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징표들
- 은유시인 -
함께 연상되는 것들…… 문패, 명함, 바코드
세상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두 그룹이 있다. 가진 자는 가졌다는 표시를 내고 싶어 안달이다. 따라서 가질수록 더 가지려 하는 것도 그런 심리의 표출이다.
문패
요즘에야 남의 집 셋방 사는 사람보다 자기 집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아 실제 집 없는 설움을 겪는 이들이 그나마 한결 줄어들었을 터이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상류층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실제 우리 서민들 삶이란 것이 오죽했으랴. 하루 세끼 끼니 해결에도 벅차거늘, 비록 단칸방일지언정 내 집이라고 ‘턱!’ 하니 가장명의로 등기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자 소원이었으니, 그렇다고 그러한 소원도 누구한테나 다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는 소원은 아니었다.
철들고부터 거의 평생에 걸쳐 먹고 입는 것 마저 절제하고 거기에 아등바등해야 겨우 늘그막 하여 어렵사리 자그마한 집이라도 장만할 수 있었는데, 그때 가장은 집들이에 앞서 대문기둥에 손바닥만 한 문패를 ‘처억’ 걸어놔야 집 주인으로서의 명분이 서는 듯했다.
그 문패란 것도 집의 규모와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으니, 토끼장을 겨우 면한 집이라면 널빤지 귀퉁이를 잘라내어 사포로 ‘쓱~ 쓱!’ 문질러 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그 위에 먹물로 정성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적은 다음 니스로 덧칠하여 대문기둥에 ‘탕! 탕!’ 못질하여 걸면 되었다. 그렇게 집을 장만하여 살다보면 조금씩 살림도 늘게 되고 방도 하나 둘 더 딸린 집으로 소위 확장이전을 하게 되는데, 방이 몇 개쯤 되고 거실이 있고 욕탕이나 마당이라도 갖춘 집이라 치면 거기에 걸 맞는 문패도 다시 장만해야했으니, 그때쯤이면 문패도 매끈하게 제 용모를 갖춘 예쁜 놈이라야 할 것이다.
흔히 제대로 각진 박달나무, 은행나무 등에 샛노란 색으로 곱게 칠한 다음 한석봉 체의 암각글씨로 주인장의 이름 석 자를 한자(漢字)로 새기기를 즐겼으며, 그를 대문에 ‘척~’ 걸쳐놓으면 제법 때깔이란 것이 살아나오는 듯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소위 정원다운 널찍한 앞뜰을 지닌 이층양옥의 좀 산다는 신식집 대문에는 거의 예외 없이 잔잔한 물결무늬의 연회색 혹은 청람색 빛을 띤 대리석문패가 걸려있기 마련이다.
문패에도 귀족이 있으니, 이른바 주물로 만든 신주문패로 광만 잘 먹여놓으면 그 누런 태깔이 빛을 받아 번쩍이는 것이다. 그러한 문패는 고관대작의 대저택 위풍스런 열두 자 대문 위에 ‘민초들은 물렀거라!’라며 거들먹거리듯 위엄스레 도사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집들이 그런 문패로 그 집의 소유자가 누구임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이나 가호가 수백 호에 못 미치는 촌으로 가면, 그러한 문패를 대문에 걸어놓은 집들을 쉽게 볼 수가 없다. 대개 인근에서는 ‘어느 집’하면 대번에 ‘누구네 집’이란 구태여 문패가 없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안 걸어 놓을 수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한적한 곳이든 시골이든 그러한 곳의 집이란 것이 재산 가치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문패가 지니는 의미는 ‘누가 이 집에 살고 있노라.’는 표시 보다는 ‘이 집은 누구의 것이다.’란 과시에 더 비중이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누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터이다.
하기야 요즘은 그 문패란 것도 단독주택에서나 어쩌다 볼 수 있지 주거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에는 문패란 것이 없다. 대신 ‘몇 동 몇 호’라는 표시만이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관을 마주보고 사는 이웃일지라도 서로 간에 내왕이 없다면 앞집 주인양반 이름이 어찌되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명함
그러고 보니 얼핏 문패랑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명함이란 것이 떠오르는데, 문패가 ‘아무개는 이 집에 살고 있소이다.’란 소재표시 외에도 ‘이 집은 아무개 것이요.’라고 소유를 밝히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면, 명함은 ‘아무개를 찾으려면 이리로 연락하시오.’란 소속표시 외에도 ‘아무개란 사람은 대충 이러한 사람이외다.’라고 지위를 드러내고자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문패나 명함이나 다를 바 없다할 것이다.
명함에는 자신의 지위는 물론 연락할 수 있는 방법 이외에도 자신의 얼굴까지 넣을 수 있으니, 초면에 만난 사람끼리 인사가 오가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건네주고 건네받는 것도 역시 명함이라할 수 있겠다. 이는 어느 집을 방문할 때 그 집 대문에 걸린 문패부터 확인하는 것과 비교하면, 명함이나 문패나 첫 번째로 상대에게 선을 뵌다는 점에서 무엇이 다르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서는 명함이란 것이 흔하게 통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이 명함이란 것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 것이다. 과거엔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지니고 다녔을 법한 명함들을 이제는 일반직장의 내근자들까지, 어쩜 여학생들이나 집안의 주부들까지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무슨 큰 모임이나 집회에라도 갖다 올라치면 아예 명함을 박스째로 들고 다니며 뿌려야함은 물론, 받아 쥔 명함을 분류하려면 그것 또한 한나절거리로 간단한 일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렇듯 신분을 나타내는 명함도 그 모양이나 재질에 있어 각양각색이길 문패 못지않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명함은 위엄의 상징이었으며 웬만한 살림으로는 명함 값이 꽤 큰 부담이었다. 대략 두터운 아트지에 세로 편집으로 그 글꼴도 명조체류 한문으로 인쇄했으며, 금박 심벌이 덧붙으면 마치 무시무시한 ‘어사패’를 방불케 했었다.
요즘에야 어디 명함보고 주눅들 시대이던가, 판걸이 명함이라하여 양면 무광 코팅된 칼라명함 오백 장 제작비가 단돈 만원을 밑도니, 문자 깨친 코흘리개까지 명함을 주문한댄다. 그뿐이랴, 장당 오만 원짜리 명함이 있다하니 실제로 황금 반 돈으로 납작 눌려 만든 뇌물성 황금명함인 것이다.
명함첩에 꽂혀있는 수백, 수천 장의 명함들을 살펴보노라면, 그것 또한 재미있는 읽을거리요 마치 그 명함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제각기 은밀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것들이 마치 인격이라도 있는 듯 천태 만태 그 속에 삶들이 녹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불현듯 할 일없이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도 솟는다.
그러고 보면 아직까지는 명함 그 자체만으로도 극히 인간미가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그런 연유로 해서 당분간은 사람들 사이에 명함은 여전히 재회의 전령으로 존재하게 될 것 같다.
바코드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미래공상과학영화에서 인간들의 목덜미에 바코드를 새겨 넣어 특정개체로서의 인간을 분별할 수 있도록 고유표시화한 것을 보았다. 영화제작진이 어떤 의도로 그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나 재미있는 발상이라 여겨졌다.
왜 하필 바코드를 목덜미에 새겼을까? 이마 한 가운데에 새겨 넣을 수도 있었을 테고, 아니면 보이지 않는 부위, 즉 엉덩이라든가 배꼽 밑, 등판, 아니면 팔목, 발목 등등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아무리 신체의 이곳저곳 바코드를 새겨 넣을 만한 곳을 찾아보려 해도, 역시 그들 의도대로 목덜미가 가장 그럴 듯한 것이다. 목덜미란 옷깃에 의해 쉽게 가려질 수도 있을 테고, 필요에 의해 쉽게 드러낼 수도 있는 신체부위 아니던가.
그리고 또 이어지는 의문 한 가지는 왜 하필 바코드란 말인가. 손의 지문을 통해, 또는 눈동자 조리개의 주름문양으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원시적이라면, 그보다 더 앞선 음성의 파장에 의한 식별법, 보다 더 진일보한 유전자감식에 의한 식별법도 있을 텐데 왜 하필 낙인찍듯이 보기에도 섬뜩한 바코드란 말인가. 그렇다면 바코드가 물건뿐만 아니라 유기체의 개별감별에 더 용이할 수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 막대형의 바코드는 한 자리 숫자의 정보밖엔 지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엔 세 자리, 네 자리 숫자만큼 어쩌면 두꺼운 소설책 한 권 분량 이상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그림문양의 바코드까지 개발되었다. 그렇다면 머잖아 입체형 바코드가 개발되어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능가하는 방대한 정보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우성유전자를 이용한 인조인간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미래에는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닮은꼴의 인조인간 개체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바코드 밖에 더 있으랴.
바코드란 특정사물이 지니고 있는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보다 빠르게 판독시키고, 그 데이터를 보다 빠르게 입력하기 위한 부호화된 기호로써, 문자나 숫자, 그림 등을 막대모양이나 그림모양의 기호로 축약, 재조합한 것이다.
처음 바코드는 대기업에서 대량생산되는 생활필수품의 대량공급을 위한 유통개혁의 일환으로 개발되었을 것이다. 그런 바코드가 제품의 특성과 가격정보 외에 출판업종에서는 도서 분류용으로 사용되고, 각종 허가사항을 다루는 아이디카드 등 신분을 증명하는 데에도 널리 이용된다하니, 어떤 사물을 알리고자 하는 주요 표식수단으로서의 바코드의 영역은 얼마든지 무한대로 확대될 조짐이다.
사람이란 가급적 열등에서 벗어나 타인으로부터 대접받으려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는 동물이다. 비근한 예로 은행계카드를 들 수 있다. 그들 카드는 신분을 차별하려는 듯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카드가 있고 우대카드 즉 실버카드가 있다. 그 위로는 우량카드인 골드카드가 있다. 그마저도 욕구가 덜 충족되었던지 초우량카드인 플래티넘카드도 나왔다.
그런데 그들 카드들은 모양새만 달랐지 그 기능이나 용도는 거의 동일하다. 어떤 카드를 소지하든 그 카드로 인해 인격이나 품격을 그만큼 격상시키는 실제적 역할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실속 없이 많은 연회비만 더 부담시키려하는 카드회사의 잇속과 이에 아랑곳없이 과시욕과 탐욕에 들뜬 사람들 간의 합작품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바코드 또한 차세대 문패나 명함으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이 바코드가 한 세대쯤 이후에는 모든 사물뿐만 아니라 유기체들, 더 나아가서는 영화에서 보듯 우리 인간들에게까지 적용되어 목덜미에 붙게 되던 이마에 붙게 되던 인간 개체를 분류, 표시하는데 널리 이용될 것이란 예감이 문득 든다. 그때쯤이면 바코드도 또 하나의 카리스마를 측정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일반바코드, 실버바코드, 골드바코드, 플래티넘바코드, 울트라바코드 등으로 분류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끝 -
(200자 원고지 30매 분량)
2002/11/09/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