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의 땀 흘리는 표충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있는 홍제사(弘濟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양산 통도사의 말사로 이곳에 ‘땀 흘리는 비’로 알려진 표충비가 있다. 표충비는 비 높이 2.76미터, 비두(碑頭)와 기단석까지 포함하면 3.9미터이며 폭 97센티미터, 두께 70센티미터의 검은 색 돌로 재질은 흑랍석으로 흔히 오석(烏石)이라고도 부른다. 기와지붕으로 된 비각이 이 비를 보호하고 있다.
밀양시 유형문화제 제15호 표충비는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한 돌비석으로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며, 국가에 슬픈 일이 생길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유명한 비다.
표충비각(表忠碑閣) 전경
밀양사람들은 아예 밀양 출신의 사명대사를 ‘밀양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경향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표충비는 여느 비석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비각 앞에는 촛대와 향로가 설치돼 있는데 참배객들이 찾아와 향을 사르고 비석에 예를 갖추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밀양에서 매년 벌어지는 전통 축제인 ‘아랑제’ 행사는 표충비 비각에서 점화식을 가짐으로써 시작되고, 무안면의 줄다리기와 용호놀이도 반드시 표충비에서 제를 드린 다음 행사가 거행된다.
일행에게 표충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해설사
이 비가 유명하게 된 것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적마다 ‘땀을 흘리는’ 신기한 현상 때문이다. 최근의 기록으로 2004년 2월 21일 오후 9시부터 22일 오전 11시까지, 2월 29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땀을 흘렸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100년 만의 폭설을 예고한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던 지난 2월21일과 22일 사이 14시간동안 30리터, 같은 달 29일부터 3월1일 사이 9시간동안 20리터의 땀을 흘렸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을 때는 땀을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땀흘리는 표충비각의 표충비 (表忠碑閣 表忠碑:경남 유형문화재 15호)
표충비각을 수호하는 홍제사(弘濟寺)로 들어가는 입구의 석정(石井) 전경
300년된 향나무
이 향나무는 1742년(영조 18년)에 사명대사 5대 법손인 남봉 선사가 표충비를 이곳에 새우고 그 기념으로 심은것으로 높이 1.5m 둘레 1.1m 정도의 크기로 수령은 약 300년 쯤 되었는데 녹색으로 된 큰 우산을 펼쳐 세워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연못에는 커다란 잉어가 노닐고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 홍제사(弘濟寺) 설법보전(說法寶殿) 전경
표충비 남쪽,좌측방에 위치한 홍제사는 근대에 세워진 절로 표충비를 수호하는 절로서 1980년대 이후의 건축물들로서 대부분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의 시주로 건축되었다. 당우(堂宇)로는 법당(法堂)인 설법보전(說法寶殿)을 비롯하여 경충당, 범종각, 표충각 등 5~6동이 있으며 표충비를 수호하며 그 후광으로 절을 꾸려 나간다.사찰명은 사명대사의 시호인 홍제존자(弘濟尊者)에서 따왔다고 한다. 편액은 구하(九河)스님(1872-1965)스님이 양산 통도사 산신전에 기도하고 지극정성으로 쓴 글씨라고하며
편액의 글씨를 "신필(神筆)"이라고 한다.
홍제사 사적비
설법보전(說法寶殿)앞의 범종각(梵鐘閣)의 호국범종
사명대사에 얽힌 일화
사명대사가 선조 37년(1604년) 강화사로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을 만나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기 위해 협상할 때의 일이다.
도쿠가와 : 조선에 보배가 있는가?
사명대사 : 일본에 있다.
도쿠가와 : 무슨 뜻이냐?
사명대사 :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막론하고 당신의 머리를 베고자 하니 당신의 머리가 바로 보배요.
일본에 와서 태연스럽게 자신의 목이 보배라는 말을 하는 사명대사를 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 대담함에 놀라 협상이 순조로워졌고 급기야는 조선인 포로 3,500명을 풀어 주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허균의 석장비문과 표충사의 영당비문에 적혀 있다.
그러나 사명대사에 관한 전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협상을 위해 일본에 머물러 있었던 때의 이야기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게 치명상을 안겨 준 사명대사의 명성을 시기한 일본인들은 사명대사가 묵을 방바닥 밑에 철판을 깔고 방바닥 밑에서 밤새도록 불을 땠다. 사명대사는 일본인들의 흉계를 알고 품에 품고 온 포척자(과일 이름) 세 개를 내어 한 개는 자리 밑에 깔고 두 개는 양손에 갈라 쥐었다. 그리고 영사(수은을 고아서 만든 약재)로 서리 상(霜), 눈 설(雪)자를 네 벽에 써 붙인 다음 정신을 통일하고 비밀 진언을 외며 앉아 있었다. 한참 후 사명대사가 있는 방은 얼음과 눈이 가득 찼다. 이튿날 아침 일본인들이 문을 열어 보니 대사의 긴 수염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대사는 일본인을 보자 큰 소리로 호령하였다. “일본이 조선보다 따뜻하다고 들었는데 간밤에 어찌 그리도 추우냐. 외국의 사신에 대한 대접이 너무나도 소홀하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