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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識’과 ‘觸’의 관계>에 있어서 ‘識住의 역할’이란? [③]
Dhātu(界)에 ‘識住(viññāṇaṭṭhitiya)’를 함으로써 ‘三事和合 觸’이라는 것에서
<‘識’과 ‘觸’의 관계>를 살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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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어떻게 해서 ‘색(色)’에 접근하는가?>가 이해됩니다.
‘名’의 내용이 <受, 想, 思, 觸, 作意>거든요.
말하자면............ <‘식’이 ‘名’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觸’이라는 법이 생성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곳이 바로 ‘육촉입처(六觸入處)’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바로 그 ‘육촉입처(六觸入處)’에서의 <作意>가 막가(magga, 心路)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作意→팔사도>, <올바른 作意→팔정도>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이고, 팔정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作意’가 전조가 되는 것입니다.
........... 그렇지만 아직은 여러분들에게 ‘아위자’가 <‘육촉입처(六觸入處)’라는 ‘갈림길’>에 대하여 설명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 결국에는 “作意의 集이 觸이라는 法(dhamma)의 集”이지만 ...... 나아가 ‘觸受想思 四無色陰’의 ‘순서가 뒤바뀐 것[=受想思觸]’에 ‘作意’를 더한 것이 바로 ‘名’입니다.
말하자면 ‘名’은 ........... 非色인 (心意)識이 ‘色(=지수화풍)을 경험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어낸 것들[=無色]인 셈입니다. 그래서 非色인 (心意)識은 ‘名色’이 한계인 것이고, 色(=지수화풍)을 직접적으로는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 <識食→意思食→觸食→물질식>의 과정에서 보듯이 ......... 우리 욕계중생들은 ‘짜장면이라는 물질식’을 하고 있거든요. ......... 여기에서 일본불교학계는 <觸과 色의 관계>를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한 ‘화두’를 타파하려면 먼저 ...... <‘識’과 ‘名(=受, 想, 思, 觸, 作意)色(=지수화풍)’이라는 set>를 분리해서 보시면 ‘화두타파’가 불가능해진다는 지적입니다. 본래의 ‘있는 그대로의 상황’은 <識→名色→識→名色→識→名色→識→名色→...........>의 ‘무한반복[=호연연기]’입니다만............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지 못한 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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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敎法’이란? ....... 고성제(苦聖諦)를 알고[智], 고집성제(苦集聖諦)를 끊고[斷], 고멸성제(苦滅聖諦)를 증득하고[證],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를 닦는 것[修]을 .......... 설명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불교에서 ‘敎法’이란? ....... <고(苦)>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성되어 있다고 볼 때...........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의 내용’은 <①37조도품[=중도(中道)]와 ②사마타와 위빠사나>입니다. 말하자면 ‘①과 ②’를 닦으면[修] <고(苦)>가 멸(滅)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두 단계인가?>입니다. ........ 물론, ‘사념처(四念處)의 경우’에는 ‘에까야노 막고(=一乘道)’라고 해서 ‘①과 ②’가 ‘하나(不二)’로 되어 있지만 ....... 보통은 <계정혜 三學체계를 가진 ‘팔정도’를 37조도품의 대표>로 보고 ...... 그 팔정도를 닦아서 ‘아빈냐’라고 부르는 ‘行을 파악하는 智’를 얻은 이후에 그 ‘아빈냐’를 바탕으로 <오직 慧에 방점을 찍은 ‘위빠사나’>를 닦는 ‘두 단계 수행’으로 나누어 닦는 것이 일반적인 수행체계입니다.... <四聖諦를 ‘3번 굴린 12가지 형태[=3전12행]’>로 설하는 교학체계가 그러한 ‘두 단계 수행’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아위자’는 <고(苦)를 멸(滅)하는데 “왜? 두 단계나 되는 수행체계[=magga]를 거쳐야 하는가?”>를 자문자답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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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3전12행에서....... <각각의 굴림[=3전]>에 있어서 바뀌는 것은 수행체계[=magga] 뿐입니다.
①이것이 고성제(苦聖諦)다, 이것이 고집성제(苦集聖諦)다, 이것이 고멸성제(苦滅聖諦)다, 이것이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팔정도)다.
②고성제(苦聖諦)를 보다 더 잘 알아야[智]한다, 고집성제(苦集聖諦)는 끊어야[斷]한다, 고멸성제(苦滅聖諦)는 증득하여야[證]한다.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닦아야[修]한다.
③고성제(苦聖諦)를 알았다[智], 고집성제(苦集聖諦)를 끊었다[斷],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닦았다[修], 고멸성제(苦滅聖諦)를 증득하였다[證].
.........에서, 언급되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것 때문에 <고(苦)를 멸(滅)하는데 있어서>는 <두 단계나 되는 수행체계[=magga]>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소위 止觀兼修와 止觀雙修의 문제인데요........ 일단 먼저 ‘心行이나 意行이라는 <行>을 사마타(止, 그침)하기 위한 것’이 .......... ‘아빈냐[=行을 파악하는 智]’라고 부르는 <智(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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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는 ....... 불교학자 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할 때 보다, 스님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할 때...... <‘아빈냐[=行을 파악하는 智]’에 대한 오해>를 더 많이 발견하는데요 ........ ‘아빈냐[=行을 파악하는 智]’는 <一切智>라는 ‘智(앎)’가 맞습니다. 그러나 ....... ‘아빈냐[=行을 파악하는 智]’가 <一切法智>는 아닙니다.
스님들은 ....... ‘일체’와 ‘일체法’을 흔히들 혼동하시더라구요 .......... ‘일체法’이라는 표현은 ‘일체’를 ‘法(dhamma)’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말하자면 <‘일체[=12처]’가 集하거나 滅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지닌 ‘智(앎)’가 <一切法智인 ‘法住智(=법의 상태에 대한 앎)’>거든요.
경전에서도 ...... ‘일체’에 대한 설명은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를 언급하는데에 그칩니다. 그러나 ‘일체法’에 대한 설명에서는 .......
벗이여, ‘欲(chanda)에 근거하는(mūlaka, 뿌리, 조건 지워진)’ 것이 一切法이고, ‘作意(manasikāra)의 有(sambhava, 존재)’가 一切法이고, 觸集이…, 受와의 만남(samosaraṇa, 모아지는 것)이…, 三昧를 우두머리(上首)로 한 것이…, 念(sati)의 위력(adhipateyya, 增上, 탁월성)이…, 최상의 般若가…, 解脫의 실체와 핵심이…, 涅槃의 감로수에 뛰어든 것이 一切法입니다.(chandamūlakā āvuso sabbe dhammā, manasikārasambhavā sabbe dhammā, phassasamudayā sabbe dhammā, vedanāsamosaraṇā sabbe dhammā, samādhipamukkā sabbe dhammā, satādhipateyyā sabbe dhammā, paññuttarā sabbe dhammā, vimuttisārā sabbe dhammā, amatogadhā sabbe dhammā, nibbānapariyosānā sabbe dhammā ti.).[AN. vol.5. p.107]
....라고 언급되듯이 .........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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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敎法에서는 ........ 法을 <불선법과 선법>으로 일단 먼저 구분합니다. 불선법이란?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法을 의미하는데요 ...... 대표적으로 <팔사도라는 magga[=아땅가라는 ‘여덟 가지’>입니다. 나아가 <十邪道[=다쌍가라는 ‘열 가지’]>가 불선법입니다.[☜주의하실 점은 ‘다쌍가’는 magga가 아님. 따라서 ‘다쌍가’는 단순한 ‘十邪’이지 ‘十邪道’라고 <道(magga)>라는 표현을 붙이면 안 됩니다. 필자는 편의상 붙인 것입니다.]
그러한 <팔사도와 다쌍가>는 <탐, 진, 邪見>의 셋 중에서 ‘邪見’에서 시작되는 心路(마음 길)입니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탐, 진, 치(moha)>의 셋 중에서 ‘치(moha)’를 제거하기 위하여 ‘意를 먼저 닦아야’하고요....... 그 다음이 <界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邪見’>을 제거하기 위하여 ‘正見’을 닦아야 하고요........... 그 다음 다음이 <탐, 진, 무명>의 셋 중에서 ‘무명’을 제거하기 위하여[=明을 얻기 위하여] ‘사성제를 3전12행’하는 것인데요..............
............ 오프라인에서 <탐, 진, 치(moha)>의 셋을 설명하려면, ‘올바른 작의와 올바르지 않은 작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 두 주가 걸리더라구요........ 나아가 <탐, 진, 邪見>의 셋을 설명하려면, <界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정견’>을 언급하는 순간에 ‘정견’의 내용이 ‘사성제’인데 .......부터 이야기 하면서 ...... 44智, 77智라는 ‘法住智’를 갖춘 ‘見’이 ‘정견[=사성제]’이다........라는 설명을 하는데...... 한 두 달 가지고는 설명을 다 못하겠더라구요....... 우선 당장...... ‘界(Dhātu)’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상대에게 界부터 설명해 들어가고자 하니..... “識이 法(dhamma)에 비친 <오욕락>을 근거로 나눈 것이 界라는 것이다.”라고 .......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여야 하니...... 결국은 ‘아위자’는 설명 포기!
........ 그렇지만..... 올해 들어서 ‘아위자’가 다시 또...... 설명해 먹기로 결심하고 또 도전 중인데요 ....... ‘邪見’이란? <극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見’>을 말합니다. 거기에서 ‘극단’이란?..... 法(dhamma)에 비친 <ārammaṇa(대상, 所緣, 攀緣)인 ‘오욕락’>을 ‘있음(有)’과 ‘없음(無)’으로 보는 경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성제를 모르는 상태[=무명상태]>에서 그러한 見이 생겨나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 이러한 것입니다.[☜이 ‘예’를 찾아내는데 ‘아위자’는 고생 좀 했습니다.] ............. 여러분이 손거울을 하나 들고서 ‘달’을 비추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거울에 비친 ‘달’과 실제의 달은? ...........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달’인 名色>과 <실재인 色[=지수화풍]인 달>과의 차이점은?.......... 잠수함에서 잠망경을 통해서 본 배와 실재인 배와의 차이점은 <물속에 있는 상태에서는 잠망경 없으면 물 밖을 볼 수 없듯이> ........ ‘名[=수상사촉작의]’이 없으면....... 다시 말해 .....無色[=촉수상사]이 없으면 色을 볼 수 없다[=경험할 수 없다. =名ca 色ca가 되지 않으면. =界로 전환하지 않으면.]..........는 지적이 <識과 名色의 set>는 ‘분리되어서는 성립하지 않음’이라는 지적인데요......... 상의상관 관계라는 지적인데요 ..........
十色處[=전오근과 전오경]라는 ‘處’에서 <(미래에) 분별되어질 (가능성이 ‘있는’) 法(dhamma)들이 ‘오욕락’>입니다. ........... 그런데 ..... 여러분의 心이나 意에 <탐, 진, 邪見>을 갖추고 계시면........ 그 ‘오욕락’을 ‘있음(有)’과 ‘없음(無)’으로 보는 경향이 생겨납니다. 그러한 경향을 지니고 있으면 ....... 여러분이 손거울에 비친 ‘달界(Dhātu)’를 “나의 것이다. 나다. 나의 자아다.”라고 ‘邪見’한다는 것입니다.
....... 그 말은........ ‘달’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달[=명색]’에 대한 <탐, 진, 邪見>을 갖지 말라는 말인데요 ........ 갖게 되면 ‘苦의 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지적이 “팔사도를 수행한 공덕으로 苦를 성취하다.”라는 부처님의 비아냥(?)인데요....... <심의식의 고짜라이며 visaya인 法(dhamma)>에 ‘비친’ <ārammaṇa(대상, 所緣, 攀緣)인 ‘오욕락’>을 ‘있음(有)’과 ‘없음(無)’으로 보는 경향을 지니지 말고 ........ <心에 무명을 갖추면 集하고 明을 갖추면 滅하는 것>으로 보라는 말씀인데요 ........ 요약하면 法眼을 갖추고서 보라는 것입니다.
...........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부처님께서 말씀은 쉽게 하시는지 몰라도 ........ 이해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말씀입니다. 오죽했으면 ...... 겨우 꼰딴냐 한 명만 알아듣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 너무나 기쁜 나머지 “꼰딴냐가 깨달았다. 꼰딴냐가 깨달았다.”라고 반복하여 감격하셨을까요.............
法住智[=法(dhamma)에 대한 集과 滅]만 갖추면........ 涅槃智는 ‘시간문제’에 불과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사실상 거저먹게 되는 것이라는 말.
불교 敎學에서 ...... ‘사마타’란 <心行이라는 ‘行의 止’>를 통하여 <法(dhamma)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일체행은 무상, 일체행은 고. 일체法은 무아>라는 ‘위빠사나’를 하게 되면 ............. 나타나는 것은 <明과 해탈>입니다.
거기에서 ‘일체法’에 대한 설명이 앞에서 인용한 경문인데요....... 실로 <엄청나고 굉장하지요?> ...... ‘일체法‘에 대한 <欲(chanda), 作意(manasikāra), 觸, 受, 三昧, 念(sati), 般若, 解脫, 涅槃>이라는 순서가 .........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순서..........라고 여기시면........ 그렇게 여기시는 분들이 바로 <불교 교법의 순서[=다쌍가]>를 이해하시고 계신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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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아위자’에게 <초기불교에서는 ‘돈오돈수’라고 봅니까? 아니면 ‘점오점수’라고 봅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아위자’의 <답>은 “둘 다.”였는데요........
身受心法에서 ‘신과 수’라는 set에 방점을 찍으면...... ‘점오점수’이고, ‘심과 법’이라는 set에 방점을 찍으면 ‘돈오돈수’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사념처가 <고짜라이고 조상대대로 내려온 visaya인 것>인데요....... 그러한 지적을 이해하시려면..... <오욕락>으로부터 시작되는 ‘밖으로(바히다)’가 <識이 相을 쫒아서 ‘밖으로(바히다)’ 흩어져서 ‘오욕락’을 추구하는 극단>을 선택한 것.......... 즉 ‘邪見’의 영향임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 결과가 Dhātu(界)입니다.
18界라는 Dhātu(界)를 다시 한 번 더 ...... 하나하나 살펴보시기를........ 놀라운 지적입니다.
첫댓글 ‘名[=수상사촉작의]'에 識住하고......... '色[=지수화풍]'에 識住하여......
결국에는 <物質食>이라는 '짜장면 먹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장면'보다는 '짬뽕'이 더 좋으신 분들은 ......... 바꾸어서 읽으셔도 무방.
@아위자 문제는 <識住는 왜 하느냐?>인데요......... 경전 곳곳에 설명이 너무나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으므로....... 참고하십시오. 식주가 없으면 <界>로 대상이 전환되지 않습니다.
<界>라는 것은 <法(dhamma)을 관찰하는 3가지 방법 중에 '하나'>라고 .......... 아무리 지적해도.......... '법에 대한 개념'이 '아위자'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으니.......... 에효~~~ 미칩니다. 미쳐요.
<색성향미촉>을 意가 경험하는 방법은 ........ <색성향미촉>이 法에 '비치는 방법' 이외에는 없습니다. 意의 visaya는 <법>이라니까요....... <법>!
@아위자 어쩌면....... 같은 경문을 읽는 것이 분명한데도.......... 같은 '육외입처'에 대한 언급을 읽으면서도...... '이치'에 맞게 고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
@아위자 <법>에 산이 비치든 물이 비치든 간에 ........ 모두 '법에 비친 것'입니다.
識이 <다르다>고 아는 것은....... 그렇게 알고 지랄 하고 나빠져 있기 때문에 ... <알음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 識이 '효자' 노릇하여 ... '반야'로 업그래이드 되는 것이거든요.....
@아위자 識으로 들어 온 三界는 반야[=慧]로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들어 온 문이 나가는 문입니다.
<識과 반야>가 '다른 것'이다.......라는 주장은 '識의 주장'이고요.......... 그 둘의 정체는 '둘 다' <법>이라는 사실........ 단지........ (고)집을 의한 법이 식이고...... (고)멸을 위한 법이 반야라는 점만 다른 것이지..... 둘 다 <법>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위자 그 말은........... 누구든지...... <법>에 대해서만 '정견'을 지니면 <돈오돈수>라는 말.
법에 대한 정견이 <반야이고, 사성제이고, sati이고, 열반이고, ..................>라니까요. 경문에 그렇게 언급되지 않습니까?
@아위자 ....... 그래서 설일체유부가...... <법은 '있다(有)'>라는 주장을 '아위자'가 ....... "지랄 육갑들 떨고 있네."라고 웃는 것입니다. "쓰버럴~~ 있는 줄 누구는 모르나. 문제는 <어떻게 벗어나느냐?>라는 관점에서 <법은 '集'하는 것이기에 '滅'하기도 한다>라고 주장해야지...... 미친 놈들 아냐?"라는 지적. 미친 놈들......
와......아위자 선생님, 이번 연재는 작정하고 설명하시는 것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끙끙대고 있지만.... 감당이 안되는 금광을 발견한 듯 그냥 넋놓고 보고만 있습니다.
//<색성향미촉>을 意가 경험하는 방법은 ........ <색성향미촉>이 法에 '비치는 방법' 이외에는 없습니다. 意의 visaya는 <법>이라니까요....... <법>! //
진즉에, 이렇게 설명해 주시지...... ㅋㅋㅋㅋ
개가 시냇물을 외나무 다리로 건너다가 ...... 물에 비친 <어떤 개쌔끼가 고기를 물고 가는 장면>을 본 것과 같습니다. 識이 저 혼자서 지랄발광하는 것이 界거든요. 識住란?......... 그 <어떤 개쌔끼가 고기를 물고 가는 장면>을 보고서 마구 짖어대는 것과 같습니다. 제 입에서 <고기 덩어리>가 물에 떨어지는 것은 모르고......... '고의 集'을 우리가 모르듯이................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한 번은...... 마누라가 "요즈음 잠이 잘 안 온다."고 말하기에......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를 조건으로 <육식>이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하였더니........ 3분도 안 되어서 ....... 깊은 잠에 들어 버리는 바람에......... 설명 <실패>!
'아위자' 자신도 ......... '삼사화합'의 과정을 생각하다가....... 깊은 잠에 빠져서..... 일어나 보니 <아침>!
ㅋㅋ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ㅋㅋㅋㅋ.
고생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_()_
.......
//<거울에 비친 ‘달’인 名色>과 <실재인 色[=지수화풍]인 달>// 아위자님
....을
혹시
[名色(眼)이라는 거울에 비친 달(形色= /실재인 色/)] 혹은
[마음(意)이라는 거울에 비친 달(法)]로 바꾸어 이해되도 되는지요?
............ 죄송합니다만........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거울(=법)에 비친 달[=명색]>이라는 표현은 ...... <인식론>을 고려해서 한 말인데요.........
그 어느 色[=지수화풍]이든 간에 ........ <거울에 비치게 되면[=인식의 관점]>..... '다 같게'됩니다.
예를 들어...... <공간>이든..... 그 '공간'에 있는 <책상>이든 간에....... 서로 떨어져 있지를 않습니다.
@아위자 가령 예를 들어 <안드로메다은하> 전체를 비추고 있는 거울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 그 '비친 것'>과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와 같은 것이 듯이...........
바로 가까이의 산을 비춘다고 해도 '비친 것'의 관점에서는 ......... 거리도 같고...... '비친 것'이라는 점도 같고......... 다 같은데......... 단 한가지......... 실재를 직접 체험하려면........ 身行에 성공하여 <직접 경험해 보는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 '짜장면'을 직접 먹어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안이비설신으로 <경험한 것>은 <'안이비설신'이라는 한계에 제한 되는 것>이라는 말.
@아위자 //<거울(=법)에 비친 달[=명색]>이라는 표현은 ...... <인식론>을 고려해서 한 말인데요//
.....
일반 논서에서 설명하는
眼(이,비,설,신)은 色이라고만 설명하지만
아위자님과 봄봄은 이 眼(이,비,설,신)은 名色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다만 이러한 眼(이,비,설,신)의 대상인 (形)色등에 대해서는
아위자님은 名色으로 설명하시고 봄봄은 그래도 (形)色일 뿐이다라고 의견을 드린 것입니다.
다만 <인식론>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위자님의 설명을 동의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욕계 인간들은 달이라는 형색을 명색이라는 방법으로 비추어 보고 있는 중이라는 의견입니다.
@아위자 <'안이비설신'이라는 한계에 제한 된 것>이라는 표현이 좀 그런데요........ <색성향미촉>을 보면요...... <색성향미촉>의 相(니미따) 등등.........만 포착되는 것이지........ <색성향미촉>相 이외의 것들.........도 포착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봄봄 문제는 욕계에 태어나서 6근을 지녔지만
5욕락(-까마)을 벗어난 불환자나 삼계를 해결하신 아라한의 경우에는
눈으로 달을 보든지 여성을 보든지 달인줄 인식하시고 여성인줄 인식하시는 것 까지는
범부들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범부들과 다른 점은 <欲貪>의 有無(이것은 극단^^이 아님)라고 이해했습니다.
@아위자 ....... 色身[=身行]의 경우를 보면..........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우리의 유전자가 <짜장면>을 身으로 바꿀 수 있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食이 가능한 것이고요...... 그러한 유전자가 없으면 아마 죽게 될 것입니다. 짜장면 먹고 죽는다. ㅎㅎㅎㅎㅎ .........어떤 존재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봄봄 즉 욕계에 태어난 인간들은 나중에 불환자가 되실 분이든지 아라한이 되실 분이든지
그냥 범부로 살아갈 인간이든지
태어날 때는 눈의 계, 형색의 계 등... 이른비 18界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이러한 성자들과 범부의 차이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界에 기억된 누겁의 달콤한 기억이 위험함으로 기억이 확립되어 있는지
되어 있지 않고 여전히 달콤한 기억이 확립되어 있는지 그 차이가 아닌지 하는 의견입니다.
@봄봄 眼이 안근이 되면 이미 <망할 대로 망한 상태>거든요........
眼이 眼處일 때....... 그 안처가 사실은 '色處'라는 지적이고........요.
眼이 眼界일 경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요........... 眼이 眼根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엄청 다릅니다. 그 것들을 모두 썩으면........ 이야기가 엄청 복잡해 집니다. 行...... 三行을 동시에 다루어서 이야기 해야 하거든요.
@아위자 한 가지............ <눈의 계, 형색의 계 등...이..... 이른비 18界>가 되는 것이 아니고요..........<안이비설신의[=육내입처]> 자체가 <계>가 되는 것입니다.
@아위자 다시 강조하면...... 處가 界가 되는 것이지....... 요.
@아위자 계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을 드릴 입장이 아니어서....
다만 닭과 닭알(계란)이 무엇이 먼저라고 말씀은 드릴 수 없지만
봄봄은 界에서 6處가 연기하는 경문을 본 것 같습니다.
@봄봄 물론 이러한 6處 상태에서도 비슷하게 살면 그 계를 유지 강화 혹은 악화되겠지만
이른바 이러한 6處가 苦라고 알게 되면 이러한 명색(전5근)과 비색인 의(제6근), 즉 안계~의계까지
이러한 계에 대해 苦라는 지혜가 확립된다면, 이것은 동시에 식주가 생겨나지....
@봄봄 18界에서 <육촉입처>라는 '處'가 연기되는 것...........이 '예'겠지요.
순서가....... 엉망인 것이 <계, 처, 연기>입니다.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서........ 연기가 이루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봄봄 '處'라고 하면......... <공무변처나 식무변처>라는 '處'가 저는 제일 먼저 떠 오르는데요.......
그러한 '處'들을 '界'로 언급하는 경문들도 있구요...........
@봄봄 그러한 구분들은....... 心行이냐 意行이냐의 영양을 받아서 지어지는 구분들인 것 같더라구요.........
<안이비설신의>라는 <法(dhamma)>을 관찰하는 방법이..........
<(眼)界, (眼)處, (眼의) 연기>라는 말씀인데요..................... 3관이라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