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때에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는 멀리 떨어질수록 좋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니 그러지 않아도 잘 찾지 않는 미술관 같은 곳을 찾지 않는 핑계가 제법 그럴듯하다.
미술관이라는 곳은 코로나가 없던 태평한 시절에도 몇 번 동네 불구경하듯 우르르 몰려서 본 것이 고작일 정도였으니 참으로 삭막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미술관을 찾으면 당황스럽다.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괜히 아는 척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지 않겠는가.
해외여행을 할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러 간혹 걸작들을 볼 기회가 생겨도 그저 남이 좋다니까, 걸작이라니까 그저 심각한 얼굴로 작품 앞에 서서 보는 척 하기도 했지만 실은 그 작품의 깊이를 모르는 미술 문맹임을 고백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아마도 미술작품을 보는 이런 나의 미술 까막눈은 학창시절 미술을 글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사라면 이름도 낯선 무슨 사조며 화가의 이름을 외우느라 진을 다 뺀 탓일 것이다. 미술에 정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내게 학교는 공부 정을 떼게 하는 곳이었다.
그런 차에 우연히 조원재의 『방구석 미술관』을 만났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장을 몇 장 넘기다보니 꼭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 싶었다. 제목처럼 방구석에서 미술관을 둘러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책은 회화 세계에 이름 석 자를 또렷이 남긴 화가 열한 명을 그림 이면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탓에 미술 이야기임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울러 저자의 설명을 읽고 작품을 보니 뭔가 알 듯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술관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절규>의 작가 뭉크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솔직히 왜 그 그림이 유명한지를 잘 몰랐다. 그러나 저자는 뭉크의 그림이 왜 그런 그렇게 그려졌는지를 그의 삶을 통해 적절히 드러내보여 주었다.
뭉크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터였으니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는 이해를 넘어 내게 생소했다. 그런 그녀가 멕시코 화폐 그림에 올라있다고 한다. 멕시코 국민화가라고 한다. 그렇다고 신사임당을 떠올리면 큰 오산이다.
프리다 킬로의 그림은 섬뜩한 광기가 느껴질 정도다. 부부사이가 불운한 화가란다. 그것이 그녀가 내뿜는 광기의 근원일 터다. 이 역시 저자의 설명이 없다면 나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꺼려했을 것 같다. 역시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이는 법임이 분명하다.
우리 집 주변에 호수 변 상가를 건축 중이다. 그 공사장 가림 막에 거장들의 명화를 그러놓았다. 그 중에 발레 그림이 몇 개 그려져 있었다. 그저 운동을 하느라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그 그림을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에드가 드가의 작품이란다.
책을 읽고 나니 에드가 드가의 삶은 벌써 가물거려도 그 공사장 가림 막 옆을 지날 때는 가림 막에 그려진 멋진 그림을 일부러 다시 한 번 흘낏 보게 된다. 그리고 의자에 몸을 거의 눕힌 자세로 거만을 떠는 사내의 정체를 알았다는 이제 알았다는 즐거움을 은밀히 만끽한다.
역시 그 가림 막에는 반 고흐의 그림도 여러 점 그려져 있다. 몇 해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반 고흐 전을 보았다. 그림을 모르니 붓 자국이나 감상하고 괜히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가 즐겨 사용한 노란색 속에는 그의 가슴 아픈 삶이 배어 있었다. 그가 귀를 자른 행위를 이제야 알고 그에게 강한 연민을 느끼도 한다. 그 외에도 고급 카페 한쪽 벽에서 보았던 <키스>라는 그림은 이름도 생소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19금 투성이의 성기노출은 물론이고 성적 수치심을 자극할만 한 그림을 적나라하게 그린 에곤 실레는 어린 시절에 생긴 성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자연의 삶을 동경하고 자연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한 폴 고갱의 삶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에두아르 마네의 파격은 ‘미래의 미술로 가는 문’을 한 발 앞서 간 것이 되었다. 뒤이어 클로드 모네는 미래로 가는 문을 연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당시 계몽주의 사상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화폭에 담아내었다.
인상주의는 폴 세잔에 이르러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서 마침내 후기인상주의가 탄생되었다. 그런 세잔에 대해 ’20세기 회화의 씨앗‘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과 그림은 꽉 찬 볼륨감으로 생생하다. 인류 3대 사과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라고 한다. 세잔을 존경하던 후배 화가 모리스 드니의 말이라고 한다.
20세기 초입에 이르러 바실시 칸딘스키에 의해 추상미술이 창조되었다. 그림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되었다.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지 않으면 마음은 결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화가들의 뒷이야기를 읽다보니 세상에 그 수많은 화가들 중에 유독 몇몇 화가들이 대가라는 이름으로 우뚝 선 것은 모두 그 나름의 독특성이 있었다. 그들은 남과 다름을 강조했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자기시대에는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세상이 그들을 혹평해도 타협을 멀리 하고 쉬이 붓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렬해졌고 마침내 그들은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그림들을 남겼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은 남기고, 그들은 죽어서 그림을 남겼다. 나도 그들처럼 치열할 때가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