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중국은 명이 원나라를 북으로 몰아내고 세력을 잡고 있었고 고려는 두 나라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는 입장이었다. 이때 명이 일방적으로 철령( 강원도 안변지방)을 자기 땅이라 주장하며 ‘철령위’라는 관청을 설치 하겠다 한다. 그 지역은 과거 원의 쌍성총관부가 있던 자리고 공민왕이 싸워 되찾은 곳이다. 조정은 요동 정벌파인 우왕과 최영, 반대파인 이성계와 맞선다. 여기서 이성계의 ‘4불가론’이 나온다.
결국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사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로 하여 요동 정벌에 나선다. 압록강 가운데 위화도에서 이성계는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 회군’을 한다.
우왕과 최영은 평양에 머무르다 개경으로 가 이성계를 막아보려 했으나 실패하고 최영은 처형당한다. 73세의 노장수의 당당하고 태연한 죽음은 어린아이도 눈물흘리게 하였다 전한다. 우왕이 죽고 어린 창왕이 왕위에 오르나 이성계 일파의 주도로 공양왕을 세운다.
급진파와 온건파
급진파 고려왕조가아닌 새 성씨의 왕조를 세우자는 ‘역성 혁명’ 주장의 이성계, 정도전,조준,박위
온건파 고려 왕조를 유지해 나가면서 개혁하자는 정몽주 중심이다. 결국 정몽주는 홀로 남게 되지만 이색의 제자들과 함께 이성계에 맞선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의 능력과 이상을 높이 평가하며 설득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자 죽이기로 결심하고 선죽교를 지나는 정몽주를 조영규를 시켜 죽이고 만다.
정도전 일파는 공양왕을 폐위 시키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한다. 고려왕조가 몰락하고 마는 순간이다.
이성계를 도운 사람들
무인 홍건적과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유명해진 무인들의 지지로 위화도 회군을 성공 시킨다.
신진사대부(신진 사류)유학을 발전시킨 성리학을 배웠으며 지방 향리 출신으로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으나 권문세족에 눌려 자신들의 정치적이상을 펴지 못했다. 권문세족의 대규모 농장 소유, 양민을 노비로 만드는일 등을 비판하고 토지개혁을 주장한 세력이다.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이 있다.
고려왕족인 왕씨는 완전히 멸족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거나 전, 옥, 용씨등으로 성을 바꾸고 살았다.
이성계를 반대한 72명의 신하들은 경기도 광덕산 기슭에 있는 두문동으로 들어가 마을 입구에 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 않았다하여 두문불출의 유래가 생겼다.
최초의 민족 통일 국가를 세우고 외세에 당당히 맞서 강한 민족사를 창조하고 , 세계최고의 문화유산을 만들어 내기도 한 고려 왕조는 무신 정권과 원나라의 지배를 거치며 몰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내부 혁명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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