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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시 23:1-2)
시편 23편을 읽으면서, 우리는 흔히 “다윗이 어린 목동 시절에 이 노래를 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중년의 시기에, 특히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목숨이 위협을 받았을 때, 이 시편 23편을 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고백한 것이 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다윗의 말에서,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그를 인도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를 보호하여 주시고, 그를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느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맨발로, 예루살렘 궁궐을 빠져 도망갈 때, 얼마나 그의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겠습니까? 살 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너무 부끄러워,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여 주시고, 그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지금 원치 않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나의 나아가는 길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함으로 덮여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를 푸른 풀발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으로, 다가오셨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과 전혀 상관없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신다면, 목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잘 따라가고 있습니까?
순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쪽 언덕보다는 저쪽 언덕에 푸른 풀이 더 많다고, 그쪽 언덕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장 눈 앞에 푸른 풀밭도 보이지 않고, 쉴만한 물가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주님을 믿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주님이 가시는 길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목자가 양을 푸른 풀밭에 누이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푸른 풀밭”은 목초지를 말합니다. 그것도 연한 풀이 있는 목초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먹기 좋고, 눕기 좋겠습니까?
또한 “쉴만한 물가”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누이시며”라는 말은 배를 대고 엎드려서 휴식한다는 뜻입니다.
푸른 풀밭에서 연한 풀을 배불리 먹고, 쉴만한 물가에서 배를 대고 엎드려 쉬고 있으면, 얼마나 편안하고 만족하겠습니까?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한다는 것은 가장 즐겁고, 가장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배부르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단절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기쁨과 안식으로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인적이 닿지 않는 아프리카나 아마존 강 유역의 밀림입니까?
아니면, 남태평양의 어느 아름다운 섬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시편 23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바로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이십니다.
하나님 안에, 진정한 쉼이 있고, 안식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행복하고, 하나님으로 참된 안식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들이 많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행복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안식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소년시절에,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후에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후에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고 해서, 10년 넘게,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재물과 권세와 최고의 영화를 누렸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과 생사고락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이, 진정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고, 참된 안식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모자라지 않다. 결핍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하나님 안에 있는 다윗은, 모자라지도, 결핍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만족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만족과 행복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거기가 푸른 풀밭이고, 거기가 쉴만한 물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쉼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쉼을 얻고,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고, 만족을 누렸습니다.
빌립보서 4:11-12절을 보면, 바울도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만족했습니다. 자족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모든 것을 소유해서, 부족한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소유한 물질이 많았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목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부족함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래도 부족하고, 저래도 부족합니다.
소유한 사람은 소유한 사람대로, 부족함을 느끼고,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소유하지 못한 대로,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은 남들만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불평합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부족하다는 말이 만연해 있습니다.
“운동 부족, 경험 부족, 물 부족, 전력 부족, 용량 부족, 이해력 부족, 능력 부족”
늘 뭔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부족한 것을 어떻게 하면 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가 없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역대상 29:11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다윗은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의 삶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없으면, 늘 부족합니다.
하나님 안에 없으면, 바닷가를 가도, 계곡을 가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디에 있든지, 거기가 푸른 풀밭이고, 거기가 쉴만한 물가가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없으면, 늘 불안하고, 두렵고,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어디에 있든지, 바로 그곳이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최고의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어디일까요? 언제일까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가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나의 마음과 몸과 물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와 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한 마디로, 영원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하나님의 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중에, 참된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어느 날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섯 살짜리 아들이 서재에 들어왔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자신의 글 쓰는 일이 방해될까봐서, “왜 들어왔니? 뭘 원하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냥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일하고 있는 서재에서 조용하게 놀았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아빠의 서재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사랑스러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소리를 듣는 복음성가 가수 레나 마리아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자서전에서, “내가 태아였을 때도 하나님은 곁에 계셨을까? 왜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도 많은 고난, 고통, 질병, 장애를 주셨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때로는 몸이 굳어지는 걸 느끼고, 무리하면 허리에 통증이 심하다. ‘팔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다. 나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평생토록 찬양하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나는 고난, 고통, 질병,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평생토록 찬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레나 마리아보다 더 건강하고,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오히려 자족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처럼, 아들의 반역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그런 상황에서, 목자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경험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원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사하고 있습니까?
불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만족하고 있습니까?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