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고양이Ⅲ
부제 :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S1 방 안
동이 틀락말락하는 새벽, ‘준’이 멍하니 홀로 앉아있다. 준이 혼잣말을 하고 있다.
준 : ‘설’이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S2 어느 한산한 기차역
동이 틀락말락하고 있는 새벽(같은 시간), (지하철에서 내린) ‘설’과 ‘현’은 플랫폼에 서있다. 매서운 바람이 둘의 머리칼을 흩날리고 있다.
현 : (하늘을 쳐다보며) 태양이 아직 땅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네.
설 : 준이는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는게 좋아>라고 말했지만.
S3 방 안
준 :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탯줄만 더 엉킬뿐이야.
S4 도심
알몸의 사람들이 시내를 걸어 다닌다. 저 높은 태양으로부터 인간들(대부분)의 복부까지 길게 이어지는 탯줄이 나무의 뿌리처럼 세상에 뻗어있다. 그 끝에 연결된 인간들은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S5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준은 미쳤어.
S6 방 안
준 : 네가 날 떠나지만 않았으면, 우린 곧 탯줄을 끊을 수 있었어. 나는 네 것을 끊어주고 너는 내 것을 끊어주고. 나는 네게 리본까지 묶어주려고 했단말야.
S7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언젠가는 그 방에서 나와야 했어.
S8 방 안
준 : 상처가 아물면, 예쁜 참외 배꼽이 생기면, 나는 더 이상 담배도 막대사탕도 엄마 젖도 너의 입술도 빨지 않을거야. 그 때는 나가도 좋아. 만약 나가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것은 끊어주지마. 그들은 꿈의 조각을 갖고 있어. 그게 있으면 스스로 쉽게 끊을 수 있어.
S9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꿈 의 조 각.
S10 방 안
준 : 하지만 우리는 꿈의 조각을 갖고 있지 않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우리의 파편들.
S11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나는 준을 진심으로 사랑했어.
S12 방 안
준 : 설이가 사라지는 순간만 두렵지. 설이가 사라진건 두렵지 않아.
S13 어느 한산한 기차역
현 : 그는 왜 널 우산으로 두들겨 팬거야?
설 : 사랑하니까 때린거야. 사랑하니까 맞는거야.
S14 방 안
준 : 몸의 고통은 마음의 고통을 잊게 해주지.
S15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나를 때리다가 우산이 부러지면, 그는 우산을 다시 사오라고 시켰어.
S16 방 안
준 : 항상 우산은 필요해. 옆 사람의 탯줄이 끊어질 때, 핏물이 튀니까 조심해야해.
S17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나는 맞으면서 항상 소리쳤어. <누가 제발 우리 좀 구해주세요>라고.
현 : 우리?
설 : 준이도 구해줘야돼. 준이 옆에 항상 내가 있어야해.
S18 방 안
준 : 누가는 존재하지 않아. 내 자신밖에 없는거지.
S19 어느 한산한 기차역
설 : 나도, 너도, 준도, 곪을대로 곪아있어.
S20 방 안
준 : 악!!! 내 머리에 똥이 차고 있어!!! 얼른 뇌를 꺼내서 흐르는 물에 씻어줘야 해.
S21 방 안(Flash back-회상)
준은 바닥에 엎어진 설을 파란 우산으로 쿡쿡 찌르고 있다.
설 :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네가 네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어. 네 자신을 놓아버리지 마.
준 : 내 손이 너무 미끄러워. 내가 힘을 덜 주기 때문일까?
S22 어느 한산한 기차역
현 : 핸드크림을 발랐나?
설 : 나 아무래도 돌아가야겠어! 준이 갖고 있지 않은 걸 내가 갖고 있어!
S23 방 안(Flash back-회상)
준 : 이 세상은 손톱이 살에 박히도록 힘을 줘야 되는건가,,,
S24 방 안(현실)
준이 천장에 목을 매고 죽어있다. 일출의 붉은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준의 왼편을 비춘다. 왼손에 들려있던 부러진 파란 우산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진다.
Narr.현 : 혼자 남은 준곁에는 파란 우산들밖에 없었다. 아마 준이 마지막으로 본 것도 부러진 그것들이었을 것이다. 준의 죽음으로 인간 뇌혈관의 실핏줄 같은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조성주 ‘경제민주화 2030연대’ 대표는 “한국에서 지난 10년간 청년층과 노인층의 자살 증가율이 2~2.5배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겨레
청년들의 경우 자살로 죽는 수치가 교통사고의 2배로, 죽음의 원인 1위다.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
보건복지부가 최근 펴낸 ’OECD 헬스데이터 2012’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33.5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42.6명에 이르는 이런 자살률은 OECD회원국 평균치인 12.8명보다 2.6배나 높은 것으로 2003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자리에 오른 후 8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어제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 1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자살률은 사회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핵심 지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2위인 헝가리(23.3명)나 3위인 일본(21.2명)과 비교해도 훨씬 높다. 미국 12.0명, 영국 6.7명, 독일 10.8명, 프랑스 16.2명, 스웨덴 11.7명 등 주요 선진국들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한때 일본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일 당시 국민 스승으로 불리는 후지와라 마사히코는 ’국가의 품격’이란 저서에서 자살률을 낮추지 않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매일경제(2012.09.11)
지난해 국내에서 1만 285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 가운데 20~30대가 3762명으로 29.3%를 차지한다. 이 연령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고 한다. 20~30대 자살률은 2007년 이후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20대 자살률은 2006년 13.8명에서 지난해 22.6명, 30대의 경우 자살률이 2006년 16.8명에서 지난해 24.7명으로 증가했다. -통계청
자살 원인 중 하나인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뿐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정신적·심리적 양극화를 담아보고 싶었다. ‘준’은 미성숙한 어른(청년, 20세로 설정)으로 사회에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진정한 어른’되기에 실패한 인물이다. 그래서 ‘준’은 동거하는 여자친구 ‘설’(20세)을 비롯하여 대부분 세상 사람들을 자신과 같이 탯줄을 달고 사는 신생아처럼 비독립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준’과 ‘설’은 꿈의 조각을 가지지 못한, 힘이 없는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설’을 상실한 슬픔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 글에서는 ‘준’이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썼다.(‘준’과 ‘설’이 어긋난 사랑을 했기 때문에) 하지만 설의 대사 <나 아무래도 돌아가야겠어! 준이 갖고 있지 않은 걸 내가 갖고 있어!>를 통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며, 결국 사랑하고 보완하며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노력했다. 거시적이고 관념적인 담론보다는 개인적인 방법이 곧 해결방안이자 예방 대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