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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3:1-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39:4-6절에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고 했습니다.
훌륭한 왕이었던 다윗은 자신이 너무나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한 뼌 길이만큼 밖에 되지 않는 인생인 것을 알게 됩니다. 든든히 서 있는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허사뿐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림자 같은 인생, 헛된 일로 분주한 인생,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누리고 살지 모르는 존재인 것을 다윗은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라고 하였습니다.
바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은 별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성군이었던 다윗왕이 그런 고백을 했다면, 평범한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다윗보다 더 연약합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때로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질병을 만나고, 우환을 만나고, 또한 원치 않게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가 낙심할 수 있고, 절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고 외치게 됩니다.
“너는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하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 아니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진정 너를 건져 주시고, 너를 도와 주시고, 너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소망” 여러분은 지금 어떤 소망을 갖고 있습니까? 2009년도를 시작할 때, 어떤 소망을 품으셨습니까? 그렇고 보니 벌써 10월달입니다. 1월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었는데, 어느 덧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그런 시점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기에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야” 하는 그런 소망이 있기에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망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소망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소망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소망이 없다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소망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면, 소망이 없어지면,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한 탤런트와 개그우먼이 세간의 관심과 부러움 속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채 1년도 못되어서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빚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학력과 외모, 지성 등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그는 왜 자살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는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우리가 어려운 난관을 뚫고서 앞을 향해서 전진해 갈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공급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소망의 내용에 따라서 삶을 달라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망은 사람들의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며,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등대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 세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살 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절을 보면,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하여 우리는 속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신기루를 좇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참 소망은 보이는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어찌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만나면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근심합니다.
재물과 돈을 의지하고 그것에 소망을 두는 자는 그것 때문에 절망합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믿었던 사람은 그 사람 때문에 근심하고 절망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소망을 지금껏 이 땅에 두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우리의 소망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146:3-5절 말씀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복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으며, 내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려운 숙제 중 하나입니다. 때로는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우리의 인생을 꾸려갈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는 그 어떤 인생도,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를 의지하며 살아가라. 너는 내게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고, 그분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는 복이 있습니다.
사람을 좇아가지 마십시오. 사람을 좇아가면 그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 소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귀인은 보통의 힘없는 인생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갖춘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힘있는 귀인이나 힘없는 인생이나 다 똑같습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들 오분 이상 숨을 참고 견딜 사람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고난하면 욥을 생각합니다. 욥만큼 엄청난 고난을 당한 사람도 없습니다.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다 당한 사람이 욥입니다. 이 땅에서 소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삶의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그러나 욥은 소망을 천국에 두고 살았기에,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도,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을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임시적인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고통, 실패, 원망과 불평, 시기와 다툼, 좌절과 절망, 그리고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떠한 환난과 역경을 만나도 욥처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 볼까요?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소망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실까요?
첫째,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아멘.
다윗은 억울하게 어려운 처지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그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법정이 아닌 하나님께 그의 사정과 형편을 아뢰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억울합니다. 아무리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변명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의 무죄함을 알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경건하지 않는 저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좀 변호해 주세요. 그리고 저 간사하고 불의한 사람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하나님은 다윗을 건져 주셨습니다. 골리앗으로부터 건져주셨고, 사울왕으로부터 건져주셨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부터 건져주셨습니다.
또한 2절을 보면, “하나님,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나는 강하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는 언제나 승리만 있습니다. 주님이 안 계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돕지 아니하시면 아무 일도 행할 수 없을뿐더러 주님이 나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게 닥치는 이 어려움을 견딜 힘 조차 없습니다.”라고 다윗은 말했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 있으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큰 힘이 되시는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대적이 아무리 힘이 세고 감당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시편 18:1-3절을 보면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고 고백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그러면 소망의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우리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건져주시는 하나님, 세상 유혹으로부터 건져주시는 하나님, 사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 시험과 환난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건져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홍해를 갈라 그들을 인도하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내시어 그들을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들에게 주어, 배 고프지 않고, 주리지 않게 하셔서 인도하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셔서 목마르지 않게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광야로 인도하셨을까요?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출 3:1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의 거룩한 산, 주께서 계시는 곳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의 성전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주의 성전입니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시편 23:1-3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23:6절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바로 주의 집에 두어야 합니다. 시편 27:4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의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전에서 예배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전에 나와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
주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그러한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차고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아멘.
로마서 15:13절을 보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고 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16:11절을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5:11절을 보면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함께 있노라면 기쁨과 즐거움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입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 변하는 기쁨이 아닙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기뻐합니다.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언제나 기뻐합니다.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언제나 기뻐합니다. 잘 되거나 못되거나 언제나 기뻐합니다. 문제가 풀릴 때나, 여전히 문제가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때나, 변하지 않는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늘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가고 있는데, 유라굴라라는 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있어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기를 14일이 지났습니다. 배의 사공들이 승객들을 버려두고, 자기들만 살려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았습니다. 배의 사공들만 몰래 도망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 거룻배를 타고 나가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군인들을 시켜 배에서 거룻줄을 끊어 떼어버리게 합니다.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24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18:6-7절을 보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감으로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지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고, 도와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항상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소망의 하나님,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자 하오니, 우리를 선한 길로,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