞장서며 안내를 해 보인다. 먼저 집에 들어가기 전 모래발을 씻는 수도꼭지가 있다. 이멜다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오색의 색상으로 만드어진 3개의 해먹과 작은 그네가 늘여져 있고, 한 구석엔 이 빌라의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열 발전충전기가 나무박스안에 놓여져 있었다. 거실 왼쪽에 바위절벽 같은 것이 있는데 두 세명 들어갈 만한 공간으로 천연샤워실이다. 이멜다가 직접 꼭지를 열어 샤워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 빌라는 주로 허니문이 이용하기에 둘이서 함께 샤워하기에 충분하단다.(물어 보지도 안했는데 씰데없는 소리도 곧잘 한다 이멜다는. 시집도 안 간 것이..) 어쨋든 자연 속에 멋진게 어울어진 공간이다. 이층에는 침대가 하나, 그리고 간이 부엌도 있다. 냉장고도 있구. 놀다가 라면 끊여 먹으면 딱 좋은 시설이다. 산미겔도 냉장고에 꽉 채워 두고 밤마다 별빛을 보며 부어라! 마셔라! 해 가면서.. 가족끼리 묵는다면 밤새 모닥불 앞에서 기타치고 목청놓아 노래해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3층침실에는 트윈베드가 있구 허니무너를 위한 TV와 DVD 플레이어와 십수개의 DVD도 꽂혀있다 . 이멜다 말은 거의 다 섹시무비라고 하는데 슬쩍 재킷을 보니 만화도 있구 액션물도 있고 제법 다양하다. 거북이모양의 쿠션도 있는데 토마스는 거북이 목을 조르고 꺽고 난리다. 침실을 내려오는 계단 옆엔 조그만 연못도 있어 떨어진 꽃잎이 이쁘게 떠 있다. 침실에서 내다 보이는 창밖은 정말 끝내준다. 암벽이 바로 붙어 있기도 하고 마당도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 토마스와 와이프는 모래에서 모래탑을 만들고 이멜다는 해먹에 앉아 러브빌라를 즐기는 법에 대해 연신 떠든다. 나 절반밖에 이해 못하는데 혼자서 난리다. 우 리 셋은 개인비치에서 기념 물놀이를 하고 주인없는 러브빌라를 남겨둔채 카약을 몰아 돌아왔다. 어라!~ . 러브비치에 토마스가 샌들을 놓고 온 것이다. 혼자서 카약을 타고 러브빌라로 다시 돌아갔다. 덩그러니 놓인 샌들을 들고 다시 조용한 빌라를 쳐다보니 정말로 오붓하고 독립적이긴 한데 진짜 허니문 둘만이 있으면 좀 외롭고 밤엔 겁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 작은 남자는 좀 당황하겠더라구요... |
7편
오믈렛과 신선한 야채 그리고 베이컨이 함께 하는 풍성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또 해먹에 누웠다. 이곳 마리포사에 머무는
동안 해먹에 드러눕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 우리 가족 3명이 함께 해먹에서 장난치며 노는 것도 꽤나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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