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4학년 3반 담임선생님이 김상균 선생님, 5학년 엄상용 선생님, 6학년 5반 안명준 선생님이다.
6학년때는 우리 반에 정희가 3명 있었다. 송구하던 김정희, 시장의 왈가닥 박정희 그리고 중 1때인가 서울로 전학한 임정희가 있다. 그리고 우리반에는 김정희 신 옥주 깍쟁이 상점 밑에 사는 왈가닥, 이름이 기억 안 난다. 핸드볼을 상당히 잘 했던 친구다. 여자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 남자들이 연필 깎이 칼로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다 왈가닥한테 걸리면 죽는 날이다.
이렇게 6학년때 핸드볼도 잘하던 김기현이네 가 서울로 이사를 간다. 성당 앞에 큰 트럭을 세우고 짐을 다 싣고 운전석 뒤에는 기현이와 언니 기옥누나와 막둥이 경섭이하고 앞자리 운전수와 기현이 엄마 랑 아빠가 탔다.
기현이 엄마가 동네 사람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도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서울 가서 건강히 잘사시오하면서 꼬깃꼬깃한 백원짜리 몇 장인가를 손에 쥐어 주면서 밤에 가다가 휴게소에서 따듯한 국수라도 한그릇씩 사 드시고 잘 가시라고... 기현엄마는 어르신께 신세를 너무 졌다고 그리고 기현이네 는 떠나가고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중학교를 시험 쳐서 합격해서 붙었다. 들어갔다. 과목이 너무 많은데 덩치가 조금 크니 아버지가 뻥튀기 일을 더 시키는 거다. 학교 갔다 오면 가방 던지고 아버지를 돕고 또 가방 들고 다시 학교 가고. 일년 쓴 책에서 석유 냄새가 그대로 났다. 한 번도 들춰보지 않으니 새 책이었다. 1학년때 국영수가 200점 만점이었다. 영어 0점 수학 40점 국어60점, 한심한 성적표 성적이다. 산수는 국민학교때도 못했고 국민학교 때는 4.5.6학년 동안에 20등안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낙제를 했다 창피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민학교 때 나보다 못한 애들은 2학년이 되고정신을 차려야겠다 내가 아주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닌데 중1학년 끝날 때 I am a boy를 쓸 줄 몰랐다. 영어 시험 칠 때 매번 백지를 내면 신석정 시인의 따님 신소연 선생님께서 언치나 쓰끼나하면서 손바닥을 30cm대나무 자를 세워서 때린다. 그것도 세워서. 겨울에 맞으면 매 손바닥에 톱으로 써는 것 같이 매서웠다. 공부를 시작했다. 일 년 후배들 이랑 수학은 포기해서 다른 과목에서 보충하기로 하고 영어부터 달달 외웠다 알파벳 소문자 대문자 인쇄체 필기체 I am a boy Lesson one 영어책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달달 외웠다. 집에 빨리 가면 뻥튀기 일을 도와야 하니까 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도시락을 2개 싸서 도서관에서 열시까지 공부를 했다. 3번차 통근버스가 10시 30분이면 출발한다 고맙게도 말없이 잘 태워 주신다 그때 재수했던 양재일 김종규 성병호 변희동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다 그중에 김종규는 우리 동창인데 재수수하고 다니는데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공대를 나와 LA에서 박사를 한다고 한다. 자랑스러운 친구다. 상순이를 차로 친 연탄공장 탁철수 사장 딸이 김종규 와이프다. 탁 홍식이 하고 사촌이고 세 달을 그렇게 했다. 성적이 올라갔다. 그 당시 정부에서 우열 반 제도를 도입시켜서 공부를 시키라고 했다 난 당연히 우 반에 들어갔다 남녀 합반 40명쯤 되는데 담임 김 지향 선생님. 이화여대 출신이다.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난 모르겠다. 수학을 모르니 무지하게 무서운 선생님이다 걸음걸이가 특이해 8자 걸음걸이다 내가 흉내 한번 내다 들켜서 코너에 몰려 안경 벗고 시계 풀고 들어오면서 반 죽는 날이다. 양재일이도 운동만 하다 재수하고 들어왔는데 녀석이 공부를 잘 하더라 김지향 선생 스파링 상대는 재일와 내가 단골이다.
우반 시절 영어단어 경시대회가 열렸다. 100문제는 영어로 써 놓고 한글로 답하고 100문제는 한글로 쓰고 영어로 답하는 중1.2.3 전체가 시험을 봤다. 난 200 문제 중 1문제를 틀렸다. 방학을 쓰라고 했는데 VACATION인데 스펠링에 A가 빠졌다 그래서 199 문제를 맞춰 중 1.2.3학년 중 최고의 점수가 나왔다. 신소연선생이 낙제 전에는 한 문제도 못 맞추더니 낙제하고는 199개를 맞추고 1문제가 틀렸는데 어디 다가 넋을두고 다니냐 이보다 어려운 단어도 다 맞추고 아쉽다고 야단 아닌 야단을 맞았다. 기분이 묘했다 수학은 여전히 40점이다. 그외 과목은 양호했다 특히 암기 과목은 성적이 양호했다 2학년에 올라갔다. 변덕스러운 정부가 또 섞어 놔야 한다고 우열 반 해체를 했다. 우리 반에는 우 반이 있던 애들이 2명 밖에 없었다. 유유상종이 뭔 지 알았다. 또 공부가 멀어졌다 2학년 올라오니 4.19의거총대장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이신 이태건선생님이 영어를 담당하셨다. 실력이 정말 훌륭하셨다 고등학교는 불어를 가르친다고 하셨다. 그리고 역사는 월남전에서 예편한 이기응선생님이셨다 “연병장으로 집합”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었다 2학년 담임은 원주에서 전근 오신 이은영 선생님이다. 수학 담당이다. 한번은 시험 본 후 “장성각이 앞으로 나와” 소리를 지르셨다 너 임마 다른 과목은 7.80점인데 수학이 20점이 뭐냐 2학년부터는 국영수도 백점 만점이다. 나하고 억한감정 있냐? 아니요, 저는 국민학교부터 수학을 못했답니다 기대하지 마십시오 기초를 알면 수학은 쉽다 개별적으로 기초를 알려주고 했는데 소 귀에 경읽기다.
2학년 후반에 대성상회 사건이 생기고 6명이 무더기로 무기정학을 맞았다. 이게 나의 학교생활 전부다.
재미있는 일을 하나 잊었다
중 1때 중석 물 건너 명진네가 살던 집에 집은 개조해서 돼지우리를 지었다 녹전 장날에 암돼지 실한 놈 1마리 사 오셨다 아버지가 워낙 잘 거둔 이 살이 토실토실 찌고 등에 기름이 번지르 했다. 새까만 돼지가 너무 예뻤다. 얼마 후 이놈이 새끼를 낳았다 돼지새끼 할 때 부정을 탄다고 까만 천으로 막고 전깃불만 키고 아버지가 새끼를 받아냈다. 근데 큰일났다. 새끼가 13마리가 나온 것이다. 돼지 젓은 열두개고 돼지들은 특성상 제일 큰 놈이 제일 잘 나오는 걸 물으면 젖 띨 때까지 그 젖만 먹는다. 젖은 열 두개 새끼는열세마리 아버지 할 일이 더 생겼다 하루 세번 새끼들 젖을 골고루 먹이는 거다 무녀리 막내는 가만 놔두면 굶어 죽는다. 젖을 골고루 먹여주는 것을 어미 돼지는 흐뭇하게 쳐다본다. 하루 종일 피곤하다. 잠은 단 잠이다. 장마철인데 한참 자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려 아버지와 나는 손전등을 들고 돼지우리로 올라갔다. 기적이 일어났다. 돼지는 산 쪽으로 누워서 새끼들 젖을 먹이는데 들어가보니 중석 물 쪽 문쪽으로 어미가 와 있고 새끼들은 젖에 매달려 있다. 동물들은 그걸 아는 모양이다. 탄광에서도 쥐들이 난장으로 나가면 무조건 따라 나가야 한다. 실제로 황지에서 쥐를 따라 나가서 16 명의 광부를 살린 적도 있다 돼지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0.5 톤 정도의 바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돼지는 중석 물 쪽으로 등을 대고 새끼들 젖을 먹이고 있었다 다행히 새끼 한 마리도 안다치고 어미돼지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는 연신 등을 긁어 주면서 나는 먹을 것을 퍼다 날랐다. 역시 돼지는 먹이면 조용해진다. 동네 사람들이 아침 모였다. 산신령이 도왔다고 그날 장마가 져서 개도 떠내려가고 난리도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시장으로 피난 가고 했지만 우리는 갈 곳이 없다. 그때 정희 엄마 랑 아버지 완이형이 와서 우리집에 가 있다 잠잠하면 오자고 그랬다. 근데 우리 아버지가 저 어린 새끼들을 두고 나는 못 가고 여기 있겠다 정희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개도 중요하지만 어르신이 더 중요해요 같이 갔다가 밥 먹을 때만 오시면 되지 않냐 구. 참 고마웠다 우리 식구는 피난 아닌 피난을 갔다. 정희 네는 식구가 많다. 식모가 2명 정희 엄마 아버지 완이형 투, 정희 훈이 그리고 막둥이 공주 노랑머리. 막둥이가 참 착하다 말도 잘 듣고 식구들 모두 착하고 친절했다 정희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내 집 같이 편하게 있다 가라고 특히 아버지를 잘 챙겨 드리셨다 3일은 신세지고 장마가 끝났다. 건너와서 잠시 살다가 아버지가 불안해서 못 살겠다며 예배당 위에 연수 네 집 밑에 노는 밭이 있었다. 그 주인에게 밭을 샀다. 또 같이 광업소 동발 반장을 꼬셔서 피쪽을 한차 불하 받았다. 성당 앞에 부어 주었다. 우선 잘 집은 있으니 신대골에서 기둥으로 동발 같은 것도 베어오고 해서 기둥도 세우고 아버지 친구분 송씨 아저씨가 많이 도와 주셨다. 한 달 만에 완성이 되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여서 스레뜨(슬레이트)가 나왔다. 그걸 신청해서 덮으니 비도 안 새고 아주 좋았다. 중석 물 건너 짐은 거의 다 옮기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상동 은 취직도 안 되고 황지에 큰 매형이 있으니 거기 가서 탄광 일을 하겠다고. 탄광 일도 좋으나 뻥튀기 수입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그건 나도 안다 웬만한 용인 시고 보다 훨씬 많이 번다는 것. 정 그러면 네가 알아서 해라. 지금 생각하면 내가 불효 막심한 놈 이었다. 아버지 계산은 신대골밑에 화장실 옆에 돼지도 여러 마리 기르고 개도 수십 마리 키웠다 2~3년 바싹해서 고향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셨던 것이었다.
첫댓글 성각이 상동에서의글을보니 옛생각이나네~
성각이 강냉이튀밥튀길때 옆에서 하늘을보며 눈꼽낀얼굴로 손흘들던 순갑이샐각이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