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인 19번도로 안내간판 ~
전북 장수에 피서를 왔다. 인근에
수원백씨 정신재공파 파시조
( 水原白氏 靜愼齋公派 派始祖 )
백장(白莊) 선조님 유적지를 찾아 본다.
{수원백씨 정신재공파 파시조는
중시조 백창직의 12세손인 백장(白莊)
이시다.}
崇義齋(숭의재)라는 재각(齋閣)과
재실(齋室)이 있는곳과 재각(齋閣)에
들어가는 입구의 오른쪽에 산소가 있으며
두곳 모두 풀이 무성하여 접근하기가
곤란하여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는
돌아왔네그려~
반바지에~ 날씨도 무덥고 ....했어~ㅋ
이런저런 핑계대는 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오네~~~ㅎㅎ
그래도 이곳을 알아 놓았으니 시원한 계절에 다시 찾아뵙는 날이 있으리라 믿으며 ~~~ㅎ
다음에 꼭~
들머리 도로간판~
백장(白莊)산소입구~
백장 유적지 안내간판~
산소전경~
백장(白莊)선생 묘지명은 '유명고려국이부전서보문각대제학백장지묘'
재실(齋室) 숭의재로 들어가는길~
재실앞 주차장에 상사화~
일단 삼문 대문(三門,正門)은 열려있고....
(포충문(褒忠門) , 숭의재(崇義齋)
올라왔습니다 ~ " 崇義齋(숭의재)전경 "
재실(齋室)門은 잠겨 있음~
재실(齋室)門은 잠겨 있음~
◇ 찾아가는방법 승용차~ AI지식참조
네비게이션 검색: 네비게이션에 "장수군 장계면 장무로 495-14" 또는 "장수 백장선생 유적"을 검색합니다.
주차: 유적지 근처에 주차 공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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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愼齋公(정신재공)의 時享(시향)일은 매년 4월 첫째주 일요일이며
전북 장수군 장계면 황곡리 에 있는 墓(묘)와 崇義齋(숭의재)齋室(재실)에서 時享(시향)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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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개요~
백장선생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리학자인 백장 선생의 유적으로,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하며 전라북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유적지에는 백장 선생의 묘와 1850년에 세워진 신도비,
그리고 1960년에 세워진 사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51005
장수 할미봉 등산을 마치고
지나는길에 다시 찾아 술한잔 처서
올려봅니다.
◇묘
◇신도비
산소 들어가는 갈림길 맞은편 신도비
(문화탐방 호롱불 에서 옮긴글)
● 백장선생 신도비
백장선생 신도비는 장계면에서 계북,무주 방향 약 2㎞지점 19번국도변 이차선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그 곳에는 2개의 신도비가 있다 하나는 1850년에 자손들의 건의에 의해서
세운 것이고 하나는 최근에 후손들이 새로히 단장하여 세운 것이다
백장선생 신도비는 사후 432년이 지난 1850년에 자손들의 건의에 의하여 공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져 오랫동안 내려오다가 훗날 세월 흐름에 흔적이 희미하며 파손되고
비문해석이 불분명하여 1990년에 수원백씨 후손 20대손 백정인이 개수(改竪)하고
22대손 백준선이 근서(謹書) 하여 새로운 신도비를 만들어 옆에 두 개의 신도비를 나란히 모시고 있다.
백장선생 신도비(좌측 1850년 세움,
우측 1990년 세움)
(정신재공 휘 백장의 신도비명 내용)
조선태조가 왕위에 취임함은 천시와 민심에 순응하여 취임 하였으데 여조의 구신이 수절하고
불취한자 심히 많아서 혹은 죽고 혹은 살아서 각각 직분을 다함은 동일하다
석일에 백이가(중국 은나라의 충신) 주나라를 더럽다하며 수양산에 은거하여 아사 하였으나
문무제신이 불문에 부치다 신왕을 비방하고 절의를 지키어 처신함을 고결히 하여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처세 하였으니 어찌 하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며 영예를 취하는 자와 같으리요
정신재 백공은 입지가 탁연하니 이 또한 목은, 이색, 야,은 길재, 군현의로다
공의 휘는 장이요 자는 명윤이며 정신재는 그의 호이라 포은 정몽주 선생께 수업하여 16세에 진사가되고 26세에 원조에가서 과거하여 한한림시독학사를 지내고 공민왕시에 누진하여
광정대부 이부전서 보문각대제학에 이르렀다
.
첫댓글 衷忠門 : "속마음충은 '속마음과 충성을 다해 문을 지킨다' 또는 '진심으로 충성하며 문을 지킨다' 와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여 문을 지키는 사람' 또는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지키는 사람' 정도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 '문'은 단순히 물리적인 문 외에도 '문호', '가문', '출입구'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더 구체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는!
水原白氏 靜愼齋公派 參判公系 34세 ~
배위: 정부인 밀성 박씨 (우의정 박간의 딸)
자녀: 슬하에 형옥(荊玉), 여옥(如玉), 계옥(季玉 또는 명옥) 등 세 아들을 두셨습니다. ~AI검색내용~
우의정 밀성군(密城君) 박간(朴幹)의 딸 정부인 밀성 박씨는 고려 이부전서(吏部典書)를 역임한 충숙공(忠肅公) 백장(白莊)의 배필입니다. 이들 부부는 조선 개국 전후 시기에 세 아들(형옥, 여옥, 계옥)을 두었으며,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여 가문에서 여러 명신과 판서를 배출하였습니다. [1, 2, 3]
정부인 밀성 박씨와 백장의 가계 및 후손에 대한 핵심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백장(白莊) - 고려 시대 이부전서 역임. [1, 2]
아버지: 박간(朴幹) - 조선 초기 우의정 겸 밀성군(密城君)을 지낸 밀성 박씨의 핵심 인물. [1, 2, 3]
자녀:
장남 형옥: 판사(判司) 역임
(아들 백빈은 판서)
차남 여옥: 좌참찬(左參贊) 역임
삼남 명옥(또는 계옥): 참의(參議) 역임 [1, 2]
가문 성향: 일문삼상서(一門三尙書)라 불리며 명문가로 칭송받았음. [1]
12세조 (파조) :
백장 (白莊, 정신재공)
13세조
백형옥(장남) (거창 계열)
백여옥(차남) (장흥 계열)
백명옥(삼남) (강원·경북 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