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거주민의 비율이 줄어들고, 한옥은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카페,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되는 빈도가 증가했다. 옛 한옥촌의 다정함은 상상으로 채워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낮은 담장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던 당시의 모습이 쉬이 떠오르고 곧 향수에 젖어 든다.
시간이 흐르는 둥 마는 둥 정적이 감도는 골목길, 괜히 한 발걸음, 한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자연스럽게 느린 걸음으로 골목길을 서성이듯 걷는다. 어느 골목길은 고고하면서 단아하고, 방향을 틀어 다른 골목길에 접어들면 손때 묻은 회색 담벽 아래로 아기자기한 화초의 화분들이 놓였다. 특히 6070세대에게 이 길은 특별하다. 옛 추억이 하나둘 살아나는, 당신의 힘들었고 보람찼던 하루 속 지나쳤을 법한 그 골목길이다.
차량이 다니는 일방통행 도로가 나오고 길가에 작은 수로가 있다. 마치 논가에 흐르는 작은 실개천 같은 느낌이다. 따박따박 붙은 집 사이 골목길을 다니다가 좁지만, 졸졸 흐르는 물가를 따라 걸으니 시원하다. 이 수로를 따라 곳곳에 작은 정자와 분수대가 마련돼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수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경기전 이정표가 나온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세운 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태종 10년에 창건됐으며 당시 이름은 '태조진정'이라 했다. 세종 24년에 진전을 '경기전'으로 개칭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경기전을 돌아보면서 태조 이성계의 본향 전주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경기전을 둘러보니 해가 늬엿늬엿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오목대에 올라 석양 아래 전주시내, 한옥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러 가보자. 지나갔던 길이 풍경 속에서 도드라진다. 이번 코스는 전주한옥마을의 반의반도 보지 못한 거리다. 그렇다고 서두르면 골목길의 제맛을 느낄 수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그날에 허용된 시간만큼 걷고 느끼는 것이 전주한옥마을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향수이다. '천천히 둘러보는 맛'이 두고두고 전주한옥마을을 찾게 만드는 매력이 아닐까. 해가 지고 하나둘 불을 밝히는 전주시내의 야경으로 마무리하니 깔끔하게 끝난 기분이다.
번잡한 도시의 시끄러움은 그것대로 흐르도록 내버려두자. 사각빌딩이 여기저기서 하늘로 거칠게 우뚝 솟아버리는 그 도시는 잠시 잊고 걷자. 땅 가까이 나지막한 자세의 한옥, 유하게 흐른 기와지붕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마을에선 그 도시를 잠시 잊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