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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소의 해라고 해서 신문지상으로 소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합니다. 불교의 소와의 관계는 아주 밀접한 그런 관계에 있습니다. 경전이나 다른 어록들에도 소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또 소를 비유해서 불교의 수행을 마음찾는 공부라고 할 때, 그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로 표현할 때 반드시 소를 표현하죠.
그래서 소를 찾는 일 심우도(尋牛圖) 이제 이렇게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또 찾아가지고는 이제 소를 잘 이제 다스리죠. 그걸 이제 소를 먹인다합니다. 그걸 이제 목우도(牧牛圖) 이렇게도 하죠. 그건 이제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서 곡식을 막 짓밟기도 하고 뜯어먹기도 하고 뭐 해치는 일들도 사실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도록 잘 다스리고 관리감독하는 일
우리도 마음이라고 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무한한 능력이 잘 쓰면 좋은데 못 쓰면은 이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주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우리 일상을 살아가는데 소를 다스리듯이 우리들이 갖고있는 그런 그 본능을 잘 조절하고 잘 다스려서 좋은 방향으로 소가 사실은 사람에게 큰 이로움을 주지요. 그렇듯이 우리도 그와같이 세상에 이로움을 주도록 잘 다스리라고 하는 그런 뜻에서 불교공부를 소찾는 일이다. 소를 다스리는 일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하죠.
그래서 그 심우도를 우리가 생각해보면은 소를 찾았다고 해서 그게 이제 다가 아니라 그놈의 소가 어떻습니까? 고집이 세서 말을 잘 안듣죠. 근데 이제 세월이 가면은 그 소가 말을 잘 듣습니다. 그래서 이제 색깔도 변하죠. 황소가 차츰차츰 머리에서부터 흰소로 변해가는 그런 그림을 우리가 흔히 볼 수가 있는데 그와같이 우리 마음이 그만치 순화되고 또 어떤 그 일에도 정말 그 이치적으로 잘 관찰할 줄 아는 그게 이제 순화됐다 이렇게 하는 거에요. 이치적으로 잘 관찰한다 하는 게 이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게 지혜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그 지혜인데 지혜가 우리 마음속에 차츰차츰 쌓여갈 때 말하자면 소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소가 차츰차츰 흰소로 되어가는 거 차츰차츰 흰소로 되어갈 무렵에는, 어린아이가 그 끈 하나 잡으나마나한 그 끈을 끌고가도 잘 따라와요. 절대 그 어린아이를 뭐 떠 받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쯤되면 소는 큰 아주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되듯이 사람도 그와같이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 또 성인의 가르침 또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돼가는 것 ‘교화(敎化)’라고 하는 말이 뭡니까? 가르침을 통해서 변화돼가는 것 이런 말이거든요. 교화 참 좋은 말 아닙니까?
그렇게 이제 순화돼가는 그런 그 삶이 될 때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보살행을 해서 이득을 베풀 수 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되어가지다 하는 그런 뜻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소를 이제 우리가 그냥 그렇게 전통적으로 해석하면은 그것으로써 끝나는데 마침 내일이 또 성도재일이야. 알고보니까, 부처님이 성도하신 날이 내일이라. 그럼 오늘 저녁부터 철야정진에 들어가서 내일 아침에, 아침에 떠오르는 그 금성 아침샛별을 봄으로 해서 도를 이뤘다. 이런 것을 이제 우리 기념하고 우리도 한 번쯤이라도 닮아보기 위해서 대개 초하루부터 내일 아침까지 철야 용맹정진을 그렇게 선방에서는 매해 합니다. 연례행사로 으레히 합니다. 초하루부터 납월 팔일까지 그렇게 이제 기념으로 그렇게 해 오는 그게 있거든요.
그때 공부도 많이 돼요. 또 잠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이제 인식하는 그런 그 계기도 되고 그렇습니다. 그 뭐 이제 내일이 그 납월 팔일이니까 용맹정진하는 스님들 지금쯤은 별로 안 졸아요. 처음에 이제 시작해서 한 이틀, 삼일쯤 됐을 때 제일 졸음이 많이 옵니다. 삼일, 사일 이렇게 넘어가면 그때는 이제 어느정도 졸음도 말을 들어요. 그래서 졸음도 크게 안오고 지금쯤은 거의 안자도 안졸 수 있을 정도로까지 됐고 졸아도 아주 기술적으로 옆에 사람이 눈치 못챌정도로 좁니다. 그게 본능적으로 그래요. 자기가 그렇게 할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아주 그 무슨 표현도 없이 별 표현도 없이 졸아요.
그래 내가 그전에 용맹정진 같이 하다가 여기 저 범어사의 지효스님이라고 나에게 노스님되시는 분인데 그 분하고 같이 해인사에서 용맹정진을 했는데 제일 아주 그 소리없이 조는 분이라. 손을 이제 무릎에 딱 얹었는데 까딱도 안하고 손이 탁 무릎에서 떨어져. 손이, 아마 그 난간에다가 무릎난간에다가 얹었던 모양이라. 그러니까 떨어지지. 아마 안 쪽으로 얹었으면 안 떨어졌을텐데 난간에다 댔는지 탁 이렇게 떨어지드라고, 얼마나 독하게 참선을 하시는지 내가 지켜봤어요. 일부러, 그 스님은 뭐 정화때 그 할복도 하시고 하신 그런 스님이라. 스스로 뭐 배를 가를 정도니까 아주 그 용맹정진을 잘 하면 그렇게 또 사람이 강해지고 독해지기도 하고 그 좀 독해야 되거든요.
공부하는 데도 독한 마음이 있어야 공부가 되지. 세상공부나 돈벌이나 불교공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참 그 스님이 정진을 독하게 하셔요. 그렇게 됩니다. 이제 그러다가 내일 아침때 되면은 용맹정진 끝났다고 해서 자면 안되거든요. 자지 않습니다. 끝나도 자지를 않고 그대로 아침 가볍게 먹고는 이제 등산을 하게되요. 으레히 등산을 합니다. 그 산 상봉 금정산같으면 금정산 상봉, 해인사같으면 해인사 상봉, 가야산 상봉을 가든지 저기 우리는 이제 상봉도 더러 갔었고 남산을 잘 가요. 건너편에 남산 그 매화봉이라고 하는 그 남산을 돌아오면은 오후쯤 돼요. 그래서 이제 회향을 하는 거라.
그래야 몸이 풀리지 일주일간 안잤다고 그대로 골아떨어져서 자면은 잠도 제대로 안 올뿐더러 몸이 풀리지가 않아. 이제 옛 스님들이 그 경험이라. 그래서 이제 그 경험에 따라서 몸을 좀 이렇게 혹사를 시키는 거라. 일부러, 그러면은 몸이 확 풀려가지고 오후에 그 다음날 저녁에 잠을 자면 아주 잠이 잘 오죠. 그렇게 하면 까딱없어요. 아무리 지장없습니다. 일주일간 용맹정진해도, 겁낼게 없어요. 사람은 다스리는데로 가기 때문에 그야말로 소와같이 잘 그 다스려가는데로 대개 되있는게 또한 사람이라.
그래서 이제 소위 성도라고 하는 거 그것은 뭐냐? 마음 찾았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나는 늘 사람의 본성을 다야몬드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하는데 그야말로 이 소는, 이 소는 금강우(金剛牛)야. 금강우 금강 다야몬드로 만들어지 소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우리 그 인간의 본성은 참으로 대단한 그 능력을 가졌고 불가사의한 존재고 불생불멸의 존재고 이건 뭐 늘 이제 내가 주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만은 불교에 여러 가르침들 있죠? 무슨 뭐 천도에 대한 가르침을 평생 뭐 주업으로 하는 스님들도 있습디다만은, 어떤 이는 공의 이치를 평생 주업으로 가르치는 이들도 있고 연기의 이치를 주업으로 가르치는 이들도 있고 그런데 이제 나는 주로 우리 인간의 본성 그걸 마음자리라 하든지 뭐 심성이라 하든지 그걸 이제 통틀어서 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마음과 성품과 이 사람을 하나로 이제 표현을 해서 사람 그대로 마음이고 마음 그대로 사람이다. 사람하면 마음 으레히 따라오고 사람하면 마음이 으레히 거기에 포함돼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마음 또는 사람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다야몬드로 소로 비유하자면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소야. 다이아몬드 주먹만해도 가치가 얼맙니까? 주먹만한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큰 황소 큰 황소만한 그런 그 다이아몬드 덩어리다. 이렇게 인식하지요. 내 자신은, 황소가 몇 킬로나 나갑니까? 보통 한 7~800킬로 (1톤) 1톤 나가요? 1000킬로 오~ 그렇구나. 1톤정도 나가구나. 그 1톤짜리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제일 생각하기가 쉽죠. 아 1톤짜리 다야몬드를 집에다 놔뒀으면은 여기 공부하러 못 왔을거에요. 옴짝달짝 못 할거야.
뭐 저기 좋은 나라에 여행 공짜 시켜준다해도 아마 못 갈거야. 어림도 없죠. 어떻게 집에다 1톤짜리, 그것도 들고 가기 좋도록 이제 주먹만하게 나눠져있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제 못 간다. 아무나 집어 갈 수 있다. 그러면은, 못 가지. 어림도 없지. 법문이 뭐여? 부처님이 어딨어? 진짜 석가모니부처님 다시 왔다해도 그 보러 못 가. 그만치 소중한게 우리들 자신이고 우리 마음자리야.
비유를 하지니 1톤짜리 다이아몬드지. 그보다 더 훨씬 더 값진 게 사실은 우리 자신들이라. 그래서 이제 그것을 찾는 것이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 그 존귀성을 깨닫는 것이 말하자면 성도의 의미이고 또 소를 찾는, 이 소가 그냥 소가 아니다. 다이아몬드 1톤짜리 다이아몬드로 된 소다.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해서 우리 인간에 대한 본래의 존귀성에 대한 눈을 뜨는 일이 바로 ‘성도(成道)’ 부처님이 최후로 6년고행 끝에 최후로 일주일간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을 해서 눈을 떴는 데, 결국은 1톤짜리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그 소에 대한 우리 마음의 소, 내 자신의 소에 대한 눈을 뜬 것이다. 이렇게 이제 우리가 이해를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 기축년 새해에는 아이 뭐 처음부터 다이아몬드 1톤짜리 다이아몬드로 된 소란다 내가 그렇게 이제 생각을 하고 늘 그 소에 대한 그 소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잘 하고 그래서 확연히 의심없이 그렇게 확연히 깨달아 버리면은 뭐 금년 기축년 참으로 보람있고 가치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모두 그렇게 될 라면 건강하셔야 되고 다른 자질구레한 소원도 성취돼야 되죠. 불교공부는 이게 제일 우선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악세사리야. 어떻게말하면 하하하 아무 탈 없고 아무 문제 없고 시간 남아서 심심할 때 하는게 또 불교공부가 돼 있다 말이야. 참 이렇게 불교공부가 푸대접을 받아가지고 언제 1톤짜리 다이아몬드로 된 소를 보게 될런지 허허 어쨌든 금년은 기축년이니까 마음의 소를 깨닫고 찾는 그런 해가 되도록 합시다.
그럴려면은 내가 보기에 앉아서 용맹정진한다고 일사분란하게 화두가 되면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안 되. 잘 안된다고 이게 또 법당에 가서 기도하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야. 일사분란하게 무념의 상태까지 되기만 하면 그게 또 좋은 일이야. 화두하고 똑 같에. 화두드는 것 하고 하나도 차이가 없지. 그런데 이제 요즘 사람들은 그 모두가 지식이 많고 그리고 생각이 아주 그 많고 분별심이 그 많아.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저기 경전의 가르침이 참 좋아요. 그래서 이제『법화경』공부를 우리가 잘 하면은 소를 찾는 일에도 어쩌면 지름길로 들어설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음에 잘 새기고 그 아껴가면서 써. 막 써나가지 말고 아껴가면서 쓸 줄 알아야 되. 마음을, 글자를 빨리 써 나간다 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아껴가면서 한 자 한 자 이렇게 써서 마음에 깊이 새기고 뜻을 감상을 하면은 아마 요즘 사람들에게는 제일 소찾는 일에 빠른 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지난 시간에 과거불장(過去佛章)에서 참 그 좋은 말들 많았지요. 너무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뭐 어린아이들이 장난삼아 모래를 모아서 불탑을 했는데도 그것으로써 ‘개이성불도(皆已成佛道)라’ 불도를 다 이미 이루어 마쳤다. 얼마나 편안한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저 탑에 들어가서 탑전에 들어가가지고 ‘나무불(南無佛)’ 이렇게 염불 한 마디만 해도 그것으로써 개이성불도라. 그리고 산란한 마음으로 꽃 한 송이만 척 갖다 바쳐. 그것도 부처님께 아니고 저기 불상, 그림 이런데 아무데나 부처님이 그려져 있어도 거기도 좋고 불상이 뭐 아주 조잡하게 조각이 돼 있어도 마찬가지야. 불상이라 하면 뭐 거기에 꽃 한 송이를 공양하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개이성불도여. 다 이미 부처를 마친 일이 된다.
손톱으로 예를 들어서 불화를 그리고 불상을 이렇게 조각을 했다해도 그래도 그것만으로 개이성불도다. 이렇게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주 쉽게 불교를 이와같이 쉽게 이와같이 편하게 했어요. 그러면은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불도라고 하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런 말이에요. 나 자신에서 더 보탤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다 하는 그런 뜻을 이해시키기위해서 이런 우리들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이렇게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오늘은 101번이죠. 58쪽에 101번 거기에 이건 제4현재불장이라 이렇게 이제 과목을 붙일수가 있는데 보면은
101 天人所供養 現在十方佛 其數如恒沙 出現於世間 安穩衆生故
천인소공양 현재시방불 기수여항사 출현어세간 안은중생고
亦說如是法 知第一寂滅 以方便力故 雖示種種道 其實爲佛乘
역설여시법 지제일적멸 이방편력고 수시종종도 기실위불승
天人所供養인
천상 사람과 사람들이, 천신과 사람들이 함께 공양하는 바인
現在十方佛이 其數如恒沙라
현재 시방 부처님, 현재 시방에 계시는 부처님이 그 숫자가 마치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다. 그랬습니다. 이런 말들이요. 그대로 其數如恒河 恒沙 그랬잖아요. 그 숫자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다.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다.
이 말이 아주 뭐 쉽고 뭐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 것 같지만은 이 속에 불교의 근본취지가 또 사실은 다 포함돼 있습니다. 이 글자 다섯자 속에, 그럼 우리가 관념적으로 그 떠올리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이나 그 외 아주 뭐 큰 힘을 주신 위대한 그런 그 부처님, 오직 하나뿐인 부처님 이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전혀 그런 의미하고는 거리가 먼거야.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고 많은 부처님이
出現於世間이라
세상에 출현했다. 우리 우리들 빼고 누구있냐 말이야. 결국, 우리 빼고 누구냐 이말이야. 그 얘기에요. 우리 빼고 따로 없다. 어떻게 그걸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까? 도저히 나는 달리 해석할래야 할 길이 없는거요. 우리빼고, 저 길가에 쌔고 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속에는 무슨 뭐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이속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참『법화경』은요. 그래서 경중의 왕이고 부처님 최후의 가르침이고 정말 비밀하고 요긴한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하고 있는데, 바로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현재 부처님, 과거불도 할 수 없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은 현재에 계시는, 과거불장에는 이미 이제 과거에 돌아가신 분들을 다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도 다 그대로 부처님으로 사시다 가셨다 이말이여. 그걸 다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야.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야. 그래 이런 것을 우리가 만난 인연은 우리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인식해야되고 또 인식하게 하는 그런 그 좋은 인연이 됩니다. 그런 우리가 이런 인연이 없으면은 이런 소리 못 듣잖아요. 이런 소리 들음으로 해서 인연이 되는 거죠.
시방(十方) 현재 시방에 계시는 그러니까 요 법당안만이 아니다. ‘동서남북사유상하’ 온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 그 숫자는 설사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고 많다 하더라도, 저 해운대 백사장에 있는 모래수와 같이 많고 많다 하더라도 그들이 세상에 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安穩衆生故로 亦說如是法이니라
중생들을 편안히 하고자 한 까닭으로 ‘安穩衆生’ 중생들을 편안히 하고자 하는 고로 ‘亦說如是法이니라’ 또한 이와같은 법을 설한다.
그 나름대로에요. 여기 뭐 오늘 꽃꽂이가 아주 품위있네요. 이 뭐 소리나 아니면 목련이나 그 나름대로 자기 법을 다 설하고 있어. 자기 색깔, 자기 향기, 자기 모습 이걸 다 가지고 있어. 이거 뭐 자르고 했는데, 안 잘라도 그대로 자기 모습 다 가지고 있는거야. 그게 이제 말하자면 如是法이야. ‘亦說如是法이라’ 그대로 완전무결하다고 하는 그 사실을 알면, 중생들이 전부 편안해. 安穩衆生이야. 전부 편안하다고 알고보면은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유래없이 어려운 때라고 그래쌌는데, 사실은 뭐 올라가면 내려가게 돼있고 내려가면 또 올라가게 돼있어. 겨울에는 모든 식물들이 위축되. 줄어든다고 사람키도 위축이 돼가지고 더 작아. 봄되고 여름되면 더 커. 모든 생물은 그렇게 돼있어요. 그게 그 당연한 이치야. 당연한 이치. 그 당연한 이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그걸 모르는 거지. 몰라가지고 끊임없이 말하자면 자기 계획대로 되어가기를 바라는 거야. 부질없는 계획인데, 부질없는 계획인데 그 계획대로 되어가기를 바라는
그 사실은 모든 것이 어떤 그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가 잘 풀리면 잘 풀리는데로 보여주는 것이고 안 풀리면 안 풀린데로 보여주는 것이고, 자연의 어떤 나무나 풀이 저렇게 말라있고 나목이 돼있으면 나목이 돼있는 그 모습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잖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 순간에 이 겨울 이 순간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옳은 거라.
우리나라에서 만약에 사철나무도 아닌데 잎이 안지고 있다. 파랗게 꽃이 피고 잎이 핀다. 그러면 그건 아주 기현상이죠. 그건 이변이죠. 그거는, 진리가 아닌거죠. 특별한 거요. 그와같이 모든 것은 그렇게 저절로 자기의 어떤 그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亦說如是法이야. 이와같은 도리를 다 설해주고 있다.
그 이치만 알면은 경제가 올라가든 내려가든 어떻게 되는 사람의 마음은 편안한 거야. 겨울이 와도 편안하고 봄이 되고 여름이 되도 역시 편안하고 낙엽이 져도 편안하고 ‘그 으레히 당연한 것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는게 편안한 거에요. 뭐 불법알았다고 하~ 그냥 까무라칠정도로 기절할정도로 즐거운게 아니라 그저 마음이 편안한거요. 安穩 안온한 것. 그래 안심법문 그렇잖아요. 마음이 편안한 것.
知第一寂滅이건만은 以方便力故로
근데 第一寂滅法 제일의 제일가는 적멸법 그것을 이제 알지만은 그러니까 사실은 올라가도 내려가도 아무리 뭐 성장을 하든 망했든 결국은, 결국은 적멸한 자리야. 공한 자리야. 무의 자리야.
그래서 저기 내가 책을 돈주고 사기로 제일 많이 산 책이『도연초』라는 책인데, 일본에 옛날 스님이 쓰신 책인데, 일본의 교과서에도 그게 실릴 정도요. 거기에 보면은 그 스님이 그런 말을 했어. 사람들이 하~ 정신없이 저렇게 뭔가 사업을 하느라고 설쳐대는 것을 보면은, 봄날에 눈이 잠깐 왔는데 눈사람을 만드니라고 자꾸 쌓아올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금방 한 물이 녹아내리고 있는데 자꾸 눈을 쌓아올리는 거요. 그와같다라고 그렇게, 정말 차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봄날에 눈이 왔는데 그 눈을 자꾸 쌓아올리는 거야. 금방 녹아서 내일이면 없어질 건데, 세상사람 바라보기를 그렇게 바라본 거라.
‘知第一寂滅이라’ 깨달은 사람들은 그 전부 적멸법뿐이야. 그게 제일이야. 사실은 알고보면은, 그것을 알건만은 방편의 힘 때문에
雖示種種道하시는
비록 가지가지의 삶의 길, 가지가지의 도를 보이지만은
其實爲佛乘이니라
그 실은 불승을 위한 것이다. 佛乘 부처의 삶, 부처라고 하는 깨달음. 오는 성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은 그것을 이제 다른 이름으로 하면 불승이죠. 마음을 깨달았다. 무슨 1톤이나 되는 다야몬드로 된 소를 찾았다 하는 그 일도 결국은 법에 의해서 보면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그런 그 삶이다. 그렇게 이제 표현하는 거죠.
102 知衆生諸行 深心之所念 過去所習業 欲性精進力 及諸根利鈍
지중생제행 심심지소념 과거소습업 욕성정진력 급제근이둔
以種種因緣 譬喩亦言辭 隨應方便說
이종종인연 비유역언사 수응방편설
知衆生諸行의 深心之所念과
중생들의 여러 가지 행의 아주 깊은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
過去所習業의 欲性精進力
과거에 익힌 바 업들 그리고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좀 성격 그리고 그 사람이 무얼 열심히 했는가 하는 정진력
及諸根利鈍
여러 가지 근. 솜씨가 있다든지 아니면 뭐 눈썰미가 있다든지 아니면 무슨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든지 여러 가지 분야에 또 여러 가지 소질이 있거든요. 그 중에서 영리한 사람이 있고 둔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뭐 장사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무슨 학문에 소질이 있고 예술에 소질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방면에 아주 둔재고, 전부 다 아주 뛰어난 소질이 있는 면이 있고 또 아주 둔한 면이 있고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뭐 자녀들 교육관계도 보면은, 그 알기는 어려운 것이긴하지만은 타고난 어떤 능력과 소질을 잘 일찍이 알아가지고 그쪽으로 교육을 잘 시키면은 뭐 괜히 소질도 없는 거 억지로 해가지고 흐지부지 되는 것 보다는 뭐 100배, 1000배 효과를 보는 거지요. 훨씬 효과가 큰데, 그걸 이제 모른고는 그림에 소질도 없는 아를 자꾸 “그림 그리라. 그림 그리라.” 하고 피아노에 소질도 없는 아를 갖다가 자꾸 “피아노 쳐라. 피아노 쳐라.” 그렇게 해가지고 괜히 헛 돈과 헛 노력을 낭비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 이제 지혜가 없어서 그렇고 안목이 없어서 그런 거지요.
그래 이제 모든 근에 대해서 영리한 면이 있고 둔한 면이 있어. 어떤 사람은 살림 잘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서 장사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장사는 잘 하는데 집에 들어오면 막 엉망진창인 사람들 많죠. 영 뭐 돈벌이는 엉터리인데 또 집안살림은 잘 꾸려. 그리고 또 뭐 친천들에게라든지 집안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역할을 또 잘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利鈍한 게 이게 뭐 모든 면에 다 영리하거나 모든 면에 다 둔하거나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이 세상에, 그래
以種種因緣과 譬喩亦言辭
종종인연과 비유와 또한 여러 가지 언사로써
그 利鈍을 아시고 알 지(知)자를 거기다 새겨요. 知衆生所行 중생소행의 깊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 그 속에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걸 이제 부처님은 다 아신다 이 말이죠. 과거에 그 사람 무엇을 익혔는지. 그리고 하고자 하는 건 뭐고 성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열심히 정진했는지 그리고 무엇에 영리하고 무엇에 둔한지 이런 것을 다 아시고 가지가지 인연과 비유와 또한 언사로써
隨應方便說이시니라
마땅함을 따라가지고 방편으로 설하시니라. 그래 거기에 隨應이 중요한 말이요. 隨應 ‘應’은 이제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맞춰서 방편으로 설하심이니라.
부처님 진학지도하면 제일 좋겠네. 허허허허허 아주 똑 떨어지게. 그니까 실컷 공부 다 해놓고 하는게 아니고 태어나서 그러니까 유치원에 갈때부터 해야 되. 해야 되. 진학지도는, 이런 진학지도는 유치원에 갈 때부터 ‘니는 그림 그리지 마라. 그려봐야 괜히 헛수고다. 니는 학문쪽으로 나가봐야 괜히 헛수고니까 어느 쪽으로 소질이 있으니까 그 쪽으로 다른 사람보다도 몇 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거를 환히 안다면은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부모가 제대로 일러줘도 말 안 듣는다. 자기 소원 풀어달라고 허허허허 자기 못하는 것 좀 해달라고, 그러니까 자꾸 이제 성인의 가르침을 우리가 자꾸 접하면서 지혜를 키워가야되고 그래서 마음이 좀 넓어져서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그 마음의 준비가 돼야 되는 거죠.
103 今我亦如是 安穩衆生故 以種種法門 宣示於佛道
금아역여시 안은중생고 이종종법문 선시어불도
今我亦如是하여
나도 또한 지금 그와 같아서, 그러니까 부처님 자신이 석가모니, 여기는 이제 제오석가불장이야. 여기서부터는 고 앞에는 현재불들이 그렇게 하시고, 여기는 나도 또한 지금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安穩衆生故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이게 중요한 거요. 저 저 위에도 첫 줄에도 그렇죠. ‘安穩衆生故로’ 여기도 ‘安穩衆生故로’ 그랬잖습니까? 사람들이 편안하게 하는 게 이게 목적이야.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행복을, 제대로 된 행복을 우리가 누리는 게 그게 이제 목적인 거요.
불교의 목적이나, 돈 버는 목적이나, 정치하는 목적이나 무슨 뭐 기술을 익히는 목적이나 목적 그 한 가지는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安穩衆生故로’ 내가 이제 ‘인불사상(人佛思想)’ 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걸 이제 행복하고 연관시켜서 보면은, 모든 사람을 우리가 부처님으로 제대로만 이해한다면은 전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서로 섬겨야 되. 그럼 인간관계의 갈등은 있을 수가 없어. 그리고 또 아주 불행한 사람들을 열심히 관세음보살처럼 그렇게 보살피는, 어떤 소원을 가진 중생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하더라도 보살펴서 소원을 이루게 해줘야 되겠다고 하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사람이 절로 돼버려.
그것이 이제 인불사상이 인격화가 되면은 그런 것이 절로 된다고 그래서 저기『법화경』저 뒤에 아주 저 뒤에 가면은 25품이「관세음보살보문품」이지 않습니까?『법화경』이 이런 사상인데 그럼 그 모델케이스를 하나 제시해봐라. 관세음보살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 관세음보살은 예를 들어서 관세음보살은 이름만 부르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준다. 이랬거든요. 그럼 이제 우리가 거기서 부탁을 하는 쪽이 아니라,『법화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되는 거라. 모두가 인불사상으로,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생각하면은 어떻게 안들어 줄 수 있습니까? 부처님 소원인데, 부처님이 저렇게 앓고 누워있는데 우리가 안 돌봐 줄 수가 없죠. 부처님이 저렇게 굶고 있는데 우리가 무슨 뭐 보살피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관세음보살보문품」이 뒤에 나타나는 거죠. 모두가 관세음보살같이 되는 것. 이게 이제 인불사상의 목적이고『법화경』의 목적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늘 이제 관세음보살에게 매달린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관세음보살이 되어서 그 자비행을 실천하는 입장으로 가르치는 것이 이『법화경』이에요.
以種種法門 宣示於佛道니라
그래서 가지가지 법문으로써 가지가지 법문으로써 불도를 선시(宣示)한다. 깨달음의 도를 펴서 보이느니라.
104 我以智慧力 知衆生性欲 方便說諸法 皆令得歡喜
아이지혜력 지중생성욕 방편설제법 개령득환희
我以智慧力으로 知衆生性欲
내가 지혜의 힘으로써 중생의 성욕을 아시고, 중생들의 성품과 욕망. 어떤 마음씨를 쓰고 있는지, 어떤 욕심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러니까『법화경』을 공부하러 와 있어도 이게 뭐 정말 성불할려고 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은 뭐 무슨 저 복 받기 위해서 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도가 잘 된다고 생각을 해서 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을 전부 이제 지혜의 힘으로 다 안다 말이여. 저는 몰라요. 부처님이 그렇단 말이지.
그저 열심히『법화경』공부하러 와 있으려니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만 난 알뿐이지. 그 얼마나 평범하고 좋습니까? 허물이 없지요. 그렇게 알면은
方便說諸法하야 皆令得歡喜니라
방편으로 여러 가지 법을 설해서 그래서 부처님은 전부 부처님이 기쁘고 불교가 좋고 그냥 뭐 가서 기도만 해도 좋고 사찰참배만 해도 좋고 등산만 해도 좋고 어쨌든 하여튼 부처님을 통해서 또는 불교를 통해서 기쁘게 해주는 것.
사실은 그 불교라고 하는 그 자체는 기쁨의 샘이라.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 그 생각을 충족시켜주고 거기에 맞게 방편으로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는 거야. 그~ 천도재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천도재 좋다고 이렇게 해서 충족시켜주고 또 뭐 어디가서 산신각에 기도하고 싶다 그러면 그래 니 마음이 그렇다면 산신각에 기도하면, 산신 제일 위에 있잖냐? 제일 좋은 데야. 기도발 제일 잘 받는데야. 글로 모셔서 마음 흡족하게 해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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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화풍정님 감사합니다. 저도 학교다닐 때 도연초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여러 번 빌려 읽었던 기억나서 이 부분 들으면서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불교라고 하는 그 자체는 기쁨의 샘이라...고맙습니다. _()()()_
이번 화엄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화풍정님 고맙습니다. 다시 녹취록 따라 공부시작합니다 ^^_()()()_
하하 여연행님^^ 에고 죄송하였습니다.~~ 방학끝이예요. 화풍정님 속도 아시죠? 저도 곧 사경부분을 시작할 것입니다. ~~
혜명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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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法(묘법)의 법희선열로 安穩衆生故(안위중생고)토록 녹취불사 해 주신 화풍정법우님! 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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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정 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시 이어서 공부해야 하겠군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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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정님 덕분에 다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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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불도라고 하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런 말이에요. 나 자신에서 더 보탤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다. ... _()_
安穩衆生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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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인불 사상이 인격화되면 저절로 관세음 보살이 된다
모두가 관세음 보살이 되는 것이 인불 사상의 목적이고 법화경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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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_()()()_
늘 애쓰십니다. 그런데 이번 글부터는 한글새김(해석분)이 따로 본문내용밑에 없네요 ㅠㅠ
편집자님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어디에 있는 곳이 있나요?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