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고속도로>
-부드러운 마음을 담아낸 순박한 아줌마
송 봉 현
산과 산 사이를 뚫고 닦아놓은 중부고속도로의 주변 산야와 풍광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성 싶다. 철따라 피고 지는 들꽃들은 누가 알아주건 말건 제자리를 지키고 넘치지 않는 분수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꽃들은 속살을 간질이는 미풍과 입 맞추러 달려든 벌 나비를 거부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순수를 보여준다. 연두색 물감을 뿌리는 신록, 기를 함축한 짙은 숲, 붉고 노란 단풍으로 갈아입은 옷, 백설로 절경을 이루는 산, 그 아름다움을 중부고속도로를 오가며 만끽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한 달관의 경지에 이른 스님의 선답에 배어 있는 우주와 자아의 일체론을 떠올리며 자연의 시사점을 깨닫는 것, 자연의 원리를 구명하고 활용하는 노력은 지금도 앞으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문명을 일궈나가면서 밟아가야 할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여름 더위도 처서를 고비로 한풀 꺾였다. 태양계의 정확한 율동과 24절기의 절묘함을 새삼 음미하게 한다. 딴엔 금년 여름 나기가 어려운 사연들이 많았던 탓도 있었기 때문인지 처서를 맞는 마음은 청아하한 가을 하늘 만큼이나 맑고 가볍다. 운전 6 년생인 나는 월요일 아침이면 핸들을 잡고 대전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주말이면 일터의 일을 매듭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이 있는 서울을 향해 질주한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고속도로와 중간 휴게소에서 일하는 분들과 주변 환경까지 친근해 졌다. 우리나라 산업화 역사가 일천하듯 고속도로 역사 또한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번영을 상징하듯 동서로 남북으로 쭉쭉 뻗어나가 핏줄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별로 변하는 자연계의 질서정연함은 사색하는 사람들의 스승으로 자리매김 해 왔지만 날씨의 변화는 운전자들에게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출발 시 맑았는데 가다보면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소나기나 눈과 만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여름 소나기는 황소 등의 왼쪽에 내리고 오른쪽엔 안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소나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상현상을 잘 짚어낸 말이기도 하다. 삼면이 바다인데다 내륙에 댐도 많이 건설되었고 국토가 넓지 않은데도 높 낮은 산이 많아 지역에 따라 혹은 골짜기나 산악에 따라 변화무쌍하여 기상청 공무원들을 애먹이기 일쑤다. 운전자들은 구간에 따라 변덕스럽게 나타나는 날씨에 순응하여 전조등을 켜기도 하고 속도를 낮추어야한다.
9월 2일 월요일 아침은 어느 날보다 앞이 탁 트이고 시정거리가 멀어 삼라만상이 다 보인 산뜻한 초가을 날씨였다. 한기팔 시인의 시 『길』의 일부인 저 먼데까지 바람이 부는지 보일 것이 다 보인다. 이쯤에서 바라보면 아주 잘 보이는 산, 잘 보이는 길 하나…가 쨍그랑 공명을 울린다.
월요일 아침 고속도로 주행이 끝나는 북대전 요금소에는 항상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어서 오십시오하고 반기는 표 받는 아줌마가 있다. 상냥한 인사말에 실어오는 미소 덕분에 2 시간여의 운전 중에 쌓인 피로와 긴장이 사그라지고 기분은 새롭게 밝아진다. 그 분의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상냥하고 고운 말씨와 부드러운 마음을 담아낸 순박한 얼굴만 새겨졌다. 한 번은 직장에서 시계추처럼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고속도로 정경에 관하여 횡설수설 중에 표 받는 아줌마 이야기로 이어졌다. 길손을 편하고 기분 좋게 해주는 친절 아줌마는 나만이 아닌 그들의 가슴속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나도 지금껏 봉사하는 서비스 업무를 해 왔지만 그런 친절에 이르지 못한 부끄러움과 회한을 느끼게 한다. 상큼한 인사 한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그것은 그 사람이 소속한 일터의 이미지와 연계되어 각인된 다. 우리가 어딘가에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처신해야 하는지 곰곰 생각게 한다. 널게 보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의 언행이 모아져 국민성으로 표출되고 그것은 나라의 이미지와 연계될 것이다.
북대전 표 받는 곳 상냥한 말씨와 밝게 웃는 아줌마로 하여 나의 월요일은 항상 맑게 갠 아침이다.
<주> 1996년 도로공사 공모, 당선작품을 올렸습니다.
<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시인은 중광 걸레스님, 수염쟁이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기인이라 부른다.
사실 천상병시인은 순수 서정시인인데 그 몹쓸 사건인 동백림 간첩사건에 억울하게 휘둘려 심한 고문으로 정신분열을 일으켜, 친구들에게 일천원의 구걸을 하며 세상을 떠돌다 타계했다. 그런 고난을 겪고도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저승가서 보고 하겠다는 것이 시인들의 심성이다. 하늘을 노래 했지만 기독교 신앙인은 아니었다. 공자도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다.고 설파 했듯 하늘은 동서양이 공통으로 숭앙하고 만나는 자리인 것이다. 인사동에 천상병 부인이 운영하는 <귀 천>이란 찻집이 있는데 *저승에 가는 길에 노자가 있어야 한다면 갈 수 없으리* 하고 읊은 벽에 걸린 싯구는 후배 시인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인사동 가거던 모과차 한 잔 마시고 오세요.
첫댓글 도로공사에서 상 줄만한 글이네요....
原齊형의 글을 대할때마다 내주변에 이런분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