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지망생의 미로찾기

[카이스트] 12 - 별                     S#1. B-LAB 앞 복도   안내로봇이 발발거리며 오고 있다. (아직 주변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상태) 긴 복도를 혼자 발발 오다가 기역자로 꺽인 곳에 이르러 앞의 막힌 벽에서 좀 떨어진 곳에 멈춰서더니.   로봇 : 장애물이 있습니다. (비잉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방향을 꺽더니) 왼쪽으로 갑니다.   로봇은 혼자 왼쪽으로 발발 간다. 이제 보이는 그 뒤의 모습. 민재가 수면안대로 눈을 가린 채 더듬더듬 걸어오고 있고, 정태가 그 옆을 따라오며 살피고 있다. (민재는 마이크를 한 손에 들고 있고 정태는 파일과 펜을 들고 있다)   민재 : 장애물이 있다고? (우물거리는) 정태 : 거참 빨리 좀 걸어. 거리가 멀어지잖아. 로봇 : (혼자 가며 삑 소리를 낸다) 민재 : 가만 있어봐. 왼쪽...왼쪽..   하더니 왼쪽으로 돌아서 가는데.. 아직 꺽어진 곳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라서 그대로 벽에 부딪히고 만다. 아이구.. 민재는 이마를 감싸고.. 정태 으으...해서 보고..   민재 : (안대를 거칠게 벗어내더니) 이놈의 로봇 어디 갔어? 이게 벌써 몇번째야? 정태 : 그러게 좀 부지런히 따라와야지.   로봇은 벌써 저만치 가며 쫑알거리고 있다.   로봇 :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삐이.. 민재 : 뭐가 어째? 야 너 거기 서. (마이크에 대고 소리지르며 쫓아가는) 안 서? 서라구! 스톱!   정태 한심해서 보다가 그만 웃어버린다.     S#2. 식당 앞   점심시간이라서 길고 긴 학생들의 줄이 식당 밖으로까지 뻗어있다. 그 줄을 주욱 훑는데 들리는 옥주의.   옥주 : (E) 어머어머 너무 귀엽겠다. 나도 그 로봇 한번 보여줘어.   줄의 끝 부분에 서 있는 정태와 민재, 재명과 옥주.   정태 : 야야 그게 무슨 장난감 인형인 줄 아냐. 재명 : 그러니까 그 로봇이 맹도견같은 건가? 민재 : 그렇지. 시각장애자들을 위해서 길안내를 해주는 로봇이거든. 옥주 : 그럼 그 로봇만 데리고 다니면 아무데나 다닐 수 있는거야? 앞이 안보여두? 정태 : 거기까지 갈려면 아직 멀고 멀었지. 오늘만 해도 그 로봇 따라 가다가 민재 이마에 혹 난 거 봐라. 여덟 번은 부딪혔지 아마. 민재 : 으으.. 맨 마지막 거는 제대루 박았어. 눈앞에 진짜로 별이 왔다갔다 하드라구. 옥주 : 그거 잘 만들면 개보다 훨씬 낫겠다. 개는 말을 못하지만 로봇은 말을 한 대매. 정태 : 우리의 목표는 말을 안해도 통하는 로봇을 만드는거야. 재명 : 어떻게? 정태 : 지금 여기서 설명하라고? 이박삼일은 걸릴텐데? 민재 : 채영이 못봤니? 점심 안 먹나? 옥주 : 지원이 언니랑 석학의 집으루 갔어. 줄 서서 기다릴 시간 없다구. 전산과 숙제 할게 많대. 재명 : 민재형 말야. 은근히 채영이 누나 무지하게 챙기드라. 민재 : 내가? 야야 채영일 챙기는 게 아니고, 로봇 축구 프로그램을 챙기는 거지.   재명과 옥주 서로 보며 에에... 비웃는다.   민재 : 니들 헛소리 좀 하지 마. 어? 채영이가 지금 프로그램을 손보고 있으니까.. 시간도 얼마 안남았는데..          그 녀석 맨날 딴 짓하구..   굳이 변명을 하는 민재를 옆눈으로 보는 정태.     S#3. 석학의 집   시디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르는 마이클의 손. 이어서 월광곡이 흘러나온다. 그 앞에 마이클과 진영. 진영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이클과 얘기 중.   마이클 : (음미하며 좀 듣다가) 이게 베토벤이 작곡한 거에요. 피아노 소나타 C# 단조 작품 27-2. 진영 : 베토벤 생각하면 난 슬퍼요. 마이클 : (놀라서) 왜요? 그럼 음악 끌까요? 진영 : 귀가 안들리게 되서도 작곡을 했잖아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자기가 작곡한 음악을 듣지도 못하구.. 마이클 : 오우. 그래도 이 음악은 귀가 아주 안들리기 전에 만든거에요. 이거 누구 때문에 만든 건지 알아요? 진영 : 누구요? 마이클 : 쥴리에타 주치아르디. 베토벤이 사랑한 여자에요. 그 여자 주려고 이거 만들었어요. 너무 로맨틱해요. 진영 : 어머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마이클 : 뭐가요? 진영 : 그 여자하고 베토벤이요. 마이클 : 오우 세드 스토리. 그 여자 다른 남자한테 시집갔어요. 그래서 베토벤 너무 슬펐어요. 그래도 사랑은 대단해요.             사랑이 없으면 이런 아름다운 음악도 없어요. 나도 사랑 있으면 이런 거 만들 수 있어요. 진짜에요. 미순 : (불쑥 그들 앞에 나타나며) 사랑도 좋은데.. 마이클. 너 주문 안 하냐? 자리 값은 내야지 그렇지?   일각... 지원과 채영이 샌드위치 정도를 먹으며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원, 공부하던 것 멈추고 음악을 듣고 있다. 채영은 전혀 관심없이 숙제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지원을 본다.   채영 : 뭐해? 지원 : 어? 아.. 월광곡. 오랜만에 듣는 거라서. 채영 : 월광곡? (좀 음악을 듣다가) 그러네. 이게 월광곡이었구나아. 이거 모차르트가 작곡한 거지? 지원 : (어이없어서) 뭐? 채영 : 아 아 슈베르트였나. 지원 : ..너 만화영화 주제가같은 거 말고는 음악 안듣지. 채영 : 왜 ..들어. 지원 : 어떤 거. 채영 : 클래식. 난 클래식이 좋아. 지원 : 클래식 좋아한다는 애가 월광곡이 누구 작곡인지도 몰라? 채영 : 음악을 뭐 시험 칠려고 듣냐?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건 그걸 들으면 삼분내에 잘 수 있기 때문이야. 아주 직방이드라구. 지원 : (웃고 마는) 채영 : 근데 이 문제 이거 내가 풀구 있는 게 맞는거야? (지원이 풀어놓은 노트를 기웃거리는)     S#4. 캠퍼스 일각 낮   채영 하품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한 손에는 아까의 노트를 펼친 채 들고 있다. 걷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노트를 들여다본다. 읽으며 걷다가 마주오던 성민과 정통으로 부딪힌다. 채영과 성민 각자 넘어진다. 채영 아이구 아파라.. 떨어진 노트를 주우며.   채영 : 미안합니다. 앞을 안보고 걸었어요. 성민 : 안보고 걸은 건 나도 마찬가지에요. 나도 미안해요.   채영, 순간 멈칫한다. 성민의 더듬거리는 손. 저만치 옆에 떨어져있는 맹인용 지팡이. 채영, 그제야 성민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성민은 검은 안경을 쓰고 있다. 등에는 가방을 하나 메고 있고. (간단한 여행용) 채영, 당황하여 지팡이를 들어 망설이며 내민다.   채영 : 저어.. 여기 지팡이요. 성민 : 아 고마워요.   성민 미소지으며 손을 내미는데 채영이 지팡이를 내준 방향과는 다른 쪽이다. 채영, 주춤거리며 한손으로 성민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성민의 손에 쥐어준다. 성민 미소지은 채 일어서고, 채영도 따라 일어서서 저도 모르게 성민의 눈을 기웃거리고 보는데.   성민 : 아가씨. 채영 : (움찔해서) 네? 성민 : 너무 놀라지 말아요. 채영 : 내...가 왜요? 성민 : (온화하게) 맹인하고 부딪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거든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구요. 그럼...   성민 고개를 숙여보이더니 다시 길을 걷는다. 채영 멍해서 본다. 성민은 지팡이로 보도를 툭툭 치며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다. 보던 채영, 성민이 저만치 멀어졌을 때 후다닥 따라가서 옆을 걸으며.   채영 : 저.. 어디까지 가세요? 성민 : 시간 있어요? 채영 : 예? 성민 : (장난스레 웃으며) 나 데려다 줄려면 시간 많이 걸려요. 괜찮겠어요?     S#5.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가 손수 차를 두잔 들고 와 한잔을 성민에게 건네주며.   박교수 : 아아 생각나요. 그 때 저한테 시각장애자용 프로그램에 대해서 메일을 보내셨던 분이죠? 성민 : 예. 그 때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박교수 : 잘 오셨습니다. 웰컴이에요.   그런데 성민은 박교수가 찻잔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해서 그저 있다. 옆에서 멀거니 서있던 채영이 박교수를 향해서 손짓으로 그가 눈이 안보인다는 표시를 해보인다.   박교수 : (그런 채영을 보고는 성민에게) 아아참 눈이 안보인다고 하셨죠.             (얼른 자기 차는 책상에 내려놓고 성민의 손을 끌어 찻잔을 쥐어 주며) 여기 녹차 있어요.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성민 : 아 감사합니다. 박교수 : (채영에게) 채영양도 한잔 마실래? 채영 : (그제야 성민을 보던 시선 떼고) 아닙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교수 : 그래 그럼. 성민 : (채영 쪽을 향하더니) 이름이 채영입니까? 채영 : 예. 박채영입니다. 성민 : 난 강성민이라구 해요. 오늘 고마웠어요. 채영 : 아니에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채영, 천천이 문으로 가서 나가며 힐끗 돌아보고.. 나갈 때까지 박교수가 하는 이야기..   박교수 : 야아 전 정말 몰랐습니다. 맹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고 하셔서 눈이 안 보이는 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하야 참 신기하네에.. 근데 그.. 컴퓨터 사용할 때 프로그램은 뭘 쓰세요? 음성지원.. 이런 거 쓰시나?             (흥미진진해서 다가앉는)   채영, 그렇게 마구잡이인 박교수를 못내 불안해하며 나간다.     S#6. 이교수 랩   만수가 흥얼거리며 지나가다가 책을 읽고 있는 민재의 뒤에 서서...   만수 : 뭐야 이건.. (책을 휙 뺏어서 표지를 본다) 인체생리학? 야아 너 이럼 못 써 임마. 민재 : 뭐가아.. (책 뺏으려는데) 만수 : (혼자 흥분해서) 너 아무리 과학기술자의 길이 멀고 험해도 말야. 한번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는거지. 중간에 도망쳐? 민재 : 무슨 소릴 하는거야.   저 옆에서 명환이나 중희 등이 돌아보는데..   만수 : 의사선생님 되면 돈 많이 벌고 부모님두 좋아하시겠지만. 마. 그것만이 효도가 아냐. 너까지 배신을 때리냐? 어?          너 지금 의대 입학시험 준비하는 거지? 민재 : 어이구 참. 이거 프로젝트에 쓸거야. 만수 : 우리가 뭔 프로젝트에 인체생리학이 필요해? 민재 : (겨우 책을 뺏어서) 변교수님 프로젝트 랩 과제야. 만수 : 변교수님? 명환 : 장애자 프로젝트냐? 민재 : 예. 시각장애자용 로봇 프로젝틉니다. 명환 : 그거 어디까지 진행됐어? 작년에 보니까 intention reading을 놓고 애쓰구 있든데..   자막 intention reading (의도파악) : 장애물의 의도를 파악해서 로봇이 대응해 움직이는 것.   민재 : 그건 지금 해결된 상태구요. 저희가 이번에 연구해보려는 건 근전도 방식을 이용한 신호체계거든요. 중희 : 어차피 교수님들 학부생한테는 별 기대 안하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척만 하고 있으면 돼. 명환 :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중희 : 취소할게요. 만수 : 취소했대요. 명환 : (민재에게) 니들 그거 직접 실험하고 있지? 민재 : 예. 눈 가리고.. 벽에 박치기 해가면서요. 어유 쉽지 않어요. 명환 : 그거 진짜 장애자하고 같이 실험해보는 게 좋은데. 실제로 그 사람들이 느끼는 건 아주 다르다구. 만수 : 나 있잖아 나. 진짜 장애인 석사 일년차. 벙어리 삼개월. 장님 삼개월. 귀머거리 삼개월. 명환 : 정만수. 만수 : 취소할게요.     S#7. 건물 입구   강의를 끝낸 아이들 나오고 있는데 채영이 지원과 함께 나오며.. 계속 얘기를 이어가는 중.   채영 : 눈도 안 보이는데 컴퓨터를 하는 것두 대단하지만... 지금 시각 장애자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대. 대단하지. 그치? 지원 : 너 수업시간에도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거야? 채영 : 음.. (생각해보는) 그랬나? 지원 :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데 그래? 채영 : 어떻게 생겼냐하면... (하다가 한곳에 시선이 가더니 걸음 멈춘다) 저기 있다. 저기저기. 저 사람이야.   채영이 가르키는 곳을 지원이 돌아본다. 저만치 앞동에서 남희와 함께 나서는 성민이 보인다. 남희는 현관 아래까지 성민을 바래다주고는 인사를 나누고 보낸다. 성민은 지팡이로 더듬으며 혼자 조심스레 가기 시작한다. 남희도 불안해서 보고 섰는데, 채영 재빨리 남희에게 달려간다. 지원 어쩔수 없이 따르고.   채영 : 저기 저 분 지금 돌아가시는 거에요? 남희 : 아니 저녁에 박교수님과 만나기로 했어. 아마 박교수님 댁에서 며칠 지내실 거 같아. 채영 : 박교수님 댁에서요? 남희 : 박교수님 여기 기혼자 숙소에 사시잖어. 함께 지내면서 프로그램 얘기하실 건가보든데? 채영 : 아아.. 그렇구나. 그럼 저분 지금 박교수님 댁으로 가시는거에요? 남희 : 글세 학교를 한번 둘러보고 싶다구 나가네. 뭘 어떻게 둘러볼려구 그러는지 불안해 죽겠다 얘. 난 랩에 가봐야되는데.. 채영 : (갑자기 들고있던 책을 지원에게 안기더니) 너 방으로 갈거지? 이거 좀 부탁해.   하고는 성민이 간 쪽으로 달려간다. 지원 얼결에 책을 받아들고는..   지원 : 이따 스터디는 어뜩할거야? 채영 : (이미 저만치 가며) 알어 안다구.. 지원 : 쟤 정말 좀 이상하네. 남희 : 뭐가? 지원 : 글세 뭔가 좀 이상해요.     S#8. 캠퍼스 일각   성민 천천이 걸어오는데 그 뒤 저만치에 따라오는 채영. 아직 어째야할지 망설이며 그저 따라오는 중이다. 성민의 지팡이가 보도블럭가를 따라 톡톡 치며 오다가 모서리에 닿는다. 성민 어디로 갈지 잠시 망설이며 서있다. 채영 재빨리 뛰어온다. 지나치는 듯 뛰어가다가 다시 돌아오더니..   채영 : 야아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성민 : (빙긋 웃더니) 채영씨? 채영 : 아.. 하하 제 목소리를 기억하셨네요. 성민 : 발소리를 기억했어요. 채영 : 예? 성민 : 아까부터 뒤따라 왔잖아요. (웃는) 채영 : 아.. 하.. 들켰네. (머리 긁적거리는) 성민 : 괜찮으면 학교 안내 좀 해줄래요? 채영 : (얼른) 넵. (옆으로 와 서며) 어디 보고 싶으세요? (하다가 아차해서..) 그러니까 내 말은 어딜... 가고 싶으세요? 성민 : 보여줄래요? 채영 : ...예? 성민 : 채영씨가 도와주면 나도 볼 수 있어요. 채영 : ..어떻게요? 성민 : 음.. 지금 하늘이 어때요? 채영 : (하늘을 우러러 본다) 오늘 하늘은... 파랗고 구름도 별로 없고.. 날씨가 아주 좋아요. 성민 : 파란 색은 아주 기분이 좋지요? 채영 : ... 네. (약간의 연민과 당혹스러움으로..) 파란 색은 정말 기분 좋은 색이에요. 가슴이 시원해져요. 성민 : (끄덕이고) 자아 그럼 이제 하늘은 봤고.. 그 담엔 어딜 볼까요? 채영 : (그제야 성민의 의도를 알고 웃으며) 음.. 도서관 가보실래요? 성민 : 좋지요.   채영, 머뭇거리면서 성민의 팔을 잡는다. 성민 빙긋 웃더니 채영의 손을 잡는다. 채영, ?해서 보면 성민, 채영의 손을 자기 팔에서 떼더니 자기가 채영의 팔을 잡는다.   성민 : 이렇게 하는 게 나한텐 편한데.. 괜찮겠지요? 채영 : ...그럼요. ..몰랐어요. 성민 : 자아 갈까요 아가씨?   채영 활짝 웃으며 성민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S#9. 동아리방   민재와 정태 둘이서 안내로봇과 워크맨처럼 생긴 블랙박스를 놓고 연구중이다. 블랙박스에는 전극(병원에서 전기자극을 줄 때 몸에 붙이는 것 같은 장치)이 선으로 연결되어있고 뚜껑은 열려있는 상태. 정태, 그 전극을 민재의 팔꿈치 부근에 부착하고.   정태 : 눈 감어. 민재 : (마지못해 눈 감으며) 그거 조절 제대로 해놓은거지. 정태 : 걱정말고 정신집중이나 해. 자 간다. (박스의 조절기를 만지는..) 어때. 민재 : (눈 감은 채) 음.. 뭔가 신호는 오는데.. 정태 : 팔이 앞으로 당겨지지 않어? 민재 : 앞으로? (갸웃..) 그냥 움찔하는데.. 정태 : 이건.. (다른 조작) 민재 : ..아까랑 똑같은데? 정태 : 어이구 둔한 놈아. 어떻게 아까하구 똑같냐. 이번엔 정지하라는 신호였는데. 민재 : (눈 뜨며) 니가 해봐. 자아 자. (화나서 전극을 떼는)   지원이 들어선다.   지원 : 안녕. 민재 : (아직 뚱해서) 어서 와. 지원 : (테이블의 기구들을 보고) 그게 안내로봇이니? 민재 : 아직은 꼴통로봇이야. 정태 : 니가 둔한거지 왜 로봇갖구 야단이야. 민재 : 글세 니가 해보라니깐. 정태 : 아무래도 정말 맹인의 도움을 받아야 될 거 같은데. 맹인들은 아무래도 우리보다 감각이 예민하지 않을까. 지원 : 시각장애자라면.. 아까 채영이가 따라갔는데.. 민재 : 따라가? 지원 : 응 박교수님 찾아온 손님이라는 거 같던데..     S#10. 농구장   아이들이 두편으로 나뉘어서 농구시합을 하고 있다. 그 모습 잠시 보여주다가.. 슛 골인되는데서..   채영 : (E) 앗 골인.. 화학과에서 하나 넣었어요. 야아 센데.. 이러면 점수차가 자꾸 벌어지는데..   이만치 관중석에 채영과 성민이 나란히 앉아있다. 채영 두손으로 나팔을 만들어서 소리친다.   채영 : 여어 기계과 파이팅! 패스 패스..   소리지르다가 성민을 돌아보고 히히 민망해서 관둔다.   성민 : 언제나 그래요? 채영 : 뭐가요? 성민 : 언제나 지는 쪽을 응원해요? 채영 : 아아.. 뭐 우리나라랑 딴 나라 시합할 때 빼면 대충 그래요. 이기는 편은 나까지 응원 안해줘도 되니까. 하하. 성민 : (미소짓고) 채영 : (어느새 다시 시합에 정신이 팔려서) 앗 화학과가 또 중간에 공을 가로챘어요. 그래서 으아. 속공이다. 속공..          야 니들 뭐하는 거야. 수비 아무도 없어요! 뚫렸다 뚫렸어.   위 대사와 비슷한 상황의 농구장 아이들... 혼자 드리볼을 해오던 학생, 뒤미처 달려든 수비수를 하나 제치고 가볍게 발리슛을 성공시킨다.     S#11. 오리연못 가   채영이 성민에게 팔을 잡혀 안내해온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채영 : 여기가 오리연못이에요. 성민 : 오리연못? 채영 : 네. 여기 오리들이 살거든요. 음.. 오늘 오리들이 어디갔지? 성민 : 보여줘요. 채영 : 잠시만요. 요기 어디서 맨날 오락가락했었는데... (두리번거리는데...) 성민 : 채영씨도 마찬가지구나. 채영 : 뭐가요? 성민 : 눈에 보이는 것만 보구 살지요? 채영 : ?? 성민 : 가끔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구 살면 좋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처럼 앞이 안보이는 사람들이 어쩌면 정상인들 보다 더 많이 보고 살지도 모른다.. 하구요. 채영 : (생각해보는) 성민 : 채영씨 나에 대해서 이 몇시간 동안 얼마나 알았어요? 채영 : 예? 성민 : 눈이 안보이는 남자. 이러저러하게 생겼고. 키는 이 정도고... 옷은 이런 걸 입었고.. 그 다음에요? 채영 : ...(새삼 성민을 살펴본다) 성민 : 난 채영씨에 대해서 많이 알아냈어요. 가르쳐줄까요? 채영 : .... 가르쳐주세요. 성민 : 음.. 평소에 치마 잘 안 입죠? 채영 : 어. 어떻게 알았어요? 성민 : 뛰어 다니는 걸음걸이 보고 알았어요. 그리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고. 채영 :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성민 : 사람에 대해서 겁이 없어요. 그건 평소에 별로 미움을 받아보지 않아서 그럴거에요. 그렇죠? 채영 : ... 그런가봐요.. (심각해졌다) 성민 : 사람들을 보면요. 눈에 보이는 사람만 만나드라구요. 보이지 않는 진짜 그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구요.          그래서 가끔 외로와요. (그 말을 해놓고 혼자 웃는다) 채영 : ..사람들 만나면서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성민 : 별 좋아해요? 채영 : 하늘에 별이요? 성민 : 예. 채영 : 좋아하죠. 좋아하는데 요즘은 잘 안보여요. 아무리 날이 좋아두 기껏 백개도 안보일걸요.          스모그도 문제구.. 지상에 불빛이 워낙 밝으니까 잘 안보인다구요. 성민 : 난 밤마다 수만개의 별을 봐요. 맘만 먹으면 비가 와도 볼 수 있어요. 부럽지요?   채영 새삼스레 성민을 돌아본다. 성민은 자기 앞 쪽을 향해 그저 미소짓고 있다.     S#12. 학생식당   지원 정태 민재가 밥을 먹고 있다.   지원 : 느네 그거 프로젝트랩이라고 했니? 안내로봇. 민재 : 아니 개별연구. 지원 : 그럼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거기 너무 시간 뺏길 필요 없지 않니? 민재 : 그래도 대학원 시험에 영향을 준대. 일단 교수님 눈에는 들고 봐야지. 정태 : 차암.. 대단해. 어떻게 세상 모든게 그렇게 간단히 나눠지냐. 돈이 되는 거와 아닌 거. 성적에 반영되는 거와 아닌 거. 지원 : 내가 대단한 게 아니고. 난 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하는 거 뿐이야. 누구처럼 속 다르고 겉다르게 사는 게 아니라. 정태 : 내 속하고 겉이 다르단 얘기야? 니가 내 속을 봤어? 민재 : 야야 니들 지겹지도 않냐. 니들 자꾸 그러면 서로 좋아하는 거라고 오해해버린다. 니들 서로 좋아하냐? 정태 : 뭐 어째? 지원 : 저기 채영이 같은데..   다들 쳐다본다. 저 멀리 배식구의 줄에 서있는 채영과 성민.   민재 : (E) 저 사람이야? 시각장애자? 지원 : (E) 맞어. 근데 아직까지 같이 있었네.   // 배식구 일각... 카운터로 와서 채영이 지갑을 꺼내는데.. 성민이 어느새 채영의 앞을 가로막으며 지갑을 꺼낸다.   성민 : 얼마죠? 채영 : 제가 계산할게요. 손님이신데.. 성민 : 안되죠. 첫째, 오늘 안내해준 게 고마워서. 둘째, 내가 남자니까. 그러니까 내가 내게 해줘요. (웃는)   // 민재 등의 테이블 쪽.. 민재가 손을 들어서 오는 채영의 눈길을 끌려하는데, 채영은 옆에서 지팡이와 쟁반을 들고 오는 성민을 안내하느라고 보지 못한다. 민재네 있는 곳에서 보이는 채영이네. 그들 떨어진 테이블에 앉는다. 채영은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 성민의 것을 받아주고 의자를 끌어내주느라고 아주 바쁘다.   민재 : (손을 내리고) 아주 자원봉사자로 나섰구만. 박채영 신났어. 정태 : 야 한번 말 붙여볼까? 민재 : 뭐라구. 우리가 실험을 할 게 있는데 거기 실험대상이 되달라구? 정태 : 설명을 잘 하면 도와줄지도 모르잖아. 결국 이거 장애자들을 위해 연구하는건데. 민재 : 글세... 지원 : 박교수님하고 며칠 같이 지낸다니까 시간은 있을걸. 민재 : 그럼 가서 말해봐? 지원 : 좀 나중에 가는 게 낫지 않겠어? 민재 : 왜. 지원 : 봐. 지금은 둘이 할 얘기가 많은 거 같은데?   보면, 채영은 상체를 성민 쪽으로 기울이고 뭔가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다. 현재 반찬들을 설명하는 중이다. 아예 반찬 하나를 집어서 성민의 밥 위에 얹어준다.   정태 : 허어.. 저러는 거 보니까 박채영 여자 같은데?   민재 눈만 껌벅이며 채영을 보고 있다.     S#13. 주차장 저녁   박교수가 차문을 열고 성민을 태운다. 성민 채영이 있는 쪽을 향해서.   성민 :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채영 : 저야말로 정말 즐거웠습니다. 박교수 : 아 채영양 내일 오전에 시간 있으면 내 연구실에 들러. 이분이 연구하고 있는 프로그램.. 아주 재밌는거드라구.             같이 얘기해보자구. 채영 : 그래도 되요? 박교수 : (운전석으로 들어가며) 그 대신 올 때 먹을 거 좀 사와라 응? 과자, 종류별로 세 개만 사와 알았지? 채영 :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들이 탄 차가 출발하고 채영 배웅을 하고 웃음기가 남아서 돌아서는데 저만치 앞에 민재가 서있다.   채영 : 어이 이민재. 거기서 뭐하냐. 민재 : 보면 모르냐. 서있잖아.     S#14. 강의실 복도..동아리방 앞까지   민재와 채영이 걸어오고 있다. 채영은 흥분에 겨워 혼자 떠들어대고 있다.   채영 : 그러니까 시각장애자들이 컴퓨터를 어떤식으로 사용하는가하면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쓰는거야.          윈도우는 아직 제대로 활용이 안되고 주로 도스를 쓰는데 말이지. 사람이 명령을 치면 음성으로 그걸 읽어준대.          이런식으로 채팅도 가능하대는거야. 민재 : 저기.. 그 사람한테 있잖아. 좀 부탁할 게 있는데.. 채영 : (안 들린다) 프린터는 점자프린터가 따로 있구. 근데 이런 식의 프로그램들이 주로 다 수입품이래.          우리나라에선 아직 이쪽의 연구가 제대로 안되있다는거지. 정말 그런 거 생각하면 우리 할 일 많어. 그치. 민재 : 정태하고 나하고 요즘 개별연구하는 거 있잖아. 전자과에.. 채영 : 근데 성민씨가 연구하는 건 뭐냐면. 민재 : 성민씨? 채영 : 응 오빠라구 부르는 거보다 그게 낫겠대. 하여간 성민씨가 연구하는건 바로 문서인식 프로그램인데. 이거 아주 중요한거야. 민재 : (멈춰서며) 박채영. 채영 : (따라 멈춰서서 계속) 현재 스캐너는 이미지만 인식하잖어. 이걸 글자를 받아들여서 음성으로 들리게 해주는거야.          파일로 저장했다가 점자 프린트로 뽑아서 읽을 수도 있게 되구. 민재 : (단념해서 보는) 채영 : 지금 그런 프로그램이 있긴 있는데.. 우리 글자가 좀 복잡하잖아. 그래서 인식률이 칠팔십프로밖에 안된대요. 그래가지고..   어느새 그들은 동아리방 문 앞에 서있었다. 민재, 먼저 동아리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채영 그 뒤를 쫓아들어가며 계속..   채영 : 그걸 연구한대. 대단하지 않냐? 눈도 보이지 않는데..     S#15. 캠퍼스 밤     S#16. 정태 민재의 방   정태 자명종 시계를 맞추고 있고. 민재는 세탁한 빨래를 개고 있다.   정태 : 채영이한테 얘기했어? 소개 시켜달라구? 민재 : (세탁한 빨래를 개며) 아니. 정태 : 왜. 며칠 있으면 갈건데 빨리 얘기해야지. 민재 : 어.. 얘기할거야. 정태 : 저녁내내 채영이랑 둘이 같이 있었잖아. 그 얘기 안하구 뭐했어. 민재 : (빨래개던 손 멈추더니) 야아 근데 그게 아무래도 말하기가 쉽지 않어. 정태 : 뭐가아. 민재 : 솔직히 말해서 난 태어나서 이때까지 장애자하고 제대로 얘기해 본 적이 없거든. 거 뭐랄까.. 음... 좀 무서워. 정태 : 무서워? 민재 : 어. 내가 뭐 말 잘못해서 실수할 거 같고 말이지. 그런 사람들은 동정하는 것도 싫어하고, 무시하는것도 싫어하고 그러잖냐.          그러니까 말 한마디 하는 것도 무지 신경쓰이는 일일 거 같다구. 정태 : 채영이를 봐라. 걘 말만 하는 게 아니구 아주 붙어다니든데 뭐. 민재 : (다시 빨래 개며) 에이 걔야 원래 그런 놈이구. 그 녀석은 벨로시렙터하고도 친구하자고 덤빌 걸. 정태 : (민재를 좀 보다가) 어이. 민재 : 왜. 정태 : 나 아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민재 : 뭐가. 정태 : 너 채영이가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간다고 그러면 어떨거 같냐. 민재 : (황당한 얼굴로 정태를 본다) 정태 : 아니..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가. 그럼 좀 낮춰서.. 채영이한테 애인이 생겼다. 그럼 기분이 어떨 거 같어? 민재 : (잠깐 멍청해있다가) 우흐흐 야 그건 너무 불쌍하다야. 어떤 놈이 채영이 애인이라구? 으으.. 그건 비극이야 비극.          그 놈두 어느 집 귀한 아들일텐데.. 무슨 죄를 지었다구 채영이같은 여자 애인을 해야되냐. 애인? 우흐흐.. 정태 : (상대하기 싫어졌다) 으이그 자식.. (민재가 개고 있던 빨래 중에 수건을 하나 잡아채어 나가버린다) 민재 : 야임마. 그거 내 수건이야. 저건 꼭 새로 빤거 갖구 간대니까.   정태 나가버리고.. 혼자 남은 민재 웃음기가 가셔서 좀 더 생각해본다.     S#17. 밤 기숙사 앞   채영 자전거를 세우고 열쇠를 채우느라 쭈그려 앉았다가 문득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저 컴컴한 밤하늘... 일어선 채영, 밤하늘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은 채영의 얼굴... 잠시후 다시 눈을 뜬다. 찡그린다. 수만개의 별 따위는 보이지 않는 것. 에이.. 털고 기숙사 쪽으로 걸어간다.     S#18. 아침 캠퍼스     S#19.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성민이 마주 앉아 대화중. 남희는 한 쪽에서 컴퓨터 작업 중이고. 채영은 차를 만들고 있고.   박교수 : 그걸 무슨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 점자를 번역해주는 거. 성민 : 점역프로그램이요? 박교수 : 그렇지. 그거.. 우리나라에도 그 프로그램이 벌써 나와있다고 들었는데. 성민 : 있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있는 실정이죠. 박교수 : 왜애? 성민 : 그 디자인이 좀 문제가 있었어요. 박교수 : 디자인? 메뉴기능 같은 거? 성민 : 네. 우리들 생각엔 아무래도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서 그게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웃는) 박교수 : 아아 그러니까 정작 시각장애자들한테 쓸모있게 만들질 못했구나. 성민 : 물론 만드신 분들은 열심히 고민을 해서 만드셨겠지만요. 정말로 우리한테 필요한 것들은 잘 뽑아내지 못한 거 같아요. 박교수 : 호오.. (눈을 감고 손가락을 자판두드리듯 해본다) 성민 : 그래서 어제 밤에 드렸던 자료들 있지요? 박교수 : 어.. 그거.. 성민 : 거기 보면 우리 맹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기능들을 정리해 놓은 게 있어요. 오늘 밤에 그 부분을 설명드릴게요.   채영, 둘 앞에 차를 놓는다.   박교수 : 어 고마워. 채영 : 녹차에요. (하며 성민의 손에 찻잔을 쥐어준다) 성민 : (채영 쪽 방향으로 미소지어보인다) 고마워요. 박교수 : 근데 내가 어제밤에 물어보려다가 잊어먹었는데 말이지. 이 연구자료들을 다 나한테 넘기는 이유가 뭘까. 성민 : 전 이제 계속하지 못하게 될 거 같아서요.   남희 옆에 자리를 잡아 앉던 채영, 본다. 남희도 본다.   박교수 : 왜애? 성민 : ...그런 사정이 생겼어요. 박교수 : 연구비가 없어서? 성민 : 아뇨.. 개인적인 사정이에요. 박교수 : 아니 내가 알기로는 이 분야에서 성민씨는 아주 독보적인 존재라든데 아이구 아까워. 왜 그만둔다는 거지? 성민 : ...(미소 짓고) 살다보니까.. 그럴 일이 생기네요.   채영, 놀란 얼굴로 보고 있다.     S#20. 이교수 랩   모니터 화면에 뜨고 있는 GPS에 관계된 그럴듯한 화면... 그 위로.   이교수 : (E) 도대체 이 연구를 왜 하고 있는지 그걸 잊어먹고 있잖아.   랩의 명환 중희 만수 등이 주루루 서서 야단맞고 있다. 민재는 뒤쪽에 서있고.   이교수 : 우리가 연구를 하는 건 사람들이 쓰게 하기 위해서야. 그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지.             무조건 기술적인 것만 들여다 보고 있으면 뭐하냐구. 이걸 터미네이터가 사용할거니? 에일리언이 쓸거야? 니들은 지금             사람을 잊어먹고 있단 말야. (주욱 둘러보더니) 다음 주에 도로 실험 나가자. 그래서 니들이 직접 작동을 해봐야겠어. 만수 : 계룡산으로 가지요. 거기 봄꽃이 만발해서 경치가 죽여주는데.. 이왕이면 김밥이랑 닭몇마리 싸가지구.. 이교수 : (휙 돌아본다) 만수 : (움찔...) 아니 그니까 제 말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니까.. 이교수 : 이민재. 민재 : (느닷없는 지적에) 예 예? 이교수 : 너 변교수님 랩에 개별연구 하고 있다고 했지? 민재 : 예 생체신호를 이용한 로봇제어 부분입니다. 이교수 : 시각장애자용 로봇이라구? 민재 : 예 그렇습니다. 이교수 : 그럼 그걸 시각장애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거 아냐. 그러구 있어? 민재 : ...예..근데 그게 잘.. 이교수 :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냐. 연구라는 건 니 성적이나 업적 땜에 하는 게 아니잖어.             그걸 사용할 사람을 위해서 하는거란 말야. 그래 안그래.   학생들 분분이 예 맞습니다. 네.. 등등의 대답을 한다.     S#21. 랩 앞 복도   만수와 민재가 걸어오고 있다.   만수 : 너 추동이란 데 들어봤냐? 거기 경치 죽인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그대의 연인과 함께.. 사랑의 추억을 만드세요오..          바로 그 근처에 청남대가 있대는거야. 청남대 알어? 대통령 휴양소 아니냐. 그게.. 민재 : (한곳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만수 : 그러니까 그 장소로 우리 모두 힘을 합해 밀어보자구. 이교수님도 알고보면 아주 낭만적인 데가 있는 분이다 너.          비록 아직 시집을 못가서 좀 히스테리칼한 부분도 있지만.. 민재 : 형 나중에 봐.   하더니 달려간다.   만수 : 야 임마..   하며 보는 곳. 민재는 저만치 지팡이에 의지하여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성민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S#22. 복도   휴게의자 있는 곳 민재가 성민을 안내하여 의자에 앉게 한다. 민재는 성민의 팔을 잡아줘야할지 어떨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성민 의자를 더듬어 앉더니 미소를 띄워 보인다.   성민 : 채영씨 친구라구요? 민재 : (앉으려다가 다시 서서 꾸벅 인사를 하고) 이민재라고 합니다. (그러다 생각해보면 상대는 자기를 보지 못한다.          주춤거리며 옆에 앉는) 성민 :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구 하셨죠. 민재 : 말씀놓으세요. 보시다시피 전 아직 학부학생이고.. (하다보니..역시 상대가 볼수있을리 없다..)          죄송합니다. 말실수했습니다. 성민 : (웃더니) 나두 가끔 실수를 해요. 상대도 나처럼 앞을 못 본다고 생각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부탁할 일이란 게.. 민재 : 어.. 실은 제가 전기전자과 과목 중에 개별연구를 하는 게 있는데요. 그게.. 시각장애자를 위한 안내로봇에 대한 건데요.          어..그런데.. 그게.. 성민 : ... 실험대상이 필요하군요. 그런 거지요? 민재 : .. (말이 막혔다) 성민 : ..채영씨도 그 실험을 같이 합니까? (미소 여전히..) 민재 : 어.. 그런건 아닌데요. 채영이하고 친하신거 같아서..          (걱정되어) 역시 채영이를 통해서 부탁을 해볼 걸 그랬나봐요. 갑자기 모르는 제가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성민 : (미소 지으며 다른 방향을 보는데. 어쩐지 미소가 쓸쓸하다)     S#23. 오리연못 가   채영이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온다. 저만치 연못가에 혼자 앉아있는 성민을 발견하고 반가와 달려온다.   채영 : (앞에 서더니 목소리를 바꿔서) 내가 누구게요. 성민 : 음. 그런 건 뒤에서 눈을 가리고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채영 : (낄낄 웃으며 옆에 앉는다) 여기 시원한 거 사왔습니다. (음료수 하나 손에 쥐어준다) 아. 그거 따드릴까요? 성민 : 채영씨. 난 맹인이지 아기가 아니랍니다. 채영 : 아이구 남자는 죽을 때까지 아기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답니다. 성민 : (하하 웃는) 채영 : (새삼 보다가) 소리내서 웃는 건 처음 봐요. 성민 : ...나도 오랜만인 거 같은데요. 채영 : (음료수 마시다가) 근데 그거 물어봐두 되요? 성민 : 뭐요? 채영 : 프로그램 연구하던 거 왜 그만두는지요. 성민 : 음.. 그건 노코멘트인데.. 채영 : 혹시 백혈병같은 거 걸렸어요? 그래서 지금 뒷정리하는 거에요? 성민 : (또 소리내 웃는) 채영 : 흥.. 웃는 거 보니 틀렸군. 그럼. 뭘까.. 우리 스무고개 할래요? 성민 : 노코멘트라는데 완전히 무시하는군요. 채영 : 오오 노코멘트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게 되있답니다. 내 맘대로 생각해버릴 수도 있어요. 성민 : 어떻게요. 채영 : 에.. 예를 들어서 어떤 여자에게 실연을 당했다. 그래서 이 세상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이건 어때요.   채영, 저혼자 히히 웃다가 돌아보면 성민은 웃지 않고 있다.   채영 : 어라.. 그런 거에요? 내가 맞췄어요? 성민 : (싱긋) 대단한데요. 채영 : 어.. (당황해서) 미안해요. 그럼 진작 노코멘트라고 하지 말구 이건 프라이버시다.. 그러시지. 성민 : ....그래요. 실연당했어요. 채영 : (보다가 손등으로 성민의 옆을 툭 치더니) 에에이 시시하네. 뭐 실연 같은 걸로 연구를 그만두고 그래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 카이스트 학생 중에 70프로는 학교 그만둬야 한다구요. 성민 : (빙긋이) 같이 연구를 하던 여자였어요. 채영 : ..아아. 성민 :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은 내가 그냥 맹인이라서 필요했었나봐요. 자기 연구에 필요하니까. 난..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 그렇다구 말했거든요. 날 좋아한다고.. 채영 : ... 성민 : 난 속이 좁아요. 밴댕이 속이에요. 그래서 연구 자료 몽땅 들고 와버렸어요. 이런 사람은 이런 연구를 하면 안된다.          이런 사람이 정말 우리 맹인을 위한 연구를 해줄 리가 없다. 이렇게 합리화를 시키고 있어요. 지금. 채영 : ...그 여자분.. 딴데 시집간대요? 성민 : (하하 웃더니.. 잠시 후) 이민재라는 친구 있지요? 채영 : 어.. 어떻게 알아요? 성민 : 그 친구가 개별연구라는 걸 한다던데.. 채영 : 전자과에서 하는거요? 그게 왜요?     S#24. 전자동 복도   채영 씩씩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잔뜩 화가 나있다. 아예 달리기 시작한다.     S#25. 동아리방   민재, 정태, 재명, 옥주 마이클이 둘러서서 축구로봇들을 들고 보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채영이 들어선다.   채영 : 이민재. 민재 : (돌아보며) 너 왜 이제 와. 한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채영 : (흥분한 상태) 너 당분간 나 만나지 마. 나한테 전화도 하지 말고 복도에서 만나도 아는 척 하지마. 알았어? 민재 : 얘 왜 이래. 옥주 : 언니 화났어? 채영 : 나 화났어. 나 화났으니까 이거 풀릴 때까지 나 건드리지마.   도로 벌컥 나가려는데 옆에 있던 정태가 팔을 잡아 돌려세우더니.   정태 : 임마 최소한 왜 화가 났는지는 말하구 가야지. 채영 : 내가 왜 화났냐구? 이민재 너 몰라?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르겠어? 민재 : 나아참. (들고있던 로봇을 턱 놓고) 내가 언제 니 밥을 뺏어먹었냐? 대체 뭘 갖구 그러는거야? 채영 : 너 성민씨 만났지? 재명 : (옥주를 보며) 성민씨? 옥주 : (어깨 으쓱) 채영 : 만나서 뭐라 그랬어. 내 이름 팔았지? 민재 : 뭘 팔어? 채영 : 내 이름 팔면서 느네 실험 해달라구 한거잖아. 그게 어떤 뜻인지 알어? 내가 마치.. 마치.. 그 사람 이용할려구          먼저 친한 척 한거 같잖아. (횡설수설) 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내 친구 맞어?          내 친구란 게 날 이렇게 만들어? 내가 뭐가 되냐구? 정태 : 야 채영아. 채영 : 너두 꼴보기 싫어. 아는 척 하지마.   문을 벌컥 열고 나가더니 콰앙 닫는다. 모두 버엉해있다가..   마이클 : 와우 채영이 누나 화내는 거 처음 봤어. 너무 파우어풀했어. 재명 : 채영이 누나 방금 무슨 말을 한거야? 왜 화가 났대는거야? 옥주 : 민재 오빠. 성민씨가 누구야? 민재 : (아직 얼떨떨해있다가 정태를 보더니) 뭐가 어떻게 된거야? 정태 : 가만 있어봐. 지금 정리해보고 있는 중이야. 재명 : 근데 어떻게 안만나고 사냐. 두시부터 형네 같은 수업 듣잖아. 민재 : (재명을 돌아본다)     S#26. 박교수 강의실   학생 한명, 앞에 나가 칠판에 그림 그려가며 발표중이다. 박교수, 강의실 중간쯤 책상위에 앉아 듣고 있다.   학생1 : 이때 만족하는 j가 없으면 stack I의 왼쪽 공간에서 빈공간을 찾아 shift j가 1<=j 이에 빈 공간이 있는,           그러니까 t(j) < b(j+1)인 최대 j를 찾습니다. 이러한 j가 있으면 stack j+1, j+2....를 왼쪽으로 옮겨와           stack I와 stack I+1 사이에 빈공간을 만들어줍니다. a와 b를 만족하는 j가 없으면 모든 공간은 full이 됩니다.......   학생의 발표가 진행되는 중간에.. 앞 쪽에 앉아있던 민재, 뒤를 돌아본다. 저멀리 떨어져서 혼자 앉아있는 채영. 뚱한 얼굴로 칠판만 보고 있다. 그 중간쯤에 앉은 지원이 그런 민재와 채영을 번갈아본다.     S#27. B-랩 내부   내부에서 연구실험을 하는 모습들.. 주욱 스케치.. 민재와 정태가 들어선다. 주위의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멈춘다. 한쪽 구석에 성민이 앉아 기다리고 있다. 정태, 민재를 툭툭 친다. 민재.. 좀 망설이는 기분이지만 다가서서.   민재 : 오셨어요? 성민 : 아 이민재씨? 민재 : ..민재씨는 아니구 그냥 민재야 그러심 됩니다. 정태 : (옆으로 오며) 전 민재하고 같이 이 프로젝트 하는 김정탭니다.          여기 혼자 오셨어요? 연락 주셨으면 저희가 모시러 갔을텐데.. 성민 : 아니에요. 어떤 학생이 친절하게 안내해줬어요. 민재 :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성민 : (문득 한손을 들어 민재의 말을 막고 귀를 기울이듯 고개를 기울여 듣다가) 저건 채영씨 발소린데..   민재와 정태 문을 돌아본다. 뛰어온 듯한 채영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뛰어들려다가 주위의 모르는 선배들에게 우물쭈물 인사를 하고.. 그러다가 이쪽의 성민 등을 발견하다. 채영 똑바로 걸어오더니 성민에게.   채영 : 여기 도와줄 필요없어요. 지금 하실 일 많잖아요. 시간 없어요. 성민 : 어.. 박교수님하곤 밤에 만날건데. 채영 : (성민의 지팡이를 자기가 들고 성민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가요. 가서 주신 자료 좀 더 설명해주세요.   성민 끌려 일어나고.. 민재정태는 어이없어 보는 중.   성민 : 저기 채영씨. 채영 : 글세 나가서 얘기해요.   하며 성민을 잡아끌다가 뒤에 무언가에 부딪혀 넘어질 뻔. 성민이 재빨리 채영의 허리를 감싸 잡아준다.   성민 : 괜찮아요? 채영 : 아.. 예.. 성민 : (아직 허리 감싼 상태) 그러니까 잘 보고 다녀야죠. 채영 : ... 네에. (픽 웃으며 수줍은 듯 성민에게서 벗어난다)   민재 얼레..해서 보고 있다. 옆의 정태 얼굴도 마찬가지.   성민 : 채영씨. 나 이 실험 하고 싶어요. 재미있을 거 같은데.. 옆에서 봐줄래요?     S#28. 복도   민재 안내로봇을 복도 가운데 놓고 작동시키다가 뒤를 본다. 정태가 성민의 팔꿈치에 전극을 붙이고 있다. 저만치 복도 옆에는 채영이 복도에 기대서서 팔짱을 끼고 감시하듯 서있다.   정태 : (채영에게 소리치듯) 걱정 마. 우리 몸으로 실험 다 끝낸거야. 아주 안전하다구. 채영 : (민재와 정태는 보지도 않고 대꾸도 안한다) 정태 : (성민에게) 괜찮으시죠? 성민 : 재밌겠는데요. 작동 원리가 어떻게 된다고 했죠? 정태 : 원래는 로봇에게 끈을 달아서 잡고 가게 만들었었는데요.          근데 로봇이란 녀석이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저혼자 발발 끌고 가는 바람에 위험 할 수가 있었대요. 성민 : 무선 방식으로 하면요. 정태 : 그것도 개발되있어요. 말로 안내를 하게 되있는데요. 로봇이 먼저 앞으로 가면서 이어폰을 통해 사람에게          정보를 주는거에요. 왼쪽으로 갑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성민 : 흐음.. 그건 따라가는 사람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민재 : (옆으로 오며) 말도 마세요. 저 그걸로 실험을 했었는데요.          로봇이 지 혼자 떠들어대면서 가버리면 전 뒤에서 이 벽에 박고 저 벽에 박고 혹나고 그랬어요. 채영 : (후다닥 달려오더니) 아무래도 위험해요. 그니까 성민씨 이거 하지 마요. 민재 : (어이없어 채영을 보고) 성민 : (미소지으며 옆에 선 채영의 어깨에 손은 얹으며) 난 원래 넘어지는데 선수에요. 괜찮아요. 민재 : (채영의 어깨에 얹혀진 성민의 손에 신경이 쓰인다) 정태 : (역시 성민의 손을 보면서) 지금 실험하는 건 근전도 방식을 이용해 신호를 보내는 거에요.          로봇이 안내하면서 사람의 근육에 신호를 보내게 되있거든요. 전기자극으로요. 성민 : 그럼 로봇이 움직이는데 따라 근육의 느낌이 달라지겠군요. 민재 : 그게 문젭니다. 우린 아무리 해봐도 그 느낌을 구별하질 못하겠어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성민 : 좋아요. 해봅시다. 채영 : (걱정되어 성민의 팔에 붙인 전극을 다시 들여다본다)     S#29. 복도 다른 곳   안내로봇이 발발 오고 있다. 저 뒤에서 성민이 전극을 붙인 한 팔을 약간 앞으로 내민 채 따라오고. 그 옆을 민재 정태가 따라온다. 채영은 좀 떨어진 곳에서 따르고. 로봇이 방향을 틀면 모두 긴장해서 성민을 보고.. 성민이 미처 안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벽으로 진행해가면 채영이 잽싸게 그 앞으로 막아서고.. 정태나 민재는 황당하고.. 등등의 모습.. 하여간 채영의 계속되는 간섭에 정태와 민재가 어이없어 보는 장면 정도에서 끝나고..     S#30. 전자동 건물 입구 저녁   학생들 들고 나는데.. 채영이 저만치 서서 혼자 발장난을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민재 입구에서 나오다가 그런 채영을 본다. 잠시 보다가 그 옆으로 가더니..   민재 : 아는 척 할까 말까. 그냥 모른 척 하고 지나가줘? 채영 : (언뜻 고개 들고 보더니) 아.. 아까 미안해. 이해해라. 나 화나면 아무것도 안뵈잖어. 민재 : ... 그래서 이젠 화 풀렸어? 채영 : 히이.. 나 알잖아. 화나봤자 오분인데 뭐. 민재 : 누구 기다리냐? 채영 : 응 성민씨. 민재 : 지금 박교수님 방에 계셔. 얘기중이든데. 채영 : 알어. 민재 : (한심해보다가) 너 요 며칠 계속 붙어다니지 않았냐. 그 사람하구. 채영 : 붙어다니긴.. 우리가 껌이냐. 안내한거다. 학교안내. 민재 : 아직 안내가 남은거야? 채영 : 응 해지기 전에 우리 뒷산 산책로 있잖아. 거기 안내해주기로 했어. 마징거탑 있는데 거기. 민재 : 그 사람한테는 해지기 전이나 후나 다를 거 없잖아. 채영 : 다르지이. 해가 지면 거기 좋은 경치를 볼 수가 없잖아. 민재 : 경치를 봐? 채영 : 다 보는 방법이 있다구. 그 사람은 매일밤 수만개의 별도 보는 걸. 민재 : (잠시 보다가) 너 아무래도 수상해. 채영 : 내가?     S#31. 근처 어딘가. 앉을만한 곳   민재 먼저 앉는다. 채영 옆에 앉으며.   채영 : 내가 뭐? 민재 : 설마 너.. 그 형이 좋다거나 그런 소릴 하는 건 아니겠지? 채영 : (생각해보더니) 왜? 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 민재 : 뭐? 채영 : 좋아한다구. 나 그 사람이 아주 좋아. 민재 : (어이없어 웃더니) 너 철이 없는거냐. 머리가 나쁜거냐? 여자가 아무 남자한테나 나 그 사람 좋아해. 그래도 되는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어? 채영 : 아무 남자 아니야. 난 그 사람. 성민씨를 좋아한다니까. 민재 : ...박채영. 내가 하나 충고하겠는데 너 지금 이런 말.. 그 형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마. 채영 : 왜? 민재 : 넌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나 좋아요 어쩌구 말하는거지만.. 그 형한테는 장난치는 게 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어? 채영 : (빤히 민재를 보더니) 니 말 이상해. 민재 : 뭐가 이상해. 이건 상식이야. 사람에 대한 예의고. 채영 : 성민씨가 장애자가 아니었어두 너 그렇게 말할거니? 민재 : 뭐? 채영 : 성민씨가 그냥 보통 남자구. 내가 그 남자를 좋아한다면 넌 그렇게 말할거 아니잖아. 민재 : 임마. 그 형은 내일모레 떠날거야. 채영 : 그래서. 민재 : 남자하고 여자가 서로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는 최소한 일생을 걸고 말하는거야. 채영 : 알어. 민재 : ...뭐야? 채영 :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넌 아까 그런 뜻으로 말한거 아니야. 그 사람이 맹인이니까 그렇게 말한거잖아.          날보고 장난치지 말라고. 안그래? 민재 : .... 채영 : 나 또 화날려구 그래. 갈래.   일어나더니 가버린다. 민재 부르지도 못하고 보고 있다.     S#32. 뒷산 산책로 석양무렵   채영이 성민에게 팔을 잡게 하고 걸어오고 있다. 채영 좀 우울해있다. 성민은 깊은 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느끼고 있다.     S#33. 마징거 탑 아래   탑 아래에 서있는 두사람.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   채영 : 여기가 마징거 탑이에요. 성민 : 마징거? 만화에 나온다는 그 마징거 말이에요? 채영 : 내가 군사비밀 하나 알려드릴게요. 원래 우리나라에 적이 침입해 오거나 그러면 인공위성에서 육삼빌딩에          신호를 보내게 되있어요. 그럼.. 육삼빌딩 유리에 반사된 그 신호가 여기 마징거탑으로 비춰져요.          그럼 조오기 아래 오리연못이 갈라지면서 마징거가 솟아나오는거에요. 짜안... 성민 : ... 채영 : (웃다가 돌아본다) 안 웃어요? 재미없어요? 성민 : 뭐 마음에 걸리는 거 있어요? 채영 : 내가요? 성민 : 채영씨 아까부터 보라색이에요. 아주 우울한 보라색. 채영 : 치이.. (웃다가 멈추고) 두 번째 국가적인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성민 : 이번엔 태권브이인가? 채영 : 음... 이건 충격적인 거니까 일단 앉아서 얘기하겠습니다. (하더니 먼저 앉는다) 성민 : (웃으며 따라 앉는다) 자 앉았습니다. 채영 :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건 비밀이 아니고 질문인데요. 성민 : 네 듣고 있습니다. 채영 :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장난친다고 생각할 거에요?   채영, 성민을 돌아본다.     S#34. 강의실 앞 복도   안내로봇이 발발거리며 오고 있다. 저녁이 되어가서 어두워지고 있는 길고 긴 복도. 저 멀리에 민재가 쭈그리고 앉아서 로봇을 보고 있다. 혼자 발발 오던 로봇이 멈춰선다. 그 앞에 누군가의 발이 있다. 처장이 로봇을 내려다본다.   로봇 : 장애물이 있습니다. 왼쪽으로 갑니다.   로봇이 왼쪽으로 돌더니 진행하다가 다시 벽 앞에서 선다.   로봇 :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갑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기 시작한다. 민재가 얼른 뛰어와 로봇을 끈다.   민재 : 죄송합니다. 아직 실내용이라서 여기서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처장 : 아니에요. 그게 안내로봇인가요? 민재 : 예 시각장애자용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처장 : 호오.. 아주 귀여운데요. 실제 장애자분들하고 실험은 해봤어요? 민재 : 전 학부생이라서 많이 해보진 못했고 딱 한번 해봤습니다. 처장 : 그래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맹도견같은 거구만요. 민재 : 현재 맹도견은 삼천만원 정도 한댑니다. 이건 사오백만원 선이면 만들 수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처장 : 글세요. 이런거야 돈으로 따지긴 힘든거지... 민재 : 실용적으로 봐도 이게 나을건데요. 먹이지 않아도 되고 말도 잘 듣고.. 저기 그 용변도 안 누고요. (웃는) 처장 : 나같으면 하루에 한번은 멕여줘야 되고 용변도 닦아줘야 되는 로봇을 만들겠어요. 가끔 말 안들어서 야단치기도 하고. 민재 : 예? 처장 : 하하 농담이에요. 그래도 역시 티격태격하는 게 있어야 정이 드는 법이니까.          이렇게 무조건 말 잘듣는 로봇하고는 정이 들기 어렵잖아요. 민재 : 아.. 예에.. 처장 : 가만 있어봐. 이건 사람이 로봇의 말을 잘 들어야 되는 시스템인가. 왼쪽으로 가세요. 오른쪽으로 가세요. 하하.          그럼 수고해요.   처장 웃으며 가고. 민재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리고 가는 처장의 모습을 보다가 옆에 놓여있는 (혹은 안고 있는) 로봇을 내려다본다. 아무 감정없는 로봇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S#35. 마징거 탑 아래 밤   성민과 채영이 나란히 앉아있다. 이제 이 자리에서는 저아래의 불빛이 보인다. 말없이 그대로 앉아있다가... 문득 성민이 윗도리를 벗더니 채영에게 내민다.   성민 : 추워하는 거 같은데요. 채영 : (머뭇거리다가 받아 어깨에 걸친다) 고맙습니다. 성민 : 지금 별이 보여요? 많이 나왔어요? 채영 : (하늘을 볼 생각은 않고) 별 보고 싶은 마음 아니에요. 지금은. 성민 : (웃는) 채영 : 아직 대답 안했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성민 : (잘라서) 난 아니라고 말한다면요. 채영 : 예? 성민 : 난 채영씨 안좋아해요. 미안해요. 하구 내가 말하면 어쩔려구 그래요? 채영 : 그건 상관없어요. 성민 : 상관 없어요? 채영 : 그렇잖아요. 이건 내가 성민씨를 좋아하는거니까 성민씨가 날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지금 문제의 요지가 아니라구요. 성민 : ..그런가요? 채영 : 난 있잖아요. 요 며칠동안 계속 생각했어요. 이게 말이죠. 생각을 안할려구 해도 계속 생각이 나드라구요.          고장난 수도꼭지 같드라니까요. 수업시간에도 생각이 나는거에요. 그래 성민씨가 이렇게 말했지. 야아 그 말은 정말 맞어.          멋진 말이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성민씨가 웃었어. 으음.. 담엔 더 재밌는 말을 해야지. 그리고.. 성민 : 채영씬 사람한테 상처를 받은 적이 한번도 없지요? 채영 : 나 전산학과에요. 프로그래밍 전공이라구요. 성민씨 연구하는 거 같이 할 수 있어요.          멋지잖아요. 우리 맹인용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전세계에 공짜로 다 나눠주자구요. 프로그램 이름을.. 성민 : 채영씨를 상처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그렇죠? 워낙 튼튼하니까. 채영 : 왜 자꾸 딴 소리를 해요? 성민 : 그거 알아요? 채영씬 나한테 아주 큰 선물을 줬어요. 채영 : ...내가요? 언제요? 성민 : 채영씨 만나고 나서... 계속.. 그리고 좀 전에 아주 멋지게 포장해서 나한테 퍽 안겨줬어요. 채영 : ... 내가 뭘요. 성민 : 채영씨가 그랬잖아요. 내가 좋아하는거다. 그건 상대가 날 좋아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는거다. 채영 : ... 성민 : 난 그런 생각 못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계산해보고. 화내고. 그리고 도망친 거지요.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하면요.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시 돌아가자. 가서 계산같은 건 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좋아하자. 채영 : ... 알았어요. 성민 : 뭘요. 채영 : 방금 나.. 실연당한 거지요? 성민 : (웃고..) 지금은 별이 보여요? 채영 : (하늘 보지도 않고) 없어요. 안 보여요. 깜깜해요.   성민 또 웃는다. 채영 시무룩해서 앉아있다. 그들이 앉아있는 언덕.. 저 아래 불빛들...     S#36. 캠퍼스 아침. 위의 앵글에서 아침이 되어도 좋을 듯.     S#37. 채영/지원의 방 아침   지원 책을 챙기다가 채영의 침대를 본다. 채영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지원 : 안 일어나? 강의 시간 늦겠어. 채영 : 나 아퍼. 결석할거야. 지원 : 열도 없던데 뭐가 아퍼? 채영 : 나 죽었어. 죽었으니까 내버려둬.   지원 어이없어 보다가 나간다. 이불 속의 채영은 꼼짝도 않고 있다.     S#38. B-랩 앞 복도   정태와 민재가 오다가 보면 문 옆에 성민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태 : 여어 안녕하세요. 저희들입니다. 정태하구 민재. 민재 : 어 오늘은 실험이 없는데.. 성민 : 아니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민재 : 부탁이요? 말씀하세요. 성민 : 채영씨 친구분들이라고 하셨지요? 정태 : 그런데요. (민재에게) 우리 친구 맞지? 성민 : 채영씨한테 선물 받은 게 있어서요. 그래서 보답을 하려구 그러거든요. 민재 : 뭐 전해줄 게 있습니까? 성민 : 예.. 근데 저 혼자는 불가능해서요. 민재 : 뭔데요. 성민 : 별이요. 민재정태 : 예? 성민 : 하늘에 있는 별이요. 그거 이천개만 전해주고 싶은데..   멍해서 보는 정태와 민재. 정태 허 웃는.     S#39. 대전 시청 앞   정태와 민재가 들어가고 있다. 그 위로 들리는.   성민 : (E) 그게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오늘 아침에 가서 제가 부탁도 해놨어요. 빌려주기로 했어요. 하루 밤만.     S#40. 대전 시장실   시장이 웃으며 서류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그 앞에 선 정태와 민재가 꾸벅 절을 하여 감사를 표한다.   성민 : (E) 지금 대전 시청 창고에 그게 보관되 있대요. 두분이 천사가 되서 그거 좀 전해주실래요?     S#41. 채영/지원 방   채영, 혼자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다. 머리는 하루종일 잤는지 이리저리 뻗쳐있다. 지원이 들어오다가 채영을 보고.   지원 : 너 또 라면 먹는거야? 점심때두 라면 먹었다며. 채영 : 있지. 사람은 아무리 슬퍼도 배가 고픈건 어쩔 수 없나봐. 그게 너무 슬퍼. 슬퍼두 배가 고픈게. 지원 : 아이구.. 참.. (웃는데) 소리 : (전화벨) 채영 : (후다닥 달려가더니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어.. 성민씨. 예.. 지금요? 어디루요? 네 알았어요. 지금 나갈게요.   전화 끊더니 미친 듯이 옷을 입고 그러다가 거울 앞에 달려와서 머리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빗어댄다. 그러는 채영을 어처구니 없어 보는 지원.     S#42. 기숙사 앞 나무 아래. 밤   뛰어나오는 채영. 나무 아래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손목 시계를 보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초조해서 서성거린다. 채영이 있는 곳에서 이만치 떨어진 곳에 민재가 몸을 숨기고 채영을 보다가.. 핸드폰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다.     S#43. 어느 곳. 전선 스위치를 올릴 수 있는 장소.   정태가 무료하게 앉아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서.   정태 : 어 나야. 왔어? 그래 뭐하구 있냐?   정태가 돌아보는 곳에 있는 스위치.     S#44. 나무 근처   숨어있는 민재,   민재 : 이거 빌린 핸드폰이래서 길게 말할 시간 없어. 뭐? 내 기분? 지금 내 기분은 알아서 뭐할래. 춥고 배고프다. 됐냐?          잔말말고 내가 셋까지 세면 올려. 알았지?   // 나무 아래의 채영, 이쪽저쪽의 길을 살피며 기다리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보다가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별을 떠올려보다가 혼자 피식 웃는다. 눈을 뜬다. 그러다 정지한다. 문득 사방을 둘러본다. 사방에 수천개의 불빛이 가득하다. 나무에 가득이 걸려있는 작은 전구들이다. 그 전구들 불빛이 수천개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 채영 놀라서 빙빙 둘러보는데.. 그러다가 불빛에 드러난 나무가지에 편지가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채영 다가가 보면 편지 봉투에 [채영님에게]라고 쓰인 글자가 보인다.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는 채영. 불빛 사이의 환상적인 모습 위로..   성민 : (E) 이제는 별이 보여요? 앞으로 별을 보고 싶으면 이걸 기억해요. 눈을 감으면 언제나 볼 수 있을 거에요.   채영 주위의 불빛들을 둘러본다..   성민 : (E) 지금 채영씨가 보는 별이 내가 보는 별과 같은지는 모르지만.. 아마 느낌은 같을 거에요.     S#45. 교문 근처   성민이 지팡이를 더듬으며 걸어가고 있다. 처음처럼 가방을 메고.   성민 : (E) 그리고 또 기억해줘요. 눈에 보이는 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할수도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가끔은 눈을 감고 사람들을 만나는거에요. 알았지요?   성민 뭔가에 걸려 비틀하는데 누군가 성민을 부축해준다. 처음 등장하는 백곰이다.   백곰 : 괜찮으십니까? 성민 : 아 네. 고맙습니다. 백곰 : 필요하시면 차를 잡아드릴까요? 성민 : 아니요. 오늘은 밤하늘 구경을 좀 하고 싶어서요. 오늘은 별이 아주 많이 나왔는데요. 그럼..   성민.. 지팡이를 더듬으며 간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백곰. 돌아서다가 문득 밤하늘을 본다.                                                                       <a title="pds17:/35/i/x/ya44/8E0K/000/00/00000040"><img src="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icon.hanmail.net/editor/p_hwp_s.gif?rv=1.0.1" border="0" alt="첨부파일" class="vam"/> 12회 별.hw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