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야라인과 헬싱키 저희는 오후 시내 관광을 마치고 서둘러 실자라인으로 향했습니다. 북유럽 인기 여행지 스웨덴 스톡홀름과 핀란드 헬싱키 두 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실자라인 크루즈를 타고 유람을 할 수 있는 배입니다.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오가는 실자라인 크루즈는 각 도시에서 저녁 무렵 출발해 핀란드 올란드를 경유하고 다음날 아침 목적지 헬싱키에 도착합니다. 실자라인 크루즈에서는 맛있는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포도주와 맥주가 무료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무료라고 하니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별로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배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를 따라 북유럽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 여러 아름다운 섬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실자라인은 원래 현지 발음은 실야라인입니다. 실자라인은 총길이가 203 m, 너비는 31.5m이고, 2,980대의 침대를 갖춰 2,853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으며 자가용 400대, 버스 60대를 실을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13층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유명한 핀란드식 사우나 시설이 있으며 넓은 갑판이 있습니다. 갑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섬의 집들이 모두 작품 같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취해 움직일 수가 없는데 배는 미끄러지듯 천천히 달립니다. 많은 작은 배와 보트들이 서둘러 돌아옵니다. 하늘이 아름다웠지요. 갑판에 몇 명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는데 저도 끼여 할 줄 모르는 노래를 했는데, 도저히 소리가 안 나와 혼냈습니다. 할 수 없지요. 새벽에 밖을 나왔습니다. 다행이 아무도 없었어요. 혼자 한 바퀴를 돌고 찬바람을 맞았지요. 멀리 까맣게 육지가 보이고 망망대해입니다. 지난 며칠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했습니다. 아직 렘브란트의 그림을 볼 생각을 하며 마치 여정이 그분의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그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저희는 헬싱키에 도착했습니다. 헬싱키는 핀란드의 수도입니다. 그곳에서 가이드를 만나 버스에서 헬싱키에 대해 들었습니다. 헬싱키는 발트해 동부의 핀란드 만에 면한 핀란드 남부의 우시마 지역에 속하며, 에스포, 반타, 카우니아이넨과 함께 핀란드의 수도권을 형성합니다. 인구는 약 60만 명이라고 해요. 헬싱키 도시권인 대 헬싱키의 인구는 약 140만 명으로 핀란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자체 및 도시 지역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헬싱키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과 마찬가지로 핀란드 만에 면한 주요 도시의 하나입니다. 헬싱키로부터의 거리는 동쪽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300킬로미터, 남쪽 탈린까지 85 km입니다. 또한, 서쪽으로 400킬로미터의 거리에 위치한 발트 해 건너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까지 이들 도시와 헬싱키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헬싱키는 100만 명 이상이 사는 도시권으로서는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권이고, 유럽연합 회원국의 수도중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이며, 핀란드의 정치와 교육, 금융, 문화, 조사 센터 등 다양한 분야의 중심 도시입니다. 헬싱키의 최고기온 기록은 2010년 7월 28일의 34.1 °C에서 최저 기온은 1987년 1월 10일 -34.3 °C 였습니다. 여름 기온이 25 °C를 초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한국의 서울에 비교하면 좋은 기후입니다. 독일 건축가 카를 루빙 엥겔은 새로운 도시의 중심을 설계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엥겔은 일부 헬싱키의 신고전주의 건축의 건축물 설계에 관계했습니다. 엥겔의 도시 계획의 핵심 포인트는 헬싱키 원로원 광장입니다. 저희는 주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변에는 동쪽에 핀란드 정부 궁전, 서쪽에 헬싱키 대학의 본관, 북쪽에 엥겔스 사후 12년인 1852년에 완성된 거대한 헬싱키 대성당이 있습니다. 후에 엥겔스의 신고전주의 도시 계획에 고무되어 "북방의 백색 도시 '라고 표현되어 졌습니다. 그러나 헬싱키는 1900년대 초기, 그 시대의 내셔널 로맨틱 아트에 있어서 매우 인기 있었던 테마인 핀란드의 국민 서사시인 칼레발라의 강한 영향으로 디자인된, 로맨틱 내셔널리즘 건축물의 영향을 받은 아르 누보로 어쩌면 보다 더 유명했을 것입니다. 헬싱키의 신고전주의 건축은 카타자녹카와 울란린나 등의 큰 주거 지역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핀란드 신고전주의 건축의 거장인 엘리엘 사리넨의 대표작으로는 헬싱키 중앙역이 있습니다.
헬싱키 대성당은 핀란드의 수도인 센트럴 헬싱키에 있는 대성당입니다. 이 대성당은 핀란드 루터교회 헬싱키 교구에 속해 있습니다. 1917년 핀란드 독립 전까지는 성 니콜라우스 성당이라고 불렸습니다.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성당이기도 합니다. 헬싱키의 중심부에 있는 이 교회는 핀란드에서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매년 350,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성당을 방문하고 그 가운데에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희는 헬싱키의 원로원 광장에서 자유 시간을 주었지요. 항구 시장에 가서 과일도 사서 먹고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헬싱키 대성당이 루터교의 총 본산이라면, 우스펜스키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입니다. 러시아 알렉산더 대왕의 지시로 성모승천 대축일을 기해 1868년 건축되었으며, 건축자재는 물론 실내장식도 모두 러시아에서 가져왔습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었고, 지붕 첨탑 부분은 금으로 덮여있다고 합니다. 이 성당이 지금은 극소수인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성당 밖으로 나오자 항구와 헬싱키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졌습니다. 저희는 점심을 먹고 미사를 드렸지요. 미사는 헬싱키의 어느 가톨릭 성당에서 있었습니다. 미사 후에 시벨리우스 공원을 찾았습니다. 시벨리우스의 사후 1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에 조성했는데, 조형물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벨리우스 두상인데, 애완견에 기대거나 인형을 베고 있는 느낌인데 눈을 부릅뜨고 있어 자연의 역경을 이겨낸 핀란드 사람들의 강인함을 보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24톤의 강철로 만들었는데, 땔감으로 통나무를 토막 내 허공에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고, 파이프오르간을 형상화한 것 같으면서도 이곳에 풍부한 자작나무 숲과 그곳에 쌓였던 눈이 여름을 맞아 녹다 얼며 줄줄 흘러내린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암석교회인 템펠리 아우키온으로 1969년 바위산을 파내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교회 내부는 절단된 암석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또한 떼어 낸 돌을 다시 벽으로 쌓았고, 천장은 음향효과를 높이기 위해 3만 미터 구리 동아줄을 짚방석처럼 감아올려놓았습니다. 자연 채광을 위해 천정과 외벽 사이 원형으로 창을 만들어 건반과 같은 오묘한 맛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리고 파이프오르간은 암벽에 배치해 조명효과와 음향효과로 음악회와 결혼식도 자주 열린다고 합니다. 비싸겠지요. 루터파 대성당과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 그리고 암석교회로 드디어 순례를 한 느낌입니다. 사우나로만 기억되던 핀란드는 오늘날 학업성취도 1위,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흥미도 1위인 나라입니다. 부럽습니다.
실자라인과 헬싱키 사진
실자라인 크루즈 안 입니다. 마치 호텔내부 같습니다.
유람선에서 바라 본 풍경입니다.
헬싱키에 도착 했습니다.
핀란드에서의 미사
시벨리우스 공원입니다.
지하 암석 교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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