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요 며칠 무슨 일 때문인지(아니 사실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고, 이제 조그만 지나면 부모님도 한국으로 떠나시고 하니 맴이 좀 복잡한 건 사실이
지만) 영화를 감상할 심적 여유가 없었는데, 우연히 며칠 전 밤 영화 하나를 감상하게 되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라이언 고슬링(영화 “노우트북”의 그 로맨틱하고 건실한 남자 주인공이다!)
이 주인공이라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영화였는데, 결론적으로 최근에 감상한 영화 중 최고!로
따끈따끈한 인간애를 다룬 수작이라고 여겨져 이 영화를 본 후 난 나의 탁 월한(우연이 빚어낸?)
선택에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 영화를 특히 주목하게 된 건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가정사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쯤 해 보게 된다. 그 말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라스”라는 순박한 인물이 자신의 외로움을 견
디다 못해 “리얼 돌”을 애인으로 삼게 되는 과정이랄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게 된 원인을 살펴볼 때 친부를 일찍 잃은 나와 내 동생, 그리고 더 멀리는 일찍 부모
를 여읜 내 어머니, 그리고 생모를 잃고 계모 밑에서 모성에 굶주렸던 지금의 아버지, 그리고
생부와 떨어져 살고 있는 내 아이들까지 우리 가족에게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외로움”과 영
화의 주인공의 그것이 일맥상통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성장과정과는 상관없이, 혹은 겉으로 보
이는 일상의 무사안일과는 상관없이, 실은 모두 맘 속으로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 영화는 이 가을 내게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한 소통과 나눔을 절절히 보
여준 참 좋은 영화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영화의 내용을 대충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탄생하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를 본 적도 없이 아
버지와 형과 살게 된 주인공 라스는 아버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 일찍 독립한 형 거스와 거
리감을 느끼며 지내다, 형이 마침내 결혼을 하고 형수 캐린과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면서 자신
의 깊은 외로움을 절감하며 집 차고를 개조해 홀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착한 형수 캐린은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그에게 따뜻한 사랑을 표시하지만 이미 외로움으
로 똘똘 뭉쳐있는 그의 마음을 풀기에는 역부족이고, 그의 형 거스 역시 별 다른 죄책감 없이
동생을 대하지만 그에게 가족을 포함한 모든 주변인은 그저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들일 뿐이
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형과 형수에게 자신의 여자 친구라며 “리얼 돌”(주로 외롭거나 소심한
남성들이 여자친구 대용(?)의 목적으로 구입하는 실제 살아있는 듯 보이고 실제 여성의 신체적
구조를 갖추고 있는 인형) 비앙카를 소개한다. 황당한 마주침에 애써 놀라움을 참으며 비앙카
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캐린, 캐린을 따라 어쩔 수 없이 비앙카를 맞는 거스, 그 둘은 주변
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라스의 “망상증”을 도우려 하는데….
이 영화에서 첨에는 나를 놀라게 했다가 결국 가장 내 심금을 울렸던 장면들은 바로 리얼 돌 비
앙카를 대하는 라스의 형과 형수, 주위 사람들, 그리고 결국 라스의 망상증을 치료한 “데그마”
라는 심리학자이자 가정의의 태도였는데, 그들은 라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그리고 치료의
목적으로 그의 “일탈적 행위”를 눈감아주는 건 물론, 심리적으로 그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
서 그의 이런 행위에 동조해준다. 즉, 비앙카를 한 인격체로 대하면서 서서히 라스가 실제 인
간들에게 따뜻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길 함께 염원하며 기다려주는 것.
이 부분에서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현실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혹은 캐나다)
의 작은 마을의 현실을 비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심적인 고통으로 인해 병의 증상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 그러니까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
정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를 숙고해 봤을 때, 그건 사
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선함의 유무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참고 기다려줄 줄 아는 인내심
과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치환해볼 줄 아는 배려심을 갖는 걸 습관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
이는 사회 의식의 성숙도와 실천의지가 쌓아 올린 결과의 차이가 아닐까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어떤 이의 아픔에 대한 동정심은 우리나라 사람이나 미국(혹은 캐나다)인이나 누
구나 다 똑 같이 가지고 있지만 그걸 실제로 몸에 익혀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연습이 그
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면, 그런 연습이 부족한 우리들에겐 이성적이고 냉철한 현실직시보
다 좀 더 감정적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현실회피적 요소가 다분하다 여겨진
거였고, 그 결과 아무 의식 없이 아픈 이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실제 자신
의 가족 중 그런 이들이 발견될 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하
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물론 결론적으로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부러움이 샘솟았던 게
사실이었다. 특히나 대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미세스 그루너 그녀의 용기와 라스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차분하게 환자를 치료해가는 닥터 데그마의 이성적 대처
능력, 황당한 상황에 맞서 남편과 시동생을 잘 조율해나가는 캐린의 사려 깊음, 그 중에서도
역시 모든 이들의 관심과 인내와 사랑의 힘으로 결국 진실되고 실제적인 인간과의 사랑을 되
찾게 된 주인공 라스의 눈물겨운 외로움 극복 과정은 내 가슴을 절절하게, 듬뿍, 그러면서도
아주 뜨끈뜨끈하게 적셔놓는 것들이었다.
이 가을, 마음이 휑하고 나만 무리에서 벗어나 외로운 것 같고, 나만 괴로운 것 같고 나만 정
상이 아닌 것 같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듯한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아니, 비록 지금
만사 다 오케이고, 너무 행복한 상황이라 다른 건 둘러볼 이유가 없고, 지극히 정상적 위치에
있으니 위로가 필요치 않는 이들에게도 이 영화를 소리 높여 추천한다.
비정상과 정상의 차이라는 건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비정상
을 그저 인정하면서 무릎 꿇는 그 순간 거기에 매몰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까짓 거 한 번
눈 지그시 감아주게 되면 거기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꽃이 피어날 수 있고, 그걸 통해 우리 모
두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가르쳐줄 영화가 매우 확실하기 때문에 말이다. 무
엇보다 이 가을이 좀 더 따사롭게 느껴질 수 있게 될 거라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