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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
개항과 함께 서울의 관문역할을 하면서 항만 관련 산업 및 교역 중심지로서 성장한 한국 제2의 항구도시이다. 특히 1960년 이후 경제개발계획으로 경인공업지대의 중심을 이루면서 제조업이 발달하여 현재는 항만도시로서뿐만 아니라 중공업도시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수출입 물동량의 증가로 인한 항만시설 확충과 수도권 신국제공항건설계획 등이 수립되고 있어,
부산에 이은 국제항구로서의 면모를 갖출 전망이다.
중구(中區)·남구(南區)·동구(東區)·연수구(延壽區)·남동구(南東區)·부평구(富平區)·계양구(桂陽區)·서구(西區)·강화군(江華郡)·옹진군(甕津郡) 등 8개구 2개군, 1개읍 19개면 128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남동구 구월동이다. 면적 955.00㎢, 인구 2,601,278(2003), 인구밀도 2,635.6명/㎢(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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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전경 |
인천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미추홀(彌鄒忽) 또는 매소홀(買召忽)로 비정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소성현(邵城縣)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果川)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수주(樹州:富平)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숙종대에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되었다. 인종대에는 인주(仁州)로 고치고,
당성군(唐城郡)을 속군으로, 재양현(載陽縣)을 속현으로 거느렸으며, 1390년(공양왕 2)에는 7대에 걸친 다섯 임금의 고향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는 등 고려 후기에 여러 왕비를 배출하여 세력이 컸던 고장이었다.
조선시대인 1392년(태조 1)에 인주로,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인천군으로 변경되었다.
1459년(세조 5)에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88~97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옛날의 인천은 지금의 남구 관교동을 중심으로 한 작은 지역이었으나, 1883년 인천의 제물항이 개항되면서 크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인천항 감리서(監理署)가 설치되고,
일본·청나라·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의 지계(地界)가 설정되면서 인천은 국제적인 항구 도시로 변모하여 외국 세력이 들어오는 관문이 되었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가 되어 인천군 등 12개군을 관할했으나, 1896년 도제 실시로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비입지 이포면을 남양군으로 이관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인천부는 관할구역이 대폭 축소되어
부내면과 다소면 일부 등 개항장에 국한되고, 대부분의 지역은 부평군과 합하여 부평과 인천의 글자를 따 신설된 부천군에 이관되었다. 1936년에 부천군 문학면 일부, 다주면 일부를 편입함으로써 부의 행정구역의 1차 확장이 이루어지고,
1940년에는 부천군의 서곶면·문학면·남동면·부내면을 편입함으로써 면적의 2차 확장이 이루어지고,
인구가 17만 명을 넘게 되어 당시 전국 제5위의 인구를 가지는 도시로 성장했다.
1949년에 인천부를 인천시로 개칭하고, 1968년에 중구·동구·남구·북구의 4개구를 설치했다.
1981년에 직할시가 되었으며, 1988년에 남구가 남구·남동구로, 북구가 북구와 서구로 분할되었다. 1989년에 옹진군의 영종면·용유면, 김포군의 계양면이 편입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행정구역개편으로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어 강화군·옹진군과 김포군의 검단면이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었다.
또한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 남구가 남구와 연수구로 분구되어, 인천시는 8개구 2개군, 1개읍 19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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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桂陽山:395m)과 철마산(鐵馬山:227m)을 포함하는 북부 일대는 호상편마암의 경기편마암복합체가 널리 분포하고,
남부 일대에는 화강암질 편마암의 경기편마암복합체가 분포한다. 이들 사이의 가좌동 일대에는 서산층군의 편암(片岩)이 좁게 나타나고,
수봉산(壽峰山:104m)과 문학산(文鶴山:213m)의 북쪽 구릉, 거마산과 원창동의 해안구릉 등의 산과 구릉상에는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이 소규모로 분포한다.
영종도의 동부 대부분은 호상편마암이, 그 서부와 용유도·무의도 등에는 대보화강암이 분포한다.
충적층은 북구 부평동의 저지대, 서구와 동구 경계의 갯골, 중구의 해안지대, 남구와 남동구의 매립지 및 하천을 따라 분포한다.
계양산과 소래산(蘇萊山:299m)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200m 내외의 잔구성 산지이다.
계양산을 최고봉으로 철마산·만월산(滿月山:187m)·거마산(距馬山:209m)·관모산(冠帽山:160m)·소래산 등이
연이어져 북쪽에서 남쪽으로 S자형으로 뻗으면서 남동부의 해안에 이르며,
부평구와 계양구, 북구와 남동구, 남동구와 경기도 시흥시 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문학산과 그 줄기가 남부의 해안 가까이에 동서로 뻗어 있고 그 남쪽에는 청량산(淸凉山:157m)이 있으며,
그밖에 월미도(月尾島)와 응봉산(應峰山:82m)·도화산(桃花山:52m)·수봉산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잔구성 산지가 해안 가까이 발달했기 때문에 평지의 규모가 협소하며, 하천도 매우 짧다.
김포굴포운하가 시도되기도 했던 굴포천은 철마산의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경기도 부천시와 김포시 고촌면을 지나 한강에 흘러들며,
계양산에서 발원한 계양천·굴현천·계산천 등은 시의 북동부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서구 일대를 서류하는 시천천(始川川)·공촌천(公村川)·심곡천(深谷川) 등을 비롯해
남동구 일대를 남류하는 승기천(承基川)·장수천(長壽川) 등은 모두 서해로 흘러든다.
주요평야는 부평평야로서 북구 부평동에서 굴포천을 따라 북쪽으로 펼쳐져 있으며 논과 주거지, 공장용지 등으로 이용된다.
만수천과 승기천 하류 연안과 북서부 해안가에도 소규모의 평야가 있다.
인천 앞바다는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여 평균조차 7.5m, 최대조차 8.6m로 인천항에서는 갑문식 독을 설치하여 조차를 극복하고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해안에 넓게 발달한 간석지는 과거에는 염전으로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매립되어 공장용지 등으로 사용되며 시가지화되고 있다.
월미도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영종도를 비롯하여 용유도·무의도·삼목도 등 7개의 유인도를 포함하여
157개 섬이 있다. 영종도는 영종신국제공항사업이 완료되면 육지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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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 있으나 해양의 영향이 비교적 적고 기온의 교차가 심한 편이다.
연평균기온 11.4℃ 내외, 1월평균기온 -3.1℃ 내외, 8월평균기온 24.9℃ 내외, 연평균강수량 1,170.1㎜ 정도이다.
강설일수는 22일이고 적설량은 30cm 정도이다. 겨울에는 주로 북서풍, 여름에는 남서풍이 탁월하다.
첫서리는 10월 하순에 내리고 마지막 서리는 3월 하순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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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급속히 성장한 도시로서 현재 인구규모에서 서울·부산·대구에 이은 한국 제4위의 대도시이다.
인천의 인구증가는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이라는 사회적 증가가 주요인이다.
개항 후인 1897년의 인구는 외국인 5,337명을 포함하여 총 1만 4,280명이었으나,
1910년 3만 1,011명, 1940년 17만 1,000명으로 증가했다. 6·25전쟁 후인 1955년 29만 5,878명, 1960년 40만 2,009명, 1970년 64만 6,013명으로 증가했으며, 1979년에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91년 인구는 196만 4,024명으로 1955년에 비해 6.6배가 증가했고 연평균 15.7%의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1996년의 인구는 옹진군·강화군이 통합되어 235만 1,402명으로 증가했다. 총 가구수는 72만 5,066가구이며(1996), 가구당 인구수는 핵가족화의 경향으로 점차 감소하여 1974년 4.9명, 1988년 3.9명, 1991년 3.4명, 1994년 3.3명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구는 부평구(49만 6,483명)이며, 가장 적은 구는 중구(7만 3,037명)이다.
인구밀도는 남구가 1만 7,713명/㎢으로 가장 높고, 중구가 832명/㎢으로 가장 낮다.
인구분포지역은 크게 구시가지지역, 주안·간석의 신시가지지역, 부평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구시가지지역은 개항 이래 시가지로 발달해온 중구와 동구 일대로 오래된 소규모 주택이 밀집되어 있어 인구밀도는 높으나 주거환경은 좋지 않다.
주안·간석의 신시가지지역은 남구의 주안동 일대와 남동구의 간석동·구월동·만수동 등으로
1969년 이후 1980년대까지 계속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는 지역이다.
신시가지의 개발로 구시가지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여 인구의 지역적 분포가 변하고 있다.
부평지역은 구시가지와는 독립적으로 성장한 지역으로 8·15해방 전부터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된 인구밀집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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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인천 중구에 있는 서해안 제일의 무역항 |
섬을 제외한 육지부는 동서 약 14km, 남북 약 22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나
주요시가지는 인천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서로 발달했다.
조선시대 인천의 뿌리는 문학산 북쪽의 관교동 구읍(舊邑) 취락이었으나 개항과 함께 인천항 일대로 이전되었다.
현재의 인천은 이곳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인천항 주위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동쪽의 송림동·숭의동으로 확장되었고 1970년대에는 주안동과 간석동까지 확대되었다.
이 지역은 남쪽으로는 문학산 줄기와, 북쪽으로는 수봉산·만월산으로 이어지는 잔구성 산지 중앙에 위치한다.
신시가지가 개발된 후 인천시청이 1985년에 중구 관동1가에서 현재의 위치인 구월동으로 이전했고
시청과 마주하여 시교육위원회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법원과 검찰청은 1972년에 남구 주안동으로 이전하여 법조단지를 이루고 있다.
인천항 일대의 중구는 항만관련업무지구로 발전하여 인천의 중심업무지구(CBD)를 이룬다.
주요기관은 인천지방해운항만청·교통부수로국·해양경찰대·인천광역시수산업협동조합 등 항만 및 수산 관련 기관, 해운회사·하역회사·통관사·창고회사 등 해운 관련 회사, 급유업 등 항계내업 관련 회사, 어망·어사 등의 판매상가, 해산물 판매시장, 식당가, 조선 및 선박수리업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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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소래포구 | 농업은 그 비중이 점차 감소되어 총경지면적 311.41㎢ 가운데 논 218.34㎢, 밭 93.07㎢이며, 경지율은 32.6%이다. 옹진군의 농가구를 제외한 농가구는 총가구수의 0.8%에 불과한 1만 5,465가구이며(1994), 근교농업의 발달로 시설채소·화훼류의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평야지역인 김포군 계양면과 검단면 일대가 시역에 포함되었으나, 계산동·서운동·연수동 일대의 택지 개발 등 도시개발용지로 전용되어 경지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축산업으로 돼지·젖소·한우 등을 사육한다. 임야면적은 총면적의 약 45%인 425.53㎢이며, 침엽수·혼효림·활엽수 등의 입목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경기만을 끼고 있어 연근해 어업의 조건은 갖추었으나 활발하지 않다.
대표적인 어촌은 남동구의 소래와 영종도 등이며 조기·갈치·새우 등의 어획과 굴·대합·바지락 양식이 활발하다.
인천지방의 제염역사는 오래되었으나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구워내던 전오제염(煎熬製鹽)으로서,
개항 후 일본산 및 중국산과의 가격경쟁에서 실패한 후 1908년 주안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 시험염전이 성공하여 천일제염 생산이 시작되었다.
전성기인 1932년에는 인천출장소 관할 염전에서 국내 수요량의 21%를 공급하기도 했으나,
1960년대 이후 공장용지 및 택지개발을 위한 염전의 매립으로 현재는 소금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광업은 가동중인 33개 광구를 포함하여 200개의 광구가 있으며(1994), 금·은이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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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후인 1900년경부터 시작된 제조업은 1930년대에는 동구와 북구에 상당한 규모의 공장이 입지했으며,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시작되었다. 주요업종은 조립금속·목재 및 나무제품·석유화학 등이다. 제조업체수 6,439개소에 22만 6,505명이 취업하고 있으며, 업종별로는 조립금속·기계장비 2,228개소 공장에 5만 7,072명, 목재 및 나무제품 493개소 공장에 1만 4,605명, 섬유 및 의복 368개소 공장에 8,307명, 석유화학 197개소 공장에 1만 285명이 취업하고 있다(1993). 주요공업단지는 7개소이다.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의 제4·5·6단지가 있고, 총 182개 업체에 2만 6,565명의 종업원이 고용되어 있다.
인천기계공업단지는 인천시내의 기계·금속 관련 업체를 위해 조성한 단지로서 54개 업체 3,504명의 종업원이 고용되어 있다. 인천지방공업단지는 도심지 일대에 입지한 공해업소의 집단이전으로 쾌적한 도시환경과 업종간 계열화를 도모하기 위해 조성한 단지로서 목재·섬유·금속·석유화학 등 47개 업체 7,210명이 취업하고 있다.
인천남동공업단지는 수도권 내 용도지역 위반업체의 이전으로 수도권지역 공업재배치를 촉진시키고자 조성했으며, 조립금속, 석유화학, 섬유 등 1,578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1994). 그밖에 경인지역에 위치한 중·소형 주물업체를 위해 1986년 준공된 경인주물공업단지, 1980년 설립된 인천목재공업단지, 1977년 개인기업이 설립한 주안수출공업단지가 있다. 또한 공업용지의 부족과 수도권 내 이전대상 공장을 위해 남동구의 해안과 염전을 매립하여 9.6㎢ 규모의 인천남동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1989년 1단계 조성이 완료되어 305개 업체가, 2단계는 1992년에 완료되어 331개 업체가 입주했으며, 주요업종은 조립금속·화학·1차금속·목재·섬유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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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 기능 및 금융업무기능·상업기능 등이 우세하다. 상업 중심지는 철도·도로 교통이 편리한 동인천으로부터 고개를 넘어 내항 쪽으로 신포동과 신흥동으로 이어지는 지역이나, 1970년대 이래 신시가지가 확장되면서 1980년대 이후 남구의 주안동과 남동구의 간석동 및 부평구·계양구가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가는 동구 송현동의 중앙자유시장 등 일반시장 79개소, 쇼핑센터 2, 연쇄점 사업자 9, 백화점은 인천백화점 등 5개소가 있다. 도매상권은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서울로 흡수되어 미약한 편이다. 금융기관은 한국은행 인천지점을 비롯하여 일반 시중은행, 지방은행인 경기은행 본·지점 등 총 220개소가 있다. 인천항을 강화도조약 체결에 의해 무역항으로 개항한 이래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한갑문식 독이 1918년 완공되었다. 1960년대부터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에 힘입어 수출입화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1974년 제2독이 준공되었으며, 1975~78, 1981~85년의 인천항 1단계개발사업과 2단계개발사업이 각각 추진되어 항만시설이 계속 확충되었고, 국제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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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역에서 수원역을 잇던 협궤철도 |
인천은 해운과 육로교통이 모두 발달해 있다. 해운으로는 세계 각국의 항구와 국제항로로 연결되고
경기만 일대의 섬과는 연안항로로 연결되는 한편 육로로는 철도·국도·고속도로로 서울·수원 및 주변도시와 연결된다.
제물포와 노량진을 연결하는 경인선이 1899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이후 1965년 복선화, 1972년 전철화,
그리고 1974년에는 서울의 지하철과 직접 연결됨으로써 경인고속도로와 함께 경인간의 주요교통로가 되었다.
1일 통행인구는 47만 명에 달한다. 경인고속도로는 1968년에 개통된 고속도로로서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 신월 인터체인지에서 남구 용현동 연안부두까지 전장 24.5km이며
1일 통행차량 약 11만 대, 통행인구 27만 명에 달한다.
통행량이 많아 만성적인 정체현상으로 고속도로의 제기능이 거의 상실되어 1993년까지 제2경인고속도로를 완공했다. 경인국도(46번 국도)는 구시가지를 출발하여 부평을 거치며,
1일 통행인구는 20만 명에 이른다.
인천광역시 시가지의 도로는 중구·동구의 구시가지와 남구·연수구·남동구의 신시가지에서 주로 동서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도로교통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1993~98년에 지하철 1호선, 1998~2002년에 2호선, 2003~07년에 3호선을 건설할 계획이며, 2002년까지 지하철 2호선이 완공되면 지하철의 도시교통 수송분담률이 39.8%에 다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항의 여객수송은 연안항로와 국제항로로 구분된다. 연안여객선은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며 영종도·덕적도 등을 연결하는 일반항로와
백령도·연평도 등을 연결하는 낙도보조항로가 도서지방을 연결하고 있다.
국제항로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산둥 성[山東省]의 웨이하이[威海]와 톈진[天津]을 연결하는 여객항로가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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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서는 인천향교와 부평향교가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이 설립된 것은 1892년 미국 선교사 존스에 의해 세워진 영화학교(지금의 영화초등학교)가 최초이며,
1895년 일본어 교육을 위한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仁川支校)가 설립되었다. 1897년에는 영화여학교가 설립되었고,
1899년 부평공립보통학교·일신학교, 1903년 인천사립박문소학교 등이 세워졌다.
특수학교로는 1955, 1958년에 각각 설립된 인천농아학교와 경기맹아학교가 있다.
1995년 현재 유치원 326개소, 초등학교 164개교, 중학교 90개교, 고등학교 73개교가 있으며
5개의 전문대학과 인천교육대학·인하대학교·인천대학교 등의 대학이 있다.
중구 율목동의 시립도서관을 비롯해 부평도서관·중앙도서관·화도진도서관·주안도서관 등 8개 공공도서관이 있으며,
총좌석수 8,090석, 장서수 54만 5,279권, 연이용자수는 233만 3,29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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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율탈춤, 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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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대웅전(조선 중기), 보물 제178호,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
인천광역시에는
국가지정문화재(사적 16, 천연기념물 6, 중요무형문화재 4),
시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1, 기념물 32, 무형문화재 6), 문화재자료 13점이 있다.
사적으로는 인천녹청자도요지(仁川綠靑磁陶窯址:사적 제211호)와 인천답동성당(사적 제287호)이 있고,
천연기념물로 인천신현동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5호)가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는 궁시장(弓矢匠: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은율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이 있다.
시지정유형문화재로는 인천도호부청사(仁川都護府聽舍: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聽舍: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원대철제범종(元代鐵製梵鍾: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송대철제범종(宋代鐵製梵鍾: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관음좌불상(觀音坐佛像: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논현포대(論峴砲坮: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인천우체국(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정우량영정(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인천향교(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용궁사(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가 있다.
시지정기념물로는 문학산성(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호)·화도진지(花島鎭址: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호)·김재로묘(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호)·이윤생강씨정려(李允生姜氏旌閭: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호)·능허대지(凌虛臺址:인천광역시 기념물 제8호)·용궁사느티나무(인천광역시 기념물 제9호)가 있다.
시지정무형문화재로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단소장(短簫匠: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인천 근해의 〈뱃노래·갯가노래〉(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 정악(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 등이 있다.
시지정문화재자료로는 욕은지(浴恩池)·학익지석묘(鶴翼支石墓)·어사대(御射臺)·각국조계석(各國組界石)·원인재 등이 있다.
박물관으로는 남구 옥련동에 지상 2층, 지하 1층의 시립박물관 1개소가 있어서 유물 4,211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용자수는 17만 4,121명이다(1995). 전통놀이로는 경신역마(慶信驛馬)놀이·청황패놀이 등이 있으며,
전설로는 경인국도상의 〈원통이고개전설〉·〈사모지고개전설〉, 문학산의 〈안관당전설〉, 율도(栗島)를 개간시킨 〈조중봉의 전설〉, 〈갑옷바위전설〉 등 다수가 전한다.
인천시에서는 제물포예술제, 월미축제, 화도진제, 시민의 날 등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이루어진다.
예술단체로는 인천시립예술단에 시립교향악단·합창단·무용단 등이 속해 있으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광역시 지회에는 건축·음악·무용 등 9개 협회가 활동하고 있다.
언론기관으로 인천시에서 발간되는 인천일보사·기호일보사·인천라이프신문사가 있고
그밖에 17개 신문사의 지국이 있으며 대학신문 7개사가 있다.
1994년 현재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1,481개소, 천주교 교회 67개소, 불교 사찰 176개소, 유교 교당 4개소, 천도교 교당 1개소, 원불교 교당 2개소 등이 있다.
의료기관은 남동구 구월동의 가천의과대학교 길병원, 기독병원 등 종합병원 12개소, 병원 16개소, 의원 679개소,
적십자결핵요양원 2개소, 치과의원 375개소, 한의원 221개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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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문화의 거리, 인천 중구 |
서해안해양관광권의 중심지로, 서해안의 해안경관, 해수욕장 등의 해양관광자원과
인천항 및 공업단지 중심의 산업관광자원이 주요 관광자원이다.
자유공원은 1888년 응봉산 일대에 조성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정상에서는 인천 구시가지, 인천항과 서해의 여러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양관광지로는 육지와 연결된 월미도,
송림과 피서지로 유명한 작약도, 송도유원지, 용유도의 을왕리해수욕장, 소래포구, 연안부두 등이 있다.
이밖에도 강화군의 전등사·마니산·초지진·광성보 등 문화관광자원과 자연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송도유원지는 청량산 남쪽에 위치한 인천의 대표적 종합관광지로 각종 오락시설과 해수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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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사적 제136호, 경기 강화군 마니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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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전경, 인천 남동구 논현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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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소래포구의 수산물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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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인구와 산업활동 규모의 증가에 대비하고 개방화에 따른 서해안의 중심거점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부족한 항만능력, 주택지, 공업용지, 교통시설, 관광·휴양 시설의 확충을 위한 대규모의 지역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특히 인천시의 최우선 과제는 교통시설과 관련한 각종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확충계획이다.
4차선이었던 경인고속도로의 8차선 확장사업이 실시되어 신월-부평 인터체인지 간이 1992년 9월 개통되었으며,
서창-시흥 간 제2경인고속도로의 개통, 서해안고속도로 건설사업, 경인선 복복선화가 1991년 하반기에 착공되었다.
영종도·용유도의 수도권 신국제공항 건설이 진행중이며, 경인 육로의 교통체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경인운하가 건설될 예정이다.
서해안시대와 대(對) 중국무역항의 기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기 위한 항만시설확충을 위해 오는 2011년까지 북항 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도시개발사업으로는 2001년까지 제1·2단계로 나누어 47.22㎢의 송도 신시가지를 조성하여 49만 명을 수용할 계획이다.
관광개발계획은 인천을 수도권 및 국제적인 해양종합관광휴양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하에
2011년까지 영종도·용유도·무의도와 신공항을 연계하는 관광단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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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동북부에 있는 구. 1995년 북구에 속해 있던 효성동·계산동·작전동·서운동·장기동·임학동·용종동 등 23개동이 계양구로 분구되었다. 구의 서쪽 경계에 계양산과 철마산이 있으며, 이들 산지로부터 굴포천·계산천·계양천 등이 발원하여 한강에 흘러든다.
효성동에는 금속·섬유업체 등의 공업단지가 입지하며, 시가지는 가현로를 따라 발달했다. 구 전체면적의 68%가 그린벨트에 해당하여,
계양산을 중심으로 남쪽의 도심지역과 북쪽의 미개발 지역의 경관이 뚜렷이 양분되고 있다.
계산동 일대에는 각종도로망을 확충하고 대단위택지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포국제공항·올림픽대로와 바로 인접해 있어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하며 서울 외곽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서울과의 접근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또한 2000년대 경인운하가 건설되고 물류단지가 입지하면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효성(曉星)·계산(桂山)·작전(鵲田)·서운(瑞雲)·장기(場基)·임학(林鶴)·용종(龍宗)·병방(兵房)·방축(防築)·박촌(朴村)·동양(東陽)·귤현(橘峴)·상야(上野)·하야(下野)·평(坪)·선주지(仙住地)·이화(梨花)·오류(梧柳)·갈현(葛峴)·독실(纛室)·목상(木霜)·다남(多男)·노오지(老吾地) 등 23개동이 있으며,
구청소재지는 계산동이다. 면적 45.59㎢, 인구 263,612, 인구밀도 5,782명/㎢(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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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중부에 있는 구. 1995년 문학산 남쪽의 옥련동·선학동·연수동·청학동·동춘동 등 5개동이 연수구로 분구되었다.
원래 관교동 일대가 인천의 중심지였으나 개항과 더불어 중구·동구 일대가 발달하면서 중심지 기능이 쇠퇴했다.
구의 남쪽에 문학산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연수구와의 경계를 이루며,
문학산 북쪽의 수봉산과 비교적 낮은 구릉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해 있다.
서부해안인 용현동·학익동에는 인천화물터미널과 대우전자 인천공장, 동양화학, 동일레나운(주) 등의 공장이 입지하고
주안동에는 인천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이 있다. 주안지역은 1970년대에 개발된 지역이며
인구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급격히 증가했다. 서부해안지역과 도화동·주안동 등이 공업지대를 이루며,
이곳에 인천기계공업단지·인천지방공업단지·한국수출공업단지 등 기계·목재·가구제조·전자기계·화학 업체 등 총 582개의 공장이 입지해 있다(1995).
경인고속도로와 외곽순환고속국도가 통과하며, 도화동과 문학동에 진입로가 있다.
도화(道禾)·숭의(崇議)·용현(龍現)·학익(鶴翼)·주안(朱安)·관교(官校)·문학(文鶴) 등 7개동이 있으며, 구청소재지는 숭의동이다.
면적 24.20㎢, 인구 428,660, 인구밀도 17,713명/㎢(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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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남동쪽에 있는 구.
1980년대의 신개발지로 농촌·도시 경관과 공업기능이 혼재한다.
북부에서 동부로 만월산·거마산·관모산·소래산으로 이어지는 높이 100~200m의 산맥이 소래해안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로 장수천·만수천·뱀내천 등이 남쪽으로 흘러 서해로 유입되며, 승기천도 서쪽 경계를 지나 서해로 흘러든다.
택지개발사업으로 간석동·구월동·만수동에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인구는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구월동에는 시청과 교육위원회가 이전하여 행정중심지를 형성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구월2동(3만 2,700명)이고
가장 적은 동은 장수동(2,003명)이다. 경지면적은 13.01㎢로서 승기천과 장수천 하류일대에 농경지가 분포하나
신시가지개발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소래포구도 어항으로서의 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공업은 2,047개소의 공장에 5만 4,802명이 종사하고 있다.
기계·화학·섬유 업종이 주를 이루며 논현동·남촌동 일대에 인천남동공업단지가 있다.
상업 서비스 기능으로는 백화점 1개소, 상가 4개소, 일반시장 12개소 등 총 14개소가 있다.
경인국도가 북서쪽 간석동으로 지나가며, 시흥·수원으로 연결되는 국도가 동서로 가로지른다.
남쪽에는 수인선의 남동역과 소래역이 있어 경기도와 연결된다.
운연동의 김재로묘, 도림동의 조정만묘, 논현동의 논현포대가 있으며, 관광지는 간석동 만월산의 약사사, 관모산의 인천대공원이 있다.
만수(萬壽)·구월(九月)·간석(間石)·장수(長壽)·서창(西昌)·운연(雲宴)·도림(桃林)·수산(壽山)·논현(論峴)·고잔(古棧)·남촌(南村) 등 11개동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만수동이다.
면적 56.25㎢, 인구 387,649, 인구밀도 6,892명/㎢(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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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서부에 반도형으로 돌출한 부분의 북부에 있는 구. 개항 후 일찍부터 형성된 인천의 구시가지이며,
임해공업지역으로 제철 등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이 발달했다. 북부는 해안의 매립지가 많으며 곳곳에 낮은 구릉이 산재해 있다.
개항 이래 주로 주거지로 발달하여 대지가 전체면적의 40%에 달하고, 인구밀도는 6개구 중 가장 높으나 구시가지가 대부분이고
중공업지대로서 주거환경이 불량하여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화수2동(1만 3,008명)이고,
가장 적은 동은 화평동(4,032명)이다. 1995년 현재 156개소의 공장에 1만 3,384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업종은 기계·목재 등이다.
전체면적의 30%가 공장부지이며 해안매립지에는 대우중공업·인천제철·한국유리 등과 같은 대규모 공장이 입지해 있다.
상업시설로는 일반시장 3개소와 상가 10개소가 있다. 구의 남서부인 중구와의 경계를 따라 경인선이 지나가며 동인천역이 있다.
화수동에는 1882년 한·미 최초의 조약이 체결된 화도진지가 있으며,
화도진공원에서는 화도진제가 개최되어 사물놀이 등 전통민속놀이가 행해진다.
송림(松林)·만석(萬石)·화수(花水)·송현(松峴)·화평(花平)·금곡(金谷)·창영(昌榮) 등 7개동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송림동이다.
면적 6.98㎢, 인구 100,382, 인구밀도 14,381명/㎢(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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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중동부에 있는 구.
1995년 북구에서 부평구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효성동·계산동·작전동·서운동·장기동·임학동·용종동·병방동·방축동·박촌동·동양동·
귤현동·상야동·하야동·평동·선주지동·이화동·오류동·갈현동·둑실동·목상동·다남동·노오지동 등 23개동이 계양구로 분구되었다.
계양산의 남쪽에 펼쳐진 부평 평야에서 동·서로 통하는 경인고속도로의 남쪽지역에 해당한다.
경인고속도로가 지나는 갈산동·청천동 일대는 공업단지로서 한국수출산업단지 제4단지가 입지해 있다.
주요업종은 기계·전기·전자·화학 등이며 1995년 현재 699여 개의 공장이 등록되어 있다.
경인고속도로·경인선·경인국도가 동·서로 통과하고, 서울의 통근권으로서
일찍부터 인구와 상업 및 서비스 기능의 밀집지역으로도 성장했다. 인구는 부평동(13만 5,967명)과 산곡동(10만 7,177명)에 많이 거주하며 일신동(1만 1,165명)의 인구가 적다. 부평(富平)·산곡(山谷)·청천(淸川)·갈산(葛山)·삼산(三山)·부개(富開)·일신(日新)·구산(九山)·십정(十井) 등 9개동이 있으며, 구청 소재지는 부평동이다.
면적 32.03㎢, 인구 496,483, 인구밀도 15,500명/㎢(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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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북서부 해안에 있는 구. 북구와의 경계를 이루며 계양산·철마산 등의 잔구성 산지가 솟아 있어
동쪽은 높고 서쪽은 서해로 이어지는 평지이나 그 폭이 좁다.
하천은 북쪽으로부터 계양산 줄기에서 발원하는 시천천·공촌천, 철마산에서 시작하는 심곡천이 있다.
해안에 넓게 펼쳐진 간석지에는 염전이 성했으나,
지금은 율도·청라도·장도를 연결하는 곳까지 대규모로 매립되었고, 검단동까지 연결되는 일부지역은 수도권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된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가정1동(2만 9,552명)이고, 가장 적은 동은 원창동(826명)이다.
토지이용은 임야 35%, 농경지 22%, 대지 10%, 공장용지 6%에 달한다.
구의 형태가 남북으로 길게 이루어져 북부·중부·남부가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북부는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서 농경지로 이용되는 농업지대이며 경서동에 주물공업단지가 있다.
중부는 주거지역이며, 도심에 가까운 남부지역은 가좌동의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5단지를 중심으로 공업지역을 이룬다.
등록된 공장은 1,245개소이며 주요업종은 전기·전자, 기계, 화학, 섬유이다.
시장기능은 미약하여 일반상가 4개소, 슈퍼마켓 4개소가 있다. 경인고속도로가 시의 남부를 남북방향으로 지나며,
시의 북쪽으로 김포시와 연결되는 도로가 통과한다. 경서동의 인천녹청자도요지와 유사눌묘, 신현동의 인천신현동 회화나무가 있고,
그밖에 가좌동의 김포굴포지, 가정동의 축곶 봉수대지와 가정지, 연희동의 연희진지, 석남동의 조서강묘 등이 있다. 삼곡(三谷)·검암(黔巖)·백석(白石)·시천(始川)·석남(石南)·연희(連喜)·공촌(公村)·가정(佳亭)·신현(新峴)·경서(景西)·원창(元倉)·가좌(佳佐)·대곡(大谷)·불로(不老)·마전(麻田)·금곡(金谷)·오류(梧柳)·왕길(旺吉)·당하(堂下)·원당(元堂) 등 20개동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삼곡동이다.
면적 67.70㎢, 인구 273,069, 인구밀도 4,033명/㎢(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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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기념탑, 인천 남구 옥련동 |
시의 중남부에 있는 구. 1995년 남구의 문학산 남쪽에 있던 옥련동·선학동·연수동·청학동·동춘동 등이 연수구로 분구되었다.
구의 북쪽에 있는 문학산이 동·서로 길게 뻗어 남구와의 경계를 이루며,
농경지가 많아 농촌경관이 두드러진 곳이었다. 해안일대는 넓은 갯벌을 매립하여
송도 신시가지를 조성했으며, 연수동 일대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청학동과 선학동 일대에도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송도유원지·인천시립박물관·문학산성·인천상륙작전기념탑 등이 있다. 옥련(玉蓮)·선학(仙鶴)·연수(延壽)·청학(靑鶴)·동춘(東春) 등 5개동이 있으며,
구청소재지는 청학동이다. 면적 18.37㎢, 인구 218,196, 인구밀도 11,877명/㎢(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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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부두 수산시장 |
시의 서쪽으로 반도와 같이 돌출한 곳에 있는 구.
1989년 영종도·용유도 등의 편입으로 6개구 중 면적이 가장 넓다.
인천항을 중심으로 한 항만관련업무지구로 발전했다. 지형은 내항의 북쪽에 월미도, 동쪽에 응봉산 등의 구릉이 있으며,
항동7가·북성동1가·신흥동3가·선화동·선린동 등을 포함한 해안은 간척매립지로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영종도와 용유도 등 인천광역시 대부분의 섬이 중구에 속한다. 인구는 응봉산 일대의 구릉과 도원동 일대에 밀집되어 있으나
신개발지를 제외한 구시가지는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기능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주간활동인구는 많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연안동(1만 1,147명)이고 가장 적은 동은 용유동(2,752명)이다.
도시발달은 관동·항동·중앙동·북성동 등이 내항을 둘러싸고 있고 여기에는
항만 관련 각종 정부기관, 해운 서비스 기능, 야적장, 공장 등이 입지한다.
신포동·답동·사동·신흥동1가·신흥동2가 등은 한국은행 인천지점과 경기은행 본점 등이 있는 금융지구를 이룬다.
영종도·용유도·무의도의 운남동·중산동·덕교동·을왕동·무의동 등에서는 농업과 어업이 행해진다. 공업은 북성동·선린동·선화동·신흥동3가 등의 해안을 따라 주로 발달했으며,
112개소의 공장에 8,814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고, 주요업종은 기계, 목재 및 합판, 조선 등이다.
상업시설로는 인현동에 인천백화점이 있고 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인현·중앙로 지하상가, 연안부두의 종합어시장 등 총 13개의 시장이 있다. 경인선의 기점이며 연안여객 터미널이 있는 연안부두가 있어 해상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답동의 인천답동성당, 항동의 인천우체국과 인천일본제일은행지점 등이 대표적이다.
관광지로는 자유공원, 월미도의 월미도공원과 문화의 거리, 용유도의 을왕리해수욕장 등이 있다.
관동1가(官洞一街)·관동2가·관동3가·중앙동1가(中央洞一街)·중앙동2가·중앙동3가·중앙동4가·해안동1가(海岸洞一街)·해안동2가·해안동3가·해안동4가·항동1가(港洞一街)·항동2가·항동3가·항동4가·항동5가·항동6가·항동7가·송학동1가(松鶴洞一街)·송학동2가·송학동3가·사(沙)·신생(新生)·신포(新浦)·답(畓)·신흥동1가(新興洞一街)·신흥동2가·신흥동3가·선화(仙花)·도원(桃源)·율목(栗木)·유(柳)·경(京)·내(內)·용(龍)·인현(仁峴)·전(錢)·선린(善隣)·북성동1가(北城洞一街)·북성동2가·북성동3가·송월동1가(松月洞一街)·송월동2가·송월동3가·운남(雲南)·덕교(德橋)·운서(雲西)·운북(雲北)·중산(中山)·을왕(乙旺)·남북(南北)·무의(舞衣) 등 52개동과 용유·영종 등 2개 출장소가 있다.
구청소재지는 관동1가이다. 면적 87.74㎢, 인구 75,044, 인구밀도 872명/㎢(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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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북서부 경기만에 있는 군.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행정구역개편으로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었다.
몽골의 침입·병자호란·병인양요·신미양요·운요호사건 등 역사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며,
최근에는 수도권의 주말관광 휴양지가 되고 있다. 한강·임진강·예성강이 합류하는 하구에 위치하며, 동쪽은 염하를 끼고 김포시와 마주한다.
마니산·고려산·혈구산 등의 저산성산지가 솟아 있으며, 황경내·용목내 등의 계천(溪川)이 흐른다.
해안의 충적지는 대부분 간척사업으로 조성되었다. 초지진·마니산의 참성단·강화산성·전등사 등의 역사·문화유적이 풍부하다.
1970년 강화대교가 개통되어 육지와의 도로교통이 편리해졌으나 매우 노후되어 1997년 신강화대교를 건설, 개통했다.
그밖에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와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사이를 연결하는 제2강화대교를 건설하고 있는데 2003년 개통할 예정이다.
강화읍·길상면·선원면·불은면·화도면·양도면·내가면·하점면·양사면·송해면·교동면·삼산면·서도면 등 1개읍 12개면 96개 동리가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강화읍 관청리이다. 면적 410.31㎢, 인구 70,603, 인구밀도 172명/㎢(1996).(→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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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면, 백령도의 해안절경 |
시의 앞바다에 있는
백령도·대청도·소청도·대연평도·소연평도의 서해 5도와 경기만에 흩어져 있는 섬들로 이루어진 군.
19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강화군과 함께 인천시에 통합되었다. 이때 대부면은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6·25전쟁 이후 미수복된 지역은 북한의 황해남도 옹진군이 되었다.
군의 총인구는 1만 3,487명에 불과하며, 백령면과 대청면에 총인구의 절반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정기 여객선이 드나드는 포구취락은 큰 집촌을 이루고 있으며, 송림면 연평도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도시적인 경관이 형성되어 있다.
특히 소연평도에서는 티탄철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북도면·송림면·백령면·대청면·덕적면·자월면·영흥면 등 7개면, 31개 동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 있다. 면적 163.63㎢, 인구 13,487, 인구밀도 82명/㎢(1996).(→ 옹진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