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3:1)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 28:7)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 우리를 우울하게 할지라도, 슬픔에 잠겨 있기보다는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아멘.
사도 바울은 “끝으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결론적으로”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노니, “너희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빌립보서 4: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다시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듭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은 기쁨을 주시기를 빕니다. 나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써 보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번거롭지 않았습니다.
같은 말씀을 반복하여 되풀이 하는 것을 사람들이 지겨워하고 싫어할 터이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옳은 진리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가 일어나곤 합니다.
운전자는 안전 운전을 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가장 안전한 것은 교통법규를 가장 잘 지키는 것입니다.
여름철을 맞이하여, 강으로,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납니다.
코로나19로 참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잠시 휴가를 떠납니다.
가는 길, 오는 길, 그리고, 휴가를 보내는 동안, 안전해야 합니다.
휴가 때 뿐이겠습니까? 평상시에도 늘 안전해야 합니다.
누가 나의 안전을 책임져 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품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악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안전이 있고, 참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기쁩니다.
주님이 돌보실 때, 안전합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 평안합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 행복합니다.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7:4, 23:6)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